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현재를 잇는 윌리엄 켄트리지의 급진적 예술

드레스덴에서 열리는 전시 <메아리를 들어라>

윌리엄 켄트리지의 70세 생일을 기념하여 드레스덴 주립 미술관(Staatliche Kunstsammlungen Dresden, 이하 SKD)은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 예술가를 위한 대규모 전시 '윌리엄 켄트리지: 메아리를 들어라(William Kentridge. Listen to the Echo)'를 개최한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윌리엄 켄트리지의 급진적 예술

윌리엄 켄트리지의 70세 생일을 기념하여 드레스덴 주립 미술관(Staatliche Kunstsammlungen Dresden, 이하 SKD)은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 예술가를 위한 대규모 전시 ‘윌리엄 켄트리지: 메아리를 들어라(William Kentridge. Listen to the Echo)’를 개최한다. 이 기념비적인 대규모 회고전은 SKD 산하 세 개 박물관과 에센의 폴크방 미술관(Museum Folkwang)이 공동으로 기획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켄트리지 작가 본인뿐만 아니라, 그가 브론윈 레이스와 공동 설립한 요하네스버그 소재 Centre for the Less Good Idea’도 드레스덴 축제에서 큐레이터 및 예술 파트너로 참여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윌리엄 켄트리지의 시각예술 세계와 급진적인 창작 실천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뜻깊은 기회가 마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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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m Kentridge in seinem Studio in Johannesburg, 2014© William Kentridge, Foto: Thys Dullaart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 차별 정책 아래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한 켄트리지의 작품은 억압적 정권에 의해 굴욕을 당한 사회에서 인종 차별, 착취, 불의가 남긴 상처와 더불어 죄책감과 용서, 공동체, 인간성 같은 중대한 주제를 다룬다. 이는 그의 작품이 단순히 지역적 맥락에서만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의 작품은 개인적 또는 집단적 관심사와 맞닿아 전 세계적으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드레스덴과 에센은 역사적으로 매우 다른 두 지역에서 사회적·정치적 문제를 다루고, 켄트리지의 예술을 이 특정 장소에서 생생하게 구현하기 위해 협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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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sstellungsansicht William Kentridge – Listen to the Echo – Albertinum Dresden© Staatliche Kunstsammlungen Dresden, Foto: Oliver Killig

행렬, 퍼레이드, 시위는 드레스덴에서 항상 특별한 역할을 해왔다. 잘 알려졌다시피 드레스덴의 역사에는 아우구스트 대왕의 축제 행렬, 19세기 시민권 운동, 동독 시대의 국가 주관 퍼레이드, 1989년 평화 혁명, 그리고 최근의 페기다 시위 행진 등이 있었다. 드레스덴의 기념비적인 ‘퓌르슈텐추크(Fürstenzug, 군주 행렬)’는 작센 통치자들의 선조 갤러리이자 권력의 상징으로, 이번 전시에서 그 설계도가 공개된다. 이 작품은 통치와 저항, 자립과 억압, 자부심과 공포, 승리와 애도라는 과거의 상반된 메아리를 보여준다. 빌헬름 발터가 1869년부터 1876년 사이에 제작한 이 유명한 작품의 실물 크기의 예비 스케치는 뮌헨 동판화 박물관 소장품이다. 루돌프-아우구스트 엣커 재단의 지원으로 전시 준비 과정에서 복원된 이 작품들은 전시의 개념적 핵심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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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sstellungsansicht William Kentridge – Listen to the Echo – Albertinum Dresden© Staatliche Kunstsammlungen Dresden, Foto: Oliver Killig

알베르티눔에서는 윌리엄 켄트리지의 기념비적 영상 설치 작품 〈More Sweetly Play the Dance〉(2015)와 〈Oh To Believe in Another World〉(2022)과 나란히 전시된다. 여기서 켄트리지의 인물들—무용수들과 비틀거리는 이들, 군인들과 패배한 사람들—은 작센 통치 왕조인 베틴 가문의 구성원들을 마주한다. 이 대화는 한쪽의 승리가 다른 쪽의 애도가 되며,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전시의 후반부에서는 행렬을 주제로 한 추가 작품들—드로잉, 태피스트리, 조각, 사진, 콜라주—을 선보이며, 두 영화의 기획과 제작 과정을 엿볼 수 있게 하고 켄트리지의 다채로운 예술적 실천에 대한 중요한 인상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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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m Kentridge, Szene aus “Oh To Believe In Another World” (2022)
© William Kentri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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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m Kentridge/Greta Goiris, Kostümentwurf für „Oh To Believe In Another World (Lilya Brik I)”, 2024Karton, Papier, Digitaldruck, gefundene Seiten, Buntstifte und Stecknadeln 55,5 x 37,5 x 9 cm © William Kentridge

행렬이란 주제는 레지덴츠궁 내 쿠퍼슈티히-카비넷(Kupferstich-Kabinett)에서 열리는 전시에서도 중심적 위치를 차지한다. 이곳에서는 켄트리지의 풍부한 판화 작업 세계가 소개되며, 이는 그의 45년에 걸친 창작 활동을 아우른다. 전시는 장르와 매체를 넘나들며 학제적이고, 개방적이며, 실험적이고 무엇보다 협업적인 이미지 탐구 과정에 대한 켄트리지의 관심을 명확히 보여준다. 동시에 켄트리지는 자신의 시각적 세계에서 독립적일 뿐 아니라 미술사에 대한 깊은 식견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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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sstellungsansicht William Kentridge – Listen to the Echo – Albertinum Dresden© Staatliche Kunstsammlungen Dresden, Foto: Oliver Killig

그의 작품들은 쿠퍼슈티히-카비넷 소장 판화들과 나란히 전시되는데, 여기에는 한스 부르크마이어(Hans Burgkmair), 자크 칼로(Jacques Callot),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 프란치스코 드 고야(Francisco de Goya)의 판화와 안드레아 만테냐(Andrea Mantegna)의 <Triumphs of Caesar> 시리즈를 기반으로 한 초기 채색 목판화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병치는 세기를 뛰어넘는 미학적 연결뿐 아니라, 미술사에서 전통적인 주제로서 행렬이 지니는 중요성을 드러낸다. 특별히 초대된 작품으로는 SKD 조각 컬렉션에 소장된 플로렌스 조각가 Filarete의 청동 조각상 <Marcus Aurelius>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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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m Kentridge, Mantegna, 2016© Kupferstich-Kabinett, Staatliche Kunstsammlungen Dresden, und William Kentridge

레지덴츠궁에 위치한 스투디오로(Studiolo)에서는 윌리엄 켄트리지의 장기 프로젝트인 <Drawings for Projection> 연작 가운데 <Monument>(1990)과 <Weighing… and Wanting>(1998) 두 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드로잉을 매개로 최근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역사를 일종의 연대기로 제시하는 이 중요한 프로젝트를 엿볼 수 있는 기회다. 영화 속 애니메이션 목탄 드로잉과 병행해, 이를 보완하는 대형 포맷의 뛰어난 드로잉 작품들도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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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sstellungsansicht William Kentridge – Listen to the Echo – Albertinum Dresden© Staatliche Kunstsammlungen Dresden, Foto: Oliver Killig

또한 크라프트베르크 미테(Kraftwerk Mitte)의 인형극 컬렉션에서는 ‘센터 포 더 레스 굿 아이디어(Centre for the Less Good Idea)’의 예술가들이 2025/2026년 연례 전시를 큐레이팅한다. 넘치는 창의성이 돋보이는 이 프로그램 또한 협업적 실천을 바탕으로 한다. 동시에, 윌리엄 켄트리지의 세계, 센터의 예술적 실천, 그리고 인형극사에서 전해 내려오는 예술(현재 인형극 컬렉션에 보존되어 있는 유물들)이 서로 반향을 이루는 장을 마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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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sstellungsansicht William Kentridge – Listen to the Echo – Puppentheatersammlung, Kraftwerk Mitte Dresden
©Staatliche Kunstsammlungen Dresden, Foto: Oliver Killig

센터 포 더 레스 굿 아이디어팀은 인형극 컬렉션과 협업하여, 인형극, 그림자 및 실루엣 극, 오브제 애니메이션을 그린 스크린 스튜디오에서 집중적으로 탐구해왔다. 이를 위해 ‘페퍼스 고스트(Pepper’s Ghost)’ 기법을 기반으로 한 다섯 개의 진열장이 개발되었다. 이 오래된 연극적 환영 기법은 반투명 유리판을 이용해 무대 위에 ‘유령’이 나타나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미니어처 형태로 구현된 이번 시도는 새롭게 발전된 예술적 표현 방식이다. 전시에는 새로운 사운드 및 비디오 설치작품과 역사적 오브제뿐 아니라, 인형극 연출가이자 오브제 애니메이션 창작자로서의 윌리엄 켄트리지의 작품들도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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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shop im Centre for the Less Good Idea© The Centre for the Less Good Idea, Foto: Zivanai Matan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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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hattentriptychon von Thulani Chauke (Entwicklung für die Jahresausstellung der Puppentheatersammlung) © The Centre for the Less Good Idea, Foto: Zivanai Matangi

​한편, 페스티벌의 개막을 기념해 새롭게 위촉된 대규모 퍼포먼스 이벤트는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바로 지난 9월 5일 오후 7시 30분부터 9시까지 드레스덴 시내 중심부에서 펼쳐진 <Foot Power> 행렬이다. 이 작품은 ‘센터 포 더 레스 굿 아이디어’와 윌리엄 켄트리지의 협업으로 탄생했으며, MUSEIS SAXONICIS USUI – Freunde der Staatlichen Kunstsammlungen Dresden e.V.의 지원 덕분에 가능해졌다. 또한 드레스덴 미술대학(HfBK), 반다 코무날레(Banda Comunale), 합창단 싱어사일럼(Singasylum – Chor für Alle)과 협력하여 기획되었으며, 일반 대중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개 행사로 진행되었다. 9월 6일 정오에는 윌리엄 켄트리지가 크라프트베르크 미테(Kraftwerk Mitte)의 역사적 제어실(Historischen Schwaltwarte)에서 렉처-퍼포먼스 <A Defense of the Less Good Idea>를 선보였고, 레지덴츠궁의 쿠퍼슈티히-카비넷(Kupferstich-Kabinett) 자료실에서 켄트리지가 직접 카탈로그 사인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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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m Kentridge während eines Workshops im Centre for the Less Good Idea© The Centre for the Less Good Idea, Foto: Zivanai Matangi

전시는 내년 6월까지 계속된다. 내년 2월 13일과 14일에는 드레스덴 필하모닉이 미하엘 잔데를링(Michael Sanderling)의 지휘 아래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0번을 켄트리지의 작품 <Oh To Believe In Another World>와 함께 연주한다. 켄트리지가 이 교향곡을 위해 제작한 영화는 알베르티눔(Albertinum)에서 비디오 설치작품으로도 상영되며, 작곡가가 소련 국가와 맺었던 양가적 관계를 탐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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