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만에 바뀌는 벤틀리 엠블럼의 비하인드 스토리
미래와 비전을 담은 벤틀리의 새로운 엠블럼
106년 전통을 자랑하는 세계적인 명품 자동차 브랜드 벤틀리가 미래의 비전을 담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새로운 엠블럼을 공개했다. '벤틀리 윙(Bentley Wing)' 또는 '윙드 B (Winged B)'라고 불리며 벤틀리의 상징으로 자리 잡아온 엠블럼은 지금까지 네 차례의 변화를 겪어 왔고, 이번이 다섯 번째다. 벤틀리 디자인 총괄 로빈 페이지(Robin Page)의 주도 하에 벤틀리 자체 디자인 팀이 직접 제작한 새 엠블럼은 브랜드 DNA의 새로운 장을 열고 있다.

106년 전통을 드러내는 존재, 윙드 B
젊은 시절 오토바이와 자동차 경주 선수로 활동했던 월터 오웬 벤틀리(Walter Owen Bentley)는 항공기 및 자동차 엔진 설계자로 명성을 얻었던 인물이다. 1919년에 자신의 이름을 딴 자동차 회사를 설립하게 된 그는, 퍼포먼스의 한계를 돌파하고자 하는 자신의 비전을 담은 엠블럼의 필요성을 느꼈다. 이에 따라 벤틀리는 친구이자 저명한 자동차 일러스트레이터였던 F. 고든 크로스비(F. Gordon Crosby)에게 엠블럼 디자인을 의뢰했다.

크로스비는 벤틀리의 ‘B’ 이니셜을 중심으로 양쪽을 감싸는 날개 한 쌍을 더하는 것으로 디자인을 완성했다. 이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전투기 엔진을 설계했던 벤틀리의 이력을 상징적으로 반영한 것이었다. 또한 그는 훗날 위조될 것을 고려해 좌우 날개의 깃털 개수를 다르게 디자인하는 세심함도 보였다. 1931년에는 좌우에 각각 10개의 깃털이 뻗은 대칭형 디자인의 두 번째 엠블럼이 탄생했다. 이 버전은 이후 60년간 사용되며 벤틀리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사랑받은 엠블럼으로 남게 된다.

1996년에 등장한 세 번째 엠블럼은 크로스비의 오리지널 디자인에 경의를 더하는 동시에 장식적인 요소가 가미되었다. 이후 1998년 벤틀리가 폭스바겐 그룹의 산하로 인수되며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다. 벤틀리의 새로운 시대를 연 1세대 컨티넨탈 GT의 탄생을 기리며, 2002년에 네 번째 엠블럼이 공개되었다. 이 엠블럼은 1919년 원형 디자인의 비대칭적 날개 구성을 되살리는 디자인으로 창립자의 정신을 현대적으로 계승하고자 했다. 이 네 번째 엠블럼은 23년 동안 벤틀리의 핵심 아이덴티티로 사용되어 왔다.
23년 만에 교체되는 엠블럼 디자인에서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새로운 엠블럼이 추구한 디자인 목표는 이전 엠블럼의 아름다운 디테일을 계승하면서도 보다 현대적이고 진보적인 형태를 구현하는 것이었다. 이런 방향성 아래 완성된 엠블럼은 이전 버전의 엠블럼에 비해 훨씬 날카롭고 각진 실루엣이 특징이다. 요소별로 대대적인 수정이 가해져 깔끔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인상을 주고 있다.

‘B’ 로고가 새겨진 센터 주얼(Centre Jewel)에는 고급 시계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은 디테일을 반영해 우아함과 깊이감이 더해졌다. 새롭게 디자인된 날개는 부드러운 곡선 대신 매의 각진 날개를 연상시키는 극적인 형태로 진화했으며 ‘B’로고 하단의 깃털은 완전히 제거되어 시각적으로 간결함을 높였다. 특히 날개 사이의 ‘B’ 센터 주얼은 날개 없이 독립적으로 사용될 수 있어 다양한 플랫폼과 디지털 환경에서 유연하게 사용이 가능해졌다. 앞으로 생산되는 모든 벤틀리 모델에 적용될 예정이다.

럭셔리 브랜드가 자신이 만들어낸 이야기의 산물이라면, 엠블럼은 그 브랜드의 서명과 같습니다.
로빈 페이지, 벤틀리 디자인 총괄
100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 벤틀리의 상징적인 윙드 B는 이번이 네 번째 진화에 불과하며,
이를 새롭게 디자인하는 것은 신중을 기해 이뤄진 중요한 작업이었습니다.
디지털화로 인해 복잡성과 정확성이 끊임없이 증가하는 시대에, 단순화와 정제 작업은 현대적인 필수 요소입니다.
따라서 새로운 엠블럼은 이전보다 더욱 간결하고, 날렵하며, 더욱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벤틀리의 역동적인 미래를 상징하는 새로운 엠블럼은 간결하면서도 정교한 디테일이 조화를 이루며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미감을 보여준다. 전통과 미래가 아름답게 공존하는 이 특별한 로고가 우리에게 더욱 의미 있는 이유는, 바로 한국 디자이너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내부 공모를 통해 벤틀리 인테리어 디자인 팀 소속의 남영광 디자이너가 제안한 디자인이 최종 채택되었고 이후 브랜드 디자인팀에 의해 완성되어 공식 엠블럼으로 자리 잡았다.
새로운 엠블럼이 선보이는 자리

지난 7월 7일, 벤틀리의 유서 깊은 건물 중 하나인 ‘프런트 오브 하우스(Front of House)’가 새롭게 단장되어 공개되었다. 1930년 대 영국 크루(Crewe)에 지어진 이 건물은 벤틀리 유산의 초석이 되어왔으며,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비롯하여 많은 유명 인사들이 방문한 장소로 알려져 있다. 이번 리노베이션은 벤틀리 디자인팀이 직접 설계한 참신한 건축적 해석과 지속가능성을 반영한 시도로 주목받고 있다. 이들이 건물을 철거하지 않고 원형을 보존한 채 확장한 점은 탄소중립 공장이라는 벤틀리의 친환경 비전과 함께,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역사적 연속성에 대한 존중을 보여준다. 새롭게 선보인 벤틀리의 엠블럼 역시 이 공간에 함께 자리하며 전통을 기반으로 한 미래 비전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리노베이션의 중심에는 기존 대비 약 두 배 규모로 확장된 디자인 스튜디오가 있다. 이 공간은 벤틀리의 외장 및 내장 디자인을 담당하는 약 50명의 디자이너들이 함께 협업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덕분에 브랜드 역사상 처음으로 한 지붕 아래에 컬러와 트림(Trim) 디자인, 개인 맞춤 제작 부서인 뮬리너(Mulliner), 사용자 경험 UX 및 사용자 인터페이스 UI의 디자이너들이 모이게 되었다.


벤틀리 회장 겸 CEO인 프랭크-스테펜 발리서 박사(Dr. Frank-Steffen Walliser)는 “우리는 현재 벤틀리 역사상 가장 큰 디자인 혁명을 주도하고 있습니다”라며 “한 공간에서 진정한 협업 그룹을 형성할 수 있게 되면 협업 방식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며, 이러한 전체적인 팀은 디자인을 통해 진정한 성공을 거둘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럭셔리 자동차 업계에서 전례 없는 규모의 투자를 통해 탄생한 디자인 스튜디오는 앞으로 벤틀리의 디자인 방향성을 제시하는 핵심 시설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 새로운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공개된 ‘EXP 15 콘셉트카’에서도 새로운 엠블럼을 함께 만나볼 수 있어 눈길을 끈다. 이 콘셉트카는 벤틀리의 대표적인 고성능 투어링카, ‘그랜드 투어러(Grand Tourer)’의 유산을 21세기적 감각으로 재구성한 모델이다. 길게 이어진 보닛과 직각에 가깝게 세워진 전면 그릴은 ‘블루 트레인(Blue Train)’이라고 불렸던 전설적인 3인승 ‘벤틀리 스피드 식스(Bentley Speed Six)’의 실루엣을 연상케 한다. 여기에 현대적인 표면 처리 기술과 정교한 조명, 직관적인 디지털 인터페이스 등이 결합되어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이 탄생했다. 실내와 외관 곳곳에는 벤틀리의 상징적인 다이아몬드 퀼트 패턴이 새로운 방식으로 재해석되어 사용되었다.

비록 EXP 15는 양산 계획이 없는 콘셉트 모델이지만, 2026년 공개 예정인 벤틀리 최초의 순수 전기 양산차에 대한 디자인적 단서를 담고 있기에 전 세계 자동차 업계와 팬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전통의 품격에 미래의 기술과 감성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은 벤틀리가 나아갈 다음 세기를 엿보게 하기 충분했다.
엠블럼과 함께 하는 벤틀리의 새로운 시도
새롭게 공개된 엠블럼, 확장된 디자인 스튜디오, 그리고 콘셉트카에 이르기까지, 벤틀리 전반에 걸쳐 의미 있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이와 같이 전통을 고수하되 시대에 뒤처진 요소는 과감히 덜어내고, 오늘날의 감각에 맞는 세련됨과 실용성을 더하고 있는 모습에서 100년이 넘는 유산을 지닌 브랜드의 내공을 느낄 수 있다. 트렌드를 맹목적으로 따르기보다는, 브랜드의 본질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신중하게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전략적 접근은 자동차 산업을 넘어, 라이프스타일 전반으로 확장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마이애미에서 세워지는 ‘벤틀리 레지던스(Bentley Residence)’다. 럭셔리 주거 공간 건설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여러 회사들이 시도한 것으로, 브랜드의 철학과 가치를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공간을 제안하며 고객들의 충성도를 높이고자 하는 시도 중 하나다. 미국 내 부촌으로 꼽히는 마이애미에는 벤틀리 외에도 애스턴 마틴, 메르세데스 벤츠, 포르쉐의 건물이 들어서고 있는 중이다. 벤틀리는 건물 내 특수 차량 엘리베이터를 통해 세대 앞까지 차량으로 이동 가능하게 만들며 고급 차량 브랜드로서의 정체성을 건축물에 그대로 녹여냈다. 각종 럭셔리 편의시설도 함께 운영될 이 레지던스는 2028년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주거시설뿐만 아니라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서의 입지를 강화하고자 다양한 생활 관련 제품들을 선보이고 있는 점도 눈길을 끈다. 최근 벤틀리 홈(Bentley Home)은 우아한 아웃도어 생활을 위한 최초의 피크닉 컬렉션 ‘하이드(Hyde)’와 야외용 가구 컬렉션 ‘솔스티스(Solstice)’를 출시했다. 직조 피크닉 바구니, 싱글 및 더블 보틀 홀더, 피크닉 담요가 포함된 실용적인 피크닉 세트와 고급스러움과 세련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야외용 가구에서 벤틀리가 자동차를 넘어 일상의 소소한 순간까지도 브랜드의 철학을 담으려 노력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이제 벤틀리의 디자인은 더 이상 자동차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동 수단이라는 개념을 뛰어넘어 삶 전반을 디자인하고, 감각을 설계하는 언어를 만들며, 궁극적으로는 브랜드와 사용자 사이의 깊은 정서적인 연결을 구축하려 하고 있다. 오늘날의 럭셔리 브랜드가 개인의 취향과 가치관에 좀 더 밀접한 연결을 시도하는 가운데, 벤틀리는 이러한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모든 경험 속에 브랜드의 세계관을 구현하려 하고 있다.

이런 시도를 가장 신속하고 명확하게 그러낸 것이 바로 브랜드의 상징인 ‘엠블럼’이다. 그래서 벤틀리는 현명하게 여러 플랫폼을 넘나들 수 있는 엠블럼을 디자인했다. 새로운 앰블럼에서 시작해, 스튜디오와 콘셉트카, 주거공간과 라이프스타일 제품에 이르기까지, 벤틀리가 선보이는 일련의 변화는 단절이 아닌 진화다. 벤틀리가 펼쳐갈 다음 세기와 그 여정 속에서 만들어질 새로운 디자인에 눈길이 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