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엄 산에서 만나는 우고 론디노네의 ⟨BURN TO SHINE⟩ 전시
우고 론디노네가 30년간 자연과 인간, 삶과 죽음을 성찰한 흔적들
스위스 출신 현대미술가 우고 론디노네의 국내 최대 규모 개인전이 뮤지엄 산에서 개최되고 있다. 전시명은 <BURN TO SHINE>. 영상, 회화, 조각 등 그의 대표작 40점을 전시 중이며, 특별히 원주 지역 어린이 1,000명과 함께한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현대미술가 우고 론디노네(Ugo Rondinone)의 국내 최대 규모 개인전이 4월 6일부터 9월 18일까지 뮤지엄 산에서 개최된다. 전시명은 <BURN TO SHINE>. 영상, 조각, 화 등 그의 40여 점 작품을 소개한다. 각 작품에는 우고 론디노네가 지난 30년 동안 끊임없이 성찰해온 삶과 죽음의 순환, 자연과 인간의 관계 등 그의 뚜렷한 예술관과 철학이 녹아 들어있다. 특별히 이번 전시에는 뮤지엄 산이 위치한 원주 지역 어린이 1,000명과 작업한 작품도 함께 만나볼 수 있다. 야외 스톤가든부터 백남준관까지 뮤지엄 산 곳곳에서 펼쳐지는 <BURN TO SHINE>의 다양한 면면을 소개한다.
“나는 마치 일기를 쓰듯 살아있는 우주를 기록한다.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계절, 하루, 시간, 풀잎 소리, 파도 소리, 일몰, 하루의 끝, 그리고 고요함까지”
우고 론디노네
일출과 일몰로 표현한 삶과 죽음
전시는 전시명과 동일한 영상 <BURN TO SHINE>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14분 분량의 영상 속에는 18명의 무용수, 12명의 타악기 연주자 등이 등장한다. 이들은 해가 지는 일몰부터 다시 떠오르는 일출까지 끊임없이 춤을 추고 악기를 연주한다. 이들 주위에는 불꽃이 타오르며 신비한 광경을 더한다. 무용수들은 일몰 때는 해가 다시 떠오르고 일출 때는 해가 다시 지기를 기다리며 춤을 춘다. 일몰은 죽음, 일출은 삶을 상징하는데, 이를 통해 작가는 삶과 죽음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지속적으로 순환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영상은 프랑스계 모로코 안무가 푸아드 부수프와 협업으로 제작했다. 그는 아프리카 마그레브 지역의 전통 의식과 현대무용을 결합하여 독특한 퍼포먼스를 고안해냈다. 신비로운 안무, 입체적인 타악기 연주와 강렬한 불꽃이 조화를 이루며 관람객의 몰입감을 높인다. 특히 네 면이 모두 스크린으로 이루어진 전시관은 마치 현장에 있는 듯한 생생한 느낌을 선사한다.
1,000명의 원주 지역 어린이와 함께하다
삶과 죽음에 대한 고찰은 다른 작품에서도 이어진다. <너의 나이, 나의 나이. 그리고 태양의 나이(your age and my age and the age of the sun)>와 <너의 나이, 나의 나이. 그리고 달의 나이(your age and my age and the age of the moon)>가 바로 그 주인공. 갤러리 1, 2층에서 전시 중인 두 작품은 원주 지역 어린이 1,000여 명과 함께 제작했다. 3~12세 어린이들의 드로잉 2,000장을 바탕으로 낮과 밤, 태양과 달을 상징하는 작품을 만들어냈다. 두 작품 모두 완성된 것이 아닌 여전히 현재 진행 중으로, 전시 기간 내 드로잉을 추가하며 계속 새로운 모습을 갖춰갈 예정이다.
우고 론디노네는 두 작품의 전시관 내부에 네 개의 벽으로 구성된 또 다른 공간을 꾸리고 그 안쪽에 그림을 배치했다. 독특한 점은 관람객이 벽과 바닥 사이 좁은 공간에 허리를 숙이면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작품에 참여한 어린아이의 키와 눈높이에 맞춰 벽 높이를 설계한 결과로, 동선에서부터 작품 특징을 드러내는 우고 론디노네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빛, 작품의 일부가 되다
2층의 또 다른 전시관에서는 <매티턱(Mattitck)> 회화 시리즈와 푸른색 유리로 주조된 11점의 말 조각을 만날 수 있다. 보색을 이루는 세 가지 색상으로만 제작된 매티턱 시리즈는 우고 론디노네가 거주하는 뉴욕 롱 아일랜드의 일몰과 월출의 풍경을 보여준다. 그는 그림을 완성한 날짜를 타이틀로 활용하며 작품을 하나의 일기이자, 삶의 기록으로 풀어냈다.
같은 공간에는 11점의 말 조각도 전시되어 있다. 언뜻 모두 동일한 푸른빛 조각처럼 보이지만, 이름과 색감은 각각 다르다. 조각을 유심히 관찰하면 말의 상부와 하부가 수평선으로 구별되며 색깔이 다른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우고 론디노네는 이를 두고 “상부는 물과 공기가 맞닿아 빛이 퍼져 나가는 환영을 만들어내며, 하부는 빛이 들어오지 못한 어둠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궁극적으로 그는 11점의 작품에서 반사된 다채로운 푸른 빛들을 모아 ‘빛의 풍경’을 만들어내고자 했다.
빛을 작품 일부로 활용하는 시도는 다섯 개의 원형 시계와 세 개의 창문 작품에서도 이어진다. 시계 작품은 독특하게 시침과 분침 없이 제작됐다. 대신 로마자가 이를 대신하며 시계에 들어오는 빛으로 시간을 표현해낸다. 창문 역시 일반적이지 않다. 밖을 바라볼 수 있는 구조가 아닌 창문에 비친 사람의 모습을 반사하도록 제작했다. 우고 론디노네는 이를 통해 고립된 자신 혹은 인간의 모습을 표현해냈다.
창문은 갇혀 있는 인간의 모습을 대변하지만, 꼭 부정적인 메시지만을 던지는 것은 아니다. 창문과 시계 작품 모두 무지갯빛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이는 고독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온 빛을 상징한다. 딱딱하게 고착되어 있는 인간의 마음이 무지갯빛에 의해 움직이고 희망을 바라보는 이야기를 담아냈다.
거대한 수도승, 수녀 조각에 담긴 의미
자연을 통한 정신적 사유는 <수녀와 수도승(nuns+monks)> 시리즈에서 무르익는다. 백남준관에 마련된 <노란색과 빨간색 수도승(yellow and red monk)>은 조각, 돌로 이루어진 내부 그리고 천장에서 들어오는 빛이 하나가 되어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중시하는 작가의 의도를 또렷이 전달한다. 4m 높이의 조각은 수도승을 표현한 것으로, 우고 론디노네는 “명상을 통해 내면을 성찰하는 동시에 외부 자연과 호흡하는 수도승의 모습을 그려냈다”고 전했다.
야외 스톤가든에도 수녀와 수도승을 상징하는 6점의 조각을 전시한다. 3m가 넘는 조각들은 석회암으로 틀을 잡은 후 청동으로 주조하는 방식으로 제작됐다. 각각의 작품은 뮤지엄 산의 광활한 자연과 대비를 이루는데, 이는 자연 속에서 혼자 있는 인간과 홀로 살아가는 수녀, 수도승의 고독감을 표현한다. 우고 론디노네는 뮤지엄 산 주변의 자연풍경을 작품 안으로 끌어들여 극적인 크기 대비와 ‘낭만적인 고독감’이라는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노란색과 빨간색 수도승>에서는 창문을 통해 외부 세계의 성찰을 표현했다면, 6점의 조각은 자연 속에 배치함으로써 내면과 외부를 모두 성찰하는 수녀와 수도승의 모습을 그려냈다.
Interview
우고 론디노네
1964년 스위스 출생의 우고 론디노네는 자연과 인간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을 바탕으로 조각, 설치, 영상, 드로잉 등 다양한 매체의 작품을 선보이며 동시대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 발돋움했다. 그의 여러 대표작을 선보이는 <BURN TO SHINE>은 그간 국내에서 진행된 그의 전시 중 역대 규모를 자랑하며, 지역 구성원과 함께 작품을 완성하는 상호소통의 기회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지난 30년간 자연과 인간, 삶과 죽음을 성찰해온 우고 론디노네에게 이번 전시에 대해 물었다.
뮤지엄 산에서 역대 규모의 개인전을 개최한 소감이 어떠신가요?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뮤지엄 산에서 제 작품을 선보일 수 있어 영광입니다. 처음 이곳에 방문했을 때 안도 다다오의 건축에 압도되는 기분을 느꼈어요. 단순히 ‘그의 건축물에서 전시를 개최한다’는 생각보다 그와 협업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했습니다. 그의 건축과 제 작품이 하나로 융합되는 전시를 꿈꿨죠.
이를 위해 작품을 이곳에 가져온 뒤 어떤 공간을 어떻게 채울 수 있을지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야외부터 내부 갤러리까지 다양한 전시 공간이 있는데, 각 공간과 그곳에 놓이는 작품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했어요. 이 과정이 상당히 도전적이었지만, 덕분에 작품의 주제와 메시지를 온전하게 전달할 수 있는 배치와 전시 동선을 구상할 수 있었습니다.
2012년부터 꾸준하게 뮤지엄 산에서 전시를 개최하고 계세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도심의 소음 없이 전시를 개최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유명 갤러리는 접근성이 좋은 도심에 위치한 경우가 많은데, 뮤지엄 산은 정반대죠. 특히 산속에 위치하여 자연과 함께한다는 점에 매료되었습니다.
전시 작품 중 원주 지역 어린이들과 함께한 작품이 인상적입니다.
우선 작품에 참여해준 아이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어요. 이번 작품은 3~12세 어린이 1,000명과 함께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2,000장의 그림이 완성되었고 이를 낮과 밤 주제에 맞게 재배치했죠. 현재 완성된 상태는 아니고 전시 중에 계속 추가할 예정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들에게 뮤지엄은 지금보다 더욱 편안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데 그치지 않고 작품을 직접 만들고 그 과정을 즐기는 곳이요. 이러한 의미에서 원주 아이들과 함께한 이번 작품이 더욱 뜻깊게 느껴집니다.
영상 <BURN TO SHINE>이 전시의 핵심이에요. 무용수, 타악기 연주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하고, 야간 촬영을 진행하는 등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촬영 에피소드가 궁금합니다.
<BURN TO SHINE>은 사실 4년 전 펜데믹 기간에 제작한 영상입니다. 2020년 여름의 마지막 보름달이 뜨는 날 모로코 사막에서 나흘 동안 진행했어요. 자정에 시작해서 일출 때 종료했는데, 45분 간격으로 약 3회 정도 촬영을 했습니다.
한 가지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당시 여름이어서 사막도 굉장히 더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밤이 되니 엄청 춥더군요. 미처 예상하지 못한 문제였는데, 이 때문에 촬영 기간 내내 모닥불을 피워야 했습니다.(웃음)
그래도 영상이 잘 나와서 다행이네요. 향후 또 다른 영상을 제작하실 계획인가요?
맞아요. <BURN TO SHINE>은 저의 다섯 번째 영상 프로젝트였는데요. 비록 쉽지 않은 촬영이었지만 본래 기획한 주제와 연출이 잘 담겨서 기쁩니다. 당시 디렉팅을 맡았던 촬영 감독님도 이번 전시를 위해 뮤지엄 산에 방문했어요. 저와 같이 영상을 상영하는 전시관을 둘러보고 사운드 등 전반적인 컨디션을 확인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아직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 힘들어요. 다만 저는 5~7년 주기로 영상을 제작하고 있어요. 제 영상은 삶과 죽음,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성찰하는 데서 비롯돼요. 꼭 영상이 아니어도 대부분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이죠. 아무래도 동일한 주제로 영상을 만들다 보니 새로운 관점을 고민하고 연구하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저는 이를 ‘묵힌다’라고 표현하는데, 다시 한번 제 생각이 무르익을 때 다음 영상을 제작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드로잉부터 영상, 설치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작품을 제작하고 계세요. 이렇게 매체를 확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는 항상 예술을 표현하는 매체를 확장하는데 관심이 많았습니다. 하나의 기법, 매체에만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방식을 받아들이려고 해요. 특히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여러 수단을 혼합해서 작품을 만들고자 합니다. 앞으로도 드로잉, 조각, 설치 등 각기 다른 성격의 매체를 어떻게 조합할 수 있을지 계속 연구해 나갈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