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한 데이터의 교향악, 〈2025 ACC 포커스–료지 이케다〉전

올해 개관 10주년을 맞은 ACC가 미디어 아티스트 료지 이케다와 10년 만에 재회했다. <2025 ACC 포커스-료지 이케다>전은 미학적 재료로서 데이터의 가능성을 조명하는 전시다.

장대한 데이터의 교향악, 〈2025 ACC 포커스–료지 이케다〉전

복잡한 데이터를 눈에 보이는 형태로 가공하는 행위를 ‘데이터 시각화’라 한다. 기술과 정보가 시대를 주도하는 가운데, 현상의 세계까지 침투한 데이터는 인간의 신체와 감각마저 변화시키는 중이다. 지금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에서 열리고 있는 〈2025 ACC 포커스– 료지 이케다〉전은 감각을 일깨우는 미학적 재료로서 데이터의 가능성을 조명하는 전시다. 료지 이케다는 1990년대부터 전자음악과 데이터에 대한 실험을 이어온 오디오-비주얼 아트의 선구자다. 소리, 빛, 수학적 구조와 데이터의 반복을 통해 인식의 경계를 탐구하고 기술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제시해왔다. 특히 이번 전시는 2015 년 ACC 개관 당시 대형 설치 작업 ‘test pattern [n°8]’을 선보인 이후 10년 만의 재회라 더욱 의미가 깊다. 올해로 10주년을 맞은 기관의 지향점을 선명히 하기 위해 다시 한번 작가의 시선을 빌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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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a.flux [n˚1]’, 2020 사진 Jack Hems
critical mass 2025 photo by National Asian Culture Center
‘critical mass’, 2025 사진 ACC

이번 개인전에서는 신작 4점을 포함한 7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전시의 시작을 알리는 ‘data.flux [n°2]’는 DNA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패턴 작업이다. 10m 길이의 LED 스크린을 타고 흐르는 패턴이 관람객을 몰입의 세계로 안내한다. 또 다른 신작 ‘크리티컬 매스critical mass’는 스크린에 투사된 검은 원과 흰빛이 극명한 대비를 이루고 공간 안팎에서 울리는 기묘한 전자음이 신체 감각을 극대화한다. 이 작품은 블랙홀의 경계인 ‘사건의 지평선’에서 착안한 것으로, 광활한 우주의 끄트머리를 가늠하는 과정에서 인간이 겪는 이해의 한계와 정보 과부화를 공감각적으로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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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a-verse 1/2/3’, 2019~2020 사진 David Stjernholm

전시장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한 ‘데이터 -버스dataverse’ 3부작은 단연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다. 우주 관측 자료, 인간의 유전자 정보, CCTV 가 비추는 도시 간 네트워크까지 방대한 정보가 고주파 사운드와 함께 쏟아진다. 매초마다 변화하는 동적 데이터와 정적 데이터를 융합해 조화로운 비주얼을 빚어냈다. 작품에 사용한 모든 데이터는 허구가 아니라 실제다. 20여 년간 방대한 양의 정보를 분석하고 시각화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쳤다고. 작가는 일련의 행위를 ‘작곡’에 빗대었다. 오케스트라 연주를 감상할 때 누구도 질문하지 않는 것처럼, 관객 스스로 작품의 의미를 발견하고 해석하기를 바란다는 의미다. 이 같은 작가의 의도는 전시 디자인에도 투영되어 있다. 칠흑같이 어두운 전시장 어느 곳에서도 설명 글을 찾아볼 수 없다. 작품이 유도하는 신체와 감정의 변화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한 것. 재활용 가능한 1000개의 모듈형 벽체로 폐자재를 줄이려 노력한 점도 돋보인다.

더욱 정교한 알고리즘과 확장된 데이터 스펙트럼으로 돌아온 료지 이케다는 기술과 예술의 접점에 서서 경계 없는 사유를 펼쳤고, 그가 시대에 응답하는 방식은 동시대 예술이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는 ACC의 태도와 공명한다. 료지 이케다와 ACC의 10년이 교차하는 이번 전시는 12월까지 이어진다.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567호(2025.09)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매거진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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