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디자인 산업의 현재, 2025 디자인 쇼 오스트레일리아
디자인이 오늘날의 삶을 얼마나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가
호주 디자인 산업의 최전선에서 새로운 흐름과 담론을 이끄는 대표 박람회, ‘디자인 쇼 오스트레일리아’가 올해도 주목할 만한 장면들을 만들어냈다.



‘디자인 쇼 오스트레일리아(Design Show Australia)’가 6월 12일부터 14일까지 멜버른 컨벤션 전시센터(Melbourne Convention and Exhibition Centre)에서 개최됐다. 매년 수천 명의 전문가, 디자이너, 제조업체, 브랜드 관계자들이 참여하는 이 행사는 호주의 디자인 생태계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글로벌 디자인 트렌드와의 접점을 마련하는 실질적 플랫폼으로 자리 잡아 왔다. 올해는 약 250개 이상의 전시업체와 1,000개 이상의 브랜드가 참여한 가운데 주거 공간부터 상업 공간, 가구, 조명, 인테리어 마감재, 산업디자인, 제품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의 최신 디자인을 선보였다. 이번 해의 전시는 단순히 신제품과 트렌드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디자인을 매개로 한 사회적이고 환경적인 대화에 초점을 맞췄다. 이는 단순한 시각적 아름다움을 넘어서 지속 가능성과 기술 융합 등의 주제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주제적 깊이와 범위를 확장한 이번 행사는 디자인이 단순한 결과물이 아니라 문제 해결과 미래 제안의 언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2025년 디자인 쇼의 핵심 키워드는 ‘지역성(local)’, ‘미래(future)’ 그리고 ‘연결(connection)’이다. 이 세 가지 키워드는 각기 다른 프로그램과 섹션에서 구체적으로 구현되었다. 먼저 가장 주목할 만한 구성은 ‘Australian Made Trail’이다. 이 섹션은 호주산 제품만을 엄선해 소개하는 큐레이션 프로그램으로 호주 내에서 설계 및 생산된 제품들만 참여 자격을 얻게 된다. 전시장 내에서는 ‘Australian Made’ 인증을 받은 브랜드의 가구, 조명, 텍스타일, 주방 및 욕실 제품들이 독립된 동선으로 소개되며, 호주산 디자인이 지닌 품질, 지속 가능성, 문화적 배경을 함께 조명했다. ‘Australian Made’는 단순한 로컬 생산 제품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호주 디자인 산업이 기후 위기와 환경적 전환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에 대한 사례들을 집약적으로 소개하여 관심도를 높였다. 로컬 목재를 활용한 저탄소 가구, 재활용 알루미늄을 활용한 조명, 빗물을 순환시켜 사용하는 욕실 시스템 등은 단순한 친환경 제품이 아니라 디자인이 기능과 윤리적 책임을 동시에 짊어져야 한다는 선언으로 다가온다. 이는 글로벌 디자인 산업 내에서 호주 디자인이 갖는 고유한 정체성과 방향성을 다시금 정의하는 움직임이다.


또 다른 주요 섹션은 신진 디자이너 발굴 프로그램 ‘Australia’s Next Top Designer’다. 이 프로그램은 호주 전역의 디자인 스쿨 졸업생, 독립 디자인 스튜디오, 독립 창작자들이 참여해 경쟁을 벌이는 방식으로 단순한 경연을 넘어 미래 디자인 담론의 실험실이 된다. 이들은 공간 설계, 가구, 디지털 기술, 웨어러블 기기(wearable device) 등 다양한 영역에서 자신의 디자인 철학을 구현한 작품을 출품하며 본선에 오른 디자이너들에게는 업계 전문가들과 직접 교류하고 비즈니스 기회를 모색할 수 있는 플랫폼이 제공된다. 2025년 프로그램의 특징은 혁신과 윤리의 접점을 보여주는 데 있었다. 참가자들은 인공지능 기반 설계 도구를 활용하거나 3D 프린팅 기술로 지속 가능한 프로토타입을 제작해 전시했다. 특히 모듈형 구조와 순환 가능한 재료를 활용한 디자인은 관객에게 눈으로 보기 좋은 디자인을 넘어서 어떻게 지속 가능한 생활을 실현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기술적 실험이 감성적 언어와 만나는 지점에서 새로운 디자인 언어가 형성되는 것이다.
2025년 ‘Australia’s Next Top Designer’의 수상자는 조 푹센(Joe Fuchsen)이 선정되었는데 그의 작품 ‘X Lamp’는 조명 부문과 종합 대상에서 모두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그는 RMIT 대학교(RMIT University)에서 조명 디자인을 전공한 디자이너로 ‘Glass Rhythm’이라는 브랜드를 통해 수공예 조명을 제작하고 있다. 그의 대표작인 ‘X Lamp’는 정육면체 형태의 프리즘을 활용하여 강렬한 수직선과 내부 반사를 통해 독특한 조명 효과를 구현한 테이블 조명이다. 이 작품은 혁신적인 디자인과 섬세한 장인정신이 돋보여 심사위원들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았다.






디자인 쇼 오스트레일리아는 배움과 협업의 장場 역할도 해냈다. 행사 기간 동안 다수의 세미나와 워크숍, 마스터클래스가 함께 운영되었는데 이에 따라 참가자들은 디자인을 체험하고 토론하며 확장하는 다양한 방식으로 행사에 참여하고 경험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건축가와 인테리어 디자이너를 대상으로 한 소재 혁신 워크숍, AI 기반 공간 최적화 세션, 조명 설계 실무 세션 등이 그러하다. 무엇보다도 이번 행사에는 ‘디자인’과 ‘테크놀로지’의 융합에 주목하는 콘퍼런스 세션이 확대되었으며 기술 중심기업과 디자인 스튜디오 간의 협업 사례 발표도 포함되었다. 이는 디자인을 문제 해결 도구로 바라보는 흐름과도 맞닿아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전체적으로 이번 디자인 쇼는 호주 디자인의 정체성을 재조명함과 동시에 세계적 흐름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를 입체적으로 보여주었다. 특히 환경적 책임, 기술과의 융합, 로컬 생산 기반의 윤리적 소비를 중심축으로 삼으면서 관람객과 참가자 모두가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구조로 설계되었다고 할 수 있다.


디자인 쇼 오스트레일리아는 단지 아름다운 사물들의 나열에 그치지 않고 하나의 사회적 질문과 선언을 동시에 한다. 디자인 쇼 오스트레일리아는 ‘디자인이 과연 오늘날의 삶을 얼마나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집단적 응답이자 호주 디자인계가 내놓는 현실적이고 진지한 제안이다. 각각의 전시는 단순한 결과물이 아니라 문제를 인식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한 과정의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디자인이라는 언어가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삶의 조건을 바꿔놓을 수 있는지를 새삼 체감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물질로 구현된 윤리이자 형태로 드러난 철학이며 공간 속에 스며든 태도다. 이번 행사는 호주 디자인이 단순한 트렌드 추종을 넘어 독립적인 문화와 윤리, 기술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음을 강하게 드러냈다. 삶을 다시 디자인하려는 사람들, 그리고 디자인을 통해 세상을 다시 이해하려는 사람들에게 디자인 쇼 오스트레일리아가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