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노시스에게 12인치 정사각형 캔버스는 멋진 디자인을 만들기에 충분한 공간이었다. 멋을 나타내는 ‘힙hip’과 지식을 뜻하는 ‘그노시스gnosis’를 결합해 지은 이름처럼 스스로 힙하고 지적인 존재가 되길 주저하지 않았다.
1970년대 명반의 초상, 〈힙노시스: 롱 플레잉 히스토리〉전
박연주 디자이너의 그래픽 시 ‘음반 디자인 2’에는 “LP의 스케일감에 비해 CD는 좀 알량하니까”라는 구절이 나온다. 힙노시스는 그 알량하지 않은 바이닐 디자인의 대표 주자다. 1968년 오브리 파월과 스톰 소거슨이 설립한 디자인 스튜디오로, 이후 디자이너 피터 크리스토퍼슨이 합류하며 인류의 우상 같던 뮤지션들의 커버 제작을 섭렵했다. 멋을 나타내는 ‘힙hip’과 지식을 뜻하는 ‘그노시스gnosis’를 결합해 지은 이름처럼 스스로 힙하고 지적인 존재가 되길 주저하지 않았다. 이들이 활발하게 활동한 1970년대는 음반 판매액이 수백만 달러에 달했고 업계에 돈이 넘쳐났다. 뮤지션이나 음악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도 커버가 마음에 들면 음반을 구입하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힙노시스에게 12인치 정사각형 캔버스는 멋진 디자인을 만들기에 충분한 공간이었다.
(왼쪽부터) 오브리 파월, 피터 크리스토퍼슨, 스톰 소거슨.
“레코드 가게가 LP 진열대로 가득했던 시절, 우린 강한 승부욕을 갖고 있었다. 수많은 음반 속에서 나름의 존재감을 피력한다는 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것이 노랫말이나 밴드 이미지 또는 음악 자체와 어떤 상관이 있든 없든, 좋은 디자인은 항상 흥미를 불러일으킨다는 게 우리의 모토였다.”
힙노시스 공동 설립자 오브리 파월
포토샵 같은 디지털 툴이 없었기에 작업 과정은 꽤나 원초적이었다. 적절한 촬영지를 찾고,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인화한 사진을 오리고 붙이고 색칠하며 뮤지션의 이야기와 사운드를 디자인으로 표현했다. 아트워크 작업은 평균 3~6주 걸렸는데 요즘으로 치면 한나절이면 할 수 있는 일이 수두룩했다.
〈힙노시스: 롱 플레잉 히스토리〉전은 이러한 작업 과정을 따라 힙노시스의 자취를 추적한다. 스튜디오 결성부터 세계적 명반의 커버 제작 스토리, 록스타들의 뒷이야기까지, 설립자 오브리 파월의 코멘트와 영상으로 구성했다. “자네들의 아이디어는 너무 비싸. 우리 앨범은 갈색 봉투에만 담아도 팔릴 텐데”라고 레드 제플린의 매니저가 말하자 진짜 갈색 종이봉투에 앨범을 담은 〈In Through the Out Door〉, 스턴트맨의 몸에 15번 불을 붙여가며 촬영한 핑크 플로이드의 〈Wish You Were Here〉, XTC의 앤디 파트리지가 “음반사의 허례허식에 숨지 않는 커버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하자 “우리는 당신이 이 앨범을 사길 바랍니다. 상품은 소비되어야 하며, 당신은 소비자입니다” 따위의 문장을 넣은 〈GO 2〉 등 그 면면을 들여다보면 힙노시스의 뻔뻔함과 담대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1970년대 앨범 커버의 핵심은 뮤지션의 얼굴이었지만 힙노시스는 인물 사진과 전혀 상관없는 디자인을 고집했다. 오죽하면 데이비드 길모어는 “스톰 소거슨의 디자인은 마케팅과의 연결 고리가 하나도 없다. 앨범에 수록한 음악을 반영한다는 점도 보너스일 뿐이다”라고 말했고, 닉 메이슨 또한 “우리를 대체 어떻게 설득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들을 포함한 수많은 록스타들이 힙노시스의 작업을 예술로 바라봤다. 전시장에 나열된 힙노시스의 스튜디오 역시 기묘했다. 런던 소호의 오래된 빅토리아풍 상가 하나를 두 공간으로 분리해 아래층은 사진 스튜디오로, 위층은 그래픽 디자인 작업실로 사용했다. 오브리 파월은 록스타들이 약속 없이도 매일같이 이 계단을 올라왔다고 회고했다. 기타 가게, 레코딩 스튜디오, 음반사가 빼곡히 들어선 골목에서 힙노시스는 만남의 장소였던 셈이다.
런던의 덴마크 스트리트 6번가에 자리했던 힙노시스 스튜디오.
피터 게이브리얼은 “작업실의 어두운 층계를 오르는 것은 항상 긴장되는 일이었다. 고객에게 욕설, 비웃음, 조롱, 도발 등을 서슴지 않는 곳이었지만 결과물은 항상 기대 이상이었다”라고 말했다. 어쩌면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디자이너가 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의뢰인을 홀릴 정도로 매력적인 인간이 되는 것 아닐까? 1980년대에 CD가 등장하고 MTV가 개국하면서 LP 시장이 쇠퇴하고 힙노시스는 1983년에 해체했으나 이들의 작업은 여전히 수많은 창작자에게 영감의 원천이 된다. 전설적 뮤지션들의 생생한 증언이 궁금하다면 5월에 국내 개봉 예정인 〈힙노시스: LP 커버의 전설〉을 기다려보자.
전시장에 걸린 〈Wish You Were Here〉의 백 커버. 스톰 소거슨의 표현을 빌리자면 “음반사 사람들은 도덕도 일관성도 없이 자기 자신을 기만하기에 얼굴이 없어야 한다.”〈힙노시스: 롱 플레잉 히스토리〉 전시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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