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와 공존하는 추모를 디자인하다, 레스팅 리프

유골을 바닷속 생태계에 기여하는 구조물로 디자인해, 추모와 복원을 동시에 이끌어내는 ‘레스팅 리프’의 두 창업자와 이야기를 나눴다.

생태계와 공존하는 추모를 디자인하다, 레스팅 리프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장례를 경험한다. 하지만 이 의식은 종종 높은 비용과 복잡한 절차, 감정과 분리된 형식 속에서 치러진다. 매장이나 화장 방식은 환경에도 영향을 미친다. 영국의 두 디자이너, 아우라 무릴로 페레즈(Aura Murillo Perez)와 루이스 스카젬(Louise Skajem)이 2022년에 창립한 스타트업 ‘레스팅 리프(Resting Reef)’는 이런 문제점에 주목했다.

레스팅 리프는 유골을 바닷속 생태계에 기여하는 구조물로 전환해, 추모와 복원을 동시에 이끌어낸다. 지난해에는 반려동물의 유골로 만든 인공 리프 24개를 발리 북부 해안에 설치했다. 1년이 지난 지금, 그 주변에는 84종 이상의 물고기가 서식하고 있으며, 인근 지역과 비교해 생물다양성이 14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레스팅 리프의 공동 창립자에게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Founders portrait
레스팅 리프의 창립자, 루이스 스카젬(왼쪽)과 아우라 무릴로 페라즈.
죽음을 생태 복원의 기회로 전환한다는 발상이 매우 인상적이다. 어떻게 레스팅 리프를 시작하게 됐나?

나(아우라 무릴로 페레즈)는 아버지의 장례를 준비하면서, 그 과정이 지나치게 차갑고 관료적이며 비인격적으로 느꼈다. 이 일을 계기로 죽음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됐고, 전 세계의 다양한 장례 의식을 살펴보며 보다 인간적이며 의미 있고, 환경까지 고려한 장례 모델을 고민하게 됐다. 지속 가능한 디자인 분야에서 활동하던 루이스는 해조류 같은 바이오 소재를 활용해 플라스틱과 유해 물질을 대체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었다. 서로 다른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지만 결국 같은 질문으로 이어졌고, 이를 하나의 솔루션으로 통합하게 됐다. 임종 방식을 새롭게 상상해보고, 죽음을 삶의 축제로 전환하며, 자연의 순환 속에서 더 크고 지속적인 의미를 남길 수 있는 방법을 디자인을 통해 제안해보고자 했다.

유골, 조개껍데기, 화산 모래 등 리프에 사용한 소재는 어떤 기준으로 선정했나? 지역에 따라 재료나 구조가 달라진다고 들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유골에는 칼슘, 인산염이 풍부하게 함유돼 있어 해양 생물의 성장에 효과적인영양 공급원이 된다. 이에 유골을 포함한 지속 가능한 배합법을 개발했다. 그 외의 소재는 현지 커뮤니티와 협력을 바탕으로 선정한다. 자원을 새로 채굴하지 않으면서도 문화적 맥락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현지 커뮤니티가 산호초 설치 과정부터 장기적인 생태계 모니터링까지 모든 단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Copy of Memorial Reef about to be placed underwater
현지 커뮤니티와 함께 레스팅 리프 설치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리프의 구조와 형태도 흥미롭다. 터널 구조나 질감 등은 어떤 생태학적 관찰에서 비롯된 것인가? 디자이너로서 어떤 미학적 기준을 반영했는지도 궁금하다.

복원하고자 하는 해양 환경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출발했다. 딱딱한 표면에 정착하며 사는 저서생물을 위해 텍스처와 틈새를 세심하게 설계했고, 자연스러운 군락 형성을 유도하고자 했다. 움직이는 종, 예를 들면 물고기나 게 등을 위해서는 단일 출구가 있는 터널(은신처)과 다중 출구가 있는 터널(탐색 공간)을 함께 설계해 생태적 다양성을 고려했다. 이런 설계는 자연 생태계의 구조와 기능을 참조하는 생체 모방 원칙(biomimicry)에 기반한 것이다. 이를 위해 조각 및 정교한 수작업 경험이 풍부한 디자이너들과 산호초 복원 전문가로 구성된 팀이 긴밀하게 협업했다.

리프는 생물들의 서식지이자 동시에 추모 공간이다. 감정적인 위로와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모두 고려해야 했을 텐데.

자연에서 비롯된 유기적인 형태는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인간은 아름다움과 완전성, 조화를 인식할 때 본능적으로 자연의 형태를 연상하기 때문이다. 익숙하면서도 시간을 초월한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이 조형 언어는, 유족에게는 부드럽고 위로가 되는 감정적 공명을, 수중 환경에는 시각적으로 조화롭고 완성도 있는 아름다움을 제공한다.

Copy of Wave Memorial Reef before underwater placement
자연 생태계의 구조와 기능을 참조하는 생체 모방 원칙에 기반해 리프를 디자인했다.
발리에서 파일럿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1년이 지났다. 어떤 변화가 있었나?

이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진화하는 디자인’의 개념에 기반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구조가 변화하고, 실제 산호초처럼 살아 있는 존재로 기능해 주변 생태계를 회복시키는 데 기여하길 바랐다. 그리고 지금, 그 기대가 현실이 되고 있다. 추모를 위해 제작한 리프가 다채로운 해양 생명이 살아 숨 쉬는 서식지가 돼, 훼손된 해양 생태계를 회복시키는 데 직접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 무척 인상 깊고 시적으로 느껴진다. 사회적으로도 10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했고, 에코 투어리즘의 거점이 되어 지역 경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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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프는 처음부터 진화하는 디자인이 적용됐다. 시간이 지나며 실제 산호초처럼 기능해, 주변 생태계를 변화시키고 있다.
앞으로 레스팅 리프는 어떤 형태로 진화할 예정인가?

현재는 반려동물의 추모 서비스에 한정돼 있지만, 곧 사람에 대한 서비스도 시작할 예정이다. 레스팅 리프는 처음부터 자연 중심적인 접근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인간의 감정을 배려하는 세심한 설계를 고려했다. 예컨대 가족이 보관할 수 있는 미니어처 리프, 좌표가 포함된 인증서, 수중에서 리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주기적으로 알리는 사후 관리 서비스 등을 마련했다. 현장을 직접 찾아가 고인을 추모하는 체험형 리프 서비스도 운영한다. 가족들은 현지 추모 의식에 참여하고, 스노클링이나 다이빙으로 바닷속에서 리프를 만날 수 있다. 우리는 동네마다 묘지가 있듯, 누구나 인근 바다에서 레스팅 리프를 만날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현재 발리 외에도 멕시코, 영국 등으로 서비스 확장을 준비 중이다. 궁극적으로는 리프와의 감정적 연결을 이어가며 해양 생태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높이는 것이 목표다.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565호(2025.07)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매거진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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