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테크 디자인을 완성하는 휴머니즘, 리프 X

중국 선전 기반의 산업 디자인 스튜디오 '리프 X'는 차가운 하이테크 기기에 인간적인 디자인을 더하며 남다른 성과를 보이고 있다.

하이테크 디자인을 완성하는 휴머니즘, 리프 X

DJI에서 상업용 드론 시장을 뒤바꾼 모델 ‘매빅 프로Mavic Pro’와 ‘매빅 에어Mavic Air’의 디자인을 진두지휘한 덩위몐邓雨眠은 깊은 고민에 사로잡혔다. 인하우스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많은 성과를 거두고 안정된 직장을 얻었지만, 정작 디자이너로서의 커리어는 한계에 다다랐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성공 가도를 달리던 DJI를 퇴사한 그는 2018년 선전에 산업 디자인 스튜디오 ‘리프Leap X’를 설립한다.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드론들을 디자인한 덕분에 테크 분야 클라이언트들의 의뢰가 이어졌고, 전자 제품과 로봇을 중심으로 한 포트폴리오가 형성되었다. 이에 따라 리프 X는 현재 명실상부한 하이테크 전문 산업 디자인 스튜디오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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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위몐이 DJI 재직 당시 디자인을 총괄한 드론 모델, 매빅 에어.

선전의 수많은 산업 디자인 스튜디오와 리프 X의 차이점은 기술에 대한 높은 이해도와 총체적 관점의 접근이다. 미국 듀크 대학교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창업자와 여러 영역에서 경험을 쌓아온 디자이너들이 다방면으로 검토하며 디자인을 진행한다. 엔지니어와 긴밀하게 소통하며 고객에게 필요한 기능을 확인하고, 이를 기반으로 제품을 디자인한다. 얼핏 보면 리프 X가 첨단 기술을 맹목적으로 좇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모든 것은 인간 중심의 디자인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다. 덩위몐도 “우리의 디자인 철학이 기술 중심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실제로는 매우 인간 중심적이다”라고 답했다. 리프 X의 디자인을 유심히 살펴보면, 날카로운 직선 대신 부드러운 곡선과 편안한 톤앤매너가 두드러지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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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 헤드셋 디자인 개발 프로젝트. 기존의 AR 헤드셋보다 발열량과 크기를 줄이는 데 주력했다. 이를 위해 헤드셋 전면부를 비우고, 화면과 이마 지지대를 통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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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포의 가정용 로봇 ‘샤오부’. 노인을 위한 로봇으로 친숙하게 느껴지도록 디자인했다. 외관에 촉감이 부드러운 소재를 적용하기 위해 크바드라트와 협업했다.

오포(Oppo)의 로봇 ‘샤오부Xiaobu’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노인을 위한 가정용 로봇 개발에 참여한 리프 X는 로봇을 신뢰할 만한 동반자로 느끼게 하는 데 주력했다. 이에 강아지나 고양이와 비슷한 크기의 소형 로봇이 위를 올려다보는 구도로 외관을 디자인했다. 또 항상 한 팔로 태블릿 PC를 들게 했는데, 이는 로봇과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것이지만, 제품을 더욱 친근하게 느끼게 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이렇듯 리프 X는 사용자를 깊이 고려한 하이테크 디자인을 주로 선보였지만, 최근 들어 로테크 디자인에도 도전하고 있다. 핵심 가치는 유지한 채 새로운 영역으로 ‘도약(leap)’하려는 리프 X의 앞으로의 행보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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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장비 전문 기업 센티어 메디컬 시스템스Sentiré Medical Systems의 복강경 수술 로봇. 복잡한 기계로 수술을 받는 것에 대해 환자가 부담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외관을 부드럽고 둥글게 디자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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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기기 전문 스타트업 픽스붐Pixboom의 카메라 ‘스파크S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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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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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위몐
리프 X 창업자 겸 대표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인간의 복지를 위한 것이며, 기술은 목적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선전에 스튜디오를 설립한 이유가 궁금하다.

선전은 내가 나고 자란 고향이다. 첨단 기기를 개발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도시이기도 하다. 테크 기업과 관련 공급 업체가 많아 리프 X를 운영하기에 최고의 도시라고 생각했다. 다만 가끔씩 지루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테크 분야가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예술과 문화 분야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테크 기업이 부상함에 따라 중국 산업 디자인 스튜디오의 활동도 활발할 것 같은데, 실제론 어떤가?

한때는 그랬지만, 요즘은 다르다. 선전에 국한해서 이야기하자면 최근 몇 년 사이 도시의 경제성장이 둔화되면서 디자인 스튜디오도 실적이 좋지 않다. 대형 테크 기업은 인하우스 디자인 팀을 선호하거나 심도 있고 혁신적인 디자인을 할 수 있는 스튜디오를 찾는다. 문제는 그런 역량을 지닌 디자인 스튜디오가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다. 선전에 너무 많은 스튜디오가 입주하다 보니 경쟁이 치열해지고, 프로젝트 단가는 낮아지고 있다. 수익률이 충분하지 않으니 좋은 디자이너를 고용하기 어렵고, 결과적으로 젊은 디자이너들을 착취해서 수익을 창출하는 디자인 스튜디오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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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 로봇 ‘시티즌Citizen’ 디자인 개발 프로젝트. 리프 X는 직접 배달 기사로 일해보는 등 도심 내 물류 및 배송 환경에 대한 심도 있는 리서치를 진행했고, 그 결과를 디자인에 반영했다. 실내와 실외 모두에서 주행 가능하도록 했으며, 물건을 담는 방식과 사람들에게 친숙한 외관으로 디자인하는 데 주력했다.
최근에 집중하고 있는 디자인 분야가 있나?

첨단 장비 디자인에 몰두하고 있다. 첨단 기술을 적용한 장비가 일상에서 점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우수한 제품을 디자인하면 불편한 사용자 경험을 개선할 수 있고, 관련 산업의 발전을 촉진해 사회적·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이는 리프 X가 지향하는 바와도 부합한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인간의 복지를 위한 것이며, 기술은 목적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렇다면 첨단 기기를 디자인할 때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엔지니어와의 소통. 디자이너는 기술이 어떻게 작동하고, 사용자에게 필요한 바가 무엇인지를 이해한 뒤 제품을 구성해야 한다. 때로는 작업 과정에서 엔지니어링과 디자인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경우도 있다. 훌륭한 디자이너는 이마저도 편안하게 즐길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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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 게이밍 바이크. 게임적 요소로 운동을 재밌게 할 수 있도록 고안한 사이클. 자전거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콤팩트하게 디자인했으며, 게임 진행에 필요한 요소를 핸들 바 안에 내장했다.
지난 6월 선전에서 열린 커뮤니티 토크 ‘프리즘 오브 디자인’에 연사로 참여했다. 한국의 산업 디자이너들을 만난 소감이 궁금하다.

한국의 디자인 커뮤니티와 소통할 수 있는 드문 기회였기에 제안을 기쁘게 수락했다. 행사를 기획한 BKID와 세컨드 화이트는 그동안 인터넷을 통해서만 소통했는데, 이번 기회에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어 정말 반가웠다. 한국 디자이너들과 대화하면서 디자인을 향한 열정과 깊이 몰입하는 태도를 느꼈다. 전통문화적 요소와 현대적 디자인을 결합해 독창적인 스타일을 형성하고, 특히 디자인 프로세스에서 디테일을 다루는 수준이 인상적이었다. 방법론 측면에서 세밀하고 다양한 사용자 조사를 진행하는 것도 흥미로웠다. 이러한 점들은 리프 X와 관련해서 많은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앞으로 한국 디자이너들과 교류하고 협업할 기회가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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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체 개발한 스피커 ‘토킹 헤즈Talking Heads’. 헤드폰을 걸어둘 수 있도록 스피커 좌우측에 홈을 설계했다. 완전한 구에 가까운 스피커와 헤드폰이 합쳐지면 인간의 얼굴이 연상되는 것이 특징이다.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567호(2025.09)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매거진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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