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IP 사전] Kim Hyun 김현

한국의 캐릭터 디자인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호돌이 아빠' 김현 디자이너를 '호돌이 마니아' 최지웅 프로파간다 대표가 만났다.

[캐릭터 IP 사전] Kim Hyun 김현

상모를 돌리며 활짝 웃는 호랑이. 5년 뒤의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1983년에 발표한 ‘호돌이’는 한국 캐릭터 역사의 분기점이자 한국의 이미지를 전 세계에 알린 존재였다. 1993년에 열린 대전엑스포의 마스코트 ‘꿈돌이’는 미래로 나아가는 한국의 ‘희망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역사적인 두 캐릭터를 만든 김현 디자이너는 50여 년간 국내 수많은 기업과 브랜드, 공공기관의 아이덴티티 디자인을 구축한 장본인이다. 두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는 널리 알려졌으나, 상대적으로 IP 라이선싱과 비즈니스에 대해서는 덜 알려진 게 사실. 이에 서울올림픽과 호돌이 마니아로 잘 알려진 최지웅 프로파간다 대표가 김현에게 캐릭터 디자인과 관리 방식에 관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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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왼쪽) 1988년 서울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와 1993년 대전엑스포 마스코트 ‘꿈돌이’를 디자인한 디자이너. 1983년 대우그룹 기획조정실 디자인팀에서 일하던 중 올림픽 마스코트 지명 공모에 참여해 호돌이 디자인이 최종 채택되었다. 이를 계기로 이듬해 독립해 디자인파크를 설립했다. 이후 BC카드, 청정원, EBS, 아이리버 등 500여 건의 BI·CI 디자인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은퇴한 뒤로는 개인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최지웅 엔터테인먼트 분야를 위주로 활동하는 디자인 스튜디오 프로파간다 대표. 주로 영화와 드라마, OTT 시리즈의 포스터를 디자인한다. 최근에는 〈해피엔드〉 〈폭싹 속았수다〉 〈중증외상센터〉 〈퍼펙트 데이즈〉 등의 포스터를 디자인했다. 출판 브랜드 ‘프로파간다 시네마 그래픽스’를 설립해 〈영화간판도감〉 〈영화카드대전집 1, 2, 3〉 〈20세기 레트로 아카이브 시리즈 1, 2〉를 집필했다. 2018년에는 서울올림픽 30주년을 맞아 아카이브 북 〈88Seoul〉을 출간했다.
1983년 서울올림픽 마스코트 지명 공모 당시 대우 기획조정실에 근무하셨잖아요. 어떻게 지명 공모에 참여하게 됐나요?

1981년 연말에 다음 올림픽을 서울에서 개최하기로 결정되자 온 나라가 난리가 났었죠. 단군 이래 최대의 행사라면서요. 전 세계에 한국을 알릴 기회라며 서울올림픽 조직위원회 측이 전 국민을 대상으로 마스코트 공모를 하자고 했어요. 상징물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에 대해서 엽서로 공모를 받았죠. 최종 후보였던 진돗개, 토끼, 호랑이, 까치 중에서 호랑이로 결정됐습니다. 그 후 마스코트를 디자인할 사람 일곱 명을 선발했어요. 제가 그중 한 명이었고, 디자인대학 교수, 광고대행사 디자이너, 만화가도 있었죠. 당시 제가 일하던 조직이 컸고 저는 팀장이라 개인 시간을 내서 작업하기가 수월했어요. 올림픽이 국가적 관심사이다 보니 회사도 많이 배려해줬죠. 지금은 한국에서 한 해에도 국제 행사를 여러 번 하지만, 그때만 해도 그런 행사는 처음이었어요. 회사에서도 전폭적으로 지원해줄 수밖에 없었죠.

서울올림픽은 1972년 뮌헨 올림픽 이후로 공식 마스코트가 등장한 다섯 번째 올림픽이었습니다. 특별히 참고한 사례가 있었나요?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의 ‘미샤’, 1984년 LA 올림픽의 ‘샘’을 보면서 공부한 게 큰 도움이 됐죠. 1972년 뮌헨 올림픽과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때는 마스코트의 응용 동작 디자인은 없고 기본형만 있었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저는 마스코트 중에 미샤가 제일 뛰어나다고 생각해요. 당시만 해도 냉전 중이라 자유주의 진영 국가들은 공산권에서 주최하는 올림픽에 참가할 수 없었으니, 한국인 대부분이 모스크바 올림픽을 볼 수 없었죠. 다행히 저는 서울올림픽 조직위원회의 도움으로 마스코트를 접할 수 있었어요. 이전 마스코트들과 달리 회화에 가까운 스타일이었는데, 정말 깜짝 놀랄 만큼 잘 그렸더군요. 카툰 스타일로 디자인한 샘도 뛰어났고요. 완성도 높은 두 마스코트 사이에서 새로운 길을 찾으려고 정말 많이 고민했습니다. 어찌나 신경을 썼던지, 디자인 제출 직후 졸도해서 병원에 실려 갔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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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 디자이너의 호돌이 스케치.
작업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요즘엔 컴퓨터로 쉽고 빠르게 선을 그리지만, 당시만 해도 디자이너가 직접 선을 그어야 했어요. 일일이 구름자를 대고 각도를 맞춰가며 선 두께도 일정하게 맞춰서 그렸습니다. 의외로 그런 작업을 하는 데 가장 시간을 많이 썼던 것 같아요. 특히 외곽선을 그리는 게 정말 엄청난 고생이었죠. 아마 요즘 디자이너들은 상상도 못 할 거예요.

디자이너들은 수정에 민감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호돌이 같은 국가적인 프로젝트에는 의견을 거드는 사람이 정말 많았을 텐데요.

한 동물원의 동물을 총괄하는 부장이 자문위원으로 참여해 호랑이와 고양이의 차이에 대해 설명해줬던 것이 기억나네요. 고양이는 이목구비가 오밀조밀하고 발이 작은데, 호랑이는 새끼라도 눈, 코, 입이 큼직하고 발도 크다고 했죠. 동물 전문가가 하는 말이니 들을 수밖에요. 서울올림픽 조직위원회 디자인분과의 교수들과는 눈동자 크기 같은 세밀한 부분에 대해 상의했죠. 그리고 한국에 있는 거의 모든 스포츠 협회로부터 호돌이의 응용 동작에 대해서 자세히 검토를 받았어요. 팔다리의 각도 같은 것이요. 그 외에도 공영방송사인 KBS를 상징하는 ENG 카메라를 든 호돌이, 올림픽의 공식 스폰서였던 IBM 코리아를 표현하는 컴퓨터를 사용하는 호돌이의 모습까지 중간에 검토를 받아가며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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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완성된 호돌이 디자인을 실물로 구현한 입체 모형.
호돌이는 캐릭터를 활용한 부가 상품도 많이 만들었던 마스코트입니다. 실제로 서울올림픽은 이전까지의 올림픽에 비해 캐릭터 상품이 압도적으로 많이 등장한 대회라고 하더군요. 캐릭터 디자인을 제품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도 궁금합니다.

2D 그래픽을 활용하는 제품은 큰 문제가 없었어요.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전달하면 되었으니까요. 문제는 봉제 인형이었습니다. 평면 그래픽을 입체로 만드는 건 굉장히 까다로운 일이니까요. 그래서 인형의 개발과 판매를 맡은 업체에 별도의 비용을 받지 않을 테니 디자인 감수에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어요. 여러 번 강조한 덕분인지 정식 판매 전에 인형 샘플을 전달받을 수 있었죠. 우려했던 대로 아주 엉망이었습니다. 수정 사항을 20개 넘게 정리해 전달했고, 이를 반영한 샘플을 보내줬어요. 이전보다는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고쳐야 할 부분이 있었어요. 그래서 다시 수정 사항을 추려서 전달했는데 연락이 오질 않더군요. 얼마 뒤 시장에 가보니 버젓이 봉제 인형을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업체 입장에서는 호돌이가 한창 인기가 많을 때 빨리 만들어서 팔아야 하는데, 자꾸 수정하라고 하니 답답했겠죠. 하지만 저는 원본에 가깝게 수정했다면 완성도 높은 인형으로 더 좋은 성과를 거두었을 거라고 봐요.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업체는 별로 없었어요. 당시의 시대적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꿈돌이도 짚고 넘어가려고 합니다. 호돌이가 30여 년이 지난 뒤 다시 사랑받은 것처럼, 최근 꿈돌이도 재조명되는 움직임이 보이는데요. 사실 요즘 미디어에 나오는 꿈돌이는 최초의 디자인과 조금 달라 보입니다.

변형이 됐죠. 이 부분에 대해서 할 이야기가 있어요. 제가 꿈돌이 디자인을 마친 뒤, 대전엑스포 조직위원회 측에서 홍보용 애니메이션을 만들려고 미국의 한 제작사에 의뢰를 했어요. 그런데 제가 만든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만들어서 화가 많이 났었습니다. 꿈돌이를 디자인할 때 입과 팔을 의도적으로 생략했습니다. ‘우주에서 온 요정’이라는 콘셉트의 신비로움을 지키기 위해서였죠. 그런데 애니메이션 제작사 측에서는 제 동의도 없이 입과 팔을 그려 넣었더군요. 제 저작인격권* 을 침해당한 셈이죠. 대전엑스포 조직위원회를 통해 항의했더니, 도리어 제가 나라에서 하는 일에 찬물을 끼얹는다는 식이었어요. 더 이상 말을 꺼내지 못했고, 이후에는 애니메이션에 나온 것과 비슷한 꿈돌이 디자인이 나타나 지금에 이르게 된 거죠. 이제는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보려고 해요.

*정신적인 노력의 산물로 만들어낸 저작물에 대해 저작자가 인격적으로 갖는 권리. 다른 사람에게 양도되거나 상속되지 않고 저작자에게만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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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대전엑스포 홍보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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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엑스포 디자인 매뉴얼
과거의 디자인에 주목하는 것만큼, 그 디자인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이었는지 되짚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맞아요. 서울올림픽에 대해서는 최지웅 대표 외에도 젊은 디자이너들이 아카이빙 작업을 해주셨죠. 하지만 저는 과거의 기록으로 남기보다 비즈니스를 통해 사람들 기억에 오래 남기를 바라요. 〈아기 공룡 둘리〉를 예로 들면, 만화에서 본격적인 비즈니스로 연결되면서 캐릭터 수명이 엄청나게 길어졌죠. 그런데 호돌이는 좋아하는 사람이 많지만, 일회성으로 조명받고 IOC와의 저작권 활용 문제 때문에 다시 잊히고 있어요. 올림픽 마스코트에 대한 저작권은 모두 IOC로 귀속되니까요. 잠깐 동안 주목받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사랑받도록 할 방법이 있어야 우리의 자산으로 남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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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웅 대표가 집필한 〈88Seoul〉. 1988년 서울올림픽과 관련된 디자인과 호돌이에 대한 자료들을 아카이빙한 책이다.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564호(2025.06)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매거진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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