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메르가 공개한 프랑스 일러스트레이터의 작업실과 드로잉
르메르 x 필립 와이즈베커 협업 컬렉션
르메르가 프랑스 일러스트레이터 필립 와이즈베커와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프린트 컬렉션을 선보였다. 기능적 오브제를 선으로 표현해온 작가의 작업은 이번 시즌, 의류와 액세서리로 확장되어 르메르 특유의 절제된 미학과 만났다. 함께 공개된 작가의 작업실 풍경과 연필 드로잉은 이번 협업의 배경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준다.


1990년대 초 디자이너 크리스토프 르메르(Christophe Lemaire)가 이름을 걸고 시작한 이후 르메르(LEMAIRE)는 과시적이지 않은 디자인과 실용성 중심의 실루엣, 그리고 문화 전반에 대한 꾸준한 관심을 통해 자신만의 위치를 구축해왔다. 예술과의 협업은 르메르의 철학을 확장하는 방식 중 하나. 르메르는 단순한 로고나 장식이 아닌, 브랜드가 지닌 세계관과 맞닿아 있는 아티스트와 장기적이고 진정성 있는 협업을 추구해왔다.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들과 함께 컬렉션의 서사를 구성하고 물성과 이미지, 드로잉과 재단 같은 형태의 언어를 나눈다. 2025년 봄/여름 컬렉션에는 프랑스 유명 일러스트레이터 필립 와이즈베커(Philippe Weisbecker)와 함께했다.
선으로 본질을 탐구하는 일러스트레이터

1942년 다카르에서 태어난 필립 와이즈베커는 일상의 사물과 구조물의 본질을 탐구하는 독창적인 드로잉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작업은 연필 드로잉을 중심으로, 가구, 도구, 건축물 등 기능적인 오브제를 단순화된 선과 색으로 표현하며 사물의 구조적 아름다움과 기능성에 주목하고, 이를 통해 익숙한 사물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한다.
프랑스 파리의 아르데코 예술학교(l’Ecole des Arts Decoratifs)에서 실내 디자인을 공부하고 1968년 뉴욕으로 이주해 건축 회사에서 제도사로 일한 필립 와이즈베커는 30세가 되어서야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었다. 그의 작품은 〈타임지(Time)〉, 〈뉴욕 타임즈(The New York Times)〉, 〈뉴요커(The New Yorker)〉 등에 실리며 주목을 받았는데, 1990년대 후반부터는 상업적 의뢰 작업에서 벗어나 자신의 예술적 표현에 집중했다. 2006년 프랑스로 돌아와 파리와 바르셀로나를 오가며 활동하고 있는 그는 2009년, 긴자의 크리에이션 갤러리 G8에서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일본과 깊은 인연을 맺어왔다.




필립 와이즈베커의 작품은 드로잉뿐만 아니라 직접 제작한 가구와 도구를 포함해 그의 스튜디오에서 일상과 작업 과정을 담은 사진과 에세이로도 확장되었다. 그의 책 〈호모 파베르(Homo Faber)〉는 인간이 도구를 만들고 그 도구를 통해 자신을 만들어간다는 철학을 담고 있다. 현재는 2020 도쿄 올림픽 공식 포스터를 비롯한 다양한 프로젝트와 전 세계 갤러리에서 자신의 창조적인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필립 와이즈베커 협업 컬렉션


르메르는 이번 협업을 단순한 이미지 활용이 아닌, 작가의 작업 세계를 깊이 이해하고 옷으로 풀어내는 과정으로 접근했다. 필립 와이즈베커의 파리 스튜디오를 방문해 작업 공간을 관찰하고, 실제 작업 과정과 기법을 마주한 경험은 원화를 종이에서 직물 위 시리즈로 변화시키고, 컬렉션을 구성하는 데에 직접적인 영감이 되었다. 에어프런 형태의 상의와 드레스, 편안한 핏의 셔츠, 폴로 상의, 그리고 호보 백과 같은 일부 아이템은 필립 와이즈베커의 스튜디오와 작업 도구와 연관되었다.

한편, 프린트와 패브릭 인레이는 필립 와이즈베커 특유의 평면적 색감을 반영하고, 스레드 자수는 그의 세밀한 선형 드로잉을 재현한다. 각각은 종이 드로잉의 본질에 집중한 작가의 표현 방식을 존중한 결과다. 컬러 팔레트는 브라운, 그레이, 블랙의 차분한 색으로 구성되었으며, 여기에 가벼운 소재와 미묘한 투명감이 조화를 이룬다. 프린트와 자수, 그리고 옷의 구조가 서로를 방해하지 않고 유기적으로 녹아들며 옷을 입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조용한 감상처럼 다가온다.



이번 협업을 통해 필립 와이즈베커의 작업뿐 아니라, 그의 철학과 창작 방식 역시 르메르의 옷 위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일상적 사물과 선형적인 형태의 아름다움을 담은 정교한 연필 드로잉은 유니크한 프린트 시리즈로 완성되었고, 감상보다는 사용을, 트렌드보다는 시간성을 지향해온 르메르의 철학은 이번 컬렉션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