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MUJI가 제안하는 지속 가능한 디자인
MUJI MUJI 5∙5
유행을 선도하는 브랜드들의 감각적인 설치와 화려한 제품들이 도시 전역을 수놓는 밀라노 디자인 위크 시기에 도심의 정원 한켠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을 전하는 전시가 있었다. 일본의 미니멀 브랜드 무지(MUJI)와 프랑스 디자인 스튜디오 5∙5가 협업한 인스톨레이션 ‘무지 무지 MUJI MUJI 5∙5’가 바로 그것. ‘느림’, ‘절제’, ‘순환’이라는 키워드를 전면에 내세운 이 전시는 디자인이 나아가야 할 미래의 방향을 뚜렷하게 제시하고 있다.

비밀 정원 속 ‘매니페스토 하우스’


전시는 브레라 지구 한쪽에 숨어 있는 공공 정원 피파 바카Giardino Pippa Bacca에서 펼쳐졌다. 번잡한 도심 한복판에서 마치 다른 세계처럼 존재하는 이 장소는 이번 전시의 핵심 주제인 ‘본질로의 회귀’를 구현하기에 더없이 적절한 공간이다. 전시의 중심에는 ‘매니페스토 하우스(Manifesto House)’라 이름을 붙인 모듈형 구조물이 놓여 있다. 스튜디오 5∙5가 일본 건축에서 영감을 받아 설계했다는 이 구조물은 복잡한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 보다 단순하고 지속 가능한 삶을 상상하게 만드는 공간이다. 거주가 가능한 이 컨테이너식 하우스는 전시품이자 하나의 선언문이다. 생물 기반의 친환경 소재, 재활용 섬유 단열재, 빗물 수집 시스템, 열섬 현상(도심지역의 기온이 주변 교외지역에 비해 높은 현상)을 줄이는 흰색 지붕 등 각 요소는 환경적 책임과 기술적 창의성의 조화를 보여준다. 단순한 ‘멋진 집’이 아니라 ‘이렇게도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의 제안이다. 도심 속 자연과 연결되고자 하는 이 구조물은 잠시의 휴식과 성찰을 통해 관람객이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스튜디오 5∙5: 실험과 책임 사이에서

2003년 파리에서 설립된 스튜디오 5∙5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실험적이고 비판적인 디자인 스튜디오로 단순한 제품 디자인을 넘어 사용 방식, 생산 시스템, 소비 문화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업을 하는 걸로 유명하다. 클레르 르나르Claire Renard, 장 세바스티앙 블랑Jean-Sébastien Blanc으로 이루어진 스튜디오 5∙5는 유행에 편승하거나 시장 논리에 맞춰 소비를 조장하는 디자인 흐름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어왔다.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만들기 위해 디자인하지 않는다”고 선언하며 이미 존재하는 것에 새로운 가치를 더하는 업사이클링upcycling과 리디자인re-design방식을 통해 디자인의 윤리와 본질을 재정의하는데 힘쓰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도 이들의 철학은 고스란히 드러난다. 무지가 이미 판매 중인 제품들을 새롭게 조합하거나, 기존의 오브제를 재구성해 만든 ‘레디메이드’ 제품들이 매니페스토 하우스를 채우고 있다. 즉 새로운 제품을 만들지 않고도 기존을 것만을 재 조합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했고, 그 결과는 실용적인 동시에 강렬하게 다가왔다. 무지가 미적으로 추구하는 심플함을 갖추면서 실용성 또한 유지하는 각각의 오브제들은 모두 사용자가 직접 제작, 조립이 가능하게 설계되었다. 그리고 전시장 한켠에는 제품의 목록과 제작 방식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어 누구나 쉽게 무지 매장을 방문해 전시장에 소개된 목록 대로 아이템을 구매해 완전히 새로운 오브제를 스스로 만들며 매니페스토 하우스의 일부분을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무지의 조명 기기와 일상 용기 박스를 조합해 만든 박스 램프Box Lamp, 무지의 기본 플라스틱 박스와 이너 트레이 박스를 부착해 제작 가능한 트레이 카트Tray Cart, 히노키 도마와 폴리에틸렌 컨테이터를 조합한 가능성 도마인 플랫 보드Flat Board 등 12개 오브제의 제작법을 전시장에서 배워갈 수 있다. 이는 디자인이 공급자가 아닌 사용자 중심으로 이동 가능함을 보여준다.
무지와 스튜디오 5∙5




무지는 1980년대 일본에서 ‘과잉 없는 삶’을 제안하며 탄생한 브랜드다. ‘좋은 삶을 위한 적당함’을 추구하는 그들의 철학은 자극적인 마케팅이나 계절마다 바뀌는 제품군과는 거리를 둔다. 이번 스튜디오 5∙5와의 협업은 그들이 지향하는 비상업적 디자인의 연장선 위에 있다. 브랜드와 디자이너 모두 디자인이 유행이 아닌 윤리와 책임의 영역으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공유한다. 클레르와 세바스티앙 두 디자이너는 무지의 정신에 공감하며 디자인이 단순한 유행이나 소비의 수단이 아닌 우리 삶의 태도를 반영하는 것임을 보여주고 싶었다. “디자인은 결국 우리기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를 묻는 일입니다. 이 전시는 그 질문에 대한 저희의 대답이죠.” 이렇게 이번 협업은 ‘소비되지 않는 디자인’이 가능한지를 실험한다. 이는 아마 현재를 사는 모두에게 중요한 질문이지 않을까 ? 더 이상 갖고 싶은 것을 만드는 시대가 아니라 쓰는 법을 함께 고민하는 시대로 나아가기 위한 조용한 울림이 되었다.
왜 유럽에서 시작되었을까?



무지 무지5∙5 프로젝트가 일본이 아닌 유럽에서 처음으로 공개된 이유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 프로젝트는 철학적 메시지뿐 아니라 글로벌 전략과도 긴밀히 연결돼 있다. 먼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디자인 행사인 밀라노 디자인 위크는 단순한 신제품 발표를 넘어 디자인 담론의 장으로 기능한다. 지속 가능성과 윤리적 디자인이라는 MUJI의 메시지가 가장 효과적으로 발신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둘째, 무지는 유럽 시장을 철학적 공감대가 높은 지역으로 인식해왔다. 유럽 소비자들은 단순함, 장기 사용, 환경을 고려한 선택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이는 무지가 창립 이래 줄곧 지켜온 브랜드 가치와도 깊은 접점을 이룬다. 유럽에서의 이런 전시는 브랜드 신뢰도와 인식 전환에 큰 역할을 한다. 셋째, 협업 상대인 스튜디오 5∙5 자체가 프랑스에 기반을 둔 팀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들과의 자연스러운 철학적 교감은 동양적 미학과 서구적 실용성이 만나는 접점을 만들어낸다. 무지 입장에서도 이러한 협업은 자사의 철학이 전 지구적 가치임을 강조하는 데 효과적이다.
현재 이 프로젝트의 향후 전시 계획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번 전시가 단발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도록 발전해 나갈 가능성은 충분하다. 실제로 무지는 이전에도 특정 전시나 공간을 아시아와 유럽, 북미 등에서 순회하거나 변형해 선보인 바 있다. 그렇기에 무지 무지 5∙5 프로젝트 또한 유럽의 다른 도시로 이어지거나, 향후 일본 혹은 글로벌 거점에서 새로운 버전으로 재해석될 가능성을 기대해 볼 수 있겠다.
Information
MUJI MUJI 5.5
기간 | 2025년 4월 8일 – 4월 13일
주소 | Giardino Pippa Bacca, Brera district, Milan
기획 | MUJI Europe
참여 디자이너 | Studio 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