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락 속에서 교차하는 사진, 텍스처 온 텍스처

인물과 공간, 동물을 향한 애정 어린 시선으로 선명하고 따뜻한 이미지를 빚어온 텍스처 온 텍스처는 디자인의 조력자 역할을 자처한다. 그 자체로 주인공인 사진이 있다면 배경이자 재료가 되는 사진도 있기 마련. 사진과 사진 사이, 사진과 텍스트 사이에서 발생하는 내러티브에 집중하는 이들의 사진은 맥락 속에서 교차하고 확장한다.

맥락 속에서 교차하는 사진, 텍스처 온 텍스처
92A2517

“텍스처 온 텍스처 멤버들의 모습을 하나로 담고 싶었다. 개인의 작업으로도 충분히 완성도 있지만, 이들이 함께 움직일 때 만들어내는 결과물은 마치 한 사람이 만든 것처럼 자연스럽고 조화롭다. 그렇게 각자이지만 하나가 되는 모습을 표현하고자 했다.”_홍기웅

기종 Canon EOS R5
장소 텍스처 온 텍스처 작업실

세 사람 모두 디자인을 전공했다. 사진 매체 기반의 스튜디오를 운영하게 된 배경이 무엇인가?

정멜멜 나는 실내디자인을 공부하고 해수 씨는 건축을, 수호 씨는 시각 디자인을 전공했다. 텍스처 온 텍스처도 처음에는 디자인 스튜디오로 출발했다. UX·UI 디자이너로 일한 내 경력과 건축을 기반으로 활동한 해수 씨의 경험을 살려 공간이나 웹 디자인 작업을 주로 했다. 해수 씨와 나는 꽤 오랜 시간 취미로 사진을 찍었는데 디자인 분야에서 사진을 활용할 일이 많다 보니 우리의 작업을 보고 사진 일이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기보다 천천히 시간을 두고 스튜디오의 정체성이 바뀐 케이스다. 어느 정도 자리 잡기 시작한 2018년부터는 동생인 수호가 합류해 셋이서 운영하고 있다.

인물과 공간, 제품을 넘나들며 다양한 피사체를 담는다. 특정 영역에 국한하지 않는 점이 텍스처 온 텍스처의 강점이다.

정멜멜 각자 맡은 포지션이 있다. 나는 인물을, 해수 씨는 건축·공간을, 수호는 동물을 찍는다. 대체로 프리랜서 조합처럼 일하지만 팀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스튜디오의 기반을 다졌다. 초반에는 포트폴리오를 쌓아야 한다는 생각에 분야를 가리지 않고 여러 일을 받았다. 구성원 모두 사진 전공도 아니다 보니 기회가 올 때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컸다. 그러다 2~3년 전부터는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일에 좀 더 집중하기로 했다. 건축과 인물, 동물을 세 가지 메인 카테고리로 삼고 이 세계 안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을 해보려고 한다.

디자이너로서의 관점이 사진에 어떻게 드러난다고 보는가?

정멜멜 디자인은 사진을 재료로 동원해 시각언어의 세계를 구축한다. 우리는 디자인을 했기 때문에 그런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 강렬한 한 장의 사진으로 시선을 사로잡고 그 자체로 내러티브가 되기보다 맥락과 흐름 속에서 의미를 획득하는 사진을 생산하고자 한다. 조용하고 평범한 사진도 어떤 배열 안에서는 꼭 필요한 존재다. 사진들 사이에서 혹은 텍스트와 함께 서사를 뒷받침한다. 의뢰인과 함께할 때 우리는 다양한 분야에 필요한 사진을 제공하는 조력자로서의 역할에 더 집중하고자 한다.

02 00003
이솝 갤러리아. 텍스처 온 텍스처는 이솝의 여러 지점을 촬영했다.
20250429 061941
적재건축이 설계한 해남 오시아노 리조트 호텔.
포트폴리오를 보면 존재감이 두드러지는 사진도 많다.

신해수 멜멜 씨가 관리하는 홈페이지와 인스타그램 덕이다.(웃음) 주인공이 아니었던 사진을 웹에 재배치해 새로운 맥락을 만드는 거다. 분명 배경으로 존재했던 사진인데 포트폴리오 안에선 돋보인다. 웹에서 사진이 어떻게 보일지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다. 정해진 화면 안에서 인물과 건물, 원경과 근경을 적절히 섞고 색감까지 고려해 배치하는데 이 또한 웹 디자이너 출신이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정멜멜 납품할 때는 클라이언트가 선택한 사진을 요청한 톤에 맞게 보정해 전달하지만, 홈페이지나 인스타그램에 포트폴리오를 업로드할 때는 우리가 좀 더 원하는 느낌으로 재가공한다. 대비를 주거나 크롭을 하기도 하고, 클라이언트는 선택하지 않았지만 우리가 고른 A컷을 보여주기도 한다. 아마 전공의 영향일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완성된 결과물로서의 사진보다 자재나 소재처럼 다룰 수 있는 사진에 더 관심이 많다.

03 00003
현대백화점 목동점 캠페인 ‘매일 새로운 행복의 발견’을 위해 개발한 비주얼.
작업 전반에서 해상도가 높다는 인상을 받는다. 각자 지향하는 스타일이 있나?

정멜멜 공통적으로 명확하고 깨끗한 사진을 선호한다. 주변에서 우리 사진이 밝고 선명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색감이나 대비가 주는 영향도 있겠지만 크롭의 역할이 크다. 특히 수호와 나는 픽셀을 다루는 일을 했기 때문에 1mm를 잘라야 할지 말아야 할지까지 고민한다.(웃음) 가끔은 군더더기 없이 그래픽처럼 정리된 느낌도 좋아한다.
신해수 개인적으로 너무 과한 사진은 좋아하지 않는다. 멜멜 씨 사진이 좀 더 쨍하고 진한 느낌을 준다면 건축 사진에서는 그 힘을 조금은 빼고 담백한 인상을 주고 싶었다. 보정 방법에서 계속해서 합을 맞추는 과정이 있었고 이제는 어느 정도 중간점을 찾았다. 건축 사진은 대체로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맞추는 편인데 실제 건축물보다 과장되거나 CG처럼 부자연스럽게 담는 건 지양하려 한다.
정수호 나는 동물과 반려인의 삶을 기록하는 올루 올루 프로젝트 촬영을 주로 맡고 있는데, 인간이 아닌 생명체를 촬영할 때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더라. 자연스러운 동물 사진을 찍기가 생각보다 어렵다. 동물을 억지로 꺼내서 찍거나 낯설어서 피하려고 하는데 카메라를 들이대기보다 기다리고 관찰하고 최대한 몸을 작게 만들어서 다가간다.

240527000000635 O
텍스처 온 텍스처의 사이드 프로젝트 올루 올루의 웹사이트. 동물과 반려인의 삶을 사진과 인터뷰 등으로 기록하는 아카이빙 작업이다. 디자인 찹스틱스
07 00001
올루 올루 콘텐츠. 연구원 권혁도와 콘텐츠 에디터 박규영의 반려묘 토란은 서울 어딘가의 하수구에서 구조됐다.
다양한 클라이언트와 작업하는 만큼 충돌하는 지점도 있을 텐데.

정멜멜 갈수록 마음이 불편한 일은 억지로 받지 않으려 한다. 우리는 의뢰를 받아 이미지를 제작하는 스튜디오이지만, 과도한 연출이 요구될 때는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한다. 렌즈가 가진 날카로운 힘에 대해서도 늘 인지하려고 노력한다. 또한 업계에 좋지 않은 선례가 될 수 있는 일정이나 비용, 저작권 관련 조건들이 제시될 경우에는 용기를 내어 거절하는 방법을 어렵지만 여전히 배워가는 중이다.

06 00002
오설록 티뮤지엄 제주. 오설록 크리에이티브팀과 협업해 브랜드 비주얼을 개발했다.
06 00003
20250429 062252
옛 진주역 철도 부지에 새롭게 조성한 복합 문화 공원. 건축사사무소 소솔이 설계했다.
사진 매체의 환경이 변화하고 있다. 작업을 시작한 10년 전과 비교해 달라진 점이 있나?

정멜멜 점점 더 유행을 안 타는 사진을 좇게 된 것 같다. 영화 〈더 폴〉을 연출한 타셈 싱 감독은 “CG는 아무리 대단하고 스펙터클하다고 한들 결국 낡고 시대에 뒤처져 보이게 된다. 진짜로 만든 것은 절대 낡거나 뒤처지지 않는다”라는 말을 했는데, 셔터를 누를 때 늘 생각하게 되는 문장이다. 변화를 좇기보다 낡지 않을 사진들을 꾸준히 찍고 싶다.
신해수 건축 사진은 비교적 변화가 느린 편이지만, 확실히 최근엔 스타일리시한 접근이 많아졌다. 나는 하던 대로 담백한 사진을 찍고 싶다. 예컨대 건축가의 작품집이라면 사진 한 장 한 장이 튀기보다는 전체적으로 톤과 인상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한 컷으로 건물의 인상이 강하게 드러나길 원하는 사람도 있지만, 조용한 방식에 공감하는 이들과 오랜 호흡을 이어가는 경우가 많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