아이웨어 브랜드 ‘윤(YUN)’의 두 번째 챕터
베를린 쿠어퓌르스텐담에 새로운 매장 오픈
2015년 베를린 미테Mitte에 첫 매장을 오픈한 아이웨어 브랜드 ‘윤YUN’은 검안 후 제품 완성까지 총 20분 이내로 이루어지는 ‘인스토어 프로덕션 시스템In-store Production System’으로 베를리너는 물론 전 세계 여행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안경을 맞추려면 시력 검사, 안경테 선택, 렌즈 가공의 과정을 거쳐 적어도 2주 이상 걸리는 독일(다른 유럽 국가도 상황은 비슷하다)에서 윤의 시스템은 가히 획기적이었다. 이 모든 것은 30년 이상 렌즈 가공 엔지니어로 일한 윤철주 대표와 아버지의 기술에 아이디어와 감각을 더한 윤지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Welcome Back to Berlin
한국인이 만들었지만 베를린에서 시작한 윤은 독일에서의 성공에 힘입어 한국에 역진출한 독특한 사례다. 2020년 성수점을 시작으로 한남, 판교에 매장을 연이어 오픈하며 국내 시장에도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그리고 다섯 번째 매장은 다시 베를린이다.

윤의 새로운 매장은 쿠어퓌르스텐담Kurfürstendamm 거리에 있다. 베를리너들 사이에서 일명 ‘쿠담Ku’damm’으로 통하는 이곳은 베를린의 중심이자 상징적인 지역이다.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에는 예술가와 지식인들이 모여 문화를 꽃피웠고 전후에는 서베를린의 상업과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오늘날에는 유명 브랜드, 대형 매장들이 모여 있어 관광객이 모이는 쇼핑 거리로 유명하다. 특히 지붕이 날아간 채로 전쟁의 상흔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카이저 빌헬름 기념 교회는 쿠담은 물론 독일을 대표하는 명소다. 윤은 바로 그 앞에 있다.
베를린은 역사적인 특성상 동쪽과 서쪽의 중심이 다릅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윤지윤
각 지역의 거주자들은 잘 이동하지 않고요. 기존 매장이 있던 미테가 동베를린의 중심이라면 쿠담은 서베를린의 중심입니다.
그래서 두 번째 매장은 이곳에 열기로 결정했습니다.
건축과 예술의 융합을 꿈꾸는 공간 디자이너
공간 디자인은 피에르 호르헤 곤잘레스Pierre Jorge Gonzalez와 유디트 하제Judith Haase가 설립한 베를린 기반의 스튜디오 Gonzalez Haase AAS(Atelier Architecture and Scenography)가 맡았다. 신문 인쇄소를 패션 편집숍으로 탈바꿈시킨 Andrea Murkudis, 옛 우체국 건물에 들어선 하이엔드 피트니스 센터 Hagius, 공장을 개조한 패션 브랜드 032C 갤러리 등 독특한 프로젝트로 이름을 알린 듀오다.

1990년대 뉴욕의 실험적인 예술 기관인 워터밀 센터에서 만나 로버트 윌슨Robert Wilson, 리처드 글럭만Richard Gluckman과 함께 작업하며 건축과 예술의 융합을 탐구한 이들은 공간을 건축과 인테리어가 아니라 이야기가 있고 감각이 움직이는 무대미술의 영역으로 확장한다. 특히 이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조명. 공간 안의 빛과 그림자, 구조와 빈 공간의 긴장감 연출에 주목한다.
우리는 매장 바로 맞은편에 있는 에곤 아이어만 교회(카이저 빌헬름 교회)의 열렬한 팬이기 때문에 이 작업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피에르 호르헤 곤잘레스 & 유디트 하제
20세기 독일 모던 건축을 대표하는 에곤 아이어만Egon Eiermann은 전쟁으로 파괴된 교회를 온전히 재건하는 대신 콘크리트와 유리를 주재료로 사용해 직선적이고 단순하게 교회의 본질을 표현했다. 곤잘레스와 하제는 밤이 되면 빛나는 교회 외벽의 레드 & 블루 컬러의 유리블록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의 일환으로 끌어들였다. 교회와 마주 보는 쇼케이스 윈도우에 밝은 오렌지-옐로우 컬러의 조명을 입히고 실내에는 블루 글라스 기둥과 뉴트럴 조명이 제품을 강조하게 고안했다.


내부에는 벽을 세우지 않고 빛과 왜곡을 통한 시각적 인지를 활용했다. 가구는 직선 형태가 기본이지만 시각은 곡선을 인식하기 때문에 디스플레이 테이블을 미세한 곡선 형태로 설계해 사람들의 움직임을 유도했다. 이것은 가구를 인테리어 요소가 아닌 건축의 일부로 바라보는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상품의 디스플레이는 사람들의 동선에 영향을 미친다.

Flexibility & Sustainability
곤잘레스와 하제가 추구하는 또 다른 방향성은 유연함과 지속가능성이다. 이들은 기존 구조를 크게 건드리지 않고 오직 조명, 가구, 커튼을 사용해 공간을 변형시켰다. 수년간 다양한 공간 프로젝트를 해 온 경험에서 봤을 때 특히 상업 공간의 경우 그 생명 주기가 약 5년 정도 된다고 파악했다. 그 이후엔 고객은 물론, 운영자자도 지루함을 느끼고 변화를 시행한다. 그래서 디자인의 접근 방식을 지속가능성으로 정의하고 유연한 디자인을 채택했다. 옮기지 못하는 벽 대신 커튼으로 공간을 나누고 재배치가 어려운 붙박이나 무거운 소재보다는 알루미늄, 나무 등을 선택한 이유다. 이들에게 공간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곳이다.
세상은 변하고, 사람도 변해요. 트렌드는 당연하고요.
피에르 호르헤 곤잘레스 & 유디트 하제
사물의 시간성을 인정하는 것은 지속 가능한 디자인을 추구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매장 곳곳에 드리워진 커튼은 아트 스쿨에서 세노그라피를 전공한 곤잘레스가 즐겨 사용하는 아이디어다. 마치 무대처럼 신비로운 느낌과 궁금증을 유도할 뿐만 아니라 고객이 갈 수 있는 곳과 아닌 곳을 분리하는 기능적인 역할도 수행한다. 라이트 블루 컬러의 벽과 이어지는 커튼 그리고 상단에 떠있는 하얀색 커튼은 하늘에 떠있는 구름을 표현하며 공간에 깃든 스토리텔링의 암시를 준다. 또한 알루미늄 소재의 테이블들은 조명을 반사해 안경을 더욱 돋보이게 해준다. 고객과 직원이 만나는 카운터만 나무 소재를 사용한 것도 따뜻한 소통을 의미하는 의도된 연출이다.
Widen your vision


윤은 ‘Widen your Vision’이라는 슬로건 아래 베를린의 문화와 예술을 탐구하는 ‘윤 저널’을 정기적으로 발행한다. 안경만으로는 브랜드가 지향하는 가치를 담아내기에 한계를 느낀 윤지윤 디렉터가 고객과 소통하기 위해 고안한 전략이다.
윤이 빠른 서비스를 제공해서 단축되는 시간만큼, 남은 시간은 삶의 질적인 부분에 더 투자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콘텐츠를 만들어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윤지윤
삶의 여유를 찾고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교외의 쉴 곳을 추천하거나 로컬 크리에이터들과 협업해
시 낭독회나 향 워크숍 등 고객들과 직접적으로 함께하는 다양한 이벤트도 열고요.
Time, Texture, Organic, Balance 등 윤이 추구하는 방향에 맞는 주제를 선정하고 아티스트 인터뷰, 전시, 공간 같은 베를린의 문화 콘텐츠도 소개한다. 특히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한국 작가를 소개하며 베를린과 서울을 잇는 브릿지 역할도 한다. 앞으로 베를린과 서울 두 도시에서 함께 또 따로 펼쳐질 윤의 또 다른 행보가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