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패션이 진정한 명품이다

글로벌 패션 하우스의 업사이클링 전략들

순환 경제 기반 업사이클링 패션이 브랜드 미래를 좌우하는 핵심 기준으로 부상했다. 스텔라 맥카트니, 프라다, 미우미우, LVMH, 샤넬 등 럭셔리 하우스들이 지속 가능성과 미학을 결합하며 산업 구조 변화를 선도하고 있다.

지속 가능한 패션이 진정한 명품이다

단순한 친환경 마케팅을 넘어서는 순환 경제 기반의 업사이클링 패션이 브랜드의 가치와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잣대가 되고 있다. 업계 리더라 할 수 있는 럭셔리 패션 하우스들도 이 분야에 대한 관심과 투자를 늘리며 패션 산업의 근본적인 구조 변화에 앞장서는 추세다. 윤리적 패션의 선구자 스텔라 맥카트니부터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한 나일론으로 브랜드 정체성을 강화한 프라다, 업사이클링 패션도 힙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한 미우미우, 데드스톡 원단으로 신진 디자이너를 지원하는 LVMH, 최근 순환 소재 개발 플랫폼을 출범한 샤넬까지! 지속 가능성에 하이엔드 미학을 더하는 움직임은 친환경 패션 성장의 새로운 변곡점이 되고 있다.

왜 업사이클링이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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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쓰레기 더미로 몸살을 앓고 있는 아프리카 가나의 모습. 사진 출처 | BBC Af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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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웨이스트 정책을 담은 실크 스카프를 선보이는 사이나 런던. 사진 출처 | Sayna london

그렇다면 왜 지금 패션계는 업사이클링을 주목하는 것일까. 패션의 화려함 이면의 어두운 민낯부터 마주할 필요가 있다. 유엔환경계획(UNEP) 추정에 따르면 전 세계 의류 생산량은 연간 1억 톤 이상, 의류 폐기량은 연간 9200만 톤에 이른다. 이중 60%에 해당되는 합성섬유는 분해되기까지 최대 200년이 걸린다. 생산 및 폐기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량은 전 세계 탄소 배출의 최대 10퍼센트를 차지한다. 물 사용량도 방대한데, 청바지 한 벌을 만드는 데에만 약 7,500리터의 물이 소모된다. 패션 산업이 환경 오염의 주범으로 지목받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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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사이클링 무대의상으로 화제를 모은 제니. 사진 출처 | 인스타그램@jenniechu

최근 열린 블랙핑크 콘서트에서 ‘라이크 제니’를 열창한 제니는 관능적인 레이싱 룩으로 시선을 압도했다. 이 무대의상은 제작 방법이 알려지면서 또 한 번 반향을 일으켰다. 보디슈트와 재킷, 부츠로 구성된 제니 의상은 국내 브랜드 르쥬(Leje)가 커스텀 제작한 것으로 사과 가죽, 한지 가죽 등 지속 가능한 소재와 데드스톡 패브릭 및 빈티지 의류 등을 활용해 ‘제로 웨이스트’로 완성되었다. 글로벌 패션 아이콘의 개념 있는 선택 덕분에 K 팝과 업사이클링 패션은 교차 시너지를 냈고, 전 세계 팬덤에 전달된 친환경 메시지는 짙은 호소력을 발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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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도어 의류 분야에서 지속 가능한 소재 사용과 환경 보호에 앞장서는 브랜드로 유명한 파타고니아. 사진 출처 | Patago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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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적 패션의 선구자 스텔라 맥카트니의 업사이클링 데님 컬렉션. 사진 출처 | Stella McCartney

환경 오염의 주범으로 지목받고 있는 패션계는 몇 년 전부터 대대적인 변화를 꾀하고 있다. 그 전략의 중심에 업사이클링이 있다. 업사이클링(Upcycling) 패션은 버려진 옷이나 원단을 단순히 재활용하는 리사이클링(Recycling)의 의미를 넘어선다. 새로운 디자인과 기능, 가치를 더해 ‘더 나은’ 제품으로 재탄생하는 것, 업사이클링 패션의 핵심과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큰 반향을 일으킨 제니의 무대의상처럼 말이다.

물론 업사이클링이 지속 가능성을 위한 명쾌한 해법은 아니다. 진정한 친환경 패션은 생산부터 유통, 폐기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환경을 해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생산 확대가 곧 수익으로 이어지는 패션 생태계에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이유로 비용 대비 효율적인 업사이클링이 각광받고 있다. 패션 산업의 구조적인 낭비와 폐기물을 줄이는 동시에 디자인 창의성과 희소성, 브랜드 정체성은 높이는 이중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 지금 많은 패션 브랜드들이 지속 가능한 발전 대응책으로 업사이클링을 선택하는 이유다.

지속 가능성은 럭셔리의 미래다

그중에서도 럭셔리 패션 하우스의 사회적 책임과 지속 가능한 발전은 최근 몇 년 사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시작점은 환경이었지만 어느덧 브랜드의 정체성과 경쟁력, 미래 생존을 결정하는 핵심 요인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콧대 높은 그들이 공공연히 재고를 불태우던 관행을 접고 본격적인 친환경 전환에 나선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 가장 큰 원인은 기후 변화다. 기후 위기가 공급망 위기로 이어지면서 캐시미어, 실크, 희귀 목화, 염소 가죽 등 럭셔리 브랜드에서 주로 사용하는 고급 천연 소재의 생산량이 확 줄었다. 이는 원가 상승 및 제품의 다양성 저하라는 문제점으로 나타났고, 기존 자원을 재활용하는 방식이 오히려 안정적인 대체 전략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소비 패턴의 변화도 럭셔리 패션계를 움직였다. 요즘 세대는 값비싼 로고로만 치장하는 우매한 소비를 지양한다. 반면 가치 있는 소비에 큰 의미를 둔다. 지속 가능성, 희소성, 윤리성까지 다 갖춘 브랜드를 진정한 럭셔리로 여기고 지갑을 여는 멋쟁이들이 늘면서 분위기는 반전했다. 소비자의 까다로운 안목과 풍부한 환경 감수성이 럭셔리 업사이클링의 질적 성장을 이끌어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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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로 되살린 멸종 위기 동물을 담은 스텔라 맥카트니의 친환경 캠페인. 사진 출처 | Stella McCart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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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Gucci

마지막으로 친환경 전환을 거스를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각국의 엄격한 환경 규제 때문이다. EU의 섬유 폐기물 수거 및 재활용 의무화처럼 유럽을 중심으로 환경 보호 책임을 강화하는 법안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기업이 지속 가능한 환경을 위해 고려해야 할 비재무적 요소를 의미하는 평가 지표인 ESG(Environment, Social, Governance)의 압박도 점점 거세지고 있다. 앞으로 ESG 지표는 투자 유치나 글로벌 시장 진출 등 패션계에서도 매우 중요한 잣대로 평가받을 것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환경을 고려하지 않는 기업이나 브랜드는 퇴출 위기에 놓일 날도 머지않았다. 친환경은 이제 트렌드가 아닌 생존 전략이라는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진정한 명품은 업사이클링도 잘한다

과거에는 분명 ‘명품’이라고 표현했던 유수의 브랜드들 앞에 언젠가부터 값비싼을 의미하는 ‘럭셔리’를 쓰고 있다. 이유는 분명하다. 잘 만들어진, 웰메이드의 진정한 가치를 느끼지 못해서다. 작년에는 그 의심을 확고히 하는 사건도 있었다. 한 럭셔리 브랜드의 터무니없이 낮은 가방 원가가 공개되면서 명품의 가치는 곤두박질쳤다. 럭셔리 제품을 복제해 싸게 제안하는 ‘듀프’ 상품들의 뜨거운 인기는 이에 대한 방증이다. 디자인 희소성마저 사라져버린 값만 비싼 가방이 과연 언제까지 명품 대접을 받을 수 있을까. 그들에게는 분명 특별한 회복 전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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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지구본을 세워 환경 오염의 심각성을 알렸던 샤넬 2013 FW 컬렉션. 사진 출처 | Chanel

최근 보인 샤넬의 행보는 그 삐딱한 시선을 거두는 계기가 되었다. 샤넬은 버려진 각종 원단을 수거해 새로운 원재료로 되살리는 소재 개발 플랫폼을 새롭게 출범했다. 허울 좋은 마케팅이 아닌 순환 시스템 구축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과 이를 장인 정신과 결합해 하이엔드 미학으로 풀어낸다는 점이 매우 인상 깊었다. 하이패션의 선두 그룹이자 막강한 파급력과 영향력을 가진 샤넬이기에 가능한 행보임을 부정할 수 없다. 안 팔린 가방을 불태운다는 불명예를 지우고 친환경 공급자로 나선 샤넬의 첫걸음. 지속 가능성이 곧 브랜드의 비전임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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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환 소재 개발 플랫폼, 네볼드를 설립한 샤넬. 사진 출처 | Chanel

샤넬이 투자하지만 샤넬과는 별개의 독립 법인으로 운영될 재활용 소재 개발 플랫폼은 이름하여 네볼드(Nevold). 절대 낡지 않는다는 뜻의 네버 올드(Never Old)를 축약한 이름이다. 네볼드는 낡은 가죽, 자수 잔재, 실크 폐자재 등 패션 산업 전반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을 새로운 실과 소재로 개발해 샤넬은 물론이고 타기업에도 그 인프라 기반을 제공할 예정이다. <보그>와의 인터뷰에서 브루노 파블로브스키 샤넬 패션 부문 대표가 한 말이 네볼드의 가치와 목표를 함축한다. “우리가 지금 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면, 원자재의 개념 자체를 재정의해야 합니다.”

프라다의 메시지도 강렬하다. 나일론 가방으로 유명해진 브랜드가 재활용 나일론으로 지속 가능성을 도모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2019년부터 시작된 프라다의 리-나일론(Re-Nylon) 프로젝트는 해양 플라스틱, 낚싯줄, 폐어망 등을 재활용해 만든 재생 나일론 원단을 기반으로 한다. 시작은 작은 캡슐 컬렉션이었지만 올해는 백팩, 더플백, 버킷 햇, 재킷 등 무려 191개의 대형 컬렉션으로 확장되었으며 심지어 예쁘다. 재생 나일론 하나로도 프라다의 친환경 정체성은 확고히 쌓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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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찌 글로벌 스토어는 재생 에너지와 자재를 사용한 친환경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사진 출처 | Gucci

한편 구찌와 구찌가 속한 케어링 그룹의 친환경 전환은 다방면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를 주도하는 구찌는 탄소중립을 선언한 2019년부터 꾸준한 변화와 성과를 이뤄내고 있다. 폐자원을 되살리는 순환 프로그램 ‘구찌 업(Gucci-up)’부터 재활용 소재로 완성한 첫 번째 업사이클링 컬렉션 ‘오프 더 그리드(Off the Grid)’, 2년여간의 자체 연구로 개발한 비동물성 소재 ‘데메트라(Demetra)’, 구찌의 지속 가능한 전략을 기록하고 공개하는 플랫폼 ‘구찌 이퀄리브리엄(Gucci Equilibrium)’ 등등. 구찌의 다채로운 친환경 전략은 곧 구찌의 탄탄한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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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 마틴의 첫 감독 데뷔작인 단편영화 <Grande Envie>와 함께 공개된 미우미우의 2025년 업사이클링 컬렉션. 사진 출처 | Miu Miu

업사이클링 패션도 이렇게 예쁠 수가 있구나, MZ 세대를 자연스럽게 환경 문제에 끌어들인 미우미우의 전략은 독보적이다. 2020년 론칭한 업사이클드 바이 미우미우(Upcycled by Miu Miu) 컬렉션은 빈티지 의류를 수집해 한 땀 한 땀 수작업으로 완성한 리미티드 에디션이며 해를 거듭할수록 뜨거운 인기를 얻고 있다. 특히 아카데미 의상상을 네 번이나 수상한 캐서린 마틴과 협업한 올해의 컬렉션은 소장 욕구를 한껏 자극한다. 규모는 작지만 희소성과 예술성을 높인 미우미우의 방향성은 젊고 힙한 지속 가능성의 미래를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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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MH 그룹은 재고 섬유를 판매하는 플랫폼 노나 소스를 운영하고 있다. 사진 출처 | LVMH

2021년 LVMH가 론칭한 최초의 섬유 리세일 플랫폼, 노나 소스(Nona Source)도 주목할 만하다. LVMH 산하 하우스인 루이비통, 디올, 셀린느, 펜디, 로에베 등의 창고에 쌓여 있는 재고와 자투리 원단을 그룹 내부에서 공유하거나 신진 디자이너들에게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는 방식으로 폐기물을 줄여왔다. 고급 원단을 태우지 않고 재활용하는 시스템을 갖춘 노나 소스는 합리적인 순환 경제의 좋은 선례로 꼽힌다. 넨시 도자카, 세실리아 반센 등 LVMH 프라이즈 수상자들과 스텔라 맥카트니 등 노나 소스의 잠자는 원단을 깨우는 디자이너들의 손길이 점점 늘고 있다.

마지막으로 친환경 패션을 논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있다. 윤리적 럭셔리의 개척자이자 지속 가능한 미래를 디자인하는 혁신의 아이콘, 바로 스텔라 맥카트니다. 2001년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론칭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가장 일관되고 적극적으로 친환경 패션의 비전을 제시해왔다. 스텔라 맥카트니의 오랜 노력이 없었다면 단언컨대 지속 가능한 패션의 진화는 훨씬 더디게 흘러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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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애플 잎에서 추출한 식물성 섬유 피냐얀으로 옷을 만드는 스텔라 맥카트니. 사진 출처 | Stella McCartney

스텔라 맥카트니는 특히 소재 개발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모피, 가죽, 깃털 등 동물성 소재를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는 신념은 다양한 대체 소재 개발로 이어졌다. 재활용 폴리에스터, 재생 나일론, 재생 캐시미어 등 업사이클링 소재와 버섯 기반 가죽 소재, 셀룰로스에서 추출한 생분해성 스팽글, 바나나와 파인애플 잎에서 추출한 식물성 소재 등등 환경에 부담을 줄인 대체 섬유들은 상당한 재정적 위험을 감수한 그의 투자와 도전 덕분에 세상에 나왔다. 여기에 친환경 인프라와 투명한 공급망 추적, 다양한 환경 기업과의 협업 등 스텔라 맥카트니의 친환경 전략, 아니 철학은 지속 가능한 럭셔리의 미래를 희망으로 물들인다.

나도 동참할 수 있다

이번 기사를 작성하는 동안 매 시즌 트렌드를 퍼트리고 유행을 부추기는 패션 에디터로서 참담한 심정이었다. 환경 운동가는 아니지만 패션의 민낯과 환경 오염의 심각성을 마주한 후 느낀 낯 뜨거움은 적어도 나부터 쇼핑을 줄여가겠다는 다짐을 만들었다. 소비자인 우리도 변해야 한다. 지금 패션과 환경의 정의를 재정비하고 친환경 활동에 동참하지 않으면 언젠가 패션의 아름다움과 옷 입기의 즐거움도 사라질지 모른다. 진정한 친환경 패션의 시대를 여는 열쇠는 어쩌면 우리가 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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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Chanel

필요한 만큼만 구매하기. 과소비 대신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을 신중하게 선택하는 것부터 시작이다. 중고나 빈티지 구매, 리세일 마켓 활용하기. 이것만으로도 순환 경제에 동참할 수 있다. 업사이클링 및 에코 브랜드 잘 선택하기. 오가닉, 재생 섬유 등 지속 가능한 소재를 사용한 브랜드와 제품을 잘 선별하는 안목이 필요하다. 수선과 재활용 실천하기. 망가진 옷은 버리지 말고 수선이나 리폼해서 입고 입지 않는 옷은 기부한다. 세탁 습관 개선하기. 드라이클리닝을 최소화하고 찬물에 짧은 시간 세탁한다. 세탁망을 사용하면 미세플라스틱 방출도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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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 델레바인이 함께한 스텔라 맥카트니 2024 SS 친환경 캠페인. 사진 출처 | Stella McCartney

스텔라 맥카트니 친환경 캠페인에 참여했던 모델 겸 환경 운동가 카라 델레바인이 했던 말을 되새겨본다. “지속 가능성은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행동을 의미합니다. 서로 탓하지 않고 함께 노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완벽함이 아니라 행동을 실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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