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재생의 새로운 문법, 레제네라시온 디자인 철학

펠리페 사파타(Felipe Zapata)를 만나다.

레제네라시온이 지향하는 ‘재생’은 지속가능성, 참여, 회복력, 그리고 지역과 역사의 집단 기억을 아우르는 실천이다. 사회 전반에서 지속가능성이 중요한 키워드로 자리 잡은 지금,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도시 디자인 전략과 철학을 조명한다.

도시 재생의 새로운 문법, 레제네라시온 디자인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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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테반 사모라(Esteban Zamora) + 프란시스코 아사그라(Francisco Azagra) + 펠리페 사파타(Felipe Zapata) 레제네라시온의 창립자들 프로필 사진. ©Regeneraxión

<레제네라시온(Regeneraxión)>은 2014년, 칠레와 라틴아메리카 전역에서 반복되던 배제적·분절적 도시 디자인 모델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고민하며 스튜디오의 문을 열었다. 공동 창립자 프란시스코 아사그라(Francisco Azagra), 에스테반 사모라(Esteban Zamora)와 펠리페 사파타(Felipe Zapata)는 건축가이자 교육자로 활동하며 도시 외곽이 동질화되고, 양질의 인프라와 공공 공간이 부족한 현실을 확인하면서 문제 의식을 직감했다고 밝혔다. 따라서 <레제네라시온>은 도시 재생이 더 이상 물리적 개선이나 미적 정비로 환원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라는 것을 사회에 인식시키고, 사회 통합과 지역 회복, 그리고 문화적 가치의 제고를 아우르는 심층 과정이어야 한다는 강한 신념을 가지고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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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레이나 환경 파빌리온(Pabellón Ambiental de La Reina) — 공공입찰건축, 라 레이나, 2.1ha / 1,400㎡ ,2014.12–2015.04. ©Regeneraxión

기후 위기와 이주, 디지털화, 심화되는 불평등을 마주하는 과정에서 이들의 사명은 영토를 다층적으로 이해하는 체계로 진화했다. 오늘날 <레제네라시온>이 가리키는 ‘재생’은 지속가능성, 참여, 회복탄력성 그리고 지역·역사의 집단 기억을 엮어내는 실천에 가깝다. 사회 여러 측면과 같이 디자인에서 지속가능성이 주요 키워드로 거듭나고 있는 현재, 이 인터뷰를 통해 레제네라시온의 지속가능한 도시 디자인을 소개하고자 한다.


Interview

펠리페 사파 레제네라시온 공동 창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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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테반 사모라(Esteban Zamora) + 프란시스코 아사그라(Francisco Azagra) + 펠리페 사파타(Felipe Zapata) 레제네레이션의 창립자들 프로필 사진. ©Regeneraxión

현장에서 재생(regeneration)의 비전은 어떻게 구현되나요?

저희 <레제네라시온>의 모든 프로젝트는 현장 중심의 진단에서 출발합니다. 정답을 먼저 들고 가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지역사회와 지방정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그리고 무엇보다 그곳을 가장 잘 아는 주민들과 함께 전략적 비전을 세웁니다. 수도권과 북부·남부 여러 도시에서 마스터플랜을 진행하며 장기 비전과 지역의 긴급 과제가 충돌하는 지점이 반복해서 나타났고, 그때마다 촉발 조치와 전술적 개입, 확장 전략 같은 중간 장치를 세심하게 설계했습니다. 균형은 한 관점을 강요해서 얻기보다 기술이 일상에 기여하는 공통 언어를 만드는 데서 온다는 사실을 현장에서 배웠습니다.

12 2015 PLAN MAESTRO ALAMEDA PROVIDENCIA 01 1
누에바 알라메다–프로비덴시아 마스터플랜 (Plan Maestro Nueva Alameda–Providencia) — 국제공모 최종후보 ·도시계획, 산티아고, 수도권, 길이 약 12km, 2015. ©Regeneraxió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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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바 알라메다–프로비덴시아 마스터플랜 (Plan Maestro Nueva Alameda–Providencia) — 국제공모 최종후보 ·도시계획, 산티아고, 수도권, 길이 약 12km, 2015. ©Regeneraxión

—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를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산티아고의 ‘누에바 알라메다–프로비덴시아 마스터플랜(Plan Maestro de Nueva Alameda–Providencia)’과 ‘안토파가스타 해안 마스터플랜(Plan Maestro del Borde Costero de Antofagasta)’이라는 두 프로젝트가 저희 스튜디오의 전환점을 만든 경험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전자는 중앙역(Estación Central)에서 문화광장(Plaza de la Cultura), 바케다노 광장(Plaza Baquedano)으로 이어지는 12km의 상징적 도시 축을 다루었고, 이 지역 유산의 연속성과 도시 변환, 사회적 포용, 지속가능성을 하나의 설계 언어로 통합했습니다. 이동성을 확보하고 질 높은 공공장소, 상징적 거점을 촘촘히 배치한 종합적 재생안을 제시했지요.

13 2012 BORDE COSTERO VALDIVIA
안토파가스타 해안 광역공원 (Parque Metropolitano Borde Costero Antofagasta) — 국제공모 특별 언급 도시계획 프로젝트, 안토파가스타 해안, 32km, 2017. ©Regeneraxión

후자는 32km 해안선을 경계가 아닌 도시 영토로 삼아 라 침바(La Chimba)와 트로카데로(Trocadero), 칼레타 콜로소(Caleta Coloso) 등 핵심 구역을 보행로와 자전거길, 레크리에이션 공간, 그리고 보존 구역의 네트워크로 연결했습니다. 이 둘은 국제 공모전에서 수상한 프로젝트들로, 지역·도시·경관 단위를 리디자인 하는 거시 프로젝트로 스케일을 전환했고, 이동성과 경관, 유산, 시민 참여를 통합하는 다학제 협업의 토대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1 2021 PLAZA DE ARMAS DE CABRERO 1
카브레로 중심광장 (Plaza de Armas de Cabrero) — 공공입찰 공공장소, 카브레로, 비오비오주, 8,498㎡, 2020.06–2021; 시공 2024. ©Regeneraxión
07 2020 NUMU 1
누무—누에보 무세오 데 산티아고 (NUMU – Nuevo Museo de Santiago) — 국제공모·건축,비타쿠라 비센테나리오 공원 (Parque Bicentenario Vitacura), 7,500㎡, 2020. ©Regeneraxión

오늘의 공공장소는 어떤 것을 요구하나요?

저희는 광장과 공원, 해안 산책로, 녹지 회랑을 단순한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라 살아 있는 생태계로 봅니다. 따라서 공공장소 디자인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항목으로 3가지를 꼽습니다.

기후 회복탄력성
녹색–청색 인프라, 생태 통로, 미기후 조절, 빗물 흡수 체계, 토착 식생과 자연 그늘, 투수성 포장 같은 설계 결정으로 구현합니다.

집단기억(colective memory)
협업 지도 제작과 구술 기록, 역사 지명 복원, 공공 미술 위원회 같은 참여 과정을 통해 공간에 서사를 입힙니다.

디지털 접근성(colective memory)
증강 현실과 인터랙티브 매핑, 원격 참여를 결합하지만 물리적 경험을 대체하지 않는 보완의 영역으로만 활용합니다.

이렇게 탄생한 공간은 기능과 미관을 넘어 정체성과 공동체를 지탱하는 도시 인프라로 작동합니다.

08 2022 ESCUELA SAN JAVIER 1
산 하비에르 특수학교 (Escuela Especial San Javier) — 공공입찰건축, 산 하비에르 (San Javier), 마울레주, 4,000㎡, 2022–2025. ©Regeneraxión
03 2018 CONSISTORIAL OVALLE 1 1
오바예 시청사 (Edificio Consistorial Ovalle) — 공공입찰건축, 오바예 중심광장 (Plaza de Armas de Ovalle), 3,000㎡, 2018. ©Regeneraxión

다양한 목소리를 통합할 때 갈등은 어떻게 다루나요?

저희는 갈등을 피해야 할 장애물이 아니라 민주적 도시 디자인의 내재적 조건으로 봅니다. 따라서 적극적인 경청과 개방적인 디자인 프로세스, 다중 주체 워크숍, 세대·성별·문화 간 대화를 촉진하는 놀이적 장치를 결합한 공동 설계 방법론을 적용합니다. 이런 메커니즘은 신뢰와 투명성을 제공할 수 있다고 보며, 최소한의 합의를 바탕으로 모두가 전적으로 동의하기보다 모두가 과정의 당사자라고 느끼게 만드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02 2017 CENTRO ANTARTICO INTERNACIONAL 01
국제 남극 센터 (Centro Antártico Internacional, Punta Arenas) — 국제공모 3위 수상 프로젝트, 푼타 아레나스, 마가야네스 및 칠레령 남극주, 12,500㎡, 2017. ©Regeneraxión

세 분 창립 파트너의 관점은 일상에서 어떻게 교차하나요?

저희 세명은 칠레중앙대학교(Universidad Central de Chile) 건축학과에서 만나서 공통 언어와 가치를 쌓았고, 이후 각자의 전문성을 깊게 다졌습니다. 프란시스코는 UCL에서 도시 디자인을 전공했고 다중 스케일 전략으로 공공 공간의 디테일부터 메트로폴리탄 마스터플랜까지 설계하며 국제 기준을 지역 현실로 번역합니다. 에스테반은 프랑스에서 자연재해 위험 관리를 전공했고 회복탄력성 관점을 구체적 설계 의사결정으로 전환해 안전성과 효율, 환경적 책임을 담당합니다. 그리고 저는 도시 공백과 주변부 재생, 참여형 계획에 집중해 왔고 현재 부에노스아이레스대학교 박사과정 수료 경력을 바탕으로 라틴아메리카 도시 역학의 비판적인 해석을 담당합니다. 이렇게 저희 전문분야는 상호 보완적이며 전략과 회복, 포용을 동시에 평가하는 일상의 대화로 구현되고 형식적 완성도와 시스템 통합, 위험 적응, 지역 수용성을 함께 이끌어갑니다.

04 2023 ESCUELA SAN JULIAN OVALLE 1
마르코스 리고베르토 피사로 학교 (Escuela Marcos Rigoberto Pizarro) — 공공입찰건축, 오바예, 코킴보주, 1,218㎡ ,2016.06–2018.12; 시공 2024. ©Regeneraxión

라틴아메리카적 지향은 국제 담론에 무엇을 보태고 있으며, 나아가 한국과는 어떤 방식으로 대화할 수 있다고 보시나요?

저희는 라틴아메리카가 적은 자원으로 많은 것을 이루는 능력과 공동체 회복력, 풍부한 문화 유산의 관점에서 국제 담론에 기여할 지점이 크다고 봅니다. 비공식 정착지와 쇠퇴한 교외, 긴장된 역사 중심지를 다뤄온 경험은 급성장과 영토 갈등, 불평등을 겪어온 아시아의 도시화와 자연스럽게 호응합니다. 한국의 생태 도시주의와 기술 혁신 축, 강변 복원은 저희 탐구와 만나는 접점이고, 라틴아메리카는 일상에 밀착된 건축과 대중문화에 기대는 돌봄의 윤리, 더 사회적인 해석을 그 대화에 보태고자 합니다.

06 2019 EDIFICIO LA SERENA 1
라 세레나대 건축학과 건물 (Edificio Escuela de Arquitectura, Universidad de La Serena) — 공공입찰건축, 라 세레나대 캠퍼스 (Campus Universitario Universidad de La Serena), 5,000㎡, 2019. ©Regeneraxión
09 2025 NUEVA HABANA 2 1
누에바 아바나 공공주택 (Edificio Vivienda Social Nueva Habana) — 직접의뢰건축,라 플로리다, 산티아고, 4,000㎡. ©Regeneraxión

앞으로의 계획과 라틴아메리카 도시의 미래를 어떻게 상상하나요?

저희는 라틴아메리카의 미래가 구조적 불평등을 직시하면서 도시의 변혁 잠재력을 실현하는 데 달려 있다고 믿습니다. 기후 위기와 불평등, 이주, 생물다양성 상실 앞에서 영토와 사회 정의, 생태적 주권을 통합하는 새로운 발전 모델이 필요합니다. 저희는 대규모 마스터플랜부터 지역의 전술적 개입에 이르는 도시·영토 프로젝트를 통해 공백과 공공 공간을 사회적 결속과 환경 회복의 촉매로 다루어 왔습니다. 참여적 방법과 공동 설계, 그리고 학계와의 지속적 연계를 통해 연구와 혁신, 실무를 한데 묶는 역량을 축적해 왔습니다. 앞으로도 주변부를 재생하고 도시와 해안의 공백을 활성화하며 생태·사회·문화가 촘촘히 연결된 공공 공간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집중할 계획입니다. 단순 대응을 넘어 지역의 자율성과 정체성을 강화하는 적응적이고 포용적이며 문화적으로 의미 있는 해법을 제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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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마그로 공원 마스터플랜(Plan Maestro Parque Almagro) — 도시계획 프로젝트, 산티아고, 2018.06–07. ©Regeneraxió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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