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합정동의 한 오래된 빌라에 문을 연 ‘도로보 도넛’은 동경제과학교에서 함께 수학한 친구 3명이 론칭한 브랜드이다. 일본식 도넛을 선보이는 이곳은 맛만큼이나 디자인도 돋보인다. 최중호스튜디오가 도보로 도넛의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공간, 가구를 총괄했기 때문. 매장 곳곳에서 최중호스튜디오의 강점 중 하나인 젊고 트렌디한 감각이 묻어난다. 디자이너는 도넛을 상징하는 4개의 원을 모아 단순하면서도 개성 있는 심벌을 디자인했다.

공간과 가구 디자인에서는 브랜드가 추구하는 날것의 매력을 살리는 데 주력했다. 이를 위해 기존 건물의 구조와 마감재를 최대한 살리는 대신,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활용한 그래픽과 사이니지를 공간 안팎에 적극 활용했다. 브랜드의 정체성을 명확히 표현하는 것 외에 한정된 공간 안에서 효율적인 동선을 구축하는 것도 디자이너의 몫이었다.

가구는 화물 상자를 모티브로 디자인했는데, 이는 실용성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도로보 도넛만의 솔직하고 담백한 정서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합판을 활용한 직관적인 디자인에 위트 있는 그래픽을 더해 브랜드 특유의 개성과 유머를 표현했다. 이 외에도 매장 곳곳에 캐릭터 피겨와 스트리트 컬처 관련 오브제, LP, 잡지 컬렉션 등 창업자들의 소장품을 배치해 마치 사적인 공간에 들어온 듯한 친근한 느낌을 준다. 소규모 F&B 브랜드가 활황기를 지나 이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잘 벼린 디자인과 브랜딩은 단순한 차별화를 넘어 필수 생존 전략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