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아끼는 마음으로 취향을 탐미하는 곳, 점 jeom
점은 감각적인 취향을 제안하는 편집숍 그 이상의 역할을 하는 가게다. 이곳은 단순히 새롭고 유명한 사물을 소개하지 않는다. 대신 오래 쓸 수 있고 자연 친화적이며 재활용할 수 있는 소재의 도구들을 발굴하는 일에 열중한다. 지구를 아끼는 마음으로 취향을 탐미하는 것. 선한 가치를 담은 사물들은 제주의 조용한 마을에 자리한 쇼룸에서 은은하게 존재감을 밝힌다.
본래 감귤 창고로 쓰였던 스토어에서는 다채로운 오프라인 행사 또한 풍성하게 열린다. 점을 이끄는 김혜지 대표는 제주로 이주하며 도민들이 일상적으로 즐길 만한 문화 콘텐츠가 부족하단 점에 늘 아쉬움을 느꼈다. 이에 착안해 로컬 주민들이 편한 마음으로 경험할 수 있는 오프라인 이벤트를 점의 넓은 공간에서 선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점이 디자인한 프로그램에서 도민들은 신선한 커피를 음미하고 음악을 들으며 반려동물과 산책을 하고 요가로 수련한다. 로컬에 좋은 미감의 사물을 소개하는 공간이자 로컬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 점은 브랜드가 추구하는 단단한 취향을 기반으로 지역에 단단히 뿌리내린 스토어가 되고자 오늘도 분주히 움직인다.
점이 추구하는 지속 가능한 취향의 세계
Interview 김혜지 점 대표
점 jeom을 소개해 주세요.
생활에 필요한 유무형의 도구와 경험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공간입니다. 꼭 필요한 소모를 하며 유연하게 순환하고 지속 가능한 취향과 생활 방식을 꿈꿔요. 지구를 아끼는 마음으로 취향을 탐미하죠. 그리고 편집숍과 함께 라이프스타일 문화와 취미, 취향까지 아우르는 팝업 행사를 비정기적으로 열고 있어요.
대표님은 점을 운영하기 이전에 의류 브랜드 ‘아워순환’을 운영하셨죠. 어떤 브랜드였나요?
네이밍 아이데이션을 하며 제 근원이라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 봤어요. 그러자 저희 부모님의 이름이 떠올랐죠. 순희와 상환. (웃음) 그렇게 각각 이름의 앞 글자와 뒷글자를 따와 ‘순환’이라 이름지었어요. 그리고 제가 가장 한국적인 단어라고 생각한 ‘우리’를 영어로 옮겨 ‘아워(our)’를 성으로 사용했습니다. ‘우리나라’,’우리 가족’,’우리 집’. 낱말 앞에 ‘우리’를 붙이는 건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하고 정겨운 문화라고 생각했거든요. 디자인은 유행이 아무리 바뀌어도 옷장에서 자주 꺼내 입을 수 있는 옷을 추구했어요. 동시에 흔히 쓰지 않는 디테일과 소재로 차별화를 두었죠. 아워순환의 취향과 접점이 있는 분들은 꾸준히 브랜드를 찾아 주셨어요.
혼자서 아주 작은 규모로 아워순환을 운영했습니다. 6년간 이끌었으니 일반 브랜드로 치면 나름 긴 기간이죠. 저는 꽤 변덕스러운 사람이에요. 그래서 명확한 브랜드 콘셉을 유지하는 것은 어렵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대신 적은 수의 디자인으로 제작하고, 매 시즌 옷을 내기보다 정말 선보이고 싶은 옷이 있을 때만 만들었어요. 상업적인 의류 브랜드였지만 규모를 키우려는 욕심보다 작지만 지속할 수 있는 자아실현의 도구로써 아워순환을 운영한 것 같아요.
지난 2022년 11월에는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점이 문을 열었어요. 아워순환을 잠시 내려놓고 좀 더 폭넓은 범주의 생활을 다루는 스토어를 열게 된 계기가 있나요?
옷은 사람이 좋아서 시작한 저만의 소통과 공감의 도구였어요. 하지만 브랜드를 지속할수록 의류만으로는 표현의 한계가 있음을 느꼈어요. 그런 와중에 환경 보호에 대한 관심이 커졌죠. 잘 알려졌다시피 대부분의 옷이 생산되고 폐기되는 과정은 환경에 이롭지 않아요. 관점에 따라 환경 오염의 주요한 원인으로도 볼 수 있고요. 이런 생각에 ‘나까지 옷을 만들 필요가 있을까’하는 딜레마에 빠져있었어요. 고민이 깊어질 무렵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됐습니다. 모든 걸 멈출 수밖에 없었어요. 이때 전 잠시 쉬어가며 제주도에 머물렀는데요. 육지에서 섬으로 내려와 시간을 보내며 점을 구상했어요. 서울에서 지낼 때 아워순환 뿐 아니라 틈틈이 파티와 행사 기획을 했던 경험을 살려 더 다양한 매개체로 사람들과 소통하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죠.
한자 ‘店(가게 점)’의 음인 ‘점’을 브랜드 네이밍으로 사용합니다. 이 간결한 이름에 담고자 했던 의미는요?
제품, 공연, 전시, 클래스까지 점에서 소개하는 모든 프로그램이 경험의 형태일지라도 결국 판매를 위한 공간이다 보니 店을 사용했어요. 아워순환처럼 원, 둥근 이미지를 가진 단어였으면 해서 dot(점)의 의미도 있고요. 그리고 점은 선과 면으로 이어지는 가장 기초를 나타내기도 해요. 즉, 점을 하나의 제품과 경험으로 본 거죠. 점으로써의 경험이 계속해서 연결된다면 이는 선이 되어 새로운 변화의 지점이 될 수도 있고요. 간결한 이름이지만 많은 걸 내포하고 있습니다.
점의 첫 오프라인 쇼룸으로 제주시 애월읍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해요.
제주 동쪽부터 서쪽, 남쪽까지 틈틈이 돌아다니며 공간을 찾는데 1년 정도 걸렸어요. 위치를 먼저 정했다기보다 어쩌다 들렸던 지금의 점 공간을 보자마자 ‘아, 여기다!’ 싶었죠. 오랜 시간 방치돼 문은 고장 나서 닫히지도 않고 폐허 같은 느낌의 창고였지만, 그래서 더 상상력을 자극했던 것 같아요.
유연하게 변주하는 공간
점의 높은 층고와 무게감 있는 공간의 무드가 인상깊었습니다. 스토어가 들어서기 전까지 감귤 창고로 사용된 공간이죠. 공간을 기획하면서 주안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요?
스토어 디자인은 기존 공간이 가지고 있던 장점을 유지하며 최소한의 변화로 최대한의 필요를 끌어냈어요. 조화와 균형을 꾹꾹 담아낸 지속 가능한 공간이라 항상 자부하고 있어요. 많은 분이 멋지게 봐주시는 점의 인테리어는 ‘이혜인 디자인 스튜디오’의 작업물입니다. 원래부터 이혜인 디자이너와 친분이 있던 덕에 그의 감각적인 취향을 알고 있었고 선망했어요. 그래서 이혜인 디자이너에게 공간 디자인을 의뢰했고 좋은 타이밍과 기회로 점은 이혜인 디자인 스튜디오의 첫 제주 프로젝트가 됐죠.
인테리어 공사 시작 전 건물을 덮고 있던 담쟁이 식물은 창고의 고장 난 철문까지 뻗어 있었어요. 원래는 이를 모두 철거할 계획이었어요. 그런데 철거 공사를 하며 철문에서 담쟁이 식물을 떼어내자 완전히 새로운 감각으로 철문이 보였습니다. 떼어낸 식물 자국과 그 밑의 녹슬고 빛바랜 페인트가 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마치 커다란 단색화 작품처럼 느껴졌죠. 그래서 기존 계획을 틀어 철문을 폐기하지 않고 유지하기로 했어요. 대신 위치를 옮겨 이 빛바랜 문을 공간의 시작과 끝 벽에 붙여 서로 마주 보도록 구성했습니다. 철거 예정이었던 폐문이 결과적으로 점의 전반적인 무드를 전하는 데 큰 역할을 하게된 거죠. 그리고 모든 가구에 바퀴를 달아 이동이 용이하게 했어요. 편집숍 외에 다양한 프로그램에 맞게 구조를 바꾸며 새로운 공간감을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들었죠. 그리고 공간 안쪽에 10개의 기둥을 세우고 바닥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패턴을 만들어 공간의 아이덴티티를 부여했어요. 다양한 모습으로 유연하게 변주하면서도 점이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한 거죠.
용버들 나무가 도도하게 자리 잡고 있는 마당을 닮은 공간이 단연 눈에 띄었어요.
사무실과 창고 화장실로 연결되는 곳이에요. 그 가운데 자리한 용버들 나무 위로 천정이 뚫려있죠. 말 그대로 자연과 함께하는 공간입니다. 계절에 따라 용버들 나무는 앙상한 가지만 드러내기도 하고 푸른 잎을 한없이 틔워내기도 붉게 물들기도 해요. 반듯한 네모 형태의 한정된 공간이지만 매일 다른 자연과 사계절을 또렷하게 만나볼 수 있어서 매력적이죠.
점을 채우는 유무형의 콘텐츠
어떤 기준으로 상품을 선별하는지 궁금합니다.
점은일상에 편안함을 더해주는 사물에 큰 관심을 둡니다. 궁극적으로 점은 제로웨이스트샵을 지향해요. 매일 쓰는 도구라면 최소한으로 소모되거나 자연에서 분해될 수 있는 것을 소개하죠. 재활용할 수 있는 용품, 폐자원으로 제작한 업사이클링 제품도 선별하고요. 이러한 방향성을 갖고 식물, 향, 커피, 차, 기록을 주제로 일상에 ‘좋은 기분과 기운’을 가져다주는 도구들을 선보이고 있어요.
일상의 도구를 소개하는 것 외에도 넓은 공간을 활용한 다양한 오프라인 프로그램이 열리기도 하죠. 특별히 소개해 주실만한 프로그램이 있다면요?
요가 원데이 클래스가 기억에 남아요. 공간을 기획할 때 사원에 있는 기둥과 그 사이로 길이 뻗어진 이미지에서 모티브를 얻었어요. 요가 클래스는 점에서 드러내고자 했던 공간의 무드가 가장 잘 전달되면서도 프로그램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었죠. 4월에도 원데이 클래스가 있을 예정인데 딱 봄기운을 느낄 수 있을 때라 개인적으로도 많은 기대가 돼요.
제주도라는 지역 특성상 계절별 방문객의 수가 확연히 다를 것 같기도 해요. 육지와 물리적인 거리감도 분명히 존재하고요.
점의 주요 타겟층은 제주도민이에요. 짧은 기간이지만 제가 이곳에 살아보니 요식업을 제외하면 도민들이 꾸준히 찾을 수 있는 공간이 너무나도 부족하단 걸 자주 느꼈죠. 제주라는 섬이 주는 자연 그대로의 매력. 이건 그 자체로 너무 근사해 어떤 공간과도 견줄 수 없을 거예요. 그럼에도 도민들의 즐길 거리가 부족한 건 늘 아쉬움으로 남더라고요. 점이 상권도 딱히 없는 아주 조용한 마을에 있으면서도 꾸준하게 행사를 진행한 이유입니다. 지역 분들에게 언제나 새로운 콘텐츠가 있어 자주 오고 싶은 곳으로 기억되기 위해 고민해요. 점에서 전시 중인 제품들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관광 기념품은 전혀 찾아볼 수 없어요. 제주도의 편집숍에서 여행 기념품이 없다는 건 빠른 수익 창출에는 다소 불리할 수 있겠죠. 하지만 결국 도민이 더욱 찾는 스토어가 되어야 좋은 관광지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운영하고 있습니다.
점에서 펼칠 다음 계획이 있을까요?
제품을 판매하는 스토어는 이미 온라인으로도 운영 중이에요. 그래서 올해 오프라인 공간에서는 팝업 행사 등 오프라인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다채로운 이벤트를 더욱 촘촘하게 소개하려 합니다. 지난 1년간 자체 기획으로 공간을 채웠다면 앞으로는 외부 브랜드에서 직접 기획한 팝업 행사를 적극적으로 선보일 계획이죠.
실망하지 않을 거라 자부하는 디제잉 파티도 준비 중이에요. 가능하다면 매달 한 번은 진행할 생각이죠. 한적한 감귤밭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열리는 디제잉은 상당히 이색적이거든요. 와보신 분들이라면 언제나 다음 파티도 기대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어요. 기회가 된다면 오프라인 스토어는 좀 더 편안한 접근성을 위해 제주 시내 쪽으로 옮겨갈 생각도 있고요.
방문객들의 마음에 점은 어떤 공간으로 남겨질까요?
더 나은 소비를 할 수 있는 가게, 다채로운 이벤트로 항상 다음 방문이 기대되는 공간으로 기억되길 바라요. 필요하든 외적으로 마음에 들든 어떠한 이유라도 점에서 구매하는 사물들은 오래 쓸 수 있고 자연 친화적이며 재활용할 수 있는 소재의 제품들이에요. 큰 어려움과 고민 없이 환경을 생각한 소비를 하게 돼요. 그래서 점에서는 ‘더 나은 소비’를 한다고 자부하셔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