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서체, 현대 산스
현대자동차 크리에이티브팀은 무엇을 디자인할까?
디테일이 필요하다. 현대자동차가 새롭게 개발한 현대 산스가 본질적이고 감각적이며 정제된,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감 있는 서체로 탄생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디테일이 필요하다. 현대자동차가 새롭게 개발한 현대 산스가 본질적이고 감각적이며 정제된,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감 있는 서체로 탄생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현대자동차가 새로운 전용 서체 개발을 시작한 것은 지난해 9월. 크리에이티브팀이 맡은 브랜드 이미지 디자인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크리에이티브의 방향성을 ‘Richness in Simplicity’로 정하고 이를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다. 현대자동차의 아이덴티티 디자인은 컬러나 로고 등 어느 한 요소를 부각시키는 것이 아닌, 5가지 기본 요소(로고, 컬러, 서체, 이미지 스타일, 그래픽 시스템) 모두 조화를 이루는 것이 핵심이다. 따라서 서체 역시 자동차 제품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고객을 중심으로 한 라이프 브랜드로서 그 방향성에 맞게 디자인해야 했다. 본질에 집중하며 일상에서 가치를 발견하는, 긍정적인 자신감 속에 정제된 디테일을 드러내는 것이 주효했던 것이다. 새로운 전용 서체 디자인은 독일의 HVD 폰트사가 맡았으며 한글 전용 서체는 산돌커뮤니케이션에서 디자인했다. 현대자동차가 기존에 사용하던 모던 서체에 개성을 부여하는 것은 장식적인 이미지뿐만이 아니다.
서체의 존재감은 디테일에서 시작된다. 클래식하지만 지루하지 않고 친밀하지만 결코 촌스럽지 않은, 잘난 척하진 않지만 확신에 차 있는 당당한 느낌의 서체를 개발한다고 가정해보자. 이 고유의 성품을 만들려면 엑스하이트(소문자 x의 높이)를 높이고 간결한 형태로 획의 대비를 없애며 곡선과 사선을 미려하게 조정하는 등 꼼꼼한 설계와 H가 브랜드 로고를 기반으로 기계적인 각도를 강조한 개성 있는 서체였다면, 새로운 서체는 다양한 아이덴티티 요소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자연스럽고 정제된 형태가 요구됐다. 여기에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서의 친밀함, 따뜻함이 느껴지도록 디테일을 부여하고 가독성을 높인 결과 기하학적인 산세리프(Geometric Sans–serif) 계열의 서체로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이후 HVD 폰트가 이전에 개발한 플루토 산스(Pluto Sans)를 기반으로 하되 곡선을 최소화하고 좀 더 명확하고 간결한 느낌이 나도록 보완한 결과 새로운 서체, 현대 산스가 탄생한 것이다.
한편 한글 서체를 디자인한 산돌커뮤니케이션은 ‘현대 산스의 라틴 알파벳 형태와 인상을 한글에 어떻게 매칭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시작으로 작업에 착수했다. 일렬로 풀어 쓰는 영문과 정방형 공간 안에 모아 쓰는 한글은 태생과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라틴 알파벳의 특징을 한글에 고스란히 반영하면 과도하거나 어색한 형태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산돌커뮤니케이션은 현대 산스의 구조와 요소를 파악해 기하학적 인상이 강한, 깔끔하고 정확한 형태의 한글 전용 서체를 개발했다. 한글과 영문을 함께 조판했을 때 잘 어우러지도록 현대 산스의 특징을 명민하게 반영해 비슷한 인상의 한글 서체로 설계한 것이다. 본디 한글에서 글자의 원리와 본질을 잘 드러낸 가장 기하학적인 형태는 훈민정음일 터. 하지만 이는 가독성 문제가 있었고 모아 쓰기를 하는 한글 자소에 기하학적 형태를 반영하는 것 역시 쉽지 않았다. 그 결과 기능성과 사용성 모두를 고려한 모듈을 설계하고 기하학적 형태를 적용할 수 있는 자소를 최대한 선별해 반영함으로써 현대 산스 한글 전용 서체를 완성해냈다.
현대자동차는 글로벌 기업으로서 다양한 브랜드와 차종을 보유한 만큼 서체의 확장성 역시 주요했다. 현대 산스를 4종(Light, Regular, Medium, Bold)의 제목용 서체와 3종(Regular, Medium, Bold)의 본문용 서체로 개발한 것 역시 다양한 용도와 쓰임에 맞게 활용하기 위해서다. 360도 관점의 브랜드 경험 디자인으로 고객과의 접점이 다양화됨에 따라 전용 서체를 사용하고 경험하는 방식을 체계화·고도화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아이오닉 라인의 경우 기술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가는 서체를 사용하고 고성능 N 라인은 자신감 있고 과감한 이미지로 볼드한 서체를 사용하는 등 굵기에 따라 브랜드 고유의 특징을 부각시키며 확장성을 더했다. 서체에도 유행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단순히 유행을 좇거나 장식적인 요소만 강조하다 보면 눈에 띄기 위해 튀는 옷을 입는 것 이상의 결과를 얻을 수 없다. 현대자동차는 ‘모던 프리미엄’이라는 자신만의 스타일에 가장 잘 어울리는 옷, 현대 산스를 입은 셈이다.



Interview
조동철 현대자동차 크리에이티브팀 디자이너
“본질에 충실한, 타임리스 디자인의 서체를 개발했다.”

현대 산스를 개발한 배경이 궁금하다.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새롭게 정립한 현대자동차 브랜드 이미지에 적합한 서체가 필요했다. 기존의 모던 H가 자동차의 메커니즘적 측면과 조형성을 부각시킨 서체라면 현대 산스는 타이포 본질에 집중해 가독성을 높이고 다양한 디자인 요소와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정제한 서체다. 타이포그래피, 이미지, 브랜드 언어를 결합하는 그래픽 시스템에 맞게 전체적인 이미지를 서포팅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풍부한 디테일로 개성을 더함으로써 기존의 모던 H를 진화시킬 수 있었다.
HVD 폰트사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HVD 폰트가 개발한 플루토 산스는 현대자동차의 브랜드 이미지에 가장 적합하면서도 지금까지 여느 기업이 사용하지 않은 서체다. 현대 산스는 바로 이 플루토 산스를 기반으로 개발했는데 다만 부드러운 곡선과 이미지를 좀 더 힘 있고 자신감 있는 형태로 표현하는 데에 중점을 뒀다. 원형이었던 마침표를 사각형으로 바꾸는 것 외에도 서체 고유의 형태에 브랜드의 특성을 반영하는 데에 다양한 디테일을 부여했다.
현대 산스를 개발할 때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
확장성이다. 인쇄물, 웹, 모바일, 공간뿐 아니라 자동차의 센터패시아, 엠블럼 등에도 범용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했다. 주목성을 강조한 헤드라인용과 편안하고 잘 읽히는 본문용으로 나누었고 그 안에서도 서로 다른 굵기의 서체를 개발해 확장성을 높였다. 결과적으로 브랜드에 따라 굵기에 차이를 주고 사용을 달리함으로써 브랜드 각각의 고유성도 부각시킬 수 있었다.
Interview
하네스 본 되흐렌 Hannes von Döhren HVD 폰트 디자이너
“현대자동차의 캐릭터를 위한 캐릭터다.”

현대 산스의 특징은 무엇인가? 현대자동차의 아이덴티티를 어떻게 반영했는지 궁금하다.
현대 산스는 현대자동차의 브랜드 경험 디자인에 가장 중요한 접점 중 하나로 브랜드를 가시적으로 알아볼 수 있게 하는 상징적 역할을 한다. 정밀하게 잘 만들어진 선과 곡선의 조화가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나타내는 동시에 브랜드 메시지인 ‘Richness in Simplicity’를 전달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또한 심플하면서도 선명한, 기하학적인 형태는 현대자동차가 정의하는 심플함을 반영하며 풍부한 디테일 역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서 인간적인 매력을 더해주는 요소다. 현대자동차의 새로운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감각적이고 섬세하며 당당한, 인간미 있는 실물로 구현해내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개발 과정에서 중점을 둔 것은 무엇인가?
회사 내에서 필요한 각 용도에 최적화된 서브 패밀리를 만들고 시스템화한 것이다. 현대 산스 제목 서체는 총 4종으로 현대자동차의 새로운 룩의 상징이자 주목할 만한 핵심 요소다. 한편 본문용 서체 3종은 경제적인 사용과 완벽한 가독성을 위해 완전히 다른 구조의 디테일로 완성했다. 또한 모든 폰트는 디지털 스크린과 탑재형 시스템에서 완벽하게 보일 수 있도록 일일이 힌팅 작업을 했다.
폰트 자체로서 현대 산스의 매력을 말한다면?
완성된 현대 산스를 보면 고유의 성격과 개성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확장성에 필요한 유용성과 유연성을 잃지 않고 있다. 그 균형 감각이 마음에 든다. 현대 산스는 단순한 서체가 아니라 미래의 많은 디자인 챌린지를 해결할 수 있는 시각적 도구다. 용도에 맞는 쓰임으로 시스템화했기 때문에 앞으로 출시할 새로운 브랜드, 차종에서도 최적화해 사용할 수 있다.




Interview
이도경 산돌커뮤니케이션 커스텀폰트팀 팀장
강민재 산돌커뮤니케이션 커스텀폰트팀 매니저
“기능성과 사용성을 고려해 한글의 기하학적 특징을 부각시켰다.”


현대 산스의 한글 서체 개발에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
현대 산스 라틴 알파벳은 기하학적 특징이 강한 지오메트릭 산세리프 계열의 서체라 할 수 있다. 획의 대비가 없고 디자인적으로 군더더기가 없는, 깔끔하며 정확한 인상의 서체다. 또 엑스하이트가 높아 속공간이 넓고 전체적으로 원형을 살린 디자인이 특징이다. 따라서 이를 바탕으로 한 한글 역시 기하학적 표현을 강조해 정원, 정방형에 가까운 자소와 선의 표현에 신경 썼다.
프로젝트 진행 중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며 어떻게 극복했는지 궁금하다.
태생적으로 서로 다른 문자를 조화롭게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따라서 일차적으로 알파벳의 형태적 특징을 한글에 적용한 뒤 그 인상을 비교하며 불필요한 부분은 덜어내거나 한글에 맞는 표현으로 재해석해 적용하는 과정이 중요했다. 이번 작업에서는 기하학적 특성을 살리기 위해 이응(ㅇ)을 알파벳 O와 같이 정원에 가깝게 표현하려 했지만 모아쓰기를하는 한글의 구조상 쉽지 않았다. 결국 이에 대한 해결점으로 ‘악, 엄, 인’ 등 홑기둥 글자에서만 알파벳 O의 특징을 한글 이응에 녹이도록 했다. 또한 이음보, 이음줄기, 꺾임 등의 세부적인 표현에도 세밀한 조정을 통해 라틴 알파벳의 기하학적인 인상을 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