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적 삶을 향한 갈망, 유리공예가 김연진

유리공예가 김연진이 예술가의 길을 선택한 이유

주체적인 삶을 찾아 초등교사를 포기하고 유리공예를 시작한 김연진 유리공예가. 36살 처음 유리공예를 접한 그는 자기가 원하는 형태를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주체성과 자유를 느꼈다. 한예종 입학, 개인전 개최 등 하나씩 자신의 꿈을 이뤄가는 김연진 유리공예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주체적 삶을 향한 갈망, 유리공예가 김연진

누군가는 나이와 현실적 문제를 핑계로 자신의 꿈을 포기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후회로 과거를 회상한다. 착한 딸과 학생으로,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는 친절한 선생님으로 누군가를 위해서만 살았던 김연진은 더 늦기 전에 어릴 적부터 열망하던 미술가의 길을 선택한다. ‘주체적인 삶’을 살고 싶었던 그는 예술이야 말로 자유롭고 자주적인 분야라고 생각한다. 이제 유리를 주무르는 예술가가 된 그는 그동안 겪었던 아픔과 고통을 유리조형을 통해 승화하고자 한다.

“주체적인 삶을 살고 싶어서 예술가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유리공예가 김연진

Interview

유리공예가 김연진

초등학교 교사에서 유리공예가가 되기까지

36살에 유리공예를 처음 시작했습니다. 그 전에는 초등학교 교사로 일했고요. 초등학교 교사에서 유리공예가가 되기까지 그 과정이 궁금해집니다.

어릴 적부터 말 잘 듣는 학생, 착한 딸, 친절한 교사로만 살다가 어느 날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나 자신을 위한 주체적인 삶을 살아야겠다’. 그 생각의 가운데에 미술이 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미술에 소질이 있었고 색과 형태에 예민하고 감각적이었습니다. 당연히 새로운 삶을 이끄는 원동력은 미술이라고 생각했고요. 오래 전부터 미술을 정말 하고 싶었지만 번번이 생활 속 각종 일들이 저를 현실에 붙잡아 두었습니다. 그저 예술가를 꿈꾸며 막연히 살아내야 할 뿐이었죠.

​그러다가 고등학교 3학년 때 미술 공부를 하던 친구가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의 입학 시험 문제를 보여준 적이 있는데, 불현듯 그날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당시 입학 시험 문제였던 ‘빗자루로 사랑의 도구를 만들어라’가 저를 흥분시킨 거죠. 지금껏 답이 있는 삶만 살다 그 문제를 떠올린 순간 해방구를 찾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한예종 입시 시험을 치르기 위해 도서관에서 혼자 열심히 공부하며 꿈을 키웠습니다.

어릴 적부터 미술을 좋아했다고요. 여러 장르 중에서도 유리공예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유리공예의 어떤 매력에 빠졌나요?

유리공예가라고 단정짓기 보다 조각을 위한 여러 매체 중 하나로 유리를 선택했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스티로폼이나 철, 실리콘 등 다양한 혼합 재료를 사용하고 있기도 하고요. 고체였던 유리가 열에 의해 액체 상태로 주욱 늘어날 때 그 쾌감이 좋습니다. 저는 유동적인 물성을 좋아하는데 유리만큼 다양한 유동성을 가진 연질의 재료는 없는 것 같아요.

유리공예의 여러 기법 중 주로 램프 워킹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블로잉이나 캐스팅 기법도 사용하고 있지만 램프 워킹에 더 집중하는 이유는 제가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에요. 블로잉은 용광로에 압도되고 캐스팅은 시간의 통제 하에 있거든요.

교사로 일할 때 미술에 대한 미련은 어떻게 해소했나요? 관련 취미 활동을 해왔나요?

미술을 취미 생활로 하고 싶지 않았어요. 정말 사랑했기 때문에 발만 살짝 담그고 싶지 않았죠. 진정성을 가지고 진지하게 미술에 접근하고 싶었습니다. 그런 마음을 넘치게 모아두었다가 한예종에 입학하면서 한 번에 쏟아냈습니다.

현재 한예종 예술전문사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전업 작가로의 길을 선택했는데요, 안정된 직장생활을 하다 새로운 삶을 선택하기까지의 과정에서 고민은 없었나요?

전혀 없었습니다. 낭만적이고 철없는 비유일 수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어떤 조건도 필요치 않잖아요. 그리고 아직 전업 작가라고 말하기에는 민망합니다. 작가로서의 수익이 거의 없거든요.

미술을 통해 자유롭고 주체적인 삶을 살고 싶다던 바람은 이루어졌나요?

네, 제 꿈은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제가 정말 바라던 한예종에 입학하는 순간 모든 것이 이루어진 것 같아요. 훌륭한 예술가가 되고 싶다는 건 욕심일 수도 있고, 그건 앞으로 제가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자 과제인 것 같습니다.

작품의 인상이 조금 그로테스크합니다. 작품 특징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작업에서 반복해서 이미지를 생성하는 과정은 제 작업에서 매우 중요한 수단입니다. 다양한 형태로 변주된 이미지의 반복은 단순히 형태를 재배치하고 배열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자아의 부조리한 측면에 대해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개념을 과장하거나 과잉 포화 상태로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반복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작업의 외부 형태는 활력적이고 명랑한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그 내부의 의미는 어두운 추상적 요소가 결합된 이중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표현은 작업에서 모호하고 기이한 방식으로 나타나 다양한 해석을 유도합니다.

특히 실용적 기물이 아닌 아트 피스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조각을 중심으로 사고하고 매체를 다룹니다. 자연스럽게 오브제를 넘어 설치 작업에 더 큰 관심이 있고요. 생각해보니 이것도 주체적이고 싶은 마음 때문인 것 같습니다. 보통 실용적 기물은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일 때가 많잖아요. 반면 설치나 조각은 오롯이 개인 작가의 한 요소로 시작하고 마무리되니까요.

작품의 모티프는 주로 동화책, 개인의 경험 등에서 비롯된다고요. 이를 어떻게 작품의 언어로 치환하고, 표현하는지 설명해 주세요.

저는 작업의 모티프를 많은 부분 동시대 사람들의 정신적, 심리적 상태에서 영감을 얻고 있는데요. 이를 반복적이고 환각적, 환상적인 방식으로 표현하고자 노력합니다. 저는 공예가이기 보다 조각가의 정체성에 더 가깝습니다. 그래서 저만의 유리공예 기법을 개발하기 보다 재료를 통해 실험하고 표현하는 데에 관심이 더 많습니다. 유리와 실리콘을 맞대는 방식이나 유리 안에 다양한 액체를 넣어서 곰팡이를 키워보거나 아크릴 물감을 활용해 눌어붙은 살갗을 나타내는 등 다양한 표현 방식을 실험하고 있습니다.


김연진 유리공예가의 개인전, <요상한 특질>

3월 13일부터 4월 7일까지 인사동에 있는 KCDF 윈도우 갤러리에서 개인전 <요상한 특질>을 선보였습니다. 기이하고 독특한 형태의 유리조형물로 유리관 안을 가득 채웠는데요, 작품이 흥미로운지 남녀노소, 외국인 모두 지나가는 행인들의 발걸음을 붙잡았어요.

그동안 일명 동시대 미술이라고 부르는, 좀 더 개념적인 오브제를 만들고 설치하는 작업에 집중해왔어요. <요상한 특질>전은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되는 윈도우 갤러리라는 공간의 특성을 고려해 제 작품이 많은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 결과물입니다. 형태적 요소만으로도 흥미를 끌 수 있는 작품들로 구성했습니다.

대중을 고려한 전시였다고 했는데, 이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나요?

사람들이 제 작품을 보며 현실 세계의 고단함을 잠시 잊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요상한 특질>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해서 윈도우 갤러리 건너편에서 몇 시간 동안 앉아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보았는데요, 하나같이 ‘와아‘ ‘이게 뭐야? ‘정말 요상하다’ ‘신기하다’라는 반응이었어요. 사람들이 잠시 현실을 잊고 신기한 광경 속으로 들어간 것 같은 모습을 보며 감동했어요. 관람객들이 요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되어 유리 상자 안의 환상적이고도 환각적인 세계로 들어가보길 바랬거든요. 저는 앨리스를 토끼굴로 안내하는 회중시계를 찬 토끼가 되고 싶었어요.

가까운 미래에 선보일 작가님의 작품 활동이 궁금합니다.

최근 ‘오파츠’라는 작업을 시작했어요. 오파츠는 영국계 미국인동물학자 이반 샌드선이 처음 만든 단어로 시대를 벗어난 유물이라는 뜻입니다. 저는 속눈썹으로 덮힌 눈과 난소에서 자라는 기형종 안의 머리카락, 이빨, 그리고 원초적 신체의 자화상을 만들고 있어요. 그리고 아직 완성하지 못한 ‘오벌 판타지(Oval Fantasy)’를 더욱 증식시키고자 합니다. <요상한 특질>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설치 방법에 대해서도 더욱 신중하게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동시대에 유의미한 작품을 선보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김연진 작가 인터뷰 영상 보기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