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게는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리는 건물이 우리가 잠을 자는 사이에 완성된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돌을 쌓고, 철근을 세우고, 콘크리트를 붓는 방식으로 만들어지던 건축의 역사는 이제 3D 프린터 헤드 위에서 다시 쓰이고 있다. 속도, 정교성, 미감 등 건축에 대한 요구는 늘어나는 반면 인건비와 자원, 환경 부담은 줄여야 하는 요즘 3D 프린팅 기술은 큰 대안으로 각광받고 있다. 특히 최근 몇 년간 공개된 프로젝트들은 기술이 어떻게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가장 최근에 공개된 3D 프린팅 건축물들을 함께 살펴보자.

토르 알바(Tor Alva) _ 스위스 알프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높은 3D 프린팅 건축물인 토르 알바(Tor Alva)는 스위스 알프스의 뮐렌스 (Mulegns)에 세워진 타워로 2025년 5월에 정식으로 공개되었다. 이 건축물은 ETH 취리히(ETH Zurich)의 디지털 빌딩 테크놀로지 그룹(Digital Building Technologies)과 Origen 문화 재단 Fundaziun Origen이 공동으로 주도한 프로젝트로, 건축가 벤야민 딜렌버거(Benjamin Dillenburger)와 미하엘 한스마이어(Michael Hansmeyer)가 설계를 맡았다.

건축물의 전체 구조는 총 32개의 비정형적인 곡선의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둥들은 3D 프린팅 로봇이 소프트 콘크리트(soft concrete)를 층층이 적층하며 만들었다. 적층 중에는 철근 보강재가 삽입되었으며, 모든 과정에서는 거푸집 없이 진행되었다. 모듈화 방식으로 설계되었으며, 각 부품은 나사를 이용해 조립되어 있다. 이를 통해 약 5년간 뮐렌스에 설치된 후 해체 및 재설치가 가능하도록 계획되어 있으며, 향후 설치 장소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내부에는 지면에서 상층부까지 이어지는 수직 계단이 설치되어 있으며, 최상층에서는 율리어 계곡(Julier Valley)을 조망할 수 있는 공연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외관은 창이 없는 개방형 구조이며, 교차하는 프린트 패턴이 드러나는 독특한 표면을 가지고 있다. 토르 알바는 공연과 예술 행사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현재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가이드 투어가 운영되고 있다.

스타벅스 브라운스빌(Starbuck Brownsville) _ 미국 텍사스

스타벅스는 2025년 4월, 텍사스 브라운스빌에 첫 3D 프린팅 매장을 공식 오픈했다. 약 136㎡ 의 작은 규모로 실내 좌석 없이 드라이브스루 및 테이크아웃만 가능한 매장이다. 이곳은 단 6일 만에 완성되었다. 이 건물은 독일의 PERI 3D Construction이 제공한 대형 콘크리트 프린터를 사용해 지어졌다. 3D 프린팅 방식은 ‘로보틱 익스트루전(robotic extrusion)’이라고 불리는 콘크리트를 층층이 적층하는 방식으로 외벽을 만들었다. 별도의 거푸집 없이 자유로운 곡선과 반복적인 패턴을 구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건물 외관은 파이프처럼 주름진 표면과 곡면 모서리, 매끄러운 지붕 마감을 특징이다.

스타벅스가 오랫동안 강조해온 브랜드 철학인 ‘제3의 공간’이라는 것과는 약간은 다른 포지셔닝을 하고 있지만, 이 매장을 통해 새로운 건축 기술이 브랜드 운영 효율성과 공간 전략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시험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매장 시공부터 운영까지 모든 것이 ‘빠른 서비스’에 집중된 만큼 3D 프린팅의 장점이 더욱 직관적으로 적용되었다. 내부 고객 공간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유지관리 비용이 낮고, 외부 차량 흐름 중심의 구조가 서비스 속도 향상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뉴 엘 코스미코(New El Cosmico) _ 미국 텍사스

뉴 엘 코스미코(New El Cosmico)는 미국 텍사스 주 마르파(Marfa)외곽에 새롭게 조성 중인 3D 프린팅 기반의 리조트형 숙박 및 커뮤니티 공간이다. 기존 엘 코스미코는 21에이커 규모의 텐트, 빈티지 트레일러 등으로 구성된 아웃도어 캠프장이자 예술·문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곳으로 운영되어 왔다. 해당 부지는 2025년 7월 1일을 기점으로 폐쇄되며 새롭게 조성되는 부지에서 총 60에이커 규모의 ‘뉴 엘 코스미코’ 프로젝트가 지어지고 있다.

새로운 엘 코스미코는 대형 3D 프린팅 건설 기술 기업인 ICON, 세계적인 건축사무소(Bjarke Ingels Group (BIG)), 그리고 오리지널 엘 코스미코의 창립자 리즈 램버트(Liz Lambert)가 협력하여 추진하고 있다. 프로젝트의 핵심은 ICON의 3D 프린터 ‘Vulcan’을 활용해 돔, 아치, 포물선 형태의 곡면 구조물을 적층 방식으로 구현하는 것이다. 프린팅 재료로 현지 사막의 모래와 흙을 활용한 특수 혼합 재료를 사용한다.

뉴 엘 코스미코의 구성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3D 프린팅 기술을 활용해 제작된 호텔형 숙박 공간과Sunday Homes라는 이름으로 분양되는 고급 주거형 유닛 두 가지이다. 이 외에도 부지 내에는 공용 수영장, 스파, 레스토랑, 커뮤니티 라운지 등이 함께 조성된다. 프로젝트는 2024년 착공되었으며, 일부 시설은 2026년 중 개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전체 단지의 공식 오픈은 2027년 예정이다.

하츠시마 역 _ 일본 와카야마현

하츠시마 역은 JR 서일본이 일본 와카야마현 아리다시에 위치한 기존 역사를 철거하고 세계 최초로 3D 프린팅 기술을 활용해 새롭게 구축한 기차역이다. 2025년 3월 외관이 완성되었으며, 7월에 정식으로 개장할 예정이다. 이 역은 3D 프린팅 기술의 가능성을 실증하기 위한 테스트 케이스로 JR 서일본이 자회사인 세렌딕스(Serendix)와 함께 추진했다.

새로 만들어진 하츠시마 역은 약 10제곱미터 면적에 높이 2.6미터, 폭 6.3미터의 소형 단층 구조물이다. 총 4개 부품 벽체와 지붕으로 나뉘어 있으며 각 부품은 사전 제작된 후 현장에서 조립되었다. 몰탈 계열 재료를 활용한 3D 프린팅 방식으로 공장에서 출력된 뒤, 철근을 삽입하고 콘크리트를 충전하는 하이브리드 공법으로 시공되었다. 전체 조립 시간은 종점 열차부터 첫 차 사이인 6시간 이내로 완료되었다.

새로 지어진 하츠시마 역사는 내진 구조를 갖춘 철근콘크리트 주택 수준의 안정성을 갖추고 있으며, 기존 건축 방식에 비해 비용은 약 절반 수준으로 절감되었다고 한다. 지역의 상징인 감귤 ‘미칸’과 물고기 형태의 부조 ‘레리프’를 외관에 적용해 지역 문화도 반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