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서펜타인 파빌리온’을 설계한 건축가는?

마리나 타바숨의 '시간의 캡슐'

2025년 서펜타인 파빌리온이 공개됐다. 올해의 건축가는 방글라데시 다카에서 활동하는 마리나 타바숨으로, ‘시간의 캡슐(A Capsule in Time)’이라 이름 붙인 구조물은 찰나성과 영속성, 고정성과 유동성이라는 상반된 개념을 하나의 공간 안에 담아냈다.

‘2025 서펜타인 파빌리온’을 설계한 건축가는?

건축은 얼마나 오래 남아야 의미가 있을까? 아니면, 짧은 시간 머물다 사라지는 건축이 오히려 더 깊은 인상을 남길 수도 있을까? 2025년 서펜타인 파빌리온은 이 질문에 대한 건축적 답변을 제시한다. 매해 여름 런던 켄싱턴 가든에 세워졌다가 사라지는 이 건축 구조물은, 한정된 시간 안에 건축의 본질을 탐구할 수 있는 드문 기회다.

서펜타인 파빌리온은 2000년 건축가 자하 하디드(Zaha Hadid)의 첫 커미션으로 시작된 이래, 세계 건축계의 가장 실험적인 플랫폼 중 하나로 자리 잡아왔다. 올해로 25주년을 맞이한 서펜타인 파빌리온은 “실험에는 끝이 없어야 한다(There should be no end to experimentation)”라는 자하 하디드의 정신을 이어받아, 동시대 건축의 경계를 꾸준히 확장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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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pentine Pavilion 2025 A Capsule in Time, designed by Marina Tabassum, Marina Tabassum Architects (MTA). © Marina Tabassum Architects (MTA). Photo: Iwan Baan. Courtesy Serpentine.

이 기념비적인 해의 파빌리온 디자인은 방글라데시 다카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건축가 마리나 타바숨(Marina Tabassum)이 맡았다. 그녀는 특정한 장소, 기후, 문화, 역사와의 긴밀한 대화를 통해, 지역성과 동시대성을 아우르는 독자적인 건축 언어를 구축해왔다.

마리나 타바숨이 설계한 2025년 서펜타인 파빌리온의 이름은 ‘시간의 캡슐(A Capsule in Time)​’. 남북 방향으로 길게 배치된 네 개의 목재 캡슐 형태로 구성된 이 구조물은, 고정성과 유동성, 지속성과 찰나라는 상반된 개념을 하나의 공간 안에 공존시킨다. 비록 물리적으로는 짧은 시간 동안만 존재하는 구조물이지만, 그 안에서 이루어질 다양한 만남과 감각의 경험은 건축이 시간을 담는 또 다른 방식을 보여준다.

마리나 타바숨의 ‘삶에 닿는 건축’

마리나 타바숨(Marina Tabassum)은 방글라데시 다카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건축가이자 교육자다. 1995년 방글라데시 공과대학교(BUET)를 졸업한 뒤, 1997년 URBANA라는 건축사무소의 공동 설립자로 활동하며 독립기념비와 박물관 설계로 주목받았다. 이후 2005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건 건축사사무소 마리나 타바숨 아키텍츠(Marina Tabassum Architects)(이하 MTA)를 설립해 독자적인 건축 세계를 이어가고 있다.

타바숨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축의 출발점은 바로 ‘장소’와 ‘사람’이다. 건축이란 단순히 멋진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의 기후와 지형, 역사와 문화, 그리고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고 응답하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녀는 해마다 소수의 프로젝트만을 신중히 선택해 진행한다.

이런 건축 철학은 ‘의미가 담긴 건축(Architecture of relevance)’이라는 말로 요약되곤 하는데, 화려하고 빠르게 소비되는 건축이 아니라, 오래 머물고 삶에 꼭 필요한 건축을 추구하는 마리나 타바숨의 건축가로서의 자세가 담겨 있다. 2025년 서펜타인 파빌리온에서 선보인 ‘시간의 캡슐’ 또한 이런 건축 철학의 연장선에 있다. 도시 한복판이라는 전혀 다른 환경 속에서도 타바숨은 사람이 머무는 조건과 장소의 의미를 깊이 있게 고민하며 파빌리온을 설계했다.

감각과 시간의 건축, 시간의 캡슐

마리나 타바숨이 설계한 파빌리온 ‘시간의 캡슐(A Capsule in Time)’은 남북으로 길게 늘어진 네 개의 목재 조형물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조형물은 ‘캡슐’이라 불리며, 이 중 하나는 움직일 수 있는 키네틱 구조로 설계되었다. 이동이 가능한 구조 덕분에 관객의 움직임이나 프로그램의 성격에 따라 공간의 구성이 유동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 즉, 이 파빌리온은 단순히 고정된 건축물이 아니라, 움직임에 반응하고 관계를 만들어내는 ‘살아 있는 무대’로 기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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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pentine Pavilion 2025 A Capsule in Time, designed by Marina Tabassum, Marina Tabassum Architects (MTA). Interior view. © Marina Tabassum Architects (MTA), Photo Iwan Baan, Courtesy: Serpentine.

이러한 설계는 남아시아 전통 천막 구조물인 ‘샤미야나(Shamiyana)’에서 영감을 받았다. 샤미야나는 천과 대나무로 구성된 임시 구조물이다. 남아시아 지역에서 야외 결혼식, 축제, 공동체 모임을 위해 설치되곤 하는 공간이다. 기둥만으로 지탱되는 구조물은 가볍고, 개방적이며, 사람들의 움직임과 관계에 따라 공간이 유기적으로 작동한다. 티바숨은 이러한 전통 공간 개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도시 한복판에서도 유동성과 개방성을 지닌 새로운 건축 경험을 제안했다.

이 개념은 파빌리온의 건축 재료 선택과 구조에서도 잘 드러난다. 마리나 타바숨은 처음으로 전체 구조를 목재만으로 설계했다. 목재는 가볍고 따뜻한 질감을 지니면서도, 자연과의 연결을 강화하는 재료다. 이를 통해 파빌리온 구조물 전체에 유기적이고 생동감 있는 인상을 부여했다.

외피는 반투명한 소재로 마감되었는데 햇빛이 내부로 부드럽게 스며들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시간대와 날씨, 관객의 움직임에 따라 빛과 그림자의 결이 공간 안에서 끊임없이 변주되도록 만든 장치이기도 하다. 한편 빛은 ‘시간의 캡슐’에서 단순한 채광 수단이 아니라, 공간의 분위기를 조율하고 감각을 자극하는 핵심 재료로 작동한다. 자연광의 흐름을 따라 공간의 표정이 변하는 감각적인 경험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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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pentine Pavilion 2025 A Capsule in Time, designed by Marina Tabassum, Marina Tabassum Architects (MTA). Interior view. © Marina Tabassum Architects (MTA), Photo Iwan Baan, Courtesy: Serpentine.

아울러 파빌리온 한가운데 자리한 반구형 은행나무도 눈길을 끈다. 중생대에서 유래한 식물로 전시가 끝난 후에는 켄싱턴 가든에 다시 심어질 예정이다. 여름에서 가을로 이어지는 시간 동안, 초록에서 황금빛으로 물들어 갈 나무는 건축과 자연, 시간의 흐름이 교차하는 순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마리나 타바숨은 일시적 구조물인 파빌리온에 하나의 생명체를 중심축으로 더함으로써, 공간에 기억과 흔적을 심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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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나 타바숨이 설계한 파빌리온은 감각적 구조를 넘어 지식과 기억을 공유하는 플랫폼으로도 기능한다. 타바숨과 MTA는 방글라데시의 문학, 시, 건축, 생태, 지리를 아우르는 서적들을 선별해 파빌리온 내부에 작은 서가를 구성했다. 이 책장은 전시가 끝난 뒤에도 새로운 장소에서 이어질 예정이다. 아울러 서펜타인과 독일의 쾨니히 출판사는 이번 파빌리온을 중심으로 한 전시 카탈로그를 출간해 마리나 타바숨의 건축 세계를 다층적으로 조명할 예정이다.

마리나 타바숨이 설계한 2025 서펜타인 파빌리온 ‘시간의 캡슐(A Capsule in Time)’은 지난 2025년 6월 6일부터 오는 10월 26일까지,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런던 켄싱턴 가든 내 서펜타인 사우스(Serpentine South)에서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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