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가미: 종이접기〉전
건국대학교 산업디자인과 리빙 디자인 전공생들이 모여 만든 커뮤니티 ‘설합’이 재료의 물성을 활용해 테크토닉한 실험을 선보였다. 지난 8월 전시장에 직접 다녀온 조병수 건축가가 작품의 면면을 글로 전했다.
반복적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우리가 여전히 과정에 있음을 깨닫는다
〈오리가미: 종이접기〉의 출품작들은 전시명에서 유추할 수 있듯, 접어서 강해지거나 휘어서 탄성이 생기는 것 같은 재료의 특성을 잘 반영했다. 단순히 형태만을 논하지 않고 재료, 구조, 물성을 고루 따졌다는 점에서 건축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 재료, 구조, 물성을 재치 있고 영리하게, 그리고 순순한 방식으로 풀어나간 접근 방식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전시 소개 글에도 그들의 젊음에서 오는 흥미롭고 생동감 있는 태도를 엿볼 수 있었다.
“어릴 적 종이접기처럼 삐뚤어지고 찢어지는 반복적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우리가 여전히 과정에 있음을 깨닫는다. 이런 경험들은 별안간 우리들이 어릴 적 종이접기 놀이를 통해 배웠던 입체화 작업을 떠올리게 했고, 지금에 이르러 ‘종이접기’를 다시 바라보고자 한다.” – 설합의 첫 번째 장, 〈Origami : 종이접기〉 전시 소개 글 중
무엇보다 물성과 구조 제작에 관해 수준 높게 이해하고 풀어낸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 방식이 구축적이었기에 나는 이들의 작품에서 건축적인 공간감을 느꼈다. 각 작품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추연택의 ‘Dream Chair’는 특히 재료를 잘 선정했다. 재료의 까만 단부를 그대로 노출해 ‘접기’ 방식을 시각적으로 극대화했다. 결구 방식과 경첩을 활용한 디테일 등 건축에서 흔히 사용하는 방식을 상당히 수준 높게 접목시켰다고 볼 수 있다. 가변적이고 테크토닉한 디자인이다. 오지석의 ‘Cuvafold Chair’와 이도겸의 ‘Pop Up! Chair’는 종이의 휘는 성질에 주목했다. 탄성 구조를 활용해 인체에 맞는 아름다운 곡선을 만들어냈다. 동일한 성질을 가진 금속으로 재료의 특성을 잘 표현한 작품들이다.
종이의 다른 성질을 이용한 작품도 있다. 오민석의 ‘Page Chair’와 배재현의 ‘Press Stool’이 그렇다. 얇은 종이도 휘거나 접거나 겹치면 단단해지는 물성을 활용해 하중을 지탱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직관적이고 단순한 방식으로 재미있는 형태와 우수한 기능까지 구축해냈다. 박지호의 ‘Expanding Chair’는 투명한 아크릴을 통해 가변적으로 움직이는 파이프의 역동성, 아크릴과 파이프가 서로 연결되는 접합부의 디테일 등을 숨기지 않고 보여주는 작품이며, 이우수의 ‘Kirimochi Chair’는 부드러운 스펀지와 딱딱한 스틸의 대비를 통해 긴장감을 조성했다. 가구뿐 아니라 흥미로운 조명 작업도 살펴볼 수 있었다. 심지훈의 ‘Unfit Lamp’, 장영준의 ‘Paper Hanger’, 김영진의 ‘Horong Flower’는 종이접기를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경우의 수, 예상치 못한 실수, 우연의 미학을 빛에 담아냈다. 이는 건축 과정에서 마주하는 여러 날것의 상황과 그것을 해결하며 나오는 더 아름다운 결과물과 닮아 있다.
이토록 완성도 있고 창의성 또한 뛰어난 대학생들의 작업을 보면 나는 기성세대의 건축가, 디자이너로서 많은 기대를 하게 된다. 물성을 통해, 혹은 평소에 갖고 있던 호기심을 통해 이렇게 일관된 주제와 방식으로 작업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크게 성공적이고, 부럽다. 많은 응원과 격려를 보내며, 앞으로의 흥미진진한 작업에 대해 더 큰 믿음과 기대를 전한다.
설합
설합Seol Haap은 건국대학교 산업디자인과 리빙 디자인 전공생들이 모여 만든 커뮤니티로, 장르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자유롭게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디자인 담론과 다양한 해석을 공유한다. 유행을 추구하기보다 각자의 개성과 프로젝트의 목적을 중요시하며, 개념과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것에서 나아가 사회적 역할을 할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드는 디자인 공동체다.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는 설設, 각자의 의견을 모아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합合, 불특정 다수에게 활동을 소개하는 장長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