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만간 빛날 디자이너 7인
루키 디자이너에게 으레 기대하게 되는 참신함과 야심을 잠시 거둬두고 그들이 어떤 일상에서, 무슨 생각을 하며 지내는지 가까이에서 들었다.

월간 <디자인>은 매해가 시작될 때마다 ‘올해를 빛낼 디자이너’를 소개한다. 번외 편을 준비했다. 지금은 대학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지만 실전에서 활약이 기대되는, 조만간 빛날 디자이너 7명이다. 각종 디자인 어워드를 휩쓴 사람도 있고 현재 전공에 대해 갈등하는 사람도 있으며 한국 디자인계의 맹점을 신랄하게 비판한 사람도 있었다. 각자의 배경에서 자신만의 포즈를 취하는 7명의 주인공을 보고 있자니 짐 자무시의 영화 <천국보다 낯선>이 떠올랐다. 20대 초반의 주인공 에바, 에디, 월리는 무료한 일상을 떠나 플로리다로 여행을 가기 위해 돈을 모은다. 하지만 도중에 두 사람이 경마에 돈을 쏟아부어 각자 뿔뿔이 흩어지는 결말의 영화다. 시종일관 쓸쓸하고 황량한 이 흑백영화는 청춘에게 씌워진 낭만을 싹 걷어냈다. 루키 디자이너에게 으레 기대하게 되는 참신함과 야심을 잠시 거둬두고 그들이 어떤 일상에서, 무슨 생각을 하며 지내는지 가까이에서 들었다.
조현용
홍익대학교 프로덕트·산업디자인학과

조현용은 요즘 인터넷 라디오에서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을 듣는다. 철학, 종교, 정치까지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며 편견 없이 다루는 이 프로그램은 디자인의 여러 분야를 유연하게 생각하도록 도와준다고. 그에게 디자인은 해결책을 만들어내는 하나의 프로세스다. 지난해 조현용은 아우디 디자인 챌린지 가구 부문에서 학교 선배인 박근과 함께 ‘핑퐁 테이블’로 대상을 받았다. 그들이 자동차에서 탁구대를 연상할 수 있었던 것은 아우디를 탈 법한 사람들이 선호하는 가구와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치밀하게 분석했기 때문이다. 졸업 전시에서는 헤어드라이어를 가구로 해석한 ‘알베로(Albero)’를 선보였다. 알베로는 헤어드라이어의 스테레오 타입에서 과감히 탈피해 두 손으로 머리를 말릴 수 있으면서 인테리어 소품 역할까지 하는 제품이다. 그는 제품 디자이너로 세상에 소개된 다음 디자인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그런 후에는 도시 정책을 디자인하는 정치인으로 활동하고 싶다고 했다. 디자이너의 역할에 한계를 두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지금 그는 의료 기기 관련 스타트업에서 제품 디자인을 하면서 실전을 익히는 중이다. www.vntc.me

염은진
동양미래대학교 실내환경디자인과

염은진은 한 방송사에서 고등학생들의 취업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에 나온 적이 있다. 1차, 2차, 3차까지 통과했지만 정말 괴물처럼 잘하는 경쟁자들 사이에서 탈락의 쓴맛을 본 뒤 ‘뭘 하든 제대로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이후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 3년제 인테리어 디자인학과에 진학했다. 공간 디자인은 다른 디자인 분야에 비해 스펙보다 실력으로 정정당당히 승부할 수 있는 영역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건축학을 전공하는 류수민과 함께 러시아 회화 이론을 모티브로 휴대폰 케이스를 디자인해 삼성WA닷컴의 위이노베이트(WE-Innovate)에서 상을 받았다. 총 800점의 응모작 중에서 소비자 투표를 거쳐 3등을 거머쥐었다. 염은진은 최근 두 가지 이유로 휴학을 결정했다. 하나는 유럽 여행이고 다른 하나는 인테리어 디자인에 대한 심화 공부다. 이를 위해 쇼핑몰 피팅 모델을 하며 자금을 모으고 있다. 또 틈틈이 학원을 다니면서 3D 맥스나 스케치업 같은 실전에 필요한 툴을 배운다. 공간에 따라 사람의 행동 양상이 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게 흥미롭다는 그는 최근 다녀온 ‘노홍철 책방’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윤동관
단국대학교 커뮤니케이션디자인과

윤동관에게 뮤직비디오는 그가 좋아하는 힙합, 예술, 디자인, 사진을 다 할 수 있는 유일한 미디어다. 요즘은 GDW 김성욱 감독이 제작한 오혁의 <볼링 Bawiling> 뮤직비디오를 즐겨 본다. 흔하디흔한 아파트를 소재로 찍었는데도 아름답고 생경한 영상에 놀랐다고. 윤동관도 최근 새로 산 DSLR 파나소닉 GH4로 고향에 있는 지하 터널에서 뮤직비디오를 찍었다. 그는 시간에 따라 빛의 양이 달라지는 지하 터널에서 독특한 분위기를 포착해냈다. 훗날 미셸 공드리(Michel Gondry)처럼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영상 감독이 되는 게 꿈이다. 다양한 디자인 분야에 대해 촉수가 발달한 그는 친척 누나와 함께 화훼 디자인 스타트업도 시작했다. 여러 일을 벌이면서도 그가 부지런히 챙기는 일이 있다면 한국메세나협회에서 운영하는 ‘드림그림’ 봉사 활동이다. 자신은 지방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예술에 대한 조언을 받지 못한 걸 아쉽게 생각했는데 이 봉사 활동을 통해 미술을 좋아하는 저소득층 아이들의 멘토 역할을 하고 싶단다. 이 와중에 교내 영상 디자인 동아리 디모션(D-Motion) 회장까지 맡고 있는 윤동관의 올해 목표는 클라이언트로부터 영상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것이다.

신지호
계원예술대학교 산업디자인과

신지호는 집에서 노는 걸 좋아하는 소위 집돌이다. 그는 집에서 생활하면서 좁은 방 안에 소파, 침대, 책상 등 다양한 용도의 가구를 들여놓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자주 고민했다. 그 결과 침대 한쪽을 밀면 소파로 변신하는 똑똑한 디자인의 쇼미쇼파(Show Me Sofa)를 디자인하여 2016년 경기가구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특선까지 거머쥐게 했던 데스크 베드(Desk Bed)는 위쪽의 판을 돌리면 책상으로 이용할 수도 있다. 앞으로 그는 혼자 독립해서 사는 사람들을 위해 각자의 성격, 라이프스타일, 취향에 적합한 주문 가구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다 같이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개성이 사라진 목표보다 “나 혼자서도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처럼 독립적인 삶을 지향하는 사람을 타깃으로 할 예정이다. 신지호는 인스타그램을 볼 때마다 #혼술혼밥을 검색한다. 이 해시태그를 걸어둔 사진을 보면서 그는 영리하게도 1인 맞춤형 가구를 디자인할 단초를 찾는다고. 그는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사무 가구 회사에 취직해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김채은
한서대학교 영상애니메이션학과

김채은은 웹툰 작가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영상애니메이션학과에 진학했다. 네이버 웹툰에는 신진 작가를 발굴하기 위한 도전 만화 섹션이 있다. 김채은은 여기서 일상적인 주제를 바탕으로 <오늘의 후기>를 연재했고 최근 정식 웹툰으로 승격할 수 있는 ‘베스트 도전 만화’로 인증받았다. 팬을 거느리는 인기 웹툰 작가가 되고 싶다는 그는 제일 좋아하는 작품으로 레진코믹스에서 연재 중인 stego와 가재의 <징벌 소녀>,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 중인 순끼의 <치즈 인 더 트랩>을 꼽았다. <징벌 소녀>는 마법 소녀들이 정체를 숨긴 채 폭력과 정의를 위해 벌이는 심오한 이야기다. 요즘에는 드로잉 솜씨를 키우기 위해 학과 선배, 동기와 모여 공통된 주제로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리고 서로 피드백해주는 스터디에 참가하고 있다. 이번에 그려야 할 주제는 ‘디지털 판타지’라고. 김채은은 시간이 날 때면 유튜브의 비디오빌리지와 뷰티 크리에이터 채널을 자주 본다. 사용자가 삽시간에 몰입할 수 있는 편집 기술에 대해 고민하면서 요새는 애프터 이펙트 같은 영상 편집 툴도 익히고 있다.

김현우
SADI 패션디자인 전공

중학생 시절, 미국 리얼리티 쇼 <프로젝트 런웨이Project Runway>를 보고 감동한 김현우는 패션 디자이너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수입 서적 판매상이 몰려 있던 동대문에서 해외의 각종 패션지와 시즌별 룩북을 사 모으던 그는 2010년 SADI 패션 디자인과에 입학했다. 그리고 최근 꿈에 그리던 프랑스 이에르 페스티벌(Hyeres Festival)에서 한국인으로는 두 번째로 10인의 파이널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이에르 페스티벌은 빅터앤롤프(Victor & Rolf), 생 로랑의 새로운 수석 디자이너 안토니 바카렐로(Anthony Vaccarello) 등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를 배출해낸 곳이다. 김현우가 디자인한 컬렉션의 테마는 ‘동양식 정원의 이방인(Stranger by the Garden)’. 자연 다큐멘터리 속 다양한 식물의 경이로운 모습과 B급 호러 영화의 컬트적 이미지를 조합해 그로테스크한 뮤즈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는 이번 컬렉션에서 <호숫가의 이방인><킬빌><리틀숍 오브 호러스>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혼합해 심사위원들의 이목을 끌었다. 영화 시나리오를 끄적여본 적이 있을 정도로 영화 애호가인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코엔 형제의 <바톤 핑크>다. 언젠가 그는 자신만의 개성 넘치는 브랜드를 만들 거라고 했다.

정지은
이화여자대학교 건축학과

정지은의 올해 계획은 밤을 새우지 않는 것이다. 그동안 머릿속에 있는 아이디어를 도안으로 옮기고 모형을 제작하면서 밤을 새운 날이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이제 습관적으로 밤을 새우기보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배분해 전공 이외의 디자인 공부도 해보고 싶다고. 최근 정지은은 인테리어 디자인을 주제로 한 동아리 아키엠(Arch.M)에 들어갔다. 아키엠은 대학 연합 인테리어 학회로 수도권 대학교 24개 대학생들이 활동 중이며 각 대학교의 동아리 방을 선정해 인테리어를 새롭게 바꾸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건축에서도 난해한 설계 단계를 제외하고 10평 남짓한 공간을 구획하고 가구와 소품을 재배치하는 인테리어 디자인이라서 더욱 흥미를 느꼈다고. 정지은이 좋아하는 건축가는 미스 반데어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다. 과한 것보다 모자란 게 낫다는 ‘레스 이스 모어(Less is More)’ 정신이 마음에 들어서다. 검정 치마와 검정 스트라이프 셔츠에 밝은색 청 재킷을 걸치고 온 그는 언젠가 스웨덴이나 네덜란드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며 오래 살아보는 게 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