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테가 베네타가 인트레치아토로 엮어가는 세계
인트레치아토 탄생 50주년 특별 전시 <세계를 엮다 : 인트레치아토의 언어>
정교하게 짜여진 격자무늬를 보면 자연스레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의 시그니처 디자인인 ‘인트레치아토(Intrecciato)’가 생각난다. 이 상징적인 디자인의 탄생 50주년을 기념하며 ‘엮임(Weaving)’이라는 개념과 그 활용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탐구하는 전시 <세계를 엮다 : 인트레치아토의 언어>가 서울 아름지기 문화재단에서 열린다.

정교하게 짜여진 격자무늬를 보면 자연스레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의 시그니처 디자인인 ‘인트레치아토(Intrecciato)**’가 생각난다. 이 상징적인 디자인의 탄생 50주년을 기념하며 ‘엮임(Weaving)’이라는 개념과 그 활용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탐구하는 전시 <세계를 엮다 : 인트레치아토의 언어>가 서울 아름지기 문화재단에서 열린다. 전시에는 보테가 베네타의 유니크한 오브제들과 ‘엮임’이라는 개념을 물리적이면서도 상징적으로 풀어낸 한국 작가 강서경, 박성림, 박종진, 이광호, 이규홍, 이헌정, 정명택, 온지음 집공방, 그리고 홍영인의 작품도 소개된다.
** 보테가 베네타의 시그니처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인트레치아토는 1975년에 처음 선보였으며, 장인의 깊이 있는 지식과 예술적 상상력이 결합한 특별한 기법이다. 인트레치아토 수공예는 얇은 페투체(fettucce)를 가죽 베이스 패널이나 나무 몰드를 따라 손으로 정교하게 엮어 완성된다. 이탈리아의 오랜 직조 전통과 베네토(Veneto) 지역의 가죽 세공 전문성을 바탕으로 탄생한 이 기법은 혁신적인 대각선 패턴, 정교한 비율, 그리고 보테가 베네타 특유의 탁월한 가죽 품질로 차별화된다. 전통적인 직각 위빙 방식에서 벗어난 45도 기울기의 배열은 가방의 형태를 더욱 유연하게 만드는 동시에 독특한 미감을 완성시킨다. 로고 없는 철학을 지켜온 보테가 베네타에게 인트레치아토라는 탁월한 시그니처 수공예를 통해 브랜드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자리잡았다.

조혜영 큐레이터와 함께 기획한 이번 전시는 외부에서부터 시작된다. 건물 외벽에 설치된 이광호 작가의 대형 설치 작업은 금속, 실리콘, 우레탄 등 이질적인 재료들이 유기적으로 얽혀있다. 다양한 재료들이 엮이며 자연스러운 균형을 이루는 이 작품은 단단히 짜인 하나의 가방처럼 완성도 높은 형태를 만들어낸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전통과 현대, 예술과 공예의 경계를 넘나드는 온지음 집공방의 작업이 놓여있다. 조대용 염장, 박진영 작가, 박병용 장인이 협업한 이 작품은 중세 대나무 발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전통 수공예의 방식이 현대적인 오브제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은, 마치 오래된 직조 틀이 새로운 패턴을 만들어내는 듯한 인상을 준다.


홍영인 작가의 ‘동등성’이라는 역사를 주제로 한 대형 태피스트리부터 정명택 작가의 조각에 드러나는 존재와 부재의 상호작용까지, 각 작품은 형태, 개념, 기법, 또는 시간 등을 매개로 서로 다른 맥락들을 공통의 ‘직조적 언어’로 연결하며, ‘엮임’의 예술적 가능성을 확장해 나간다. 전시에는 강서경 작가의 작품도 포함되어 있다. 2023년 작가의 리움미술관 개인전에 보테가 베네타가 후원한 것에 이어 이번에도 함께 협업을 진행했다. 작가는 ‘자리’, ‘무게’, ‘유랑’ 등의 제목이 붙은 평면 작업 네 점을 선보인다.

전시 한편에는 보테가 베네가의 유니크한 오브제들도 놓여 있다. 바로 이탈리아 베네토 지역 아틀리에에서 탄생한 5점의 브릭-아-브락(Bric-a-Brac) 시리즈로 생산 과정에서 남겨진 가죽 조각들을 엮어 만든 일종의 특별한 창작물로 각기 다른 색상과 질감 그리고 형태가 어우러져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되었다. 각 조형물은 인트레치아토의 형태와 움직임을 표현하고 수공예의 진화와 표현력을 보여준다.


한층 간결하고 절제된 연출의 2층 공간에서는 ‘손’ 그 자체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곳에서는 얼마 전 보테가 베네타의 새로운 수장인 루이스 트로터가 SNS에 공개하며 화제가 되었던 캠페인 ‘Craft is our Language’을 만나볼 수 있다. 포토그래퍼 잭 데이비슨(Jack Davison)과 함께한 이번 캠페인은 손이 단지 기능의 기관이 아니라, 창작과 연결, 소통의 매개로 해석해 담아냈다. 손이 만든 물건이 아닌, 손 그 자체가 시각적 주체로 등장하는 것이다. 이 시리즈는 브루노 무나리(Bruno Munari)가 1963년 출간한 <이탈리아어 사전 부록>에서 영감을 받았다. 무나리는 이 책에서 손짓의 기호학을 유쾌하고도 날카롭게 풀어냈고, 보테가 베네타는 현대적으로 해석해 새로운 캠페인으로 탄생시켰다. 공간의 중앙에는 관람객이 직접 인트레치아토 기법을 체험해볼 수 있는 위빙 키트가 마련되어 있어 손의 감각을 통해 수공예의 철학을 더욱 가까이서 느낄 수 있다.

이번 전시는 6월 21일과 22일, 단 이틀간 무료로 공개된다. 직조라는 은유와 손의 감각, 관계의 구조를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내며, 우리가 무심히 지나쳤던 물성과 연결의 아름다움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다양한 작가들의 협업 작품을 감상하고, 보테가 베네타의 가죽으로 인트레치아토를 직접 엮어보는 체험까지 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놓치지 말고 방문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