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바이펜은 왜 ‘게으름’을 그렸을까?

회화부터 앨범까지, 예술이 대중과 만나는 가장 오늘 다운 방식

팝 아티스트 샘바이펜의 개인전 <LAZY>가 PKM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오는 2025년 5월 17일까지 열리는 전시는 ‘게으름’을 주제로 한 신작 회화 18점과 함께 아트 상품, 전시 연계 음악 앨범을 만날 수 있다. 시각과 청각을 넘나드는 입체적 감상과 함께 대표 캐릭터와 작품 '시한폭탄맨'과 <Wall> 시리즈를 통해 작가 특유의 유머와 메시지를 살펴볼 수 있다.

샘바이펜은 왜 ‘게으름’을 그렸을까?

서울 종로구 삼청로에 자리한 PKM 갤러리에서 동시대 대중문화를 유쾌하게 전복해 온 팝 아티스트 샘바이펜(SAMBYPEN)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지난 2025년 4월 12일부터 오는 5월 17일까지 열리는 전시의 제목은 <LAZY>. 작가 활동 1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로 현대인의 ‘게으름’을 주제로 한 신작 회화 18점과 다양한 아트 상품, 그리고 음원 프로젝트까지 선보인다. 그간 만화와 광고, 명화, 인터넷 밈까지 우리 주변의 익숙한 이미지들을 자유롭게 오마주하고 조합해온 작가답게, 이번 전시에서도 특유의 유머와 비틀기가 가득 찬 작품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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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SITATE 2025 Acrylic on wood and canvas 193.9 x 130.3 cm (120F) Courtesy of artist & PKM Gallery.

샘바이펜이 말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예술’

작가 샘바이팬은 유럽과 미국을 오가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학창 시절 사회주의 선전 이미지와 뉴욕 타임스퀘어의 광고가 시각적으로 닮아 있다는 점을 발견하고, 이에 착안해 본격적인 패러디 작업을 시작했다. 2015년 미쉐린 마스코트를 풍자한 첫 개인전으로 주목받은 이후, 서울을 비롯해 도쿄, 홍콩, 마이애미 등지에서 활발히 전시를 이어왔다. 나이키, 포르쉐, 어도비 등 글로벌 브랜드와의 협업은 물론, 공공미술과 상품 디자인 등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그의 작업은 특정 대상을 전복시키는 동시에, 보는 이로 하여금 ‘진짜’와 ‘가짜’, ‘순수미술’과 ‘상업문화’의 경계에 대해 질문하게 만든다. 이는 단순한 패러디가 아닌 현대인의 정체성과 소비 심리를 통찰하는 시도다. 즉, 작가가 내 건 ‘모든 사람을 위한 예술’을 위한 예술 세계가 작품에 반영된 셈이다. 자신만의 캐릭터와 서사를 통해 복잡한 현실을 유쾌하게 해석한 작품은 예술적 촉매제로서 누구나 마음껏 상상을 펼칠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점에서도 분명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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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PUTER 2024 – 2025 Acrylic on wood and canvas 162.2 x 130.3 cm (100F) Courtesy of artist & PKM Gallery

아울러 그의 작품이 돋보이는 또 다른 이유는, 그가 ‘낯익음’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점이다. 기업 마스코트, 만화, 명화, 인터넷 밈 등 누구나 한 번쯤 본 적 있는 이미지들을 재조합해 전혀 새로운 이야기로 만들어낸다. 익숙하지만 예상 밖의 조합은 보는 이로 하여금 웃음을 유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소비와 정체성, 이미지의 권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이러한 방식은 예술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동시에, 동시대 대중문화의 아이러니를 날카롭게 포착하는 도구가 된다.

한편, 샘바이펜의 작업은 간결하고 직설적이다. 하지만 그 속에는 날카로운 사회적 감각과 비평적 시선이 녹아 있다.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무언가를 ‘해석해야만 하는’ 부담 없이, 직관적으로 느끼고 받아들이게 한다. 때론 유쾌하게, 때론 익살스럽게 다가오는 그의 이미지들은 그래서 더욱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시한폭탄맨, 우리의 무기력을 말하다

이번 전시에서도 샘바이펜의 작품에 담긴 간결하고 직설적인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다. <LAZY>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그는 현대 사회에 만연한 ‘게으름’의 정서를 정면으로 다룬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게으름은 단순한 나태함이 아니다. 해야 할 일을 알고 있음에도 손을 대지 못하는 상태, 매 순간 쏟아지는 정보와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생겨나는 피로감, 그리고 무기력한 감정들이 교차하는 복합적인 심리 상태다. 샘바이펜은 이러한 상태를 현실 도피가 아닌 ‘현실 반영’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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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ZY) TO 2025 Acrylic on wood and canvas 72.7 x. 90.9 cm (30F) Courtesy of artist & PKM Gallery

이 감정을 시각화한 대표 캐릭터가 바로 ‘시한폭탄맨’이다. 머리에 도화선이 붙은 인물은 무언가를 해야 하지만 그 순간을 계속해서 미루고 있는 우리 자신을 상징한다. 그는 때론 폭발하고, 때론 연기를 내뿜으며 화면 속에 등장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시한폭탄맨이 고전 회화 속에 만화 캐릭터들과 나란히 등장하며, 예기치 못한 조합의 유쾌함 속에서 우리 시대의 자화상을 그린다. 에두아르 마네, 에드워드 호퍼의 명화와 함께, 포켓몬스터, 심슨 가족, 꼬마 유령 캐스퍼가 한 장면에 공존하는 방식은 샘바이펜 특유의 위트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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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OWD 2025 Acrylic on wood and canvas 97 x 193.9 cm (120M) Courtesy of artist & PKM Gallery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또 하나의 시리즈는 처음으로 공개되는 <Wall> 작업이다. 이는 거리의 외벽을 연상시키는 회화로, 작가가 그래피티 작업에서 영감을 받아 완성한 것이다. 캔버스 위에 물감을 쌓고 갈아내는 과정을 반복하며 만들어낸 화면은 거칠고 풍화된 질감을 지녔다. 그 위에는 다이너마이트, 탱크, 귀여운 동식물 캐릭터 등이 겹쳐 등장하고, 화면 곳곳에는 “FAKE”라는 스티커가 마치 풍선껌 판박이처럼 붙어 있다. 이 단어는 “과연 순수예술은 진짜로 순수한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작가의 일관된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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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ld Wall 2025 Mixed media on canvas 227.3 x 181.8 cm (150F) Courtesy of artist & PKM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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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dier Wall 2025 Mixed media on canvas 227.3 x 181.8 cm (150F) Courtesy of artist & PKM Gallery

샘바이펜은 이번 전시를 통해 현실을 가볍게 풍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는 작품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속도와 피로를 감각적으로 구현하고, 익숙한 이미지들을 해체하고 재조립함으로써 새로운 사유의 장을 열어 보인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늘 그랬듯이 직관적이고 대중적인 시선으로 현실을 통찰하는 ‘간결한 메시지’가 자리 잡고 있다.

샘바이펜의 작품을 즐기는 또 다른 방법

PKM 갤러리 2층 숍 공간도 주목해야 한다. 전시와 연결된 아트 상품들이 관객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시그니처 캐릭터인 시한폭탄맨을 비롯해, 화면 속 도상들이 굿즈로 재탄생하면서 작품 속 세계가 일상 속 오브제로 확장된다. 엽서, 티셔츠, 스티커, 러그, 거울 등으로 구현된 이 아이템들은 ‘작품을 소장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작가의 메시지를 일상에서 다시 떠올리고, 예술을 보다 가까이 두는 또 다른 방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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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allation view of LAZY ART SHOP at PKM

또한 이번 전시에서는 분위기를 음악으로 확장한 전시 연계 앨범도 공개돼 눈길을 끌고 있다. 이번 앨범은 전시가 다루는 ‘게으름’이라는 키워드를 다섯 명의 아티스트가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한 트랙들로 구성했다. 전곡은 프로듀서 Logikal J가 총괄했으며, 류수정, Uneducated Kid, Northfacegawd, Wuuslime, oygli가 참여해 전시의 무드를 다채롭게 완성했다. 시각적 경험에 이어 청각적으로도 전시를 감상할 수 있도록 기획된 앨범을 통해 전시를 통해 전하는 샘바이펜의 메시지를 한층 더 입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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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allation view of LAZY ART SHOP at PKM

전시 <LAZY>는 샘바이펜이 10년간 구축해온 예술 세계의 밀도 있는 결과물인 동시에, 그가 앞으로도 이어갈 새로운 실험의 한 장면이다.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허물고,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형식으로 관객을 초대하는 이번 전시는, 샘바이펜 특유의 유쾌한 시선과 사회적 통찰을 가장 입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기회다. 지금, 그의 예술 세계를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이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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