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과 바늘로 감정을 수놓는 텍스타일 아티스트, 사라 에스푀트
낭만이낭만이 머무는 식사 풍경, 우브르 상시블의 이야기
프랑스 자수 아티스트 사라 에스푀트는 빈티지 리넨에 섬세한 자수를 더해 일상의 풍경을 시적인 장면으로 재해석한다. 테이블 위의 소박한 장면에서 영감을 얻어 직물을 감성적인 오브제로 탈바꿈시키며, 공간과의 관계를 섬세하게 다시 연결해낸다. 그녀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 창작의 배경과 철학을 들여다본다.

커튼이나 테이블보를 ‘마지막 디테일’ 정도로 여겨 왔다면? 프랑스의 자수 아티스트 사라 에스푀트(Sarah Espeute)의 세계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녀는 커다란 변화 없이도 공간의 분위기를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섬세한 힘이 직물에 있다고 믿는다. 공간의 ‘조연’ 역할을 탈피해 직물 자체를 주인공으로 끌어올린 그녀는 패브릭 하나만으로도 일상의 풍경을 예술로 탈바꿈시킨다.

마르세유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사라는 2021년 자신의 스튜디오이자 브랜드 ‘우브르 상시블(Œuvres Sensibles)’을 설립했다. 프랑스어로 ‘감성이 깃든 작품들’을 뜻하는 이름처럼, 그녀는 테이블 위의 소박한 장면에서 영감을 받아 자수를 더한 오브제를 만들어낸다. 포크, 와인 잔, 빵, 꽃다발처럼 친근한 식문화의 요소들은 그녀의 손끝에서 시적이고 정감 어린 풍경으로 거듭난다. 그녀만의 섬세한 감각과 서정적인 시선은 익숙한 사물들에 감정을 불어넣고, 공간과의 관계를 새롭게 이어준다.

사라 에스푀트가 사용하는 원단은 대부분 50년에서 100년 이상 된 프랑스산 빈티지 리넨이다. 오랜 시간을 견디며 남은 직물에는 시대의 흔적과 감성이 고스란히 스며 있다. 대량 생산과 과잉 소비가 일상이 된 지금, 그녀는 손으로 완성하는 느린 작업과 오래된 것에 대한 존중을 통해 오브제 본연의 시간성과 감정의 밀도를 회복시키고자 한다. 마르세유의 손자수 장인 혹은 파리에서 19세기 자수 기계인 코르넬리(Cornely)를 다루는 장인과 협업하며 프랑스산 고급 직물을 바탕으로 윤리적인 방식의 소량 생산을 이어간다.

사라 에스푀트의 손길을 거친 직물은 장식을 넘어, 공간의 분위기와 감도를 섬세하게 바꾸는 예술로 확장된다. 누군가의 손길이 머문 식사의 흔적, 기억을 머금은 천 조각, 오래된 냅킨에 스며든 따스한 대화처럼 그녀는 사소한 사물에 깊은 서사를 수놓는다. 그렇다면 이처럼 직물로 이야기를 건네는 그녀의 작업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지금부터 사라 에스푀트와의 대화를 통해 그 고요하고 아름다운 창작 세계의 이면을 들여다본다.
Interview with 사라 에스푀트
우브르 상시블(Œuvres Sensible) 대표
현재 마르세유에 거주하며 작업하고 계시죠. 이 도시의 환경은 당신의 창작과 예술적 영감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요?
마르세유는 지중해의 빛과 색, 그리고 생동감 있는 리듬이 살아 있는 도시예요. 저는 아를에서 태어난 남프랑스 출신이라. 자연스레 이 지역의 분위기와 프로방스 문화에 영향을 받으며 자랐죠. 요리 전통도 제게는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지만, 요리 전통은 제게 있어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고, 오래된 앤티크 직물에 담긴 섬세한 패턴들도 저를 깊이 사로잡아요. 다만 저는 흔히 떠올리는 전형적인 프로방스의 이미지보다는 그 안에 깃든 감정과 기억에 집중하고 싶었어요. 마르세유의 지역성과 저만의 개인적인 경험, 그리고 절제된 미니멀한 미감을 결합해 도시의 정서를 현대적인 감성으로 재해석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스튜디오 이름 ‘우브르 상시블Œuvres sensibles’에 담긴 철학과 의미가 궁금합니다.
이 이름은 원래 제 자신에게 쓴 짧은 창작 선언문에서 시작됐어요. 감정이 배제된 물건들이 넘쳐나는 시대 속에서 보다 민감하고 섬세한 감각을 바탕으로 작업하고 싶었죠. 그렇게 태어난 문장이 자연스럽게 스튜디오의 이름이 되었고, 지금은 저의 철학을 담아 감정이 깃든 오브제를 제작하는 작업 공간으로 이어지고 있어요. 맞춤형 주문 작업은 물론이고, 소량의 컬렉션 단위로도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데요. 우브르 상시블은 단순한 브랜드명이 아니라,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고 사려 깊게 바라보는 태도이자 제가 지향하는 삶의 방식이기도 해요.

평범한 일상 오브제에 시적이고 섬세한 아름다움을 더하는 작업을 전개해 왔어요. 작업을 통해 궁극적으로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으신가요?
저는 사물에 이야기를 불어넣고, 감성을 담아 누군가의 마음에 오래 남을 수 있는 오브제를 만들고 싶어요. 단순히 기능적인 역할에 그치지 않고 그 자체로 감정의 매개체가 되는 오브제 말이에요. 우리가 사용하는 것들과 정서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면, 소비하는 방식 역시 달라질 수 있다고 믿어요. 그런 작은 애착이 결국엔 과잉 소비의 문화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하나의 실마리가 되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작가님이 생각하는 ‘감정이 깃든 오브제’란 어떤 모습일까요? 그런 감정을 작품에 어떻게 담아내시나요?
어떤 기억을 떠올리게 하거나,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물건이에요.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작은 생명력을 품고 있는 듯한 존재랄까요. 저는 작업할 때마다 그 오브제가 제게 진정한 의미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형태든 색감이든, 혹은 그것이 풍기는 분위기든, 반드시 제 이야기 안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야 하죠. 그렇게 제 감정이 고스란히 녹아든 작품이라면, 분명 다른 이에게도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다고 믿어요.
특별히 애정을 담고 있는 작품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그 안에 담긴 이야기도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트롱프뢰유(trompe-l’œil) 기법으로 수놓은 식탁보예요. 이 작업은 실로 떠낸 하나의 기억 조각이자, 가족과 나눈 소중한 순간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요. 저희 집 식탁은 언제나 다양한 패턴의 빈티지 식기로 차려졌는데, 아버지가 모아온 그릇들을 자유롭게 섞어 사용하는 풍경이 너무도 자연스러웠죠. 그래서 매번의 식사는 마치 작은 축제 같았고, 그 장면들이 식탁보 위에 스며들게 되었어요. 이 작품에는 향수 어린 감정이 짙게 배어 있어요. 고향의 따뜻한 시간들을 떠올리게 하고, 저를 다시 중심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아주 개인적이고 소중한 작업이에요.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작업 중에서 ‘대표작’을 꼽는다면 어떤 작품일까요?
역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트롱프뢰유(trompe-l’œil)기법으로 완성한 식탁보예요. 제 작업 여정의 시작점이기도 했고, 지금까지도 여전히 깊은 감정적 연결을 느끼는 작품이죠. 최근에는 전시 <잘 차려입은 아파트(A Well-Dressed Apartment)>에서 선보인 ‘의상 커튼(Clothing-Curtains)’ 시리즈에도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어요. 오랫동안 머릿속에만 담아두었던 구상을 비로소 실현할 수 있었던 작업이었거든요. 이 시리즈 역시 트롱프뢰유 세계관 안에 있지만, 식탁보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한층 더 초현실적인 뉘앙스를 담아내고 있어요. 디자인과 패션, 공간을 넘나드는 이 작업은 저에게 무척 흥미로운 탐구의 장이 되었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확장해 보고 싶은 시리즈입니다.
자수 작업 속에 식기나 식탁 풍경이 자주 등장하죠. 당신에게 ‘식탁’은 어떤 의미인가요?
저에게 식탁은 식사의 공간을 넘어, 누군가를 환대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나누는 장면이에요. 아름답게 식탁을 차리는 일은 손님이 편안히 머물며 그 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게 해주는 소중한 의식이죠. 어릴 적 어머니께서 생일이나 크리스마스처럼 특별한 날이면 항상 정성스럽게 식탁을 차리셨어요. 포크는 왼쪽, 나이프는 오른쪽에 놓고, 식탁보가 더러워지지 않도록 나이프 받침까지 사용하셨죠. 저는 그런 세심한 디테일을 하나하나 배우며 자랐고, 그 기억들이 지금의 작업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것 같아요.

수공예 방식과 오래된 직물을 고집해왔죠. 이런 느리고 의도적인 제작 방식이 오늘날 어떤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보시나요?
수작업으로 만든다는 건 자수 오브제와 직물의 진정한 가치를 되살리는 일이에요. 지금은 대량 생산 때문에 천 자체의 가치가 많이 퇴색되었지만, 원래 직물이라는 재료는 굉장히 귀하고 고귀한 것이었어요. 저는 빈티지 직물을 재활용하고, 프랑스의 장인과 협력하면서 이런 잊힌 아름다움을 다시 보여주고 싶어요. 느리지만 의미 있는 방식으로, 텍스타일이 가진 섬세함을 오늘의 감각으로 되살려내는 것이 제 작업의 중요한 부분이에요.


그렇다면 요즘 작업 테이블 위에는 어떤 천 조각들이 놓여 있나요? 어디에서 온 것들이고, 어떤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나요?
정말 다양한 천들이 제 작업대 위에 쌓여 있어요. 은은한 음영으로 무늬가 짜인 빈티지 다마스크 린넨, 오래된 냅킨과 식탁보 조각들도 있고요. 이 천 조각들을 하나하나 이어 붙여 회화처럼 큰 패치워크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아직 어떤 형태로 완성될지는 모르겠지만, 쿠션이 될 수도 있고, 커튼이나 식탁보일 수도 있겠죠. 최근에는 오래된 잠옷들도 모으고 있어요. 언젠가는 그 천들을 활용해 작은 옷 컬렉션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각 천마다 시간의 결이 다르고, 고유한 이야기를 품고 있어서, 작업할 때마다 새로운 대화를 나누는 기분이에요.

집 안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어디인가요? 그 공간은 작가님의 일상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나요?
지금은 아파트를 리노베이션 중이라 딱 하나의 공간을 꼽긴 어렵지만, 각 방이 하나의 창작 공간이 될 거라고 생각하면 그 상상만으로도 벅차요. 빈티지 도어 손잡이부터, 저와 파트너가 직접 만들 조명 스위치, 처음부터 디자인할 주방, 맞춤 가구들까지 공간의 모든 디테일에 정성을 담아 채워나갈 예정이에요. 그 안에 저만의 섬세한 텍스타일 터치도 자연스럽게 스며들겠죠. 지금은 아직 머릿속에 그려져 있는 단계지만, 인테리어 작업을 하나씩 시작해가는 그날이 정말 기다려져요.

지난 2월, 서울에서 처음으로 작품을 선보이셨죠. 그 소감이 듣고 싶습니다.
한국 관객들의 반응이 이렇게 따뜻하고 열정적일 줄은 정말 몰랐어요. 깊이 있는 관심과 진심 어린 피드백에 정말 감동받았죠. 특히 아트먼트뎁(Artment.dep)에서 열린 팝업에서는 꽁뜨와 드 미라벨(Comptoir de Mirabelle) 팀이 제 작업을 아주 세련된 방식으로 소개해 주셨고, 덕분에 훌륭한 협업이 될 수 있었어요. 낯선 장소에서 제 작업이 새로운 시선으로 받아들여지고, 그 안에서 교감이 이루어졌다는 것 자체가 저에겐 정말 큰 기쁨이었어요. 그 경험은 앞으로의 작업에도 깊은 영향을 줄 것 같아요.

어떤 작품들이 소개되었나요? 앞으로 한국에서 선보일 신작도 있을지 궁금해요.
이번 서울 전시에서는 냅킨, 식탁보, 쿠션 등 다양한 오브제들을 선보였어요. 그중에서도 일상의 테이블을 특별하게 바꿔주는 작업들이 특히 많은 관심을 받았던 것 같아요. 현재는 새로운 아이템에 대해서도 논의 중이에요. 식기에서 영감을 받은 테이블웨어 컬렉션을 준비하고 있는데, 우아하면서도 단정한 분위기로, 일상의 식탁을 정갈하게 꾸밀 수 있는 오브제들이 될 거예요. 그리고 ‘의상 커튼(Clothing-Curtains)’ 시리즈도 한국에서 꼭 한 번 소개해보고 싶어요. 그 오브제가 지닌 감성과 유희의 결이 한국 관객과도 잘 어우러질 거라고 생각해요. 저로서도 굉장히 기대되는 프로젝트 중 하나예요.


최근 작업과는 조금 다르게, 요즘 개인적으로 관심을 두고 있는 주제나 질문이 있다면요?
요즘은 온통 인테리어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해요. 아파트 리노베이션과 쇼룸 공간 준비를 동시에 진행 중인데, 각 공간에 대해 완전히 다른 접근을 하고 있거든요. 쇼룸은 연극 무대처럼 드라마틱 한 분위기를 갖춘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요. 제 오브제들이 극적인 조명과 설치 속에서 더 생생하게 살아날 수 있도록요.
반면 제 집은 최대한 미니멀하면서도 아늑한 분위기로 꾸밀 계획이에요. 가구와 텍스타일의 선택이 공간의 전체 분위기를 좌우할 중요한 키가 될 것 같고요. 아직은 모든 게 상상의 단계지만, 곧 현실이 될 그 순간을 생각하면 설렘이 커져요. 작업과 일상의 경계에서 새로운 실험을 해보고 있다는 점에서, 요즘이 무척 흥미로운 시기예요.


올해 안에 예정된 전시나 프로젝트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2025년 가을, ‘의상 커튼(Clothing-Curtains)’ 시리즈의 공식 론칭을 앞두고 있어요. 지금까지 선보였던 아이템들을 넘어, 이 시리즈를 더 풍성하게 해줄 새로운 오브제들도 함께 발표할 예정이에요. 또 하나의 큰 계획은 쇼룸 오픈이에요. 제가 애정하는 앤티크 테이블웨어, 마르세유의 디자이너 친구들, 그리고 제가 아끼는 작가들의 작품을 함께 큐레이션 해 소개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제 작업의 무드가 더 깊이 전달될 수 있는 무대가 되길 바라요.


앞으로 자수와 텍스타일을 통해 더 깊이 탐구해 보고 싶은 감정이나 주제가 있다면요?
저는 오브제를 단지 하나의 물건으로만 남겨두기보다는 하나의 장면과 이야기를 담은 ‘무대’로 확장해가고 싶어요. 텍스타일이라는 언어를 통해 더 넓고 자유로운 창작 세계를 탐색하면서, 완성도 있는 시적 풍경을 만들어가고 싶어요. 보는 이가 마치 한 장의 시를 읽는 듯한 감정과 여운을 느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