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 최초의 사진 미술관이 시대를 기록하는 법

하위스 마르세유 25주년 기념 전시, <메멘토: 중단된 사진>

하위스 마르세유는 암스테르담 최초의 사진 전문 미술관으로, 올해 개관 25주년을 맞아 기획전 <메멘토: 중단된 사진>을 개최했다. 전시는 사진의 역사와 동시대 흐름을 아우르며 시간의 기록자로서 사진의 역할을 조명한다.

암스테르담 최초의 사진 미술관이 시대를 기록하는 법

암스테르담 케이저흐라흐트의 운하가 내려다보이는 17세기 건물 속, 하위스 마르세유(Huis Marseille)는 지난 25년간 네덜란드에서 사진 미술관의 선구적 역할을 수행해왔다. 1999년, 암스테르담 최초의 사진 전문 미술관으로 개관한 이곳은 단순히 사진을 수집·보존하는 공간을 넘어, 시대와 시각문화의 변화를 포착하고 이를 새로운 형태로 제시하는 실험의 무대로 자리매김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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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ento. Fotografie, onderbroken > © Huis Marseille

올해로 25주년을 맞이한 미술관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메멘토: 중단된 사진(Memento. Fotografie, onderbroken)>이라는 제목의 대규모 기획전을 열었다. 오는 10월 12일까지 이어지는 전시는 사진 미술관의 역사적 축적과 동시대 사진의 다양한 흐름을 교차하며, 사진이 어떻게 ‘시간의 기록자’로 작동하는지 관객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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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ento. Fotografie, onderbroken > © Huis Marseille

사진과 기억의 교차점: ‘메멘토’라는 키워드

‘메멘토’라는 단어는 라틴어로 ‘기억하라’는 뜻이며, 시간의 흔적과 죽음의 불가피성을 상기시키는 장치로 자주 쓰인다. 이번 전시는 각 사진 작품을 단순히 한 장면의 기록으로 보기보다, 시간과 기억을 매개하는 ‘메멘토’로 해석한다. 25년간의 소장품을 되짚으며, 과거의 전시나 특정한 사회적 순간 혹은 미술관의 수집 정책과 맞물려 존재하게 된 작품들은 모두 하나의 ‘기억의 조각’이다. 전시를 거닐다 보면, 2000년대 초반의 미학적 흐름, 팬데믹 이후 사회가 겪은 급격한 전환, 디아스포라 작가들의 목소리 등이 서로 다른 ‘메멘토’로서 하나의 거대한 서사를 이루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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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hmedOsoble, 2015, from the series Denizens of Brussels collection, Huis Marseille ©AndresSerr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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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wkleed, 2019, from the series Venus&Mercury collection, Huis Marseille ©VivianeSassen

전시는 100여 점의 사진을 13개의 전시실과 정원 별관에 걸쳐 배치하며, 남아프리카, 일본, 유럽, 중동 등 다양한 지리적 배경을 가진 작가들의 작품들을 조망한다. 토마스 슈트루스(Thomas Struth), 안드레아스 구르스키(Andreas Gursky), 안드레스 세라노(Andres Serrano), 디애나 로슨(Deana Lawson) 같은 세계적인 거장들부터, 위들린 카데(Widline Cadet), 마메-디아르나 니앙(Mame-Diarra Niang) 등 떠오르는 신진 작가들까지 사진의 스펙트럼이 실로 광범위하다는 걸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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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ento. Fotografie, onderbroken > © Huis Marseille

전시 디자인: ‘비정형적’ 아카이브의 구현

<메멘토>의 가장 인상적인 특징 중 하나는 비정형적인 전시 방식이다. 전시는 시간 순으로 소장품을 나열하지 않는다. 대신, 미술관의 보관소(Depot)를 연상시키는 설치 방식을 도입해 작품들이 마치 ‘사용 대기 중인 아카이브’처럼 전시장에 등장한다. 전시는 이러한 구성을 통해 사진이 현재진행형의 이야기와 대화하는 매개체임을 시각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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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ento. Fotografie, onderbroken > © Huis Marsei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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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esadeiFrari, Venice, 1995, collection Huis Marseille ©ThomasStr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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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viary, 2019, collection Huis Marseille ©FarahalQasimi

미술관의 입구 쪽에 위치한 벨에타주(Bel-etage) 관에 들어서면, 보관소의 벽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풍경이 펼쳐진다. 벽을 가득 채운 수십 점의 사진은 언뜻 무작위로 배열된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정교한 계산과 배치에 따른 결과다. 다양한 크기와 포맷의 사진들이 조화롭게 구성되며, 25년간의 미술관 역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장치로 작동한다.

토마스 슈트루스의 <Chiesa dei Frari, Venezia, 1995>(1995)와 제임스 케이스베레James Casebere의 <Barrel Vaulted Room>(1994)처럼 미술관 초기 수집품부터, 파라 알 카시미Farah Al Qasimi의 <Aviary>(2019), 요안나 피오트로브스카Joanna Piotrowska의 <Father and Daughter>(2024) 등 최근 소장품까지 다양한 시기의 작업이 한데 놓이며 시간을 초월해 영향을 주고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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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ill from MuseumEngine, 2025 ©PhilipLüschen

전시 디자인에서 가장 독특한 시도 중 하나는 필립 뤼셴(Philip Lüschen)이 제작한 영상 작업 <Museum Engine>(2025)이다. 이 작업은 보관소의 이면인 작품의 포장, 운송, 설치 등 관객이 볼 수 없는 과정을 시뮬레이션 세계로 재현한다. 이는 작품의 ‘객체적 지위(object status)’를 탐구하며, 미술관 내부의 보이지 않는 노동과 기억의 층위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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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st(#5707), 1995, collection Huis Marseille ©NaoyaHatakeya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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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sterII,Paris,2014, 2014, from the series SomnyamaNgonyama collection Huis Marseille ©ZaneleMuholi

전시 구성: 세계 사진사의 단면

<메멘토>는 하위스 마르세유가 지난 25년간 축적해온 세계 사진사의 압축된 아카이브를 보여준다. 일본 작가 하타케야마 나오야(Naoya Hatakeyama)의 <Blast>(2002)와 <Natural Stories>(2011)는 인간이 자연을 폭력적으로 변형시키는 순간을 포착한다. 그의 대표작 시리즈 <Blasts>는 석회암 채석장에서 폭발이 일어나는 찰나를 기록하며 인간-자연 관계의 긴장과 파괴를 시각화한다.

한편, 남아프리카 사진가 데이비드 골드블랫(David Goldblatt)와 그 제자들은 포스트 아파르트헤이트(Post-Apartheid) 시대의 사회적 변화를 기록한다. 골드 브랫의 제자 자넬레 무홀리(Zanele Muholi)의 연작 <Faces and Phases>는 흑인 퀴어 커뮤니티의 초상화를 통해 사회적 존재의 복잡한 정체성을 드러내며, 소벡와(Lindokuhle Sobekwa)는 실종된 여동생의 기억을 사진으로 복원하며 이를 감정적인 기록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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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teysha,1993, 1993, from the series ImperialCourts,1993-2015, collection Huis Marseille ©DanaLixenberg

네덜란드 사진가 다나 릭센버그(Dana Lixenberg)의 프로젝트 <Imperial Courts>는 로스앤젤레스 흑인 커뮤니티의 32년에 걸친 변화를 기록하며, 사진이 단순히 이미지를 생산하는 도구가 아닌 공동체와 역사를 잇는 매개체임을 보여준다. 릭센버그의 흑백 초상화는 로드니 킹 폭동 이후의 LA를 담담히 증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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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arBear, 2007, collection Huis Marseille ©ScarlettHooftGraafland

또한, 사샤 바이드너(Sascha Weidner)의 <Hanami: Geflecht II>(2013)나 스칼렛 후프트 흐라플란트(Scarlett Hooft Graafland)의 볼리비아 풍경 속 바나나 설치 사진 등은 전통적인 다큐멘터리 사진을 넘어 개념적이고 시적인 접근을 강조한다. 이는 사진의 경계가 예술, 패션, 조각, 설치와 겹치는 지점을 탐색하게 한다.

사진과 사회 변화의 동시대성

하위스 마르세유의 컬렉션은 사진사의 한 장을 기록하는 것 이상으로, 동시대 사회와 예술이 교차하는 ‘증거의 장’을 만들고자 하는 포부를 지닌다. 특히 팬데믹 이후 사진과 소셜미디어의 관계가 급격히 변한 점에 주목해왔다. 예를 들어 이전에 열렸던 전시 <Infinite Identities>(2020)에서 강조된 인스타그램 스토리 기반의 이미지들은 ‘사적인 기록’과 ‘공적인 예술’의 경계가 사라지는 흐름을 잘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도 이러한 동시대성이 반영되어, 사진이 단순한 프린트에서 디지털 이미지, 영상, 설치로 확장되는 과정을 목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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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ento. Fotografie, onderbroken > © Huis Marseille

사진 미술관이 던지는 질문

<메멘토>는 단순한 소장품 회고전이 아니다. 전시는 “사진 미술관이 어떻게 시대를 기록하고 기억을 재구성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공유한다. 이는 사진의 본질적 속성인 시간을 붙잡는 능력과 맞닿아 있다. 사진은 삶과 죽음, 현재와 과거를 잇는 ‘황혼의 예술’이다. 하위스 마르세유는 이번 전시를 통해, 사진이 단순히 과거를 보존하는 수단이 아니라 현재를 재해석하고 미래를 사유하는 도구임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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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전시는 미술관이 단순히 작품을 소장하는 곳이 아니라, 사회적 변화와 예술적 실험을 연결하는 ‘생동하는 플랫폼’임을 강조한다. 이는 미술관이 과거 25년 동안 사진의 실험적 변화를 수용하고, 새로운 시각성을 탐구해온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축적된 정체성이다.

사진의 미래를 위한 아카이브

<메멘토>는 하위스 마르세유가 지난 25년간 구축한 컬렉션과 큐레이션 철학을 압축해 보여준다. 전시는 사진이 단순한 이미지가 아닌, 시대의 감정과 기억, 사회의 균열을 담는 언어임을 재확인시킨다. 특히 전시 디자인의 실험성과 아카이브적 시선, 그리고 세계 각지의 작가들이 제시하는 다채로운 시각성은 ‘암스테르담 최초의 사진 미술관’이 왜 여전히 동시대 예술의 중요한 거점일 수 있는지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하위스 마르세유는 이번 전시를 통해 과거를 회고하는 동시에 미래를 내다본다. 디지털 이미지가 압도하는 시대에도 여전히 사진이 지닌 촉각적 질감, 기억의 힘, 사회적 발언은 여전히 유효하다. <메멘토>는 25년간의 기록을 넘어, 앞으로의 25년 동안 사진 미술관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조용하지만 강하게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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