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의 여름, 조각이 머무는 공원 4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네덜란드의 여름 풍경 속으로

한여름의 뜨거운 오후, 실내 전시장조차 답답하게 느껴지는 계절이다. 에어컨 바람이 돌아가는 화이트 큐브 안에서 예술을 마주하는 일이 때로는 숨막힐 듯 느껴진다. 그런 때 문득 떠오르는 것은 북유럽 여름의 풍경이다. 밤 10시까지 이어지는 부드러운 햇살 아래, 서늘한 바람과 함께 자연 속에서 만나는 조각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북유럽의 여름, 조각이 머무는 공원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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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uisiana Sculpture Park © Louisiana Museum

한여름의 뜨거운 오후, 실내 전시장조차 답답하게 느껴지는 계절이다. 에어컨 바람이 돌아가는 화이트 큐브 안에서 예술을 마주하는 일이 때로는 숨막힐 듯 느껴진다. 그런 때 문득 떠오르는 것은 북유럽 여름의 풍경이다. 밤 10시까지 이어지는 부드러운 햇살 아래, 서늘한 바람과 함께 자연 속에서 만나는 조각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북유럽의 조각 정원에서는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 해협을 내려다보는 언덕길을 걸으며, 강변 숲 속의 그늘진 오솔길을 따라가며, 우리는 예술이 자연 속에서 어떻게 새로운 생명을 얻는지 목격하게 된다. 여기서 조각은 전시품이 아니라 풍경의 일부가 되고, 관람객은 감상자가 아니라 그 풍경 속을 거니는 산책자가 된다.

더운 여름이지만 북유럽의 여름은 시원하고 고요하다. 그 속에서 만나는 조각들은 계절마다, 시간마다 다른 표정으로 우리를 맞이한다. 해협의 언덕부터 강변의 숲, 고성의 정원에서 광활한 국립공원까지, 네 곳의 특별한 조각 정원이 우리를 기다린다.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네덜란드의 조각 공원으로 함께 걸어보자.

덴마크, 루이지애나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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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uisiana Sculpture Park © Louisiana Museum

덴마크 훔레바이크에 자리한 루이지애나 미술관은 매년 70만 명이 넘는 방문객을 맞이하는 스칸디나비아 최대의 현대 미술관이다. 하지만 이곳의 진정한 매력은 숫자로 측정되지 않는다. 외레순 해협을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 펼쳐진 조각 공원, 건축과 자연이 만들어내는 조화로운 풍경 속에서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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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uisiana Sculpture Park © Louisiana Museum

루이지애나의 창립자 크누드 W. 옌센(Knud W. Jensen)은 명확한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훌륭한 조각은 야외에서도 ‘강인한 실험’을 견뎌내며 자연과 대등하게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동시에 그는 조각 작품이 너무 많아지면 자연의 아름다움을 해칠 수 있다며, 야외 조각 전시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과도함’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절제의 미학은 공원 곳곳에 배치된 약 50점의 조각 작품에 그대로 반영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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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uisiana Sculpture Park © Louisiana Museum

헨리 무어Henry Moore의 〈리클라이닝 피겨 No. 5 (시그램)〉는 절벽 끝에 놓여 바다를 배경으로 조각 자체가 하나의 풍경이 된다.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의 〈더 게이트 인 더 고지(The Gate in the Gorge)〉, 조지 트라카스(George Trakas)의 〈셀프 패시지(Self Passage)〉는 지형과 공간을 고려한 장소 특정적(site-specific) 작품으로, 자연과 건축의 경계를 허문다. 올레와 에디스 뇌르고르(Ole & Edith Nørgaard)가 설계한 초기 공원의 구도와 레아 뇌르고르(Lea Nørgaard), 비베케 홀셔(Vibeke Holscher)가 맡은 확장 구역은 미술관 건축의 미로 같은 매력을 더욱 강화한다.

노르웨이, 키스테포스 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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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yoi Kusama, Shine of Life, 2019 © Kistefos

루이지애나 뮤지엄의 북쪽으로 시선을 옮기면, 노르웨이 란셀바 강변에 자리한 키스테포스 뮤지엄이 있다. 이곳은 1889년 안데르스 스베아스(Anders Sveaas)가 세운 목재 펄프 공장을 기반으로, 그의 손자인 크리스텐 스베아스(Christen Sveaas)가 1996년 현대미술관과 조각 공원, 산업 박물관이 결합된 문화 복합 공간으로 재탄생 시켰다. 산업의 폐허에서 예술의 터전으로 변모한 이곳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단연 자연 속에 펼쳐진 조각 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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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ppe Hein Path of Silence, 2016 © Kistefos

키스테포스 조각 공원의 진정한 힘은 작가의 면면에서 드러난다. 쿠사마 야요이(Yayoi Kusama),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 클래스 올덴버그(Claes Oldenburg)를 비롯한 세계적 현대미술 거장들의 작품 55점이 이곳에 자리한다. 하지만 이곳에서 작품들은 미술관 화이트 큐브에 갇혀 있지 않다. 숲과 강, 잔디밭 위에서 계절과 날씨의 변화를 받아들이며 살아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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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denburg & van Bruggen, Tumbling Tacks, 2009 © Kistefos

쿠사마의 〈Shine of Life〉는 그 대표적 사례다. 북유럽 최대 규모의 쿠사마 작업인 이 작품은 물 위에서 펼쳐지는 다채로운 촉수들이 빛과 색으로 끊임없이 변화한다. 여름의 긴 햇살 아래서는 화려하게 빛나고, 겨울의 짧은 낮에는 신비로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예페 하인(Jeppe Hein)의 〈Path of Silence〉는 관람객을 작품 속으로 끌어들인다. 물과 에너지를 모티프로 한 미로형 조각 속을 직접 걸으며, 관람객은 침묵의 공간에서 자신만의 감각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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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rnando Botero, Female Torso, 2002 © Kistefos

올덴버그와 반 브뤼겐(van Bruggen)의 〈Tumbling Tacks〉는 키스테포스의 독특한 정체성을 상징한다. 거대한 압정 형태의 작품은 과거 목재 펄프 산업의 상징을 유머러스하게 재해석했다. 진지한 산업유산과 경쾌한 현대미술이 만나는 지점에서, 키스테포스만의 독특한 감성이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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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a Ekblad, A Deadly Slumber of All Forces, 2021 © Kistefos

키스테포스의 조각들은 상당수가 장소 특정적 작품이다. 이곳의 역사와 환경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했기에 다른 어떤 곳에서도 같은 의미를 가질 수 없다. 노르웨이의 계절과 날씨, 빛의 변화에 따라 전혀 다른 감각을 선사하며, 키스테포스라는 특별한 장소만의 정체성을 더욱 견고하게 만든다.

스웨덴, 와나스 예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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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ang Tshikare, Purama © Wanås Konst

스웨덴 스코네(Skåne) 북동부에 위치한 와나스 예술센터(Wanås Konst)는 역사와 자연, 예술이 한데 어우러진 공간이다. ‘와나스(Wanås)’라는 이름은 ‘물(water)’과 ‘언덕(hill)’을 뜻하며, 덴마크-스웨덴 전쟁 당시의 격전지였던 이곳은 지금도 16세기에 재건된 와나스 성(Wanås Castle)이 Wachtmeister 가문의 거주지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곳의 진정한 매력은 약 40년 동안 조성된 조각 공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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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a Lin, Eleven Minute Line, 2004 © Wanås Konst

​광활한 너도밤나무 숲 속에 약 80점의 상설 작품이 자리하고 있으며, 매년 세계 각국의 작가들이 초청되어 새로운 작품을 선보인다. 와나스에서 ‘영구적(permanent)’이라는 개념은 상대적인 것이다. 작품들은 자연의 변화와 소멸을 작품의 일부로 수용하며,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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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in Puryear, Meditation in a Beech Wood, 1996 © Wanås Konst

멜리사 마틴(Melissa Martin)의 〈Dining Room〉은 성의 식당을 재현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부서지고 사라지도록 설계됐다. 요코 오노(Yoko Ono)의 〈Sky Ladders〉는 특정 시기에만 전시되며, 김수자의〈Sowing into Painting〉(2020)은 파종, 개화, 수확의 과정을 예술로 담아내 자연의 시간성을 강조한다. 또한 카롤라 그라언(Carola Grahn)의 〈51m3fub〉(2023)은 큐브에 채운 목재가 다시 칩으로 변환되는 과정을 작품의 일부로 삼는다. 이곳에서 예술은 완성품이 아니라 변화의 과정으로 정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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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uardo Navarro, Spathiphyllum Auris, 2022 © Wanås Konst

네덜란드, 크뢸러 뮐러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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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 Dubuffet, Jardin d’émail, 1974 © Kröller-Müller Museum

마지막으로 네덜란드 데 호헤 펠뤼웨 국립공원 깊숙이 자리한 크뢸러 뮐러 미술관(Kröller-Müller Museum)은 예술과 자연이 만나는 상징적인 장소다. 헬레네 크뢸러 뮐러(Helene Kröller-Müller,1869–1939)의 개인 컬렉션에서 시작된 이 미술관은 1961년 유럽 최대 규모의 조각 정원을 개장하며 야외 미술관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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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rrit Rietveld, Rietveldpaviljoen, 1964-1965 © Kröller-Müller Museum

​크뢸러 뮐러 조각 정원의 독특함은 장 뒤뷔페(Jean Dubuffet), 마르타 판(Marta Pan), 피에르 위그(Pierre Huyghe) 등 거장들의 작품과 함께, 1960년대의 건축 유산인 게리트 리트벨트 파빌리온(Rietveld Pavilion)과 알도 반 에이크 파빌리온(Aldo van Eyck Pavilion)이 조각 정원의 공간미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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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do van Eyck, Aldo van Eyck-paviljoen, 2005 © Kröller-Müller Museum

리트벨트 파빌리온은 1955년 〈손스베이크 야외 조각 전시회(Sonsbeek Sculpture Exhibition)〉를 위해 설계된 건축물이다. 단순한 수평·수직 요소와 빛, 빈 공간을 활용해 조각과 건축의 상호작용을 극대화한다. 사방으로 개방되어 조각 정원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이 파빌리온과 대조적으로, 알도 반 에이크 파빌리온은 원과 곡선이 강조된 ‘휴머니즘 건축’을 표방한다. 상대적으로 닫힌 구조를 통해 관람객이 조각 작품과 부딪히듯 마주하는 독특한 경험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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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t Strobos, Palissade, 1973-1991 © Kröller-Müller Museum

장 뒤뷔페의 〈자르댕 데메일Jardin d’émail〉은 크뢸러 뮐러 조각 정원의 백미다. 관람객이 직접 안으로 걸어 들어가고, 만질 수 있는 참여형 조각으로, 새하얀 표면과 검은 선의 대비가 주변 자연환경과 극명한 시각적 충돌을 만들어낸다. 이는 마치 현실에서 분리된 또 다른 예술적 공간으로의 진입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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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nelius Rogge, Tentenproject, 1975 © Kröller-Müller Museum

​뒤뷔페가 1960년대 전개한 아르 브뤼(Art Brut) 운동의 핵심 철학이 구현된 이 작품은 전통적 미술 관람의 관습을 거부한다. 관찰자와 작품 사이의 물리적 거리를 해체하고, 신체적 참여를 통한 감각의 확장을 추구한다. 국립공원이라는 광활한 자연 맥락 속에서 이러한 실험적 접근은 더욱 극대화된다.

북유럽의 여름, 예술과 자연의 산책

여름이 끝나가는 북유럽의 저녁, 여전히 하늘에 걸린 해는 조각들에 긴 그림자를 선물한다. 외레순 해협의 바람이 헨리 무어의 브론즈를 스치고, 란셀바 강변에서는 쿠사마의 붉은빛 촉수들이 물빛과 함께 반짝인다. 너도밤나무 잎사귀 사이로 스며든 빛이 작품들을 부드럽게 감싸고, 광활한 국립공원에서는 뒤뷔페의 하얀 정원이 노을을 받아 물든다.

정원에 놓인 조각들은 그저 자연의 일부로 살아간다. 겨울이 오면 눈에 덮이고, 봄이 오면 새싹에 둘러싸이며, 여름의 긴 햇살 아래서는 관람자와 함께 숨을 쉰다. 북유럽의 여름 정원에서 걷는다는 것은 예술 작품들 사이를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예술이 하나가 된 확장된 풍경 속을 거니는 일이다. 발걸음마다 새로운 시선이 열리고, 시간마다 다른 빛이 작품을 새롭게 조각한다. 걸을 때마다 달라지는 풍경 속에서 거대한 조각과 광활한 자연 앞에 선 우리는 문득 자신의 작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작음을 깨닫는 감각은 위축이 아닌, 포용의 감각이다.

자연과 예술이라는 두 거대한 품 안에서,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안온함을 발견한다. 북유럽 여름 정원의 조각들이 우리에게 건네는 것은 단순한 미적 경험이 아니라, 거대한 세계 속 작은 존재로서 누리는 깊은 평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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