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하는 몸짓, 렁볼(L’ENVOL)
무용과 사진의 예술적 교감과 기록
파리의 대표 사진 전문 갤러리 ‘라 갤러리 드 랑스텅’에서 무용수들의 비상 순간을 담은 사진전 〈렁볼〉이 열리고 있다.


파리 마레 지구의 좁은 골목길, 46 rue de Poitou에 자리한 ‘라 갤러리 드 랑스텅(La Galerie de l’Instant)’는 그 이름처럼 ‘순간’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다. 2008년 사진 애호가이자 문화기획자인 줄리아 그라뇽(Julia Gragnon)에 의해 설립된 라 갤러리 드 랑스텅은 파리에서 가장 상징적이자 대중적인 인기도 누리는 사진 전문 갤러리로 영화, 음악, 패션, 무용, 그리고 도시를 주제로 한 사진전을 꾸준히 선보이며 파리지앵과 전 세계 관광객, 그리고 사진 수집가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왔다. 라 갤러리 드 랑스텅이 특별한 이유는 예술 감상의 공간을 넘어 개인의 기억과 역사, 시대정신을 사진을 통해 소환하고자 하는 철학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할리우드의 황금기 스타들, 파리의 거리, 무용수의 몸짓 등 ‘시간 속 사라질 뻔한 찰나’를 영원히 붙잡는 사진의 힘을 믿고 이를 전시해왔다. 작은 공간이지만 전시 마다 진심 어린 큐레이션이 돋보이는 전시들은 늘 관객에게 강렬한 울림을 전하는 중이다.


갤러리를 설립한 줄리아 그라뇽은 파리에서 태어나 사진과 예술, 무용이 삶의 일부인 가정에서 성장했다. 그녀의 아버지 프랑수아 그라뇽(François Gragnon)은 저명한 사진작가였으며, 어머니 테사 보몽(Tessa Beaumont)은 한때 무용수였다. 이 두 예술적 DNA는 줄리아의 전시 기획 철학에도 깊게 스며들어 그녀는 단순히 작품을 나열하기보다 사진을 통해 이야기를 전하고 개인적 감정을 나누는 소통을 공간으로 갤러리를 운영하려고 한다. “여기에서는 개인적인 것과 직업적인 것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이 공간의 진정성을 만들었고, 관객들은 이 진정성에 공감한다고 생각해요.”

갤러리는 개관 이래 수많은 주목할 만한 전시를 선보였다. 제임스 딘, 오드리 헵번, 마를론 브란도 같은 영화 아이콘들의 미공개 사진전, 브리지트 바르도와 세르주 갱스부르의 일상적 순간을 담은 작품들, 그리고 지난해 큰 호응을 얻었던 무용 사진전 ‘몸과 영혼(Corps et âme)’에 이르기까지, ‘라 갤러리 드 랑스텅’은 늘 기억의 예술로서 사진을 바라본다.

이번 전시 〈렁볼(L’ENVOL)〉은 무용수들의 비상하는 순간을 주제로 여러 사진작가가 포착한 드라마틱한 장면들을 모았다 . 줄리아 그라뇽은 전시 기획 노트에 이렇게 전시를 설명했다. “무용수들의 몸은 자유를 향한 갈망, 완벽함에 대한 집착, 예술가로서의 존재 의미를 상징합니다. 그들의 점프와 회전은 찰나의 것이지만 그들은 그 순간을 위해 평생을 바치며 살아갑니다.”


전시의 중심에는 미국 출신의 사진가 매튜 브룩스(Matthew Brookes)가 있다. 포스터에 사용된 휴고 마르샹(Hugo Marchand)의 점프 사진은 제목인 ‘렁볼(비상)’을 떠오르게 하는데,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에투왈(최고 무용수)인 휴고 마르샹의 몸이 마치 공중에서 정지된 듯한 모습은 수년간의 훈련 끝에 도달한 예술가로서의 정수가 응축된 절정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줄리아 그리뇽은 무용수의 몸을 하나의 조각상처럼 포착한 이 작품을 보고 즉시 전시 기획을 결심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 외에도 매튜 볼(Matthew Ball)이 백조의 호수의 백조로 분해 보여주는 어둠과 빛의 대비가 만든 극적 긴장의 순간, 그리고 폴리나 세미오노바(Polina Semionova)의 단단한 몸의 선과 여린 눈빛이 전달하는 아우라 등 무용 사진가로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매튜 브룩스의 대표작들을 통해 인물의 감정과 에너지를 세밀하게 포착하는 그의 스타일을 엿볼 수 있다.


파리 오페라 발레단 공식 사진가인 마리아-헬레나 버클리(Maria-Helena Buckley)가 기록한 무대 위 무용수들의 생생한 순간도 있는데, 클래식 발레 지젤을 대표하는 여무용수들의 군무가 만들어내는 환상적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다. 질 타피(Gilles Tapie)가 담은 세계적 무용수 실비 기엠의 발끝 클로즈업 사진에서는 집중된 긴장과 무용수의 세월이 만든 발의 형태가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그 외에도 화려한 배우의 틀을 벗고 순수하게 정원에서 춤을 추는 마릴린 먼로, 브리지트 바르도와 오페라 무용수 미셸 르노가 20세기 중반 파리의 거리에서 즉흥적으로 춤추는 모습도 보너스처럼 발견할 수 있다.


전시 전체는 무용의 리듬과 비상을 상징하는 흐름을 반영해 배치됐다. 연습실과 무대 밖 장면들로 시작해 점차 무대 위의 고조된 순간으로 나아가며 감정의 진폭을 키워간다. 이런 구성은 마치 리허설부터 공연 클라이맥스까지 함께 체험하는 듯한 서사적 구조로 보인다. 특히 흑백과 컬러의 대조적 배열을 느낄 수 있는데, 매튜 브룩스, 로버트 두아노, 프랑수아 그라뇽 등의 흑백 사진은 강한 형식미를 전달하며 반대로 마리아 헬레나 버클리나 샘 쇼(Sam Shaw)의 컬러 사진은 무용수의 일상적 아름다움, 강성적 깊이를 전달한다. 이런 두 톤의 리듬이 관객에게는 시각적 그리고 감정적 변화를 주어 전시 감상의 피로를 줄이고 내면적 몰입을 높이게 한다.

갤러리는 관객이 사진 한 점 한 점을 마주하며 작품 속 이야기와 감정을 음미하도록 공간을 설계했다. 작은 전시장 안에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며, 무용수들의 비상은 벽을 뚫고 나올 듯 생생하다. 사진이 단순한 이미지를 넘어 시간을 붙잡아 기억을 만드는 예술임을 믿는 ‘라 갤러리 드 랑스텅’의 이번 전시에는 무용수들의 비상하는 찰나를 영원히 남기려는 사진가들의 노력과 그 찰나가 주는 감동을 관객과 나누려는 큐레이터의 진심이 담겨있다. 올여름 파리를 찾는다면 이 작은 갤러리에서 몸과 예술, 그리고 자유의 의미를 되새겨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