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칸 라이언즈 수상작 리뷰
디자인 관점에서 특기할 만한 그랑프리 수상작 3개를 살펴본다.

세계 최대의 광고·크리에이티비티 축제인 칸 라이언즈가 프랑스에서 6월 16일부터 20일까지 5일 동안 열렸다. 전 세계 96개국에서 2만 6900여 개의 작품이 출품된 가운데 32개 분야에 걸쳐 총 34개 작품이 그랑프리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 중 산업 공예 부문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니그룸 코르푸스Nigrum Corpus’는 브라질의 교육기관 이두크스Yduqs와 의학 교육 전문 기관인 IDOMED(Instituto de Educação Médica)가 공동 기획하고,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아트플랜Artplan이 제작한 캠페인이다. 이 작품은 흑인 환자들이 의료 시스템 내에서 겪는 구조적 불평등을 가상의 의학 교재로 표현했다. 책에는 흑인 환자 차별을 질병처럼 명명한 20개의 가상 병명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백인 중심 진단증(Morbis Albas Diagnostica)’은 백인의 몸을 유일한 임상 기준으로 삼는 태도를 일컫는다.
책에는 단순한 설명을 넘어 사용자가 몰입할 수 있는 장치도 포함돼 있다. 엑스레이처럼 투명하게 겹쳐지는 페이지를 넘기며 흑인의 몸을 해부하듯 살펴보거나, 피부에 난 결절을 만져볼 수도 있다. 칸 라이언즈 측은 “모든 디테일이 마법처럼 결합돼 강렬한 메시지를 완성한 작품”이라고 수상 이유를 밝혔다.
인쇄 및 출판 부문 그랑프리는 독일의 슈퍼마켓 체인 페니Penny와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서비스플랜 네오Serviceplan NEO가 함께한 ‘프라이스 팩Price Packs’ 캠페인에 돌아갔다. 이들은 인플레이션으로 가격이 요동치는 유통 환경에서, ‘가격 신뢰’를 어떻게 소비자에게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 결과 제품 포장 전체를 가격 그 자체로 디자인하는 방식의 캠페인을 전개했다. 마요네즈, 감자칩 등 제품 전면에 큼직하게 1.49€, 2.22€처럼 가격을 패키징하고, 이를 독일 전역 2150여 개 페니 매장에서 판매했다. “이 아이디어는 인쇄이자 출판이고 포장이며 가격이고 포지셔닝이다. 단순함과 우아함, 용기, 가격까지 갖췄다”라고 칸 라이언즈 측은 밝혔다.
디자인 부문 그랑프리는 시카고 청각학회와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FCB 시카고가 진행한 ‘캡션 위드 인텐션Caption with Intention’이 차지했다. 이 프로젝트는 기존 자막 시스템이 말하는 사람의 감정, 말투, 표정 등을 충분히 전달하지 못한다는 문제 의식에서 출발했다. 따라서 자막의 기능을 확장하기 위해 색상, 애니메이션, 타이포그래피, 속도 등을 적절히 활용했다. 대화 중 감정이 고조될수록 글자가 떨리거나 붉어지고, 2명의 인물이 대화할 땐 서로 다른 색과 속도로 자막이 표시된다. 해당 캠페인은 기존 룰을 무너뜨린 최고의 캠페인에 수여하는 ‘티타늄 라이언’도 수상했다.
한편 올해 칸 라이언즈에서는 일부 수상작을 둘러싸고 표절 의혹과 AI 사용의 투명성 부족 문제가 제기됐다. 실제로 한 작품은 수상이 철회됐고, 일부 캠페인은 업계 내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에 칸 라이언즈 측은 “창의성은 신뢰에 기반하며 그 신뢰는 주어지는 것이 아닌, 스스로 얻어야한다”라며 AI 사용 명시 의무화, 고위급 승인제, 독립 감사 위원회 구성 등 대안을 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