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은한 조명의 실내, 겹쳐지는 회화적 풍경
‘신 라이프치히 학파’ 루카스 카이저의 두 번째 서울 개인전
루카스 카이저의 〈Constant Glimmer〉이 열리고 있다. 루카스 카이저는 독일 라이프치히 스타일을 계승하는 한편 독자적 화풍을 개척하고 있는 젊은 작가로 일상의 평화로운 장면을 포착하는 한편, 신비롭고 묘연한 화면 배치, 색연필 등 건식재료를 사용한 섬세한 묘사와 다층의 이미지 레이어가 그의 작업적 특징이다. 이번 전시에 앞서 서울에 방문한 루카스 카이저, 그리고 전시를 기획한 디스위켄드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루카스 카이저의 〈Constant Glimmer〉이 열리고 있다. 루카스 카이저는 독일 라이프치히 스타일을 계승하는 한편 독자적 화풍을 개척하고 있는 젊은 작가로, 국내에서는 앞서 개인전 〈Down at the Green Meadow〉(2023, 디스위켄드룸)을 가지며 소개된 바 있다. 일상의 평화로운 장면을 포착하는 한편, 신비롭고 묘연한 화면 배치, 색연필 등 건식재료를 사용한 섬세한 묘사와 다층의 이미지 레이어가 그의 작업적 특징이다. 이번 전시에 앞서 서울에 방문한 루카스 카이저, 그리고 전시를 기획한 디스위켄드룸의 이야기를 아래에 전한다.

Courtesy of the artist and ThisWeekendRoom, Seoul
— 디스위켄드룸에서 루카스 카이저를 꾸준히 소개하고 있다. 미술계 및 컬렉터들의 반응은 어떤가?
〈Constant Glimmer〉는 루카스 카이저의 두 번째 국내 개인전이다. 2023년 디스위켄드룸에서 열린 첫 개인전 이후 아트오앤오(ART OnO)를 비롯한 여러 국내외 아트페어와 단체전을 통해 아시아 컬렉터들 사이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실제로 개인 컬렉터뿐만 아니라, 독일 라이프치히 작가들의 작품을 폭넓게 소개하는 G2 힐데브란트 컬렉션 등에 작품이 소장되는 등 작가를 향한 국제적 주목도가 높아진 바 있다.
이번 개인전에서도 그 흐름은 계속되고 있다. 작품 특유의 아날로그한 감성과 향수를 자극하는 이미지 표현 방식은 젊은 컬렉터뿐만 아니라 중장년층 사이에서 호응을 얻었다. 카이저의 새로운 개인전을 기다려 온 컬렉터들은 작품 구매 문의와 더불어 작가의 조형적 역량과 향후 성장 가능성에 대한 신뢰를 내비쳤다.

— 디스위켄드룸은 국내외 MZ 세대 작가를 잘 발굴하는 것 같다. 루카스 카이저와의 만남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디스위켄드룸은 국내외를 아우르는 신진 작가 발굴을 위한 전략을 꾸준히 도모하고 있다. 루카스 카이저는 라이프치히 국립예술대학 출신으로, ‘신(新) 라이프치히 학파’로 분류되는 작가들 중 한 명이다. 카이저와 디스위켄드룸이 첫 협력을 도모하던 2022년에 그는 대학 석사 과정생들 사이 다양한 매체적 실험과 시각적 논법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갤러리는 작가만의 섬세한 필치, 나아가 종이와 건식 재료를 고집하는 특유의 표현법 등에 매료되어 유럽권 바깥에서 작가의 예술 세계를 폭넓게 소개하고자 하였다. 작가와 작품에 대한 사전 리서치를 거친 후에는 적극적인 온라인 미팅을 진행하며 첫 번째 아시아 개인전을 준비하게 되었다.
— 루카스 카이저는 지난 2023년 한국에 ‘독일에서 온 MZ 작가’ 로 조명된 바 있다. 실제로 루카스 카이저가 독일에서 세대 대표성을 띠는 측면이 있는지 궁금하다.
1994년생인 루카스 카이저는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로서 온오프라인에서 수집한 시각 자료를 자연스럽게 조합하며 자신만의 고유한 조형 언어를 탐구해 왔다. 그는 현실과 가상의 이미지들을 다중의 레이어로 겹쳐 내는 과정에서 관람자의 시점의 교란시키는 구도와 질감을 활용하여 일종의 긴장감을 소환하는 데 관심이 있다. 이러한 이미지 활용 방식과 전통 라이프치히 화파에서 비롯된 구상 회화라는 특징을 미루어 볼 때 독일 젊은 작가들 사이에서 모종의 대표성을 띠는 것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우리는 카이저만이 가지는 독자적인 형식과 내용에 보다 집중하고 있다.


(오른쪽)Lucas Kaiser, Host, 2025, pencil, pigment, acrylic and oil stick on paper, 45 x 35 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ThisWeekendRoom, Seoul
— 그의 작품에는 머그잔, 벽지, 소파, 시리얼, 식탁보, 카펫 등 어느 집에서나 볼 수 있는 익숙한 사물이 등장한다. 이들 사물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다. 실제 작가의 집에 있는 사물인지 등.
작품에 등장하는 머그잔, 소파, 벽지, 식탁보, 카펫과 같은 일상 속 사물의 모습은 작가가 실제로 소유한 물건이기보다 온라인이나 인쇄물 등에서 수집한 이미지에서 비롯되며, 특정 시대를 풍미한 유행처럼 문화적 상징성을 띠는 대상으로 인식된다. 작가는 상이한 요소들이 조형적으로 연결되는 현상을 ‘타이 월드(Tied World)’라 지칭하면서 이질적인 요소들을 단일한 화폭에 담아내고자 하였다. 특히 그가 주목한 19세기 독일 비더마이어 시대에 유행한 실내 장식적 양식이 이번 개인전에서 선보인 작업에 영향을 미쳤다. 가령 화면 곳곳에 새겨진 정교한 패턴과 과감한 시각적 배열 등은 카이저가 영감을 받은 시대적 특성을 반영한다.

Courtesy of the artist and ThisWeekendRoom, Seoul
— 많은 작가들은 매체에 대한 실험과 고민을 한다. 특히 회화처럼 전통적인 매체의 경우, 새로운 변형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 생각이 깊기 마련이다. 카이저의 경우 어떻게 그 이슈를 풀어가고 있다고 보나?
카이저는 주로 종이 위에 연필, 색연필, 오일 스틱과 같은 건식 재료를 활용해 손의 물리적 압력을 그대로 반영한 마티에르(matière)를 형성한다. 작가는 주로 문이나 창, 또는 그와 비슷한 형태로 작동할 수 있는 여러 소재로 화면 안에 또 다른 화면을 배치하는데, 이때 상이한 물성을 지닌 미디엄을 활용하여 여러 시점의 중첩을 효과적으로 묘사한다. 간혹 섬세한 연필의 레이어를 뒤덮은 무거운 오일 스틱의 흔적은 그 아래 숨겨진 이미지를 상상하게 하는 물리적 장치로 이용된다.

(작품 부분 사진_오정은)
— 루카스 카이저에게 서울은 어떤 도시인가?
첫 방문 이후 2년 만에 다시 찾은 서울은 작고 조용한 독일 마을에서 자라 온 내게 새로운 영감을 주는 도시이다. 가령 식당과 대중교통 같은 공공장소를 비롯한 모든 곳에서 라이프치히와의 뚜렷한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북한산을 등반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지하철에서 내려 약 20분 정도만 걸으면 산길에 접어드는데, 거대한 도심 한복판에서 순식간에 자연으로 이동하는 감각이 생경했다. 서울 곳곳에 위치한 도심형 공원 또한 비슷한 사례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모습과 분위기를 지닌 서울은 매력적인 도시이다.


(오른쪽) Lucas Kaiser, Brother, 2025, pencil, pigment, acrylic and oil stick on paper, 45 x 35 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ThisWeekendRoom, Seoul
— 작품이 유럽과 아시아에서 각각 소개되고 있다. 각 도시와 문화권마다 다른 미술계 반응 또한 체감할 것 같다. 어떤가?
새로운 문화권에서 작업을 선보이는 경험은 작가에게 큰 의미로 다가온다. 시각예술이 언어를 초월한 보편적 감각을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과 더불어 작품을 통해 전달되는 메시지가 상이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이들 간 공감을 일으킬 수 있음을 체감했다. 이는 작업을 지속하는 데 강력한 동기가 될 것이다. 또한 문화적 차이에 따른 미술계의 반응이 인상 깊었다. 유럽권 관객이 전반적인 인상과 감각을 중시했다면, 한국에서는 각각의 작품이 지닌 서사와 세부적인 디테일에 대한 깊은 관심과 탐구가 두드러졌다. 이는 어디까지나 개인적 경험에 기반하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 더욱 다양한 문화권에서 나의 작업을 소개하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되었다.

acrylic and oil stick on paper, 90 x 70 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ThisWeekendRoom, Seoul
— 19세기 독일 비더마이어(Biedermeier) 양식을 참조했다고 들었다. 어떤 계기로 관심 갖게 되었나. 이를 의식하고 그린 대표작이 있다면 꼽아달라.
비더마이어(Biedermeier) 양식은 로코코 이후의 장식성과 낭만주의적 정서가 결합된 양식으로, 주로 화목한 가정의 모습, 안락함, 장식적 욕망 등을 시각적으로 강조하는 특성을 지닌다. 특히 당대의 가족 중심적 생활은 오늘날 단절되고 고립된 현대인들의 삶과 대비된다는 점에서 작가에게 중요한 사유의 계기를 제공하였고, 해당 시기에 자주 쓰이던 패턴과 실내 구성 요소들을 활용해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하게 된 단초로 작용했다. 따라서 이번 개인전에서는 정원, 들판과 같은 야외 공간에 주목한 이전 작업과 달리 실내 공간에 집중한 장면들을 살펴볼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은 작품 〈Sports Collection〉에서 보다 자세히 드러나는데, 가령 좁은 공간 안에 과도하게 밀집된 장식적 오브제와 인물, 테이블보와 벽지의 촘촘한 패턴이 강조된다. 한편, 화면 속 접시와 꽃병은 또 다른 장면을 묘사하는 일종의 회화적 창으로 작동한다.

— 지난 세기 양식을 현대적인 이미지와 결합한 모습이 보이는데, 이런 기법을 의도한 이유가 있나?
전통적 양식과 현대의 밈 또는 웹 이미지가 결합된 방식은 개인적 취향과 이미지 레퍼런스가 자연스럽게 조우한 결과이다. 이를 의식적으로 탐구하면서 특정 시대의 미감과 대중문화 등으로부터 발현되는 회화적 감각과 긴장감을 실험하기 시작했다. 나아가 고전적 요소의 미(美)와 비교적 가볍고 일시적으로 소비되는 이미지를 병치시킴으로써 고전성과 동시대성이 공존하는 시각적 내러티브를 만들어내고자 했다.
—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뒤셀도르프, 베이징, 비엔나에서 작업을 선보일 예정이다. 탕 컨템포러리 베이징에서 예정된 단체전과 비엔나에 위치한 실험적인 예술 공간에서 앞으로의 프로젝트를 이어 나가고자 한다.

Courtesy of the artist and ThisWeekendRoom, Seo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