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로 만나는 영화감독 빔 벤더스의 예술

빔 벤더스의 80세 생일 기념 전시 <W.I.M. 시선의 예술>

독일 거장 영화감독이자 사진가, 작가인 빔 벤더스의 80세를 기념해 독일 본 분데스쿤스트할레에서 특별 전시 <W.I.M. 시선의 예술>이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그의 대표 영화와 사진, 드로잉, 아카이브 자료를 비롯해 몰입형 영상 설치와 오디오 내레이션 프로그램까지 마련해 ‘여행자이자 예술가’로서 그의 시각적 세계와 창작 정신을 다각도로 조명한다.

전시로 만나는 영화감독 빔 벤더스의 예술

영화계 거장이자 사진가, 작가 등 전방위 예술가이기도 한 빔 벤더스의 80번째 생일을 맞아 본 분데스쿤스트할레에서는 강렬한 시각적 몰입형 전시 ‘W.I.M. 시선의 예술’을 그에게 헌정한다. 빔 벤더스는 페터 한트케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1972), <잘못된 움직임>(1975), <도시의 앨리스>(1973/1974), <미국인 친구>(1977) 등의 영화로 명성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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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m Wenders, 2023 © Donata Wenders, Courtesy of Wenders Images

또 다른 기념비적인 영화 이정표로는 1984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파리, 텍사스>와 <베를린 천사의 시>(1987)가 있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1999)으로 오스카상 후보 노미네이트, 유럽 영화상 수상했으며 2024년에는 <퍼펙트 데이즈>(2023)로 아시아 태평양 지역 최우수 영화로 호평을 받았고, 오스카상에 다시 한번 노미네이트됐다. 또한 빔 벤더스는 예술가들을 다룬 작품 <피나>(2011)와 <안젤름>(2023) 등 3D 기술을 활용한 섬세한 감각의 다큐멘터리 작품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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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nnis Hopper in Der amerikanische Freund von Wim Wenders © 1977 Road Movies
Mit freundlicher Genehmigung der Wim Wenders Stiftung

빔 벤더스는 자신을 “감독이나 사진가이기 이전에 여행자”라고 말한다. 따라서 전시 제목의 W.I.M.은 ‘Wenders in Motion’의 약자일 수도 있다. 이번 전시는 그런 그의 예술적이고 시각적인 세계를 집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전시에는 방대한 영화 편집본과 함께 대형 컬러 사진, 소형 흑백 사진, 폴라로이드, 콜라주, 여러 해에 걸쳐 제작된 드로잉이 포함되어 있다. 전용 아카이브 섹션에는 제작 문서, 시나리오, 편지, 제작 현장의 사진 자료가 마련되어 있어 작품의 시간적 맥락을 드러내고, 관람객을 그의 창작 세계로 끌어들이고 있다. 작가이자 비평가로서의 글쓰기 또한 전시에 포함되어 있다. 음악에 대한 그의 깊은 애정과 해박한 지식 역시 함께 조명되고 있다. 전시는 영화 교육, 여행, 문학, 일본에서 받은 영감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아울러 빔 벤더스가 시각 예술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어떤 롤 모델과 참고 자료를 통해 보는 법을 익혔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빔 벤더스는 고등학교 졸업 후 뮌헨, 프라이부르크, 뒤셀도르프에서 의학과 철학을 공부했지만, 그의 주된 관심사는 회화였다. 1966년, 그는 학업을 중단하고 화가가 되기 위해 파리로 갔고, 그곳에서 독일계 프랑스인 그래픽 아티스트이자 판화가인 조니 프리트랜더에게 도제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진정한 스승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였다. “거기서 영화사 속성 수업을 제대로 받았어요.”라고 회상하는 그는 일 년에 천 편이 넘는 영화를 보고, 영화를 “다른 수단을 통한 회화의 연장선”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의 독창적인 미학과 혁신적인 실험은 전시장 안 소규모 3D 영화관에서 직접 경험할 수 있다. 특히 미국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시각 언어를 활용한 영화는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이 가운데 본 전시를 위해 특별히 마련된 몰입형 영화적 공간 설치물은 핵심적인 하이라이트로, 최신 디지털 영상과 사운드 기술을 통해 관람객이 그의 영상 세계 속으로 깊이 빠져들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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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sstellungsansicht, Foto: Simon Vogel, 2025 © Kunst- und Ausstellungshalle der Bundesrepublik Deutschland

또 다른 주요 프로그램은 구술 역사 형식의 오디오 워크다. 벤더스가 직접 내레이션으로 관람객을 안내하며, 각 작품과 장면에 얽힌 배경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결국 이번 전시는 빔 벤더스의 시각적 세계와 미학을 따라가는 여행이다. 동시에 그의 창의적 정신과 디자인적 비전을 탐구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가 말하는 ‘시선의 예술’ 은 단순한 감각에 머무르지 않고, ‘보는 행위’를 ‘보여주는 행위’로 확장시키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그가 본 세계를 함께 바라볼 수 있게 된다.

키워드로 살펴보는 전시 가이드

#천사

저에게 ‘천사’는 무엇보다도 우리 안에 품고 있는 더 나은 사람, 우리가 흔히 되고 싶어 하는 사람,
즉 우리 안의 아이를 상징하는 은유입니다.

빔 벤더스

젊은 빔 벤더스는 파울 클레의 Angelus Novus (1920)에서 영감을 받아 자신의 첫 상상력을 종이에 옮길 때 이미 천사를 그렸다. 이후 그는 이 주제를 두 편의 영화에서 주요 모티프로 사용한다. <베를린 천사의 시>에서는 신이 베를린에 보낸 천사를 타락한 존재로 그려내고, <멀리, 가까이>에서는 그 이야기를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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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no Ganz in Der Himmel über Berlin von Wim Wenders © 1987 Road Movies – Argos Films
Mit freundlicher Genehmigung der Wim Wenders Stiftung – Argos Fil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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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sstellungsansicht, Foto: Simon Vogel, 2025 © Kunst- und Ausstellungshalle der Bundesrepublik Deutschland

# 로드 무비

빔 벤더스와 가장 밀접하게 연관된 장르는 로드 무비다. 이동은 그의 영화적 핵심 모티프이자 창작 방식으로, 여행 중 마주치는 장소들이 이야기의 출발점이 된다. 1960~80년대에는 폴라로이드가 그에게 영화 연구와 기록을 위한 가장 중요한 도구였다. 그의 마지막 로드 무비 <이 세상 끝까지>(1991)는 베니스, 파리, 뉴욕, 도쿄, 모스크바, 호주 등 전 세계를 무대로 촬영되었으며, 시각 장애인 어머니를 위해 특수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아들의 이야기를 중심에 둔다. 이 작품을 통해 벤더스는 다큐멘터리의 가능성과 카메라 매체의 확장을 탐구하며, 카메라를 경험을 포착하는 도구이자 여행을 이미지 추적의 방식으로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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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sstellungsansicht, Foto: Simon Vogel, 2025 © Kunst- und Ausstellungshalle der Bundesrepublik Deutsch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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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Sydney, Sydney 1984 © Wim Wenders
Mit freundlicher Genehmigung der Wim Wenders Stiftung – Argos Films

#문학

글을 쓸 때만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요. 눈앞에 적힌 글을 보면 생각이 저절로 명확해지죠.

빔 벤더스

이번 전시의 한 섹션은 문학과 글쓰기, 그리고 그에게 영감을 주고 우정을 나눈 작가들과의 깊은 관계를 보여준다. 다른 섹션에서는 그가 직접 남긴 글, 비평, 연설문 등이 전시된다. 벤더스에게 가장 중요한 작가는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로, 그의 작품집은 지금도 벤더스 곁에 있다. 프란츠 카프카, 알베르 카뮈, 장 폴 사르트르와 함께, 동시대의 폴 오스터와 샘 셰퍼드 역시 그의 영화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미술

모든 위대한 화가는 우리에게 보는 법을 가르쳐 줍니다.

빔 벤더스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와의 만남은 빔 벤더스가 공간과 시간을 바라보는 방식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그는 바실리 칸딘스키, 파울 클레, 앤드루 와이어스, 에드워드 호퍼, 발튀스, 마크 로스코, 사이 톰블리, 볼스 등 추상과 사실주의를 넘나드는 동시대 미술가들에게도 관심을 기울였다. 아우구스트 잔더와 워커 에반스 같은 사진가들 역시 그의 시각적 접근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세바스티앙 살가두와의 우정은 영화 <제네시스: 세상의 소금>(2014)으로 결실을 맺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살가두의 사진 두 점은 벤더스의 개인 소장품으로, 사회 다큐멘터리 사진가가 그의 작업 세계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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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sstellungsansicht, Foto: Simon Vogel, 2025 © Kunst- und Ausstellungshalle der Bundesrepublik Deutschland

#미국

빔 벤더스는 어린 시절부터 미국 대중문화를 접했다. 음악적으로는 로큰롤과 블루스를 통해, 영화적으로는 앤서니 만과 존 포드의 서부극을 통해, 문학적으로는 대실 해밋과 레이먼드 챈들러의 하드보일드 탐정 소설을 통해 미국을 경험했다. 그의 눈에 미국은 자유와 무한함을 약속하는 신화적 공간이자 동경의 대상이었다. 이러한 탐구는 점차 그의 영화 속에서 중요한 주제로 자리 잡았다. 특히 감시 사회의 현실을 그려낸 <폭력의 종말>(1997)과, 9·11 테러와 부시 행정부의 테러와의 전쟁이 남긴 사회적 파장을 다룬 <랜드 오브 플랜티>(2004)에서 그 경향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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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tire Family Las Vegas, USA, 1983 von Wim Wenders © Wenders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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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yeth Landscape, USA, 2000 von Wim Wenders © Wenders Images

#일본

<도쿄가>(1985)에서 빔 벤더스는 자신의 스승이라고 일컫는 오즈 야스지로의 발자취를 따라 일본을 여행한다. 오즈가 세상을 떠난 지 20년 후, 그는 오즈의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와 장소, 사람들을 찾아 나선다. 그가 발견한 것은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어린 시절의 유토피아였다. 공익에 대한 깊은 의식, 작은 것들에 대한 세심한 관심, 그리고 봉사하는 직업에까지 부여된 고귀한 명예가 거기 있었다. 수십 년 뒤 빔 벤더스는 <퍼펙트 데이즈>(2023)에서 이러한 태도를 다시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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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ji Yakusho und Arisa Nakano in Perfect Days von Wim Wenders © 2023 MASTER MIND Ltd

<W.I.M. 시선의 예술 W.I.M. DIE KUNST DES SEHENS>
장소 본 분데스쿤스트할레 Bundeskunsthalle Bonn
기간 2025년 8월 1일 – 2026년 1월 11일
웹사이트 홈페이지,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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