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체 디자인 보호 20주년, 다시 ‘꼴’을 묻다

대한민국에서 글자체 디자인이 법적 보호를 받기 시작한지 올해로 꼭 20년이 됐다. 이 제도가 무엇을 지켜왔고, 무엇을 놓쳐왔는지 되짚을 시점이다. 이 사안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법률사무소 아티스의 서유경 변호사가 현행 제도의 구조와 쟁점을 짚고, ‘꼴’을 둘러싼 법과 디자인의 관계를 조명했다.

글자체 디자인 보호 20주년, 다시 ‘꼴’을 묻다

2025년 7월 1일은 우리나라에서 글자체 디자인이 디자인 보호법의 테두리 안에서 법적으로 보호받기 시작한지 꼭 20년이 되는 날이다. 글자체가 ‘디자인권’으로 등록 대상이 된 것은 2004년 12월 3일에 개정한 디자인보호법(법률 제7289호)에 따른 것이며, 그 시행일이 2005년7월 1일이다. 그리고 바로 그날, 대한민국 최초의 글자체 디자인 출원이 이루어졌다. 20년이 지난 지금, 이 제도의 출발점을 다시 돌아보며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글자의 ‘꼴’은 왜 보호받아야 했고, 지금은 어떻게 다뤄지고 있으며, 앞으로는 어떤 방향을 향해 가야 할까?

문자 보호에 대한 입장은 나라마다 다르다. 미국은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앞서 겪었다. 미국은 1842년 세계 최초로 디자인 특허제도를 도입했는데, 그 첫 번째 디자인 특허(USD1)가 바로 활자체 디자인이었다. 조지 브루스(George Bruce)가 출원한 인쇄용 활자체와 장식 테두리 디자인(Printing typefaces and borders pieces)은 뉴욕을 중심으로 대중 저널리즘이 폭발하던 ‘페니 프레스(penny press)’ 시대, 시각적 소통의 수요에 응답한 창의적 결과였다. 미국 특허상표청(USPTO)은 글자체를 금속활자처럼 실물로 제작했든, 컴퓨터상에서 작동하든 관계없이 이를 ‘제조 물품(article of manufacture)’의 디자인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저작권법의 입장은 다르다. 1976년 미국 저작권법 개정 당시 의회는 타입페이스 디자인은 ‘시각예술 저작물(그림, 그래픽, 조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명확히 밝혔다. 이후 1978년 엘트라 코퍼레이션 대 링어(Eltra Corp. v. Ringer) 사건에서 법원은 기능적 목적만 가진 타이프페이스는 아무리 독창적이고 미려해도 ‘예술작품’으로 보호받을 수 없다고 봤고, 그 형태에 독립적으로 식별 가능한 예술적 요소가 있을 경우에 한해 저작권 등록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따라서 미국 법원은 미국 저작권청이 엘트라 코퍼레이션이 주장한 글자체 저작권 등록을 거부한 조치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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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로 출원된 한글 글자체. 디자인권자는 김주용이며, 출원일은 2005년7월1일, 등록번호는 3004230720000이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와보자. 우리도 이와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 1990년대 초반, 서체 디자이너들과 폰트회사들이 활자 도안에 대해 저작권등록을 신청했지만 문화체육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사건은 대법원까지 올라갔고(대법원 1996. 8. 23. 선고 94누5632), 법원은 글자체 도안은 저작권 보호 대상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디자이너들은 저작권이라는 보호의 문턱 앞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런데 불과 5년 후 디지털 기술이 새로운 길을 열었다. 2001년 대법원은 ‘폰트파일’은 컴퓨터 프로그램 저작물로 보호될 수 있다고 판시했다(대법원2001. 6. 26. 선고 99다50552). 글자의 꼴 자체는 아니지만, 폰트파일은 컴퓨터가 실행하는 명령어의 집합으로, 특정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프로그램이라는 점이 인정된 것이다. 그리고 다시 3년 뒤, 2004년 말 디자인보호법이 개정되면서 글자체의 꼴 자체를 하나의 디자인으로 등록해 보호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로써 우리는 미국처럼 글자체는 디자인으로, 서예(캘리그래피)와 폰트 파일은 저작권으로 보호받는 이중 보호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그로부터 20년 후 폰트 파일은 저작권 보호와 라이선스 사업을 통해 눈에 띄게 성장했다. 한때 ‘침해 소송’, ‘합의금 장사’ 논란이 언론사 사회면을 달구며 관련 사건이 법률 시장으로 쏟아지기도 했다. 최근 폰트 파일은 클라우드 기반 소프트웨어 서비스와 결합되며 구독형 비즈니스 모델로 정착했다. 사용자는 소프트웨어처럼 폰트를 정기 구독하고, 기업은 약관에 따라 사용권을 부여해 수익을 창출한다.

하지만 글자체 디자인의 꼴을 디자인권으로 보호하는 길은, 저작권 분야만큼 주목받으며 성장하지 못했다. 디자인권의 보호범위는 전통적으로 물품의 형태에 한정되었지만, 오늘날 글자체는 웹사이트, 디지털 기기, 전자책, AR·VR 등 물리적 제품을 넘어 디지털 전반에 걸쳐 사용되고 있다. 그럼에도 디자인보호법상 글자체디자인의 ‘실시’ 개념은 여전히 물품 중심에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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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로 등록된 한글 글자체. 디자인권자는 김명담이며, 등록일은 2006년6월7일, 등록번호는3004169120000이다.

또한 글자체 디자인권의 ‘효력 제한’ 규정에 대한 아쉬움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법은 관심을 받는 만큼 발전하는데, 폰트 파일 저작권에 과열될 정도로 집중된 관심에 비해 글자체 디자인권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디자이너들 사이에서도 ‘글꼴은 파일로 보호된다’는 인식은 널리 퍼져있지만, 디자인권과 저작권이라는 두 제도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에 대한 이해는 부족하다. 글자의 시각적 형태(꼴)는 디자인권이 있어야 보호되며, 단순히 파일이 저작권으로 보호된다고 해서 그 형태 자체까지 보호되는 것은 아니다. 현업에서도 혼동이 잦은 만큼이 차이는 분명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이제 보호 기간이 끝난 글자체들이 공공의 꼴로 환생할 차례다. 디자인권의 보호 기간은 등록 출원일로부터 20년(개정 전에는 15년)으로, 초기에 등록된 글자체 디자인들이 하나둘씩 ‘공공 영역’으로 돌아오고 있다. 이 시점은 단순한 소멸이 아니라, 창작이 순환하는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누군가의 손에서 탄생한 글자의 꼴이 디자이너를 떠나 다시 사회의 창작 재료가 되는 것이다. 디자인의 생명 주기는 그렇게 완성된다.

이제 우리는 파일이 아닌 꼴 자체에 대해 이야기할 때다. 그것은 단지 법적 권리를 넘어 해석과 재조합, 창의적 변형을 통해 다시 살아날 수 있는 문화적 자산이다. 20년 전 우리는 그 꼴을 디자인으로 보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되묻는다. 그 보호는 충분했는가? 오늘의 현실에 부합하는가? 우리는 그 꼴이 다시 태어날 수 있는 환경을 제대로 마련하고 있는가? 디자인권 20주년은 단순한 회고가 아니라, 다음 질문을 던지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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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관점에서 디자인을 연구하는 변호사, 변리사이자 리걸 디자이너. 서울대학교에서 지적재산권법을 전공하여 ‘가상물품의 형태 보호를 위한 지적재산권법 체계에 관한 연구’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법률사무소 아티스를 운영하며 여러 공공기관에서 법률 분야 위원을 역임했다. 현재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디자인학부에서 법률 관련 수업을 하고 있다.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565호(2025.07)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매거진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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