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종 마르지엘라의 새로운 실험 ‘Line 2’
《다른 곳, 레마, 열린 몸통(Elsewhere, Rhema, Open Torso)》전
메종 마르지엘라(Maison Margiela)가 새로운 프로젝트 라인 ‘Line 2’를 한국에서 처음 공개했다. 새롭게 론칭한 ‘Line2’는 기존처럼 의류나 액세서리 범주를 지칭하는 라인이 아니라, 전시, 퍼포먼스, 토크, 캠페인 등 예술과 패션을 연결하는 실험적 협업 프로젝트 전용 라인으로 다양한 형식으로 확장될 예정이다.


프리즈(Frieze) 주간을 맞이해 메종 마르지엘라(Maison Margiela)가 새로운 프로젝트 라인 ‘Line 2’를 한국에서 처음 공개했다. 메종 마르지엘라의 라벨 시스템은 라인을 숫자로 구분해 각 제품군의 정체성과 실험적 성격을 드러내는 독창적 라벨 체계다. 예를 들어 ‘Line 1’은 여성 컬렉션, ‘Line 10’은 남성 컬렉션을 가리키며, ‘Line 22’는 신발 라인을 의미한다. 새롭게 론칭한 ‘Line2’는 기존처럼 의류나 액세서리 범주를 지칭하는 라인이 아니라, 전시, 퍼포먼스, 토크, 캠페인 등 예술과 패션을 연결하는 실험적 협업 프로젝트 전용 라인으로 다양한 형식으로 확장될 예정이다.

공개된 장소는 메종 마르지엘라 한남동 플래그십 부티크. 그 첫 번째 프로젝트로 시각 예술가 정희민(Chung Hee Min)과 음악가 조율(Jo Yul)이 함께한 설치미술 전시 《다른 곳, 레마, 열린 몸통(Elsewhere, Rhema, Open Torso)》가 열리고 있다. 두 작가의 작품들은 플래그십 부티크의 외벽에 있는 메종 마르지엘라의 로고에서 시작해, 내부의 인공 정원, 내부 쇼룸 1, 2층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조각을 통해 디지털과 물질의 경계를 탐구하는 정희민과 몸과 악기, 소리를 매개로 작업하는 조율. 이 두 작가와의 협업은 메종 마르지엘라 2025 가을/겨울 아방 프리미에르 컬렉션의 테마인 ‘닳고 마모될 정도로 오래도록 사랑받은 대상에 남은 시간의 흔적(Loved to Death)’과 연결되어 있다. 또한, 플래그십 부티크 공간 전체를 하나의 실험 무대로 삼아 작품과 건물이 긴밀하게 호흡하도록 기획되었다.

조율은 이번 전시에서 닥소폰(Daxophone)이라는 나무로 만든 독특한 악기를 사용했다. 이 악기는 작은 몸짓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연주자의 움직임을 소리로 즉각적으로 드러낸다. 연주자가 직접 무대에 서지 않아도 설치만으로 전시공간에서 생동감을 줄 수 있다는 것. 공연이 정해진 시간 안에서 수동적으로 감상되는 것과 달리, 전시는 관객이 자유롭게 공간을 움직이며 능동적으로 경험하는 자리다. 이번 작업은 바로 그 차이를 활용해 관객이 각자의 속도와 감각으로 작품을 해석하도록 열어 두었다. 그녀의 사운드 작업물은 곳곳에서 재생되니, 전시를 관람할 때 공간에 스며든 작은 소리에도 귀 기울여 보길 권한다.

정희민의 조각은 전시의 풍경을 또 다른 방식으로 확장한다. 부티크 초입에서 마주하는 작품 〈In The Wake of Reflections〉는 청동과 구리로 제작된, 덩굴을 연상시키는 형태다. 이 조형물은 조율의 사운드 작업과 빛, 그리고 풍경까지 흡수하는 매개로 기능한다. 3D 그래픽의 유동성과 금속의 무게감을 동시에 품어 관객 각자가 다른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정원 중앙의 대형 설치물부터 전시장 내부의 장치들까지도 이번 컬렉션의 주제인 ‘Loved to Death’를 시각적으로 응축한다.

두 작가의 접근은 전시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맞물린다. 한남 부티크의 인공 정원을 출발점으로 다듬어진 풍경 위에 밀림의 감각을 겹쳐 놓으며 부티크 전체를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시킨다. 관객은 실제로는 가보지 못한 장소이지만 어디선가 본 듯 낯설고도 익숙한 장소성을 경험하게 되며, 조각과 소리, 환경과 신체가 맞물리는 새로운 장면 속에 들어선다. 전시의 중심 키워드인 숫자 2는 단순히 두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존재가 만나 새로운 감각을 생성하고 이전과는 다른 장면을 열어가는 관계의 상징으로 기능한다.

전시 제목의 ‘열린 몸통’은 이 과정을 상징적으로 설명한다. 조각의 구멍을 통해 풍경과 빛이 스며들고, 소리가 그 틈을 따라 흐르면서 서로 다른 세계가 만나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낸다. 이는 조각과 소리의 공존을 넘어, 신체와 환경, 나와 타자가 이어지는 열린 통로로 확장된다.


메종 마르지엘라의 ‘Line 2’ 런칭의 포문을 연 《다른 곳, 레마, 열린 몸통》 전시는 패션과 예술이 만나게 되는 하나의 실험이다. ‘Line 2’는 패션 브랜드가 예술과 협업하는 방식을 탐구하고 확장하기 위해 마련된 프로젝트 라인으로, 이번 전시는 그 방향성을 드러내는 출발점이다. 메종 마르지엘라가 꾸준히 이어온 실험적 태도와 해체주의적 감각은 이제 다양한 형식으로 치환되어 예술가와의 긴밀한 협업을 통해 새로운 차원의 경험을 만들어 내게 될 예정이다. 매번 센세이션한 디자인과 철학으로 우리를 놀라게 한 메종 마르지엘라가 라인 2를 통해 앞으로 어떤 예술 협업 프로젝트를 선보이질지 더욱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