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tor+] 스팍스 에디션: 케이팝을 손의 감각으로 디자인하다

어지혜 & 장준오 스팍스에디션 대표·디자이너

케이팝 팬들의 마음을 흔드는 스팍스 에디션의 디자인은 디자이너가 직접 물성이 느껴지는 재료로 실험해서 만들어낸 결과다. 컴퓨터라는 도구가 모든 디자인 작업의 중심이 된 시대, 스팍스 에디션은 손의 감촉을 주요 도구로 여기며 다채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Creator+] 스팍스 에디션: 케이팝을 손의 감각으로 디자인하다

editor’s note

케이팝은 국내 음악시장을 바꿨을 뿐만 아니라, 그래픽 디자인계도 발전시켰습니다. 철저하게 기획된 세계관을 앨범마다 다른 분위기로 해석해서 보여줘야 하고, 높아진 팬들의 미감을 만족시켜야 하기 때문이죠. 풍부해진 아이돌의 숫자만큼 디자인이 해야 할 일이 많아졌고, 그만큼 경쟁도 치열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엔터테인먼트 업계만큼 치열한 음악 디자인 업계에서 스팍스 에디션(Sparks Edition)은 뮤지션의 이야기를 자기들의 관점으로 해석하여 남다른 결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음악만큼 그래픽을 좋아하는 에디터는 그들이 디자인한 앨범을 봤을 때, 그들이 음악을 어떻게 해석하고 표현했는지를 찾아보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마음은 오직 저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스팍스 에디션이 디자인한 케이팝 뮤지션의 팬들도 이를 궁금해하고 찾아본다고 하니까요. 그래서 물어보고 들어봤습니다. 스팍스 에디션이 어떻게 디자인하고, 왜 그렇게 작업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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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팍스 에디션 스튜디오에서 장준오, 어지혜

PLUS 1. 케이팝 디자인 적응기

스팍스 에디션은 전반적인 그래픽 디자인을 작업하지만 최근에는 앨범 브랜딩 디자인으로 많이 알려졌어요. 혹, 앨범 브랜딩 디자인은 다른 그래픽 디자인과 작업 방식이나 태도 등에서 차이가 있나요?

장준오 일반적인 기업 브랜딩 디자인과 비교해보자면, 기업이나 브랜드의 아이덴티티 디자인은 감정도 중요하지만 일단 이성적으로 각 단계를 밟아 나가는 게 중요하고 그것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면, 앨범 브랜딩은 조금 더 추상적이어도 괜찮아요. 그 점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죠.

그러고보니 스팍스 에디션은 초창기부터 앨범 커버 디자인을 꾸준히 해왔어요.

어지혜 우리 두 사람 모두 음악을 너무 좋아해서 곡이 표현하는 감성과 무드를 하나의 이미지로 담을 수 있다는 점에서 앨범 디자인을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인지 앨범 디자인을 처음 접했을 땐, 그래픽 디자인보다는 아트워크라고 더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아트워크가 인쇄 매체라는 결과물로 나오기까지 디자인이라는 작업을 거친다고 생각했고요. 저희 첫 작업인 10CM 1집 같은 경우도 당시엔 준오 씨의 조형 작업을 앨범 커버 아트워크로 실으면서 그를 보기 좋게 디자인한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작업한 거예요. 하지만 그 이후부턴 디자인이 보조 수단이 아니라, 아트워크와 디자인이 동등한 위치에서 하나가 되어 또 새로운 아트워크가 탄생하는 거라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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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오 디자이너의 조형 작업을 바탕으로 디자인했던 10CM 1집 아트워크 © SPARKS EDITION
앨범 디자인을 대하는 생각이 달라진 거군요.

어지혜 이젠 그래픽과 회화, 조형이 결합되는 과정이 재미있게 다가와요. 저희가 생각할 땐, 스팍스 에디션의 작업은 케이팝 씬의 특징을 보여주는 방향과 한 장의 아트워크로 곡과 앨범을 다 표현하는 방향으로 구분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케이팝은 이제 ‘앨범 디자인’ 혹은 ‘앨범 브랜딩’이라고 표현하죠. 그럴 땐 앨범 전체를 보여줄 수 있는 키워드를 고심해서 이야기를 짠 후, 그를 바탕으로 회화, 조형, 그래픽 등을 사용한 아트워크를 작업해요. 그리고 그와 연계한 여러 애플리케이션도 디자인해야 하죠. 그와 달리 싱어송라이터와 같이 음악에 자기의 무드를 더 담아서 보여주는 뮤지션 같은 경우에는 쾌감 있는 한 장의 아트워크로 보여주는 방식에 중점을 둬요. 그럴 땐 디자이너의 자율성도 높아지는 편이라 우리가 뮤지션과 음악에 대한 해석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운 부분이라고 할 수 있죠. 다른 디자이너가 아닌, 우리의 시선과 관점으로 해석하고, 우리만이 풀 수 있는 스타일을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 두 가지 방향성을 다르게 설명하면, 탄탄하게 단계를 밟아가며 그래픽을 보여줘야 하는 프로세스와 스팍스 에디션만의 감성을 통해 음악의 무드를 담은 한 장의 아트워크를 보여주는 프로세스라고 할 수 있어요.

초창기에는 인디밴드나 싱어송라이터의 앨범 재킷을 디자인했다면, BTS의 〈MAP OF THE SOUL: 7〉부터 케이팝 아이돌 앨범 작업을 하기 시작했어요.

어지혜 그 전에도 케이팝 앨범 디자인을 의뢰하는 분들이 계셨지만, 당시는 지금과 달리 아티스트의 사진을 중점으로 다루는 디자인이 주를 이뤘거든요. 그런 부분이 저희 디자인 스타일과 결이 맞지 않을 수 있었고, 작업하는 저희 입장으로도 흥분되지 않아서 거절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장준오 그러다가 BTS 기획사에서 연락이 온 거예요. 당시 BTS 앨범 디자인을 하게 된다면 정말 많은 사람이 보게 될 테니까 욕심이 안 날 수 없었죠. 문제는 케이팝 씬의 작업과 지금까지 우리가 한 작업의 간극을 잘 몰랐다는 점이에요. 케이팝 씬에선 앨범이 출시되면 메인 아트워크가 정말 다양한 굿즈의 소스로 활용이 되는데, 해외에서 메인 디자인을 바탕으로 새로운 상품을 만드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 업계의 흐름을 저희가 몰랐던 거죠. 그래서 기획사의 피드백을 받아가면서 그 간극을 조금씩 맞춰 나갔어요. 생각해보면 우리 내부적으로도 새로운 도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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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 다른 멤버들의 마크가 중첩된 형태를 띤 브랜드 마크를 디자인한 BTS 〈MAP OF THE SOUL: 7〉 앨범 © SPARKS EDITION
케이팝 만큼 변화가 빠른 판이 없죠. 하하. 지금은 어떤가요?

어지혜 지금은 더 확장돼서 벡터뿐만 아니라 이미지 기반이어도 괜찮고, 회화적이거나 추상적인 표현도 가능해졌어요. 우리가 BTS 앨범을 디자인할 때가 마침 그래픽 요소로 앨범 디자인을 풀어나갈 시기였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시작점이어서 더욱더 확장 가능성이 높은 그래픽 기반의 방향을 추구했던 것 같아요. 이젠 저희도 다양한 매체에 활용되어야 한다는 특징을 인식하고 접근하고 있죠.

지금 앨범 디자인을 보면 버전도 많고, 제작할 아이템도 엄청 많더라고요. 이 많은 애플리케이션을 통일되게 디자인하는 것도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지혜 지금은 통일성보단 변화를 줄 수 있는, 확장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추세예요. 아티스트 한 팀(명)당 앨범 버전을 8~15개 정도 출시하거든요. 앨범 브랜딩 작업을 할 땐 단순히 시각적으로 접근하는 게 아니라, 그 앨범의 컨셉을 확장할 수 있는 스토리라인과 컬러, 그래픽 등 소스를 개발하기 때문에 오히려 통일성은 쉬워요. 대신 기획사는 이야기 코드가 연결되면서도 앨범 버전마다 다른, 차별성을 둬서 다양하게 보여주는 방향을 더 선호해요.

통일성보단 다양성이 더 중요하게 되었군요.

장준오 하지만 이런 흐름도 언젠가 또 바뀔 수 있죠. 현재 케이팝은 급성장이라는 배경을 안고 다양한 시도와 변화를 모색하는 중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가까운 미래, 지금과 또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싶어요.

어지혜 지금 한국 음악계는 케이팝은 물론, 싱어송라이터 씬도 시장이 점점 넓어지고 있거든요. 덕분에 우리가 다양하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서 재미있어요. 또, 케이팝 같은 경우, 앨범을 담당한 프로듀서마다 분위기가 다르고, 변신을 꾀하기 위해서 앨범마다 키워드와 무드를 다르게 하거든요. 그래서 그들이 원하는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잘 표현해야 하는 점이 흥미로운 포인트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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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케이팝과 한국 대중음악 씬에 관심이 높아요. 그 씬의 일부를 담당하는 입장으로서 현재 케이팝과 한국 대중음악이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어지혜 그래픽 디자이너 시각으로 봤을 때, 케이팝의 성장으로 인해 한국의 시각 문화와 미감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했다고 생각해요. 10년 전만 해도 멋있는 카페가 하나 생긴 것만으로도 특별한 거였고, 기업이 아니면 브랜드를 론칭하는 게 쉽지 않았죠. 그런데 지금은 개인이 론칭한 브랜드도 많고, 자기만의 색깔을 가진 공간들도 많아졌고, 이런 변화와 더불어 문화 산업도 엄청 성장했죠. 이런 멋진 미감이 케이팝을 통해 확산되면서 해외에서 한국의 디자인과 문화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해요.

동시에 디자인 씬도 엄청난 발전을 이뤘다고 생각해요.

어지혜 저희뿐만 아니라 정말 잘하는 디자이너와 스튜디오가 케이팝 앨범을 개발하고 있기에 점점 더 앨범 브랜딩과 패키지 디자인의 수준이 올라가고 있어요. 저희 때와 달리, 어린 친구들이 고퀄리티의 디자인과 문화를 접하면서 자라게 되니까 그들이 볼 세상은 또 달라질 거란 생각도 하게 돼요. 그래서 우리나라가 문화적으로 좋아지고 있는 시대에 함께 가고 있고 작게나마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자부심 같은 것을 느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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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팍스 에디션의 어지혜 디자이너

PLUS 2. 스토리가 있는 디자인

앨범마다 컨셉과 메시지가 다르고 매번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여야 하는데, 그 기초가 되는 모티프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얻나요?

어지혜 앨범이나 곡의 전반적인 컨셉은 미리 전달받아요. 이렇게 기획사나 아티스트에게 컨셉과 키워드를 받고 나면 건축, 인테리어, 앨범 커버 아트워크, 피아노 연주나 발레 영상 등 분야를 따지지 않고 레퍼런스를 엄청 찾아봐요. 그러면 의외의 것에서 영감을 받고 연결 고리를 찾게 돼요. 키워드를 생각하며 랜덤한 이미지와 영상, 글을 보다보면 스냅스가 딱, 딱 연결되듯이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것 같아요. 때로는 글을 쓰다가 영감을 얻기도 하고요.

10CM, 장범준과 같은 뮤지션과는 오랫동안 작업하고 있죠. BTS와 르세라핌도 2장 이상의 앨범을 작업했고요. 이렇게 자주 만나는 아티스트의 앨범을 디자인할 때는 더 편한가요? 아무래도 그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를 빠르게 이해하고 캐치할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장준오 오래 함께 한 뮤지션들은 말 그대로 저희를 믿어주고 전적으로 다 맡기거든요. 그러니까 더 잘해야 한다는 마음에 부담도 생기죠. 게다가 좋아하는 분들이기 때문에 더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어지혜 좋은 결과물을 내는 건 디자이너로서 당연한 일이지만, 그보다 가치 있고 풍요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 좋은 파트너들과 인간적인 연을 맺고, 이 시대를 함께 열심히 나아가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최대한 서로 지치지 않도록 노력하는데요. 프로젝트를 다시 함께 하면 그런 마음이 상대방에게도 닿았다는 생각에 더 기쁘고 감사해요. 동시에 더 잘해야겠다는 압박을 받기도 하고요. 저는 그런 점도 디자인을 하면서 재미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장준오 지금까지 함께 작업했던 뮤지션들과 우리가 나중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돼도 이렇게 함께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하기도 해요.

지금까지 앨범 커버/브랜딩 디자인을 중점으로 이야기했지만, 실은 스팍스 에디션은 기업과 브랜드 아이덴티티 디자인도 활발하게 진행하죠. 이 작업은 앞서 앨범 디자인과 다른 점이 있나요?

어지혜 앨범 브랜딩과 일반 기업 브랜딩 모두 비슷한 과정으로 작업해요. 우리가 고안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로고부터 그래픽 모티프, 애플리케이션을 순차적으로 풀어 나가는 거죠. 실제로 앨범 브랜딩 같은 경우, 첫 PT부터 로고와 메인 커버부터 그를 적용한 애플리케이션까지 보여줘 얼마나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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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이도사유’ 아이덴티티 및 애플리케이션 디자인 © SPARKS EDITION
스팍스 에디션이 디자인 과정 중에서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무엇인가요?

어지혜 디자이너의 아이디어, 생각을 글로써 전달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생각한 이야기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매체는 말과 글이에요. 글로 상대방을 감동적으로 설득하면, 감정적인 연결에 생겨서 이미지 결과물을 집중해서 봐요. 그래서 저희는 키워드를 바탕으로 스토리를 만들고, 9문장 정도 되는 짧은 글을 심도 있게 작성해서 클라이언트를 보여줘요. 그다음에 결과물을 보여주면 빠르게 설득할 수 있어요.

장준오 클라이언트나 디렉터, 아티스트의 취향을 파악하는 것도 필요해요. 만약 클라이언트와 아티스트는 귀여운 걸 좋아하는데 디자이너가 시크함을 추구한다면, 아무리 이야기를 잘 만들고 그에 맞는 그래픽을 디자인해서 보여줘도 이해되지 않겠죠. 그렇기에 해당 프로젝트의 성격을 파악하는 것도 매우 중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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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종이를 불에 태우고 그을음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탄생한 르세라핌 〈UNFORGIVEN〉 앨범 디자인 © SPARKS EDITION
스팍스 에디션의 또 다른 특징은 컴퓨터로만 작업하는 것이 아니라, 회화나 조형 등 손으로 직접 그래픽 요소를 만들고, 그를 활용한다는 점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작업 과정을 지향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어지혜 준오 씨는 조형 작업을 하기 때문에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감각이 더 익숙해요. 저도 그림을 그리니까 실제로 그리고 만드는 것이 더 쉽고요. 단지 편해서 시작한 작업 방법이었지만, 지금은 손으로 그리고 만들면서 의외의 순간을 마주해요. 물감이 번지면서 새로운 이미지를 찾아내고, 자투리 종이를 사용하면서 아이디어가 튀어나오기도 하고요. 확실히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그를 컴퓨터로 테스트하는 것보다 손으로 만들고 실험해 보는 것이 훨씬 쉽고 의외의 결과를 발견하게 되는 것 같아요.

장준오 컴퓨터로 작업할 때도 출력을 많이 해서 봐요. 실제 출력해서 보는 건 또 모니터 속 이미지와 많이 다르고, 실제 공간에 두고 가까이서 혹은 멀리서 볼 때 인상이 다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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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팍스 에디션의 장준오 디자이너

PLUS 3. 손에서 마음으로, 개인 작업이 가지는 의미

두 분은 회화, 조형 등 개인 작업을 매우 활발히 하고 있죠. 전시도 하고요. 이런 작업들이 디자인 작업에도 영향을 미치나요?

어지혜 디자인이란 말 그대로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그에게 가장 어울리는 옷을 입혀주고 동시에 그가 생각하지 못했던 점을 찾아주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나만의 것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저는 회화 작업이고 준오 씨는 조형 작업인 거죠. 그림은 스스로 눌렀던 생각과 감정 등, 온전히 나의 것을 드러내는 일기장과 같아요. 단지 시각적인 것을 다룬다는 공통점만 있을 뿐, 작업 과정은 전혀 다르죠.

좋은 디자인을 꾸준히 하기 위해서 개인 작업을 하는 거군요.

어지혜 왜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는지 생각하면, 만들고 그리는 걸 좋아했고 내가 좋아하는 색의 조합이나 이야기 등을 표출하고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었거든요. 그런데 디자이너로서 계속 타인의 이야기에만 집중하다 보면 지치게 되거든요. 그런데 그림을 그리면 온전히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으니까 힘이 되고, 서로 보완되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개인 작업을 하는 디자이너, 자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스튜디오는 많지만 스팍스 에디션처럼 순수 회화와 조형에 집중하는 스튜디오는 드물어요. 그러다 보니 ‘스팍스 에디션 = 디자인 스튜디오 겸 작가’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장준오 저와 지혜 씨가 계속 물성이 느껴지는 작업을 많이 하고 있기에 그런 생각을 하시는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그런 시선으로 봐주시는 게 좋아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해요. 나름 열심히 한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그러지 못할 때도 있어서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자극이 돼서 꾸준히 하자고 다짐해요.

어지혜 디자이너가 예술가가 되면 안 된다는 법은 없으니까요. 스팍스 에디션은 디자인 스튜디오이기도 하지만, 자기만의 세계를 가진 아티스트가 운영한다는 점이 엄청 뿌듯하고 재미있고 좋은 방향성이라고 봐요.

한편으론 개인 작업을 할 땐, 디자인 작업과 또 다른 고민이 있을 것 같아요.

어지혜 디자인은 소통이라서 계속 대화를 해야 해요. 클라이언트, 팀원들과 계속 얘기를 나누면서 의견을 맞춰 나가고 설득하는, 그 과정이 매우 중요해요. 심지어 우리 둘도 끊임없이 맞춰야 하죠. 대화하다 보면 내 생각에만 빠져 있어서 놓친 부분을 알게 되고 서로 보완할 수 있거든요. 이게 바로 디자인의 재미이자 고충이라고 한다면 개인 작업(회화, 조형)은 누구를 설득할 필요가 없어요. 온전히 조각하고 그림을 그리는, 단순노동과 비슷한 움직임에 집중하는 시간이죠. 무엇을 그리고 만들지 고민하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과정은 굉장히 고요하고 차분해서 제가 더 단단해지는 시간이 돼요. 대신 설득할 사람도, 답도 없기 때문에 끊임없이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야 해요. 이 작업이 끝나는 시점도 제가 정하는 거니까, 온전히 나만을 위한, 나와의 이야기를 담는 시간이라 굉장히 다른 기분이 들어요.

장준오 스팍스 에디션의 디자이너로서 업무는 시작점이 정확하게 정해져요. 반면 개인 작업은 시작점이 없어서 어려울 때가 있어요. 예를 들어 전시가 잡혀 있다거나, 제 조형 작업이 어딘가에 필요하다든가 등 구체적인 목적이 생기면 작업을 시작하기가 수월한데, 그게 없는 상태에선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지 스스로 정해서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워요.

어지혜 그런데 준오 씨는 조형만 하지 않아요. 음악도 하고 있는데, 그 작업은 구애받지 않으면서 스스로 꾸준히 열심히 하고 있어요. 그런 의미에선 스스로 잘하고 있는 거죠.

작곡도 하세요?

장준오 음악 작업은 재미있게 하고 있어요. 밴드를 함께하는 친구들과 한 7곡 정도 작곡을 해서 합을 맞추고 있어요. 베이스, 드럼 등 다른 악기를 다루는 친구들과 같이 할 때는 혼자 연주할 때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감정이 생기고, 혼자서는 만들 수 없던 곡들도 나와서 신기하고 재미있어요. 이렇게 협업하는 거라는 생각도 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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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오 디자이너의 조형 작품들. 이규태 작가와의 2인전에서 선보인 작품(좌)과 스팍스 에디션의 개인 작업을 선보였던 전시 〈Dancing blue〉에서 선보인 작품(우) © SPARKS EDITION
앞서 말한 것처럼 회화와 조형 작업에는 오롯이 두 분의 관심사와 생각을 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주제도 달라질 거란 생각이 드네요. 지금, 2025년에 진행하는 개인 작업의 주제는 무엇인가요?

장준오 눈, 코, 입이 없는 두상을 만들고 있어요. 표정이라는 건 감정을 드러내는 것인데 생각해보면 그 표정이 나의 진짜 감정이 아니었던 적이 많은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대화를 나누다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는데, 나중에 돌이켜보면 인상을 찌푸릴 일은 아니었던 거죠. 이처럼 표정은 감정을 100% 반영하는 것도 아니고, 당시 상황에 따라 큰 의미 없이 지을 수도 있는 건데 우리는 자신과 타인의 표정에 민감하게 반응하잖아요. 이런 이야기를 눈, 코, 입이 없는 두상으로 전하고 싶었어요. 어떤 형태만을 가지고 감정을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다양한 형태의 두상으로 감정을 표현하려고 해요.

어지혜 지금 제가 재미있게 그리는 주제는 밝을 땐 보이지 않던 것들이 오히려 어두울 때 보일 때가 있어요. 예를 들면 달도 사실은 계속 하늘에 떠 있는데 밤에만 보이죠. 불의 움직임도 우리가 어두운 곳에서 지켜봐야 볼 수 있는 것처럼 향 혹은 바람, 빛 등 어둡거나 고요할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표현하는데 관심이 커졌어요. 예전에는 단단하거나 동그란 형태, 인체의 굴곡 등에서 발견한 선(line)들을 강조하고 싶었다면, 지금은 선명하지 않고 어스름하게 느껴지는 것들을 표현하고 싶어요. 뭐랄까, 흔들려서 경계가 흩어지고 어두울 때 보이는 거라고 할까요?

4월 말에 끝난 전시 〈sacance : sun & moon〉에서 그 그림들을 보여줬죠.

어지혜 이번 전시를 하면서 사이즈 업(size-up)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전 명확하고 구체적인 형상이 아닌 추상을 그리지만, 충분히 감정과 메시지가 전달된다고 생각했는데 전시를 하고 나니까 생각보다 감정이 전달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관객에게 압도적인 감정과 경험을 전달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어요. 그래서 사이즈업을 하거나 재료를 바꿔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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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팍스 에디션 스튜디오에 있는 작업물들

PLUS 4. 함께할 때의 즐거움

마침 콜드플레이도 한국에 왔으니, 스팍스 에디션 이름의 유래를 한 번 이야기해주시겠어요. 하하.

어지혜 10CM 1집 앨범을 디자인하면서 정식으로 우리 이름을 표기해야 했어요. ‘Design by 장준오, 어지혜’보다 하나의 팀으로서 인식되는 이름이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 당시 콜드플레이 노래를 많이 들었거든요. 그들 노래 중에 ‘Sparks’라는 곡을 좋아했는데 그 단어도 너무 좋았어요. 그 단어가 의미하는 것처럼 앞으로 반짝거리는 에디션을 만들어 가자는 의미로 이름을 짓게 되었어요.

스팍스 에디션은 꽤 오랫동안 어지혜, 장준오 두 사람만으로 운영되던 스튜디오였어요(지금은 3명의 팀원이 함께하고 있다). 그만큼 서로가 느끼는 마음과 시너지가 남다를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어지혜 준오 씨는 항상 단단하게 그 자리를 지켜 줌으로써 저에게 좋은 영향을 미쳐요. 어떤 특별한 행동이 아니라, 든든한 파트너라는 존재만으로도 힘이 되고, 스팍스 에디션을 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이 돼요. 혼자선 절대 못했을 거예요. 저에게 가치 있는 세상이란, 좋은 사람들과 따뜻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거예요. 특히 같은 삶을 살아가는 파트너와 많은 부분을 공유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행복한 삶의 조건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에 스팍스 에디션을 하고 싶었던 거고요. 프로젝트나 기타 다른 일들로 힘들 때, 준오 씨는 제 상황을 잘 이해해주는 사람이잖아요. 그런 공유와 이해가 눈을 뜨고, 바람도 느껴가면서 살아 갈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순간들을 함께 하는 동반자가 있다는 게 든든하고, 행복도 배로 나눌 수 있고요.

장준오 저도 지혜 씨와 같은 마음이에요. 앞서 지혜 씨가 다 말해서 제가 할 말이 없어요(웃음).

인터뷰 준비를 하면서 스팍스 에디션이 벌써 이렇게 되었어? 하고 놀랐다가, 그동안 작업한 프로젝트 수를 보고 한 번 더 놀랐어요. 15년이라는 시간 동안 자기 색을 잃지 않으면서 달려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장준오 스튜디오는 한 편으론 사업이잖아요. 그런데 저희는 사업적으로 스튜디오는 키우거나 확장하는 데에 관심을 두기보단, 우리가 하는 작업에 더 집중했던 것 같아요.

어지혜 우리와 함께 해보고 싶다고 제안주시는 분들에게도 매번 감사하고, 수많은 디자인 스튜디오와 함께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가치 있는 결과를 만들고 있다는 만족감, 무언가를 해냈다는 스스로가 느끼는 자신감 등을 느낄 때, 정말 행복하거든요. 또, 지금 직원들과 하루 종일 같이 있으면서 일 외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들도 소중하고요. 그런 마음과 시간이 있었기에 오랫동안 함께 해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이제 함께 하는 멤버들도 생겼고요.

어지혜 일만 나눈다면 오래 가기 힘들 거예요. 오히려 지금의 관심사와 생각을 서로 공유하고 대화하면 커질 수 있거든요. 또, 친구들과 계속 서로 주고받으면서 살아간다는 점도 너무 좋아요.

지난 세월을 보면 놀랍기도 하지만, 앞으로 계속 나아가야 한다는 건 변치 않는 사실인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스팍스 에디션이 하고 싶은 건 무엇인가요?

어지혜 내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잘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탐구하는 것이 현재 저의 제일 큰 관심이기 때문에 그림 작업의 사이즈 업 하는 것. 그것이 지금 제일 도전하고 싶은 목표예요. 사실, 그동안 많이 작업한 것 같지만 아직도 모르는 게 많거든요. 디자인은 할수록 어렵지만 그럼에도 계속 재미있게 하고 싶어요. 변하는 시대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잘 지켜가면서, 멤버들과 서로의 영역을 넓혀 나가면서 성장과 성취감을 느끼는 것. 그를 고민하고 있어요.

장준오 미래를 철저하게 계획하는 타입이 아니라서 스팍스 에디션의 방향을 거시적인 관점으로 보지 않았어요. 다만, 지금 멤버들이 우리가 그 나이대에 느꼈던 성취감, 행복, 기쁨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고, 우리에게 그를 느낄 수 있는 프로젝트가 주어져야 할 테니 더욱 스튜디오의 성격과 잘 맞는 작업을 선택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죠.

PLUS LIST

어지혜 & 장준오가 작업할 때 사용하는 도구 3

  • 까렌다쉬, 로트링 펜
  • 로열 아이보리
  • 블랙윙 연필

“필기도구, 특히 펜을 좋아해요.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펜과 필기도구 몇 가지를 필통에 넣고 다니면서 그날의 느낌에 따라 골라서 사용해요. 펜을 잡았을 때의 느낌을 좋아하는데, 각진 펜슬도 각이 둥글게 되어 있는 것과 섬세하게 각진 것이 있는데 후자의 경우, 손에 잡았을 때 되게 시원해요. 그중에서도 까렌다쉬와 로트링 펜을 좋아해서 자주 사용해요.” (장준오)

“저도 디자인 작업할 때, 한 가지 매체만을 사용하는 건 아니지만 스케치를 할 때는 블랙윙 연필을 좋아해서 자주 사용해요. 연필심이 촉촉해서 그리기가 쉬워요. 그래서 스케치할 때는 사각사각 소리가 익숙한 브라운 컬러의 HB를, 디자인 작업을 할 때는 하얀색을 자주 사용해요. 준오 씨는 디자인 작업물을 실제로 만들 때, 로열 아이보리 종이를 주로 사용해요.” (어지혜)

“로고처럼 단단한 구조물을 만들어야 할 때, 그 종이를 사용하는데, 테이블 아래 두께별로 두고서 필요할 때마다 바로 꺼내서 만들어요.” (장준오)

TIPPING POINT

디자인이란 무엇일까? 단순히 아름답고 보기 좋은 것 혹은 시각적 요소로 심금을 울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크나큰 오해다. 실은 디자인이란 타인과 소통하고, 시각적 요소로 타인을 설득하는 일이다.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스팍스 에디션은 뮤지션과 브랜드, 작가의 이야기를 잘 듣고, 그들의 메시지를 자신들의 시각으로 해석하여 모두가 납득하는 디자인을 선보인다. 거기에 시선을 끄는 아름다움과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감각은 덤으로 붙을 뿐이다. 스팍스 에디션은 인터뷰를 하면서 ‘재미있다’, ‘행복하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 이 재미있고 행복한 디자인을 계속하기 위해서 어지혜, 장준오 두 사람은 자기의 목소리에 기울이고 더 나아가 주변 사람들과 함께하는 삶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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