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박물관 7
2025 베르사유 건축상 박물관 부문
건축물이 아름답다는 기준은 무엇일까? 그렇다면 그 기준은 누가 정하는 것일까? 매년 이 질문에 대한 한 갈래의 대답을 제시하는 것이 바로 베르사유 건축상이다.

건축물이 아름답다는 기준은 무엇일까? 그렇다면 그 기준은 누가 정하는 것일까? 매년 이 질문에 대한 한 갈래의 대답을 제시하는 것이 바로 베르사유 건축상이다.

국제적인 권위를 가진 베르사유 건축상(Prix Versailles)은 2015년부터 유네스코 본부에서 매년 개최되는 세계 건축 디자인 상으로 현대 건축의 미학과 기능성, 그리고 문화적 기여를 조명한다. 이 상은 공항, 박물관, 호텔, 레스토랑, 상업 공간, 캠퍼스, 여객 터미널, 스포츠 시설 등 다양한 부문에서 전 세계의 뛰어난 건축 프로젝트를 선정한다. 그리고 ‘지능적 지속가능성(Intelligent Sustainability)’이라는 원칙 아래 생태적 효율성, 지역 유산의 반영, 사회적 상호작용 등이 프로젝트 선정의 기준이 된다. 건축물을 구조물에 한정짓지 않고 문화와 환경 그리고 경제가 조화를 이루는 플랫폼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2025년 5월, 베르사유 건축상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박물관 7’을 발표했다. 아시아, 유럽, 중동, 아메리카를 아우르는 이 박물관들은 최근 신축되거나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거쳐 다시 태어난 공간들이다. 선정된 일곱 중 세 곳은 오는 12월 외관 또는 내부 디자인 부문에서 베르사유 건축상의 ‘월드 타이틀’을 추가로 수상하게 될 예정이다. 올해의 선정된 리스트는 기능과 미학, 장소성과 철학이 만난 프로젝트들이 선정되었다. 세계 각지에서 주목받는 일곱 곳을 함께 살펴보자.
1. 그랑 팔레(Grand Palais) – 프랑스 파리

그랑 팔레(Grand Palais)의 이름을 들으면 기시감이 들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 작년 파리올림픽에서 펜싱과 태권도 경기장으로 사용된 공간이기도 하고, 샤넬의 컬렉션을 개최하는 장소로도 유명한 곳이다.

그랑 팔레는 1900년 파리 박람회를 위해 샤를 지로(Charles Girault)의 감독 아래 3년 만에 지어진 그랑 팔레는 파리를 대표하는 문화 유산이다. 100여년 이후인 2021년부터 샤티용 아키텍츠(Chatillon Architectes)가 이끈 대규모 복원 작업을 통해 현대적으로 재탄생했다.



복원 작업의 핵심은 건물의 원래 구조와 디자인을 되살리는 데 있었다. 유럽에서 가장 큰 유리 지붕 중 하나인 17,500㎡ 규모의 유리 천장은 자연광을 극대화하여 내부 공간을 밝고 개방적으로 만들고 예술, 혁신, 몰입형 경험이 공존하는 공유의 장으로 거듭났다. 상부 갤러리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어주도록 보존되었으며 파리의 역사적 건축과 현대적인 디자인의 융합을 생생히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2. 사카 뮤지엄(Saka Museum) – 인도네시아 발리

2024년 7월, 아야나 발리 조트(AYANA Bali) 내에 문을 연 사카 뮤지엄은 발리 철학인 ‘기리 세가라(Giri Segara)’를 건축으로 구현해냈다. 기리 세가라는 발리의 종교 우주론적 세계관에서 유래한 것으로 산을 의미하는 기리(Giri)와 바다를 의미하는 세가라(Segara)가 합쳐진 단어이다. 발리 전통 철학 개념으로 산과 바다의 신성한 균형을 뜻한다. 일본의 미쓰비시 지쇼 디자인(Mitsubishi Jisho Design)이 설계한 이 박물관은 경사진 지붕과 반사 수조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외관이 매력적이다.



박물관의 전시 콘텐츠는 발리의 전통과 현대가 공존한다. ‘카상가(Kasanga)’ 전시는 발리력의 아홉 번째 달인 카상가를 조명하며, 발리의 침묵의 날이라고도 불리는 ‘녜피(Nyepi)’를 중심으로 한 의식과 전통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해 전시한다. 뿐만아니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발리의 전통 관개 시스템인 ‘수박(Subak)’을 소개하는 전시도 마련되어 있다.

3. 오디움(Audeum) – 대한민국 서울

한국의 건축물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박물관 7’에 이름을 올렸다. 세계 최초의 오디오 뮤지엄인 ‘오디움(Audeum)’이 바로 그 주인공. 건축가 쿠마 켄고(Kengo Kuma)가 설계한 오디움은 1877년 유성기 발명 이후 150년간의 오디오 발전사를 집대성한 이곳은 수집, 보존, 연구, 전시를 아우르는 오디오 박물관이다.



오디움의 외부는 수직으로 배열된 2만 개의 알루미늄 파이프로 감싸져 있어 빛과 그림자가 숲처럼 스며드는 자연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입구에는 사이프러스 목재를 사용해 향과 따뜻함으로 감각을 자극하며, 건물 전체가 악기처럼 작동하는 ‘멀티센서리’구조다.
내부에는 나무 단차 벽으로 흡음 기능을 강화한 전시실과, 지하 라운지에는 웨스턴 일렉트릭의 ‘미러포닉(Mirrorphonic)’ 시스템이 설치돼 부드럽고 입체적 청음이 가능하다. 박물관의 주요 소장품인 스피커의 형태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이너 하라 켄야가 만든 스피커모티프 심벌은 오디움의 시각 아이덴티티를 형성한다.

현재 오디움에서는 상설전시 〈정음(正音): 소리의 여정〉이 진행 중이다. ‘정음’이라는 개념을 통해 ‘좋은 소리란 무엇인가’에 대한 탐구를 제안하는 전시로 19세기 축음기와 뮤직박스, 1920년대부터 60년대의 빈티지 오디오 시스템 등 다양한 컬렉션을 만날 수 있다. 세계적인 건축 공간 오디움에서 건축 디자인과 소리에 대한 탐구를 체험해보는 것은 어떨까.
4. 쿤스트실로(Kunstsilo) – 노르웨이 크리스티안산

2024년 5월, 노르웨이 크리스티안산 항구에 새롭게 문을 연 쿤스트실로(Kunstsilo)는 1935년 지어진 곡물 저장용 사일로를 현대 미술관으로 재탄생시킨 프로젝트다. 이 건물은 산업유산 보존을 전제로 스페인의 메스트레스 와게 아키텍츠(Mestres Wåge Arquitectes)와 멘도사 파르티다(Mendoza Partida), 노르웨이의 BAX 스튜디오가 협업하여 개조를 이끌었다.



원형 사일로 구조는 쿤스트실로의 가장 상징적인 요소다. 건축가들은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인 곡물 저장용 사일로를 철거하지 않고 보존한 채, 안을 비워내어 높이 21미터의 중앙 아트리움을 만들어냈다. 위로는 자연광이 사일로 벽면을 따라 부드럽게 흘러내리고, 아래로는 전시실과 휴게 공간이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과거 산업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구조 안에 예술적 감각을 불어넣음으로써 공간 자체가 조각 작품처럼 느껴지는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이다.
5. 디리야 아트 퓨처스(Diriyah Art Futures) –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이 박물관은 및 북아프리카 지역 최초의 디지털 아트 전용 문화 허브이다. 이 프로젝트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전통과 미래를 잇는 예술 생태계를 구축하는데 중점이 되는 기관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아트 투라이프(At-Turaif) 유적지 인근에 위치한 이 곳은 이탈리아 건축사무소 스키아타렐라 아소시아티(Schiattarella Associati)가 설계했다. 전통 나즈드(Najdi) 건축에서 영감을 받은 수평적 구조와 좁고 깊은 통로는 사막 지형과 조화를 이루며 자연 환기와 음영을 제공하고, 도시와 농경지를 연결하는 경계 공간의 역할을 한다.


또, 나바테아 건축 유산과 첨단 기술이 결합된 이 공간은 전시관, 연구소, 아티스트 레지던시, 강의장 등 다양한 기능을 갖춘 복합 시설로 구성된다. 디리야 아트 퓨처스는 프랑스의 르 프레누아Le Fresnoy와 협력해 신진 아티스트를 위한 연간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지역 및 국제 예술가들이 디지털 아트와 신매체 예술을 실험할 수 있는 창작 생태계를 제공하고 있다.
6. 클리블랜드 자연사 박물관(Cleveland Museum of Natural History) – 미국 클리블랜드

DLR 그룹이 리노베이션을 맡아 백 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클리블랜드 자연사 박물관은 통합적이고 현대적인 구조로 재정비되었다. 이번 리뉴얼은 ‘센테니얼 트랜스포메이션(Centennial Transformation)’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박물관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전시와 동선, 건축의 모든 요소를 근본적으로 재설계했다. 빙하와 침적 지형에서 영감을 받은 곡선형 외관은 지역의 지질학적 특성을 반영하며 다양한 전시 공간을 유기적으로 연결한다.


중심부의 방문자 홀에는 인류 진화의 대표 화석인 ‘루시’의 복제 골격, 썰매견 ‘발토’의 박제, NASA가 대여한 달 암석 등 박물관을 상징하는 표본들이 전시돼 있다. 전시는 시간순 배열에서 벗어나 지구와 생명의 이야기를 주제별로 재구성하였다.


이번 리노베이션은 건축뿐 아니라 지속가능성 면에서도 주목받는다.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토착 식생을 복원하는 등 생태적 책임을 실천했다. 지역 커뮤니티를 위한 무료 입장 프로그램과 교육 프로그램도 준비해 모두를 위한 열린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7. 조슬린 미술관(Joslyn Art Museum) – 미국 오마하

사라 조슬린(Sarah Joslyn)의 기부로 1931년 설립된 조슬린 미술관(Joslyn Art Museum)은 미국 네브래스카 오마하에 위치한 대표적인 공공 미술관이다. 아르데코 양식의 석조 건축물로 시작되었고, 1994년에는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의 미국 내 첫 프로젝트인 현대적 확장관 ‘스콧 파빌리온(Scott Pavilion)’이 추가되었다. 여기에 2024년, 노르웨이 건축사무소 스뇌헤타(Snøhetta)와 APMA가 공동 설계한 ‘론다 & 하워드 호크스 파빌리온(Hawks Pavilion)’이 새롭게 더해지며, 세 개의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이 공존하는 독창적 공간 구성을 완성했다.



호크스 파빌리온은 곡선형 구조와 유리 파사드를 통해 자연채광과 시각적 개방감을 극대화하며 핑크색 대리석이 삽입된 프리캐스트 콘크리트 외벽은 본관의 전통성과 조화를 이루는 디테일로 주목받는다. 약 3,900㎡ 규모의 이 신관은 새롭게 재조성된 야외 조각 정원과 함께 문화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