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콘셉트카에서 부는 레트로의 바람

과거의 유산에서 미래의 영감을 찾다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오히려 과거의 감성과 레트로 미학을 갈망한다. 콘셉트카는 이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며, 외관은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내부는 미래 기술로 채워져 있다. 현대차·르노·벤츠·BMW·GM은 각자의 헤리티지를 재해석해 미래 비전을 제시한다.

전기 콘셉트카에서 부는 레트로의 바람

기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오히려 그와 반대의 취향을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아이러니하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변화를 재촉하는 시대에서 인간다움을 온전히 지키고 싶은 마음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런 성향은 패션, 식음료, 라이프스타일은 물론이고 자동차 분야에서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분위기는 특히 기업의 미래를 엿보게 만드는 ‘콘셉트카’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외관은 과거의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레트로한 분위기가 주를 이루지만, 내부에는 미래를 느낄 수 있는 기술들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 이는 기업의 변하지 않는 디자인 철학을 드러내기 위한 방법이며 동시에 기술 발전 속도와 방향을 극적으로 느끼게 만드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현대자동차, 헤리티지 시리즈

우리 디자이너들이 미래를 그려내기 위해서는 과거에 만들었던 것들을 되돌아보고 거기에서 영감을 얻는 것이 중요합니다.

현대자동차 내장디자인 실장, 하학수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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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현대자동차 홈페이지

이를 뚜렷이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현대자동차의 ‘헤리티지 시리즈’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과거 현대자동차가 선보였던 모델들을 되돌아보며 앞으로 선보일 디자인을 위한 영감을 얻기 위한 프로젝트로, 시리즈 속 차량들은 새로운 모델의 기반이자 방향성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과거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디자인 속에서 미래의 청사진을 그린다는 점은 깊은 감동을 선사하기에, 시리즈가 선보일 때마다 화제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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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현대자동차 홈페이지

1970년대 전설적인 이탈리아 자동차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지아로(Giorgetto Guigaro)에 의해 탄생한 ‘포니’는 1974년 10월 토리노 모터쇼(Turin Motor Show)에서 첫 선을 보였으며 한국에서 최초로 대량 생산되어 해외로 수출된 자동차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86년 출시된 현대자동차의 첫 플래그십 세단 ‘그랜저’ 또한 현대자동차 역사에서 중요한 이정표를 남긴 모델로 현재까지 여섯 세대에 걸친 발전을 거듭해왔다. 이런 역사를 가진 두 모델이 헤리티지 시리즈로 재탄생되어 공개와 동시에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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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현대자동차 홈페이지

포니와 그랜저의 헤리티지 모델은 각자의 전성기였던 시절의 스타일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미래적인 요소가 가득 담겨 있어 눈길을 끈다. 이는 과거의 유산을 지키면서도 충분히 미래적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시도였다. 오리지널 디자인에 전기차 파워트레인, 파라메트릭 픽셀 헤드라이트, 테일라이트, 와이드스크린 디스플레이 등과 같은 차세대 기술이 자연스럽게 접목되어 있는 모습에서 디자이너들의 세심한 노고가 엿보인다. 현대자동차의 시도를 통해 미래의 실마리는 과거에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르노자동차, 크리에이티브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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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르노 미디어 사이트

이 프로젝트는 르노의 독창적인 아이코닉한 디자인을 기념하는 동시에 새로운 기능을 더해 현대적인 감각을 더하여 세대를 초월하는 경험을 선사합니다.

르노 브랜드 최고 브랜딩 책임자 겸 부사장, 아르노 벨로니(Arnaud Bello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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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르노 미디어 사이트

르노(Renault) 또한 현대자동차처럼 기업의 상징적인 모델을 새롭게 조명하는 크리에이티브 프로젝트를 여러 차례 선보여왔다. 2021년부터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기업이 그동안 쌓아왔던 풍부한 유산에 디자인과 혁신을 조화롭게 융합할 수 있는 역량을 보여주는 시도였다. 그와 더불어 현재의 디자이너들에게 창의적인 영감을 불어넣는 기회가 되어왔다. 매년 창의력이 뛰어난 크리에이터들과 협업을 해왔던 르노의 프로젝트는 지난해 네 번째 협업에서 빛을 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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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르노 미디어 사이트

프랑스 디자이너 오라 이토(Ora Ïto)와의 협업으로 1970년 대를 풍미했던 르노 17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전기 콘셉트카 ‘르노 R17’가 탄생했다. 1971년 출시되어 1979년까지 생산되었던 르노 17은 당시의 첨단 기술이 적용된 차량이었다. 여기에 각진 라인과 세련된 인테리어는 우아함을 느끼기에 충분했고,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여 재탄생한 르노 R17은 클래식한 디자인의 정체성을 계승하는 동시에 270마력의 전기 모터, LED 라이트, 카본 파이버 섀시 등 첨단 기술이 더해져 레트로 퓨처리즘 분위기를 완벽하게 연출했다.


메르세데스-벤츠, 비전 원-일레븐

메르세데스-벤츠의 목표는 스타일링이 아닙니다. 바로 상징적인 디자인을 만드는 것입니다.

메르세데스-벤츠 그룹 최고 디자인 책임자, 고든 바그너(Gorden Wage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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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메르세데스-벤츠 홈페이지

오랜 전통을 가진 독일 기업들 또한 과거의 유산에서 미래를 찾는 시도를 하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스포츠카 ‘비전 원-일레븐(Vision One-Eleven)’을 통해 전설적인 아이콘이었던 모델의 역사를 되새기는 자리를 마련했다. 강렬한 오렌지 컬러에 벤츠의 21세기 스타일을 상징하는 시그니처인 ‘원-보우(One-Bow)’ 디자인이 인상적인 이 자동차는 순수 전기 파워트레인 기술이 내장된 자동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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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메르세데스-벤츠 홈페이지

미래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디자인은 사실 기존 디자인에 영감을 받은 것이다. 1950년대 제작된 300 SL과 1960-70년대 선보였던 C111이 그 주인공이다. 각각 기업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모델로 잘 알려져 있다. 300 SL은 1952년 레이싱카 W194를 기반으로 제작되었으며 스포츠카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시대를 대표하는 디자인 아이콘으로 평가받는 걸윙 도어(Gullwing Door)와 유려한 차체 디자인이 대표적이다. C111은 당시 혁신적인 방켈(Wankel) 엔진과 터보 디젤 엔진 등과 같은 여러 차세대 기술을 실험하기 위해 제작한 혁신적인 프로토타입 슈퍼카 시리즈였다. 공기 역학적인 디자인과 걸윙 도어, 오렌지 컬러 또한 이 모델을 정의하는 요소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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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메르세데스-벤츠 홈페이지

메르세데스-벤츠 그룹 최고 디자인 책임자 고든 바그너(Gorden Wagener)는 “메르세데스-벤츠의 목표는 스타일링이 아닙니다. 바로 상징적인 디자인을 만드는 것입니다. 저에게 있어 이것이 주류 디자인과 럭셔리 디자인의 차이를 만듭니다.” 라며 “걸윙 도어를 장착한 Type 300 SL과 C111과 같은 디자인 아이콘은 우리 DNA의 일부입니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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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메르세데스-벤츠 홈페이지

기업의 DNA가 녹아들어 있는 이 콘셉트카에는 당연하게도, 획기적인 기술이 내장되어 있다. 벤츠의 자회사인 전기 모터 전문 기업 ‘YASA’가 개발한 축방향 플럭스 첨단 전기 모터를 비롯하여 포뮬러 1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셀 화학 기술 기반 수랭식 원통형 배터리가 함께 해 광범위한 성능 스펙트럼을 자랑한다.

여기에 증강 현실을 활용한 실내 인터페이스는 미래에 어떤 방식으로 운전 경험을 즐길 수 있는지 보여준다. 이처럼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발전이 결합된 비전 원-일레븐은 벤츠가 나아갈 길을 명확히 제시하는 등대의 역할을 하고 있다.


BMW, 오마주(Hommage)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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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BMW 미디어 사이트

BMW 328의 선조들의 열정과 창의성에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그들은 자동차 역사의 이정표로 여겨지는 상징을 창조했습니다.

BMW 그룹 클래식 디렉터, 칼 바우머(Karl Bäumer)

BMW는 주기적으로 오마주(Hommage) 시리즈를 제작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명차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하고 있다. 그중에서 기업의 헤리티지와 고전적인 감성을 현대적인 기술과 절묘하게 결합한 모델이 바로 ‘328 오마주(328 Hommage)’다.

이는 1930대 혜성처럼 나타나 각종 레이스에서 우승을 기록하며 모터스포츠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던 전설적인 ‘328 로드스터’에 대한 존경을 표현하기 위해 제작되었다. 모델 출시 75주년을 기념하여 제작된 328 오마주에는 기존 모델의 상징이었던 수직 더블 키드니 그릴 디자인이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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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BMW 미디어 사이트

그와 더불어 원형 헤드램프 디자인과 로드스터의 비율을 유지를 유지한 점도 눈길을 끈다. 헤드램프에는 과거 레이싱 경기에서 비산 방지를 위해 붙였던 테이프에 착안한 ‘X’ 표시가 더해져 오마주다운 디테일과 센스를 엿볼 수 있다.

또한 탄소섬유 소재로 차체를 만들어 오리지널과 동일한 무게로 제작했다. 이는 경량화와 차체 밸런스 등을 통해 혁신을 추구했던 초기 모델을 염두에 둔 설계라고 할 수 있다. 시간이 흘러 328 로드스터 또한 다른 모델들과 같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금 콘셉트카를 통해 역사를 기리며, 혁신적인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헌신했던 이들의 열정과 노력을 되새길 수 있게 되었다.

GM 차이나, 뷰익 엘렉트라 오빗 콘셉트

우주 시대의 모티프를 새롭게 해석하고 전기차 아키텍처가 주는 자유를 활용해, 뷰익 DNA에 익숙함과 전혀 새로운 스릴을 동시에 담고자 했습니다.

GM 중국 및 GM 인터내셔널 디자인 부사장 겸 SAIC-GM 디자인 총괄, 스튜어트 노리스(Stuart Nor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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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GM 인스타그램 계정

GM 중국은 최근 1950년대 뷰익 콘셉트카의 헤리티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순수 전기 콘셉트카 ‘뷰익 엘렉트라 오빗 콘셉트(Buick Electra Orbit Concept)’를 선보였다. 이는 뷰익이 그동안 쌓아온 디자인 유산과 미래 기술을 어떻게 결합해 나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실험적이고 상징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1950년대 사람들이 꿈꿔왔던 우주여행과 그로 인해 생겨난 레트로 퓨처리즘의 현대적인 감성을 느낄 수 있는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GM 차이나 어드밴스드 디자인 센터에서 기획 및 개발된 이 콘셉트카는 뷰익 디자인의 한계를 확장하고 미래 가능성을 제시하기 위해 비율과 소재, 실내 구성 등 전반에 걸쳐 실험적인 접근이 이루어졌다. 낮은 전면부와 넓은 차체, 길게 뻗은 유선형 후면에서 공기역학적인 탐구가 느껴진다. 차체 색상은 중립적인 메탈릭 컬러 ‘스페이스(Space)’가 사용되어 우주의 색채와 신비로움을 반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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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GM 인스타그램 계정

실내에는 뷰익의 편안함을 중심으로 하는 철학이 반영되었다. 여기에 A 필러에서 A 필러까지 이어지는 아치형 디스플레이 ‘링(Ring)’이 몰입형 디지털 경험을 제공한다. 또한 주행 모드에 따라 계기판과 스티어링 휠이 재배치되어 운전자 중심의 모드와 자율주행 모드 모두에서 최적화된 환경을 구현한다. 실내 테마인 ‘그라운드( Ground)’는 지구의 질감과 우주적 영감을 절묘하게 대비시켜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극대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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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GM 인스타그램 계정

뷰익 엘렉트라 오빗 콘셉트는 과거의 낭만과 미래의 가능성이 공존할 수 있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더 흥미로운 점은, 1950년대에는 상상 속에만 존재하던 우주여행이 오늘날에는 점차 현실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 속에서 미래 지향적 접근이 한층 구체화되며 이번 콘셉트카의 형상과 디테일 전반에 깊이 스며들었다. 과거와 미래의 조화는 이렇게 서로의 접점을 찾으며, 우리 삶의 방향을 조금씩 바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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