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듄〉의 미술 감독은 창의력을 어떻게 실현했을까?
전 세계가 열광하는 영화 〈듄〉 시리즈. 우주를 배경으로 한 원작 소설을 영상으로 완벽하게 구현했다.
프랭크 허버트(Frank Herbert)의 소설 〈듄(Dune)〉은 수만 년에 이르는 시간을 배경으로 우주 행성에서 살고 있는 여러 민족과 세력들 간의 다툼을 다룬 이야기로 출간되자마자 전 세계 사람들을 열광시켰다. 미국 잡지 와이어드(WIRED)는 ‘스타워즈에서부터 왕좌의 게임까지, 많은 후속 작품에 영향력을 끼친 작품’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1965년에 첫선을 보인 작품이지만 현재까지도 여전히 그 인기는 식지 않고 있으며, 그 명성에 힘입어 수차례 영화, 드라마로 제작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규모가 워낙 큰 작품이라 제작이 추진되다가 무산된 경우가 다수 있었으며, 기술력의 부족으로 인한 열악한 특수·시각 효과는 팬들에게 아쉬움만 남겼다. 그나마 데이비드 린치(David Lynch) 감독의 1984년 버전은 그 당시 기술력에도 불구하고 현재에 봐도 인상적인 몇몇 장면들이 있어 눈길을 끈다.
드니 빌뇌브의 듄
시간이 흘러 이 소설은 드니 빌뇌브(Denis Villeneuve) 감독의 지휘 아래 새로운 영화 시리즈로 선보였다. 2021년 파트1이, 그리고 올해 파트2가 개봉되었다. 영화마다 뛰어난 시각효과와 디자인으로 빚어낸 웅장한 영상미에 세계적인 영화 음악 작곡가 한스 짐머(Hans Zimmer)가 장면에 걸맞게 설계한 음악이 곁들어지면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마치 소설 속에 있는 것 같은 몰입감을 선사했다.
영화 내에서는 듄의 세계관 속에서 귀중한 자원으로 여겨지는 ‘스파이스’가 채굴되는 유일한 행성인 ‘아라키스’, 아라키스 내를 돌아다니는 거대한 모레 괴물 ‘샤이 훌루드’가 진짜 존재하는 것처럼 표현된 것은 물론이고, 행성 내에 있는 건물들, 이동 수단들의 모습 또한 현실적인 모습으로 구현되었다. 영화를 본 사람들을 단박에 ‘듄친자’로 만든 영화 내의 모든 요소들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다 분야(음악/미술/시각효과/촬영/편집/음향) 수상의 영광을 얻으며 그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현실을 기반으로 구현한 환상
영화를 보는 이들을 압도하게 만들었던 아름다운 영상들은 감독인 드니 빌뇌브의 꿈이 현실화된 것이다. 어릴 적부터 〈듄〉을 읽으며 자랐던 빌뇌브는 꿈까지 꿀 정도로 이 이야기에 몰입했다. 자신에게 큰 영향을 미쳤던 소설을 누구나 감탄할 만한 영화로 변신시키기 위해서는 제작 환경에서부터 몰입도를 높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영화 〈컨택트(원제: Arrival)〉와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에서 합을 맞췄던 미술 총감독 파트리스 베르메트(Patrice Vermette)와 작업을 진행했다.
두 감독이 영화를 제작하는 데 있어 중요하게 여기는 점이 하나 있다. 영화 속에 나오는 모든 디자인은 합리적인 방식으로 설정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베르메트는 이를 두고 “모든 사람들이 인식할 수 있는 현실을 기반으로 하면 이야기의 환상적인 면에 더 쉽게 몰입할 수 있게 됩니다”라고 설명한다.
그의 성향이 극명하게 드러났던 것은 영화 〈컨택트〉를 작업할 때였다. 영화 내에서 중요한 단서가 되는 외계 생명체의 언어를 구현하기 위해 베르메트는 이 언어의 구조, 단어의 발달과 탄생 과정을 담은 사전을 제작하며 영화의 밀도를 높였다.
빌뇌브와 마찬가지로 베르메트 또한 어렸을 때 〈듄〉을 읽은 경험이 있었다.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듄〉을 다시 읽었을 때, 그는 소설에서 구체적인 내용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각 행성의 상태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있었지만, 시각화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에 대한 내용은 없다시피 했다.
이는 문자로 구성된 콘텐츠의 한계라고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독자의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주는 효과를 거두기도 한다. 〈듄〉이 수십 년 동안 영화화되지 못했던 이유도 열성적인 독자들이 그리는 모습이 각기 다른 데다가 그 기대치가 높았기 때문이다.
시도조차 어려워 보이는 일에 대하여 그는 이런 상황이 오히려 상상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베르메트는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디자인 측면에서 이 책의 흥미로운 점은 책이 모든 답을 제공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라며 영화 제작에서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이유를 밝혔다.
“디자인 측면에서 이 책의 흥미로운 점은 책이 모든 답을 제공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미술 총감독 파트리스 베르메트
책에서는 사막으로 이루어진 행성인 아라키스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늘 견디기 힘든 열기, 시속 880km의 모래바람, 사막 모래의 진동에 끌려가는 거대한 모래 벌레와 직면하는 상황이 적혀져 있었다. 그러나 어떤 모습인지에 대해서는 언급되어 있지 않았기에 이를 시각화하는 것은 오롯이 미술 감독인 베르메트의 역량에 달려있었다. 현실적인 면을 늘 염두에 두는 감독과 팀은 유사한 실제 환경 속에서의 건물과 생활이 어떤 모습인지를 검토했고, 이를 기반으로 소설 속의 내용을 창조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영화의 배경을 관객들이 현실성 있게 느끼게 만들려면 배경의 설정과 유사한 장소에서 촬영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그래서 아라키스 행성을 배경으로 한 장면은 아부다비와 요르단의 사막에서 촬영되었다. 제작진은 아예 와디 럼 계곡(Wadi Rum valley)에서 4주를 보내며 현실감 있는 영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배경뿐만 아니라 영화 세트장 또한 실제 건축물에서 영감을 얻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의 벙커와 마야 사원에서 건축학적 영감을 얻었으며 여기에 브라질 모더니즘이 추가되었다. 그와 더불어 건축에서 권력과 힘을 과시하는 모습을 느끼게 하기 위해 브루탈리즘(Brutalism)의 미학도 함께 고려했다고 한다.
아라키스 행성은 거친 모래 바람이 있는 사막이 전부인 곳이다. 사막에서 사람이 지내려면 어떤 설계가 필요할지 고민한 베르메트와 팀은 휘몰아치는 바람을 견딜 수 있으면서도 낮 동안 내부를 시원하게 유지할 수 있는 경사지고 두꺼운 벽을 제작했다. 그와 더불어 한낮의 뜨거운 햇볕을 피하기 위해 창문을 최소화했고, 간접 조명을 더했다.
잠자리를 닮은 이동 수단 ‘오르니톱터(Ornithopters)’는 CG가 아니라 실제로 제작한 소품이었다. 영화에서 자세하게 보이진 않지만, 벽면에 있는 벽화와 글자들은 아라키스 원주민인 프레멘 부족의 전통을 드러내기 위한 요소로 제작되었다. 섬세하다 못해 집착에 가까운 그의 노력 덕분에 영화의 몰입도가 높아진 듯하다.
아라키스 행성과 더불어 하코넨 가문의 고향 행성인 기디 프라임(Giedi Prime)도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배경이었다. 탐욕과 분노로 일그러진 하코넨 사람들이 사는 곳을 표현하기 위해 두 감독은 가장 기괴하고 혐오스러운 것들을 디자인에 끌어왔다. 빌뇌브는 하코넨에서 검은색, 플라스틱이 함께 하길 바랐고, 베르메트는 여기에 우연히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봤던 검은색 플라스틱 정화조가 가득한 들판에서 받은 영감을 더했다. 그와 더불어 고래 뱃속에 있는 거대한 갈비뼈, 거미, 진드기의 모양을 더해 하코넨의 건물과 기계를 표현했다.
주인공 폴 아트레이데스의 적수인 페이드 로타 하코넨이 등장하는 콜로세움 세트의 촬영은 〈듄: 파트2〉의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 이 또한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촬영된 결과물이다. 적외선 카메라로 촬영하고 채도를 낮추어 행성의 검은 태양 아래 있는 초자연적인 모습을 연출했다. 이를 위해 하루에 두 시간밖에 촬영할 수 없어서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덕분에 사람들의 뇌리에 남는 장면이 완성될 수 있었다.
“드뇌브와 함께 일할 때 가장 좋은 점은 현상 유지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미술 총감독 파트리스 베르메트
파트1에서 사람들이 느꼈던 감동을 파트2에서도 느끼게 하기 위해, 베르메트는 매번 빌뇌브 감독에게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여야 했다고 밝혔다. 그는 “드뇌브와 함께 일할 때 가장 좋은 점은 현상 유지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라며 “우리가 전에 본 적이 있다면 그에게는 흥미롭지 않다는 뜻입니다”라고 이를 설명했다. 매번 새로운 디자인을 제작해야 하는 작업은 미술 감독에게 있어 매 순간 도전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노력으로 명작이 탄생하게 되지 않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