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스타일 브랜드가 된 제주 귤 농장, 귤메달
귤도 라이프스타일이 될 수 있을까?
론칭 3년만에 연 매출 30억 규모의 브랜드로 성장한 귤메달. 명확한 소비자 분석부터 브랜드 메시지를 전하는 콘텐츠 디자인, 그리고 오프라인 팝업을 통한 전략적 노출까지. 성장을 넘어 이제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 중인 귤메달의 브랜드 스토리를 소개한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라보기. 과잉과 반복의 시대인 오늘날 신선함과 새로움은 바로 이 사소한 움직임에서 탄생한다. 흔한 제주 귤 생산 농가에서 유일무이한 시트러스 라이프스타일 브랜드가 된 ‘귤메달‘이 그렇다. 귤메달을 탄생시킨 주인공은 양제현 대표.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뒤를 이어 3대째 귤 농가를 운영하게 된 그가 단순 귤 재배에서 나아가 브랜드 사업에 사활을 건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브랜드 귤메달의 론칭 배경부터 로컬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이들이 살아남은 전략, 그리고 로컬 브랜드가 디자이너와 일하는 새로운 방식에 대해서 소개한다.
레드오션이 된 귤 시장에서 살아남기
국내 귤 최대 생산지는 알다시피 제주도이다. 비록 최근에는 기후변화로 제주 내 귤 재배 면적이 급감했을 뿐만 아니라 경남, 전남 등으로 재배지가 북상하며 생산량이 줄었으나, 2023년 농림축산식품부 통계에 따르면 제주도는 여전히 전국 단위 귤 생산량의 40%를 차지하는 최대 생산지이다. 이는 곧 제주도에서 귤 농장을 운영해 살아남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귤 시장에서 경쟁력을 좌우하는 가장 큰 요소는 ‘가격’과 ‘품질’이다. 서울에서 홈쇼핑 상품기획자로 일해 온 양제현 대표가 처음 브랜드 론칭을 고민했던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는 “1차 농산물 시장에서 가격은 소비자 물가와 연관된 가장 어려운 지표입니다. 브랜드를 운영한다면 기존 사업보다 결국 더 많은 비용을 투자해야 하는데 그에 대비해 이익을 얻기란 쉽지가 않죠.”라고 말하며 초반에 브랜드를 운영하기 위한 가설을 세웠다고 말했다.
양제현 대표에게 브랜드는 결국 ‘품질’을 의미한다. 즉, ‘잘 알려진 브랜드 과일이라면 값이 높아도 소비자가 구매할 것이다’라는 것인데, 품질이 인증된 만큼 더 높은 부가 가치를 고객들이 인정해 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2010년 론칭부터 현재까지 귤메달을 운영해온 그가 내린 나름의 결론은 ‘결국 시장이 다르다’라는 것. “품질(또는 브랜드)를 중요시하는 고객과 가격을 중심으로 구매 결정을 내리는 세그먼트가 분리되어 있어요. 귤메달은 이 중에서 전자의 고객에게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국내 특유의 소비 상품인 명절 선물을 구매하는 소비자를 타깃 했고, 실제로 고객층의 높은 재구매율과 만족도로 보아 브랜드와 이들 고객들과의 핏이 잘 맞았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그는 가설을 중심으로 비즈니스 로드맵을 설계했고, 이는 선대로부터 이어받은 가업(家業)이 레드오션 시장에서 3년 만에 연 매출 30억 규모의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이기도 하다.
팝업에 진심인 버티컬 브랜드가 되다
귤메달은 버티컬 브랜드로 ‘귤’이라는 단일 아이템을 중심으로 전방위적인 비즈니스를 진행한다. 버티컬 브랜드라고 해서 단순히 신선 과일만 판매하는 것이 아니다. 귤을 주제로 다양한 카테고리의 상품을 기획하고 판매한다. 이는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연도별로 단계적으로 사업을 확장한다는 양제현 대표의 계획의 결과물이다. 과일 유통에서 시작한 귤메달은 이듬해에는 착즙 주스 등 귤을 이용한 가공식품을 판매했고, 최근에는 오뚜기, 현대백화점 등과 오프라인 팝업 스토어를 개최하며 F&B와 IP 사업까지 그 영역을 확장했다.
양제현 대표는 올해 더욱 재밌는 브랜드 캠페인과 오프라인 팝업 스토어, 브랜드 콜라보레이션을 기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계획들이 여전히 브랜드 테스트의 연속이라며 속도보다는 확실한 방향성을 잡을 때까지 이어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특히 이들이 눈여겨보고 있는 정보는 바로 어떤 어떤 아이템 상품이 브랜드 고객과 핏이 잘 맞는가이다. 귤메달의 인스타그램 팔로워 중 50%가 아직까지 귤메달에서 판매하는 과일을 사 본 적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귤메달은 브랜드 내부 고객층을 네 개의 세그먼트로 나눈다. 과일 관심층부터 건강 관심층, 플레저 고객, 브랜드 IP 선호 고객까지. 각 고객의 니즈를 만족시킬 제품을 출시하며 의도한 결괏값이 매출의 질적인 부분과 연결되는지 파악 중이다. 최근 이들이 팝업 스토어에 적극적인 이유에도 바로 이러한 배경이 자리한다. 온라인 기반의 브랜드로 시작한 만큼 오프라인 팝업 스토어를 통해 제품 경험은 필수적이었다고.
쉽고 간결한 브랜드 메시지
귤 농장도 나름대로 브랜드라는 점에서 귤메달 론칭 초기에는 사업 방식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브랜드로서 귤메달의 차별점이 생긴 모멘텀이 있다면 바로 ‘브랜드 메시지’와 ‘고객 가치’를 바꾸고서부터라고. 기존 농장에서 바라보는 과일이 ‘생산자’와 ‘산지’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소비자에게 전해졌다면, 귤메달은 ‘다양한 품종 소개’와 당도, 산미, 바디감 등의 ‘플레이버’를 고객 가치로 삼았다. 나아가 농장, 제주 등과 같은 단어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고객이 먹는 순간’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브랜드의 비주얼도 달라졌다.
과일은 대중적인 성격을 지닌 상품이라 트렌드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귤메달은 기존의 공식을 깨고 크리에이티브를 결합했다. 인스타그램 콘텐츠와 브랜드 캠페인이 대표적이다. 처음 진행한 브랜드 캠페인의 제목은 ‘HAPPY MOMENT’. 특별한 순간을 선사한다는 브랜드 메시지를 담아냈다. 일회용 필름 카메라부터 일회용 폭죽, 복권 당첨의 순간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2박 3일의 워크숍을 통해 도출했다. 이후 다듬어진 아이디어들은 ‘귤’이라는 매개체와 연관 짓는 작업을 거쳐야 한다. “브랜드 캠페인을 위한 메시지는 직관적이고, 쉽게 표현되어야 합니다.” 양제현 대표가 브랜드 메시지에서 무엇보다도 강조하는 부분이다.
콘텐츠뿐만 아니라 패키지 디자인과 브랜딩 디자인에서도 마찬가지다. 매일 또는 일상보다는 ‘특별한 순간’이라는 성격이 강조되어야 하는데 귤메달 디자인에 적용된 서체 ‘happiness’를 선택하게 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로컬 브랜드가 디자이너와 일하는 방법
귤메달은 지금의 브랜드 메시지를 만들기 위해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초기에는 외부 디자인 에이전시와 몇 차례 함께 일했는데 브랜드 메시지보다 디자인 그 자체에 집중한 결과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외주 특성상 단기성 프로젝트에 그치다 보니 완성물에서 브랜드가 아닌 오히려 에이전시의 창작물이라는 느낌을 받았을 정도였다고.
결국 양제현 대표가 눈을 돌린 건 인하우스 디자이너. 하지만 오랜 시간 사무실에 함께 근무하다 보면 디자이너가 대표인 자신의 관점과 의견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고 판단했고, 따라서 디자이너 채용 공고에서 ‘제주도를 뺀 수도권’이라는 문구를 명시했다. “디자인은 고객의 편이어야 하는데, 공급자(회사) 지향적으로 바뀔 것 같았어요. 지금 단계에서는 곁에 두기보다는 멀리서 우리를 객관적으로 바라봐 주는 편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현재 귤메달과 일하는 프리랜서 디자이너는 제주도가 아닌 서울에서 일하며, 월 1회 이상 제주도로 출근해 워크숍을 진행한다.
브랜드 메시지부터 일하는 방식까지 귤메달의 행보는 분명 남다르다. 최근 이들은 스스로를 ‘시트러스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라고 표방한다. 브랜드 메시지를 전하는 아이템 포지셔닝으로 굿즈를 개발해 소개 중이다. 식품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패션, 소품, 식기, 뷰티 등 귤이라는 하나의 아이템으로 선보일 수 있는 일상 속 영역이 이들에게는 무궁무진하다. 귤메달의 다음 캠페인이 벌써 궁금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