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로에베 공예상, 최종 수상자는?
쿠니마사 아오키의 테라코타 조각, ‘Realm of Living Things 19’
2025년 로에베 재단 공예상 최종 수상은 테라코타 조각 ‘Realm of Living Things 19’를 선보인 일본 작가 쿠니마사 아오키에게 돌아갔다. 나이지리아의 니페미 마커스 벨로와 인도의 수막쉬 싱 스튜디오는 특별상을 수상하며 공예의 사회적 메시지와 조형적 실험을 동시에 인정받았다. 전통 기법의 재해석부터 공예의 사회적 확장성까지, 올해 공예상의 흐름을 살펴본다.

올해로 8회를 맞은 로에베 재단 공예상(Loewe Foundation Craft Prize)이 2025년의 최종 수상자를 발표했다. 전 세계 133개국에서 접수된 4,600여 점의 작품 중 30점을 최종 후보작으로 선별한 이 상은, 장인 정신과 예술적 비전, 그리고 혁신을 겸비한 현대 공예인을 조명한다.
2025년 수상의 영예는 테라코타 조각 ‘Realm of Living Things 19’(2024)을 선보인 일본 조각가 쿠니마사 아오키(Kunimasa Aoki)에게 돌아갔다. 심사위원단은 전통 기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그의 작품에 대해 “재료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정직한 미학”이라고 평가했다. 이와 함께 올해는 특별상도 마련됐다. 매해 주어지는 상은 아니지만, 심사위원단이 특출난 조형 언어, 사회적 메시지, 혹은 기술적 실험의 가치를 지닌 작품에 한해 수여한다. 2025년 특별상에는 나이지리아와 인도 출신의 니페미 마커스 벨로(Nifemi Marcus-Bello)와 수막쉬 싱 스튜디오(Studio Sumakshi Singh), 두 작가(팀)가 각각 선정되었다.
최종 수상자, 쿠니마사 아오키는 누구?
1963년 일본에서 태어난 쿠니마사 아오키(Kunimasa Aoki)는 오랜 시간 흙이라는 재료가 지닌 본질과 물성을 탐구해온 도예가다. 무사시노 미술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한 그는, 점토에 가해지는 시간, 중력, 압력 같은 자연의 힘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실험하며, 공예와 조각의 경계를 넘나드는 독특한 작업 세계를 구축해왔다.


(오른쪽) Realm of Living Things 19, terracotta, 400 × 400 × 870 mm, 2024
아오키는 고대의 코일링 기법1을 바탕으로 여러 층의 점토를 쌓고 압축한 뒤, 훈연 과정을 거쳐 독특한 형태를 만들어낸다. 그 위에 흙과 연필 자국을 더해 마무리된 그의 작품은 표면이 뒤틀리고 갈라져, 마치 오랜 세월 풍화된 자연의 암석처럼 보인다. 이처럼 완전히 통제되지 않은 유기적인 형태는 흙이라는 재료가 지닌 생명력과 자연스러움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의 수상 작품 ‘Realm of Living Things 19′(2024)에 대해 심사위원단은 “기술, 장인 정신, 창의성, 예술적 비전이 모두 담겨 있다”라고 평가했으며, 무엇보다도 “재료의 본질을 그대로 드러낸 정직한 미학”이 큰 인상을 남겼다고 밝혔다.

자연이 오랜 시간에 걸쳐 층을 이루는 방식에 매료된 아오키는, 그 과정을 닮은 차곡차곡 점토를 쌓아가는 자신만의 작업 방식을 개발해왔다. 얇은 점토 코일을 반복해서 쌓고, 눌러 빚고, 압축하는 그의 방식은 점토가 시간과 압력, 중력 같은 힘에 의해 점점 형태를 갖추고 변형되도록 한다. 이로 인해 작품의 표면은 일그러지거나 갈라지고, 때로는 생명력을 지닌 유기체처럼 살아 움직이는 듯한 감각을 자아낸다.
이처럼 재료가 스스로 형태를 만들어가도록 내버려두는 태도를 통해, 자연의 질서와 시간의 흐름을 독자적인 조형 언어로 풀어낸다. 그 과정은 작가의 의도를 넘어서는 결과를 낳기도 하지만, 아오키는 그런 불확실성과 우연성마저도 작품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그의 작품은 인간의 개입과 자연의 작용이 공존하는 경계 위에 놓여 있다. 그런 점에서 그의 조각은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나이지리아와 인도의 공예적 시선
2025년 로에베 공예상은 쿠니마사 아오키의 최종 수상 외에도, 두 개의 특별상을 함께 수여했다. 하나는 나이지리아 출신 디자이너 니페미 마커스 벨로(Nifemi Marcus-Bello), 또 하나는 인도 기반의 수막쉬 싱 스튜디오(Studio Sumakshi Singh) 에게 그 영예가 돌아갔다.


니페미 마커스 벨로는 1988년생으로, 지역 사회 기반의 디자인과 재료가 지닌 정치적 맥락에 주목한다. 그의 특별상 수상작 ‘TM Bench with Bowl’은 자동차 산업에서 재활용된 알루미늄으로 제작된 벤치 형태의 작업이다. 벨로는 “단순한 재료와 기하학적인 구조를 통해, 무역과 소비주의, 세계화가 얽힌 권력관계를 은유한다”라고 설명한다.

알루미늄이라는 산업 폐기물이 그의 손을 거쳐 공예적 언어로 전환되며, 관객에게 조용하지만 날카로운 메시지를 던진다. 심사위원단은 이 작업을 두고 “조용하지만 강력한 메시지를 담은 공예적 선언”이라고 평가했다.

또 다른 수상자는 인도에서 활동 중인 네 명의 아티스트가 함께 운영하는 ‘수막쉬 싱 스튜디오’다. 이들은 작품 ‘Monument’(2024)를 통해 12세기 델리의 콜로네이드 기둥을 실물 크기로 재현했다. 작품은 순동과 나일론으로 이루어진 자리(Zari) 실을 물에 녹는 특수 섬유에 수놓은 후, 섬유를 녹여 실만 남기는 방식으로 완성했다.
인도 전통의 꼬기, 레이스, 자수 기법을 활용했는데, 고대 석조 기둥을 가볍고 평면적인 조형물로 바꾸는 동시에,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시각적 효과를 자아낸다. 이 작업은 단순히 구조물에서 그치지 않는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쇠퇴하고도 남겨지는 문화와 기억의 층위를 섬세하게 포착했다. 로에베 재단은 이를 두고 “서정성과 조형성의 경계를 허문 감각적인 작업”이라고 평가했다.
로에베가 공예상에 진심인 이유
그렇다면 로에베는 언제부터, 그리고 어떤 이유로 공예의 매력에 빠진 걸까? 그 시작은 2016년, 로에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나단 앤더슨(Jonathan Anderson)이 직접 제안한 ‘로에베 재단 공예상’에서 비롯된다.
이는 전통 기술을 단순히 ‘과거의 유산’으로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동시대의 창조적 언어로 복원하고 계승하려는 시도였다. 당시 그는 “공예야말로 가장 현대적인 표현 방식”이라며, 기술과 예술, 디자인을 가로지르는 공예의 잠재력을 재조명하고자 했다.
로에베는 본래 1846년 마드리드의 한 가죽 공방에서 시작된 브랜드다. 브랜드의 정체성 깊숙이 장인 정신이 자리 잡고 있는 만큼, 공예에 대한 애정은 단순한 후원이 아니라 브랜드의 자기 고유성에 대한 재확인이기도 하다. 그래서 로에베는 매년 전 세계를 대상으로 작품을 공모하고, 수천 점의 출품작 중 단 30점을 엄선해 전시한다. 올해도 마찬가지.


스페인 마드리드 티센-보르네미사 국립미술관에서 오는 6월 29일까지 소개 중인 30점의 파이널리스트는 도자, 직물, 유리, 금속, 목공예 등 전통 매체를 새롭게 해석한 실험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안에는 각자의 삶과 지역, 세대, 기억이 응축되어 있다. 이들은 오늘날 공예가 어떻게 예술, 사회, 역사, 기술의 경계에서 새롭고 감각적인 언어를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다.

로에베 재단 회장 쉴라 로에베Sheila Loewe는 “올해 여덟 번째로 개최되는 재단 공예상을 맞이하는 지금, 매년 경이로운 창의성과 아름다움, 그리고 장인 정신의 정수를 마주할 수 있다는 점에 감동을 받습니다. 매년 우리에게 놀라움을 선사하는 공예를 만날 수 있고, 이를 통해 새로운 감동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이 상의 진정한 마법이 아닐까 합니다. 공예의 생명력을 이어 가는 데 로에베 재단 공예상이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 무척 자랑스럽습니다.”라고 말한다.


결국 로에베가 공예에 보내는 관심은 브랜드의 과거를 기리는 행위이자, 앞으로의 시대에 무엇이 ‘지속 가능하고 의미 있는 아름다움’인가를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손으로 만든 것, 오래된 기술, 느린 제작 방식이 빠르게 소비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가치 있는 언어임을 로에베는 공예를 통해 증명하고 있다.
- 점토 끈을 층층이 쌓아 형태를 만드는 방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