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 뮤익 전시를 보는 다섯 가지 방법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론 뮤익의 아시아 최대 규모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실제보다 더 생생한 조각으로 인간의 감정과 시간을 응축해온 그의 작품 세계를 만날 수 있는 자리다. 이번 전시를 다섯 개의 키워드로 따라가 본다.

론 뮤익 전시를 보는 다섯 가지 방법

정교한 리얼리티, 낯선 시선, 그리고 그 안에 담긴 고요한 질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리는 〈론 뮤익(Ron Mueck)〉 전시는 ‘조각’이라는 형식을 빌려 인간 존재를 성찰하게 한다. 1980년대 후반부터 조각 작업을 시작해온 론 뮤익(b.1958)은 실제보다 더 진짜 같은 리얼리즘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작가다. 하지만 그는 단지 형상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의 조각은 시간을 응축하고 감정을 흡수하며, 관람객을 자기 성찰의 흐름 속으로 이끈다. 이번 전시는 프랑스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과 국립현대미술관의 공동 주최로, 아시아 최대 규모 회고전으로 기획됐다. 론 뮤익의 창작 시기를 대표하는 조각 작품들과 스튜디오 사진 연작과 다큐멘터리 영상 등 총 24점이 소개된다. “이미 사진으로 익숙한 분도 계시겠지만, 론 뮤익의 작품은 실제로 마주했을 때 전혀 다른 경험을 제공합니다. 사실 보고 있으면서도 믿기 힘든 기술적 완성도와 강렬한 몰입을 이끌어내죠.”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국립현대미술관 홍이지 학예연구사는 그의 작품을 통한 예술의 진정한 가치와 감상의 경험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이 전시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다섯 개의 키워드로 관람 포인트를 짚어본다.

현실을 벗어난 크기 감각

키워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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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에서’, 2005, 혼합 재료, 162 × 650 × 395 cm.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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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 뮤익〉 전시 전경

론 뮤익 작품의 가장 인상적인 특징은 ‘크기’다. 그는 인물을 실제보다 훨씬 크거나 작게 표현함으로써 관람객이 현실에서 잠시 이탈하도록 유도한다. 현실과의 혼동을 피하면서도, 감각적으로는 낯설고 새로운 차원에 들어선 듯한 몰입감을 전달하기 위함이다. 대표작 ‘마스크 II’는 작가 자신의 얼굴을 4배 크기로 확대한 자화상이며, ‘침대에서’는 가로 6m가 넘는 여성 인물을 통해 감정을 시각화한다. 리얼하지만 비현실적인 이 스케일은 보는 이의 감정을 끌어당기고, 내면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열린 감상의 여지

키워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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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가지를 든 여인’, 2009, 혼합 재료, 170 × 183 × 120 cm.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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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하는 여인’, 2013, 혼합 재료, 113 × 46 × 30 cm. 타데우스 로팍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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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 / 맨’, 2019, 혼합 재료, 86 × 140 × 80 cm. 크라이스트처치 아트 갤러리 테 푸나 오 와이훼투 컬렉션, 아오테아로아 뉴질랜드

론 뮤익은 자신의 조각에 명확한 메시지를 부여하지 않는다. 작품은 정해진 해석을 제시하지 않고, 각자의 경험과 감정에 따라 자유롭게 읽히길 기대한다. 머리카락, 피붓결, 옷 주름처럼 극도로 사실적인 디테일은 특정 장면을 암시하기보다는 현실을 구성하는 요소로 남는다. 작가는 관람객이 작품과 공감하길 원하며, 그 감정은 누구에게나 다르게 다가온다. 정답이 아닌 질문을 던지는 작품들로, 전시는 한 작품씩 몰입할 수 있도록 구성돼 사유의 흐름을 따라가기에 충분한 시간을 제공한다.

움직이며 바라보기

키워드 3.

론 뮤익의 조각은 정면만으로는 다 읽히지 않는다. 회화나 사진처럼 고정된 시선이 아닌, 관람객이 움직이며 다양한 각도에서 작품을 경험해야 비로소 완성되는 감상이다. 대표작 ‘마스크 II’는 정면에서는 살짝 열린 입술을 통해 실제 살아 숨 쉬는 얼굴처럼 보이지만, 뒷면으로 돌아가면 텅 빈 구조의 가면이 드러나며 존재와 허상의 간극을 보여주는 것처럼 말이다. 조각의 옆면, 밑면, 뒷면을 따라 이동하며 새롭게 구성되는 이야기는 론 뮤익의 작품이 제공하는 입체적인 감정의 구조다.

‘매스’와 공간의 상호작용

키워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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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 뮤익〉 전시 전경
‘매스’, 2016–2017, 유리섬유에 합성 폴리머 페인트, 가변 크기. 빅토리아 국립미술관, 멜버른. 펠턴 유증, 2018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100개의 대형 두개골 형상을 쌓아 올린 거대한 설치작품 ‘매스’다. 론 뮤익의 예술 세계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 이 작품은, 각 전시 장소의 건축과 특성에 영감을 받아 작품이 구성된다. 그렇기에 전시가 될 때마다 새로운 의미와 맥락이 형성되는 것이다. 작품의 운송과 설치에 많은 공수가 들기에, 이 작품을 보는 것만으로도 특별하다. 국립현대미술관 5전시실은 높은 층고와 이곳이 지하임을 인지하게 하는 창 등의 구조적 특성이 반영됐다. “인간의 두개골은 복잡한 오브제이다. 우리가 한눈에 알아보는 강렬한 그래픽 아이콘이다. 친숙하면서도 낯설어 거부감과 매력을 동시에 주는 존재다. 무의식적으로 우리의 주의를 끌어 외면할 수 없게 만든다”는 론 뮤익의 말처럼, 이 공간은 물리적이면서도 심리적인 체험을 동시에 제공한다.

조각 너머의 시간

키워드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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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 라이프: 작업하는 론 뮤익〉, 고티에 드블롱드 각본 및 감독, 2013, HD 영화, 48분. ⓒ 고티에 드블롱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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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 / 맨〉, 고티에 드블롱드 각본 및 감독, 2019 – 2025, HD 영화, 13분. ⓒ 고티에 드블롱드

6전시실은 조각 작품 그 자체보다 그 이면에 놓인 시간과 과정에 집중한다. 시각예술가 고티에 드블롱드(Gautier Deblonde)의 작업실 연작 사진과 두 편의 다큐멘터리는 론 뮤익이 하나의 조각을 완성하기까지 수개월, 때로는 수년 간의 집요한 몰입과 손의 노동이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포착한다. 현대의 빠르고 자극적인 이미지 소비와는 거리를 둔다. 관람객은 이 기록을 통해 작품에 담긴 시간과 에너지, 작가의 태도까지 함께 감상하게 되기에 이번 전시에서 놓치면 안 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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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 뮤익의 작업실’, 런던, 2005 – 2013, 디본드 패널에 컬러 사진, 79.5 × 100 cm. ⓒ 고티에 드블롱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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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 뮤익〉 전시 전경

​이번 전시는 초창기 작품부터 최근작까지의 여정을 통해, 론 뮤익의 조각 세계가 얼마나 복잡하고 다층적인 의미를 품고 있는지를 포괄적으로 보여준다. 론 뮤익의 작품은 언제나 명확한 해답보다도 더 많은 질문을 던진다. 그의 조각 앞에서 우리는 각자의 감정과 기억, 경험에 따라 다른 길로 향하게 되며, 같은 작품도 때마다 다른 방식으로 다가온다. 〈론 뮤익〉전은 단지 보는 전시가 아닌, 스스로를 다시 바라보게 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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