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윤이 모스그래픽 대표
밝은 컬러와 다채로운 패턴을 조합한 그래픽으로 매대에서 시선을 사로잡곤 했던 책은 디자이너 석윤이의 것이다. 이제 그의 작업은 책을 넘어 다양한 매체로 확장 중이다. 2018년 디자인 스튜디오 모스그래픽과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모스를 설립한 석윤이는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사이에서 절묘한 줄타기를 하는 중이다. ‘디자이너의 독립’, ‘브랜드’, ‘개성’이라는 해묵은 주제에 대해 누구보다 이야깃거리가 많은 석윤이를 올해의 서울디자인페스티벌(이하 SDF) 영 디자이너 프로모션의 멘토로 초대했다.


모스그래픽이 어느덧 7년 차에 접어들었다.
지금은 어엿한 스튜디오로 성장했지만 처음부터 뚜렷한 방향성이 있었던 건 아니다. 오랜 시간 북 디자이너로 일했으니 회사를 나와서도 북 디자인을 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출발했다. 독립 후 2년간은 주로 책 작업을 하다가 스튜디오가 조금씩 안정될 무렵에 자체 브랜드 모스를 론칭했다. 열린책들에서 일하던 당시 출판사와 함께 미메시스 디자인이라는 브랜드를 경험하면서 문구류나 굿즈를 디자인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내가 문구를 좋아한다는 걸 알았다. 그렇게 다방면에 관심을 두고 책 이외의 분야도 경험해보고 싶었기에 2021년부터 스튜디오와 브랜드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북 디자인에 국한하지 않고 그래픽 전반으로 작업 영역을 확장하게 된 것도 그 무렵부터다.
스튜디오와 브랜드를 병행할 때 확실히 시너지 효과가 있더라. 브랜드를 한창 전개하던 시기에 기업 일이 점차 들어오기 시작했다. 모스그래픽의 메인이 클라이언트 작업이라면 모스는 전적으로 내 마음에 드는 물건을 만들기 위해 시작한 브랜드다. 모스 제품을 보고 모스그래픽이 어떤 디자인을 하는지 역으로 유추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모스라는 이름을 공유하는 만큼 스튜디오와 브랜드가 서로 맞물려 있다.

스튜디오와 브랜드를 병행하는 데 어려움은 없나?
브랜드로 자아실현을 하다가 망한다고들 하지 않나.(웃음) 좋아서 시작한 일이지만 운영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라는 걸 배워가고 있다. 스튜디오와 브랜드도 엄연히 다르다. 디자인이라는 공통분모를 빼면 서로 다른 자아가 작동한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그럼에도 맞는 방향이라 생각해서 놓지 않고 있다. 모스그래픽의 스타일과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을 바로 브랜드와의 병행에 있다. 그렇기에 브랜드가 잘된다고 외주 일을 안 받을 생각도 당연히 없다. 두 일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다방면으로 고민하고 있다.
물리적 시간의 제약이 있는 만큼 프로젝트를 선별하는 기준도 달라졌을 것 같은데.
초기에는 정말 많은 일을 했다. 조직을 떠나 독립을 한다는 건 결국 나 자신이 브랜드가 되는 일이기에 아무 일이나 할 수는 없었다. 동시에 결과물이 있어야 지속할 수 있으니 잘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지금은 좀 더 신중하게 작업을 고른다. 지치지 않고 계속 가기 위해서는 강약 조절도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요즘에는 안 해본 분야의 일에 더 적극적으로 도전하기도 한다. 패키지와 패턴 개발을 응용할 수 있는 카드 디자인 등이 그 예다. 반면 북 디자인은 오히려 좋아하는 장르나 취향 위주로 작업을 선별해서 받는다.


모스에서 최근 새롭게 개발한 카테고리가 있나?
지류 중심의 아이템을 전개하다가 에코백, 쿠션 커버, 러그, 코스터, 타월 등 패브릭 제품을 개발했는데 반응이 꽤 좋다. 이번에 참여한 문구 페어에서도 코스터와 타월이 인기가 많았다.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평면의 그래픽이 질감과 입체감을 입을 때 지류와는 또 다른 매력을 주는 점이 흥미롭더라. 애초에 리빙이나 데스크용품에 관심이 많기도 했고, 누구나 손쉽게 접할 수 있는 물건을 제안하자는 마음으로 모스를 시작한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비슷한 방향으로 확장해나가지 않을까 싶다.

모스만의 색을 지키는 비결이 있다면?
디자인을 잘하는 팀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모스그래픽과 모스 둘 다 좋아서 시작한 일이기 때문에 대체로 제 갈 길을 간다는 마음으로 운영하고 있는데 어느 순간 위기감이 들 때도 있다. ‘내가 했어야 했는데 저기서 먼저 했네’ 하는 마음이 드는 게 썩 달갑지 않더라. 성향상 남을 의식하거나 경쟁하는 성격이 못 되기도 하고, 브랜드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휩쓸리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요즘에는 의식적으로 많은 정보를 접하지 않으려 한다. 고지식한 태도일 수 있지만 디자이너로서 자신을 지키는 방법도 필요하다. 아이디어나 영감은 오히려 다른 곳에서 온다. 미술관에서 작품을 볼 때, 낯선 도시에서 일상과는 다른 자극을 받을 때 작업을 지속할 힘을 얻는다.


SDF 영 디자이너 프로모션은 홀로서기를 꿈꾸는 디자이너들의 데뷔 무대이기도 하다. 이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하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학생 때는 매체를 가리지 않고 이것저것 다양하게 해보면서 적성을 찾는 게 중요하다. 또 조직에 속한 디자이너는 막연히 독립을 좋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인하우스 디자이너로서 충분히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더더욱 독립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신경 쓰고 책임져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독립을 꿈꾼다면 자기만의 스타일과 태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다. 대부분 외부에서 일을 받는 프리랜서로 시작하기 때문에 일에 대한 매너나 소통이 디자인 못지않게 중요하다. 가장 중요한 건 재미를 잃지 않는 거다. 재미만을 좇을 수는 없지만 이 일을 지속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