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서 솟아오른 생명의 조형

클로딘 몽쇼스(Claudine Monchauss)의 ‘수드르(Sourdre)’

브뤼셀에 위치한 에르메스 재단의 라 베리에르(La Verrière)가 가을 전시에 선택한 작가는 프랑스 도예 조각가 클로딘 몽쇼세(Claudine Monchaussé)다. 프랑스어로 ‘솟아나다, 땅에서 흘러나오다, 태어나다’를 뜻하는 ‘수드르(Sourdre)’는 36년생 여성 작가가 60여 년간 라 본(La Borne)이라는 작은 도예 마을에서 흙과 불을 매개로 작업해온 한 여성의 인생 궤적을 보여준다.

땅에서 솟아오른 생명의 조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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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드르 전시 전경 © Isabelle_Arthuis / Fondation d’entreprise Hermes

브뤼셀에 위치한 에르메스 재단의 라 베리에르(La Verrière)가 가을 전시에 선택한 작가는 프랑스 도예 조각가 클로딘 몽쇼세(Claudine Monchaussé)다. 프랑스어로 ‘솟아나다, 땅에서 흘러나오다, 태어나다’를 뜻하는 ‘수드르(Sourdre)’는 36년생 여성 작가가 60여 년간 라 본(La Borne)이라는 작은 도예 마을에서 흙과 불을 매개로 작업해온 한 여성의 인생 궤적을 보여준다.

몽쇼세는 1959년, 23세의 나이로 파리 생활을 접고 라 본에 정착했다. 특별한 미술 교육을 받은 것도, 대가의 문하에 들어간 것도 아니었다. 파리에서 우연히 본 석기질 조각들에 매혹되어 그 직감 하나로 인생을 걸었다고 한다.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저 그렇게 해야만 했다.”라는 그녀의 고백이 어떻게 흙이라는 원초적 물질과 일생을 맺게 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여든 아홉이 된 지금도 그녀는 여전히 매일 두세 시간씩 흙을 빚는다. 도예가라기보다는 흙의 무당, 혹은 샘물의 연금술사에 가까운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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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abelle_Arthuis / Fondation d’entreprise Hermes

이번 전시에는 1970년대부터 최근작까지 약 40여 점의 도자 조각이 망라됐다. 작품의 첫인상은 강렬하면서도 절제돼 있다. 단단한 석기질(스톤웨어)로 제작된 작품들은 나무로 불을 피우는 전통 가마의 가장 뜨거운 ‘알랑디에(alandier)’ 구간에서 구워진다. 그 결과 표면에는 예측 불가의 불 자국과 유약의 흐름이 남아 마치 대지의 상처 같은 독특한 질감을 만든다. 형태는 크게 두 가지 축으로 나뉜다. 하나는 풍만한 구체적 원리, 즉 생명과 번식의 상징이며, 다른 하나는 위로 치솟는 수직적 돌출부, 마치 하늘을 향한 몸짓으로 보여진다. 이 두 요소가 결합해 작품들은 땅과 하늘을 연결하는 샤먼의 토템처럼 서 있다. 때로는 인체의 일부를 연상시키면서, 때로는 동물적 기운도 품고 있다. 그녀의 아틀리에를 둘러싼 성모와 황소의 이미지들은 바로 이런 상징의 세계를 암시한다. 몽쇼세는 조각에 ‘상처 내기’를 반복해 표면은 매끈하기보다 흉터와 흔적으로 가득하다. 긁히고 패인 자국, 불길이 스친 흔적은 장식적 목적이 아닌 마치 살아 있는 살결에 각인된 시간의 기록이라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그 덕분에 작품은 무겁고 견고하면서도 유기적인 생명력을 뿜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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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운틴커터스와 게르멘 리시에, 니콜라 부르투미외의 작품들이 함께 걸린 벽면 © Isabelle_Arthuis / Fondation d’entreprise Her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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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운틴커터스와 게르멘 리시에, 니콜라 부르투미외의 작품들이 함께 걸린 벽면 © Isabelle_Arthuis / Fondation d’entreprise Her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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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운틴커터스와 게르멘 리시에, 니콜라 부르투미외의 작품들이 함께 걸린 벽면 © Isabelle_Arthuis / Fondation d’entreprise Hermes

라 베리에르의 큐레이터 조엘 리프(Joël Riff)는 ‘증강된 솔로(solos augmentés)’ 형식 – 한 작가의 작업을 중심에 두되, 그와 대화하는 동시대 혹은 역사적 작품들을 병치하는 방식 – 의 전시를 진행해왔다. 이번에도 몽쇼세의 조각은 여러 작가들의 개입을 통해 새로운 맥락을 창조하고 있다. 브뤼셀 기반의 조각가 니콜라 부르투미외Nicolas Bourthoumieux는 몽쇼세의 작품을 위한 스탠드 및 의자 등 공간을 굵게 주도하는 조각을 제작했다. 강철과 목재로 만든 그의 구조물은 마치 제단처럼 세워져, 몽쇼세의 도자 조각을 성스러운 오브제로 바꾼다. 듀오 아티스트 마운틴커터스(mountaincutters)는 우상 같은 형상을 통해 원초적 생명의 기운을 이어받았다. 19세기 라 본의 여성 도예가 마리 탈보Marie Talbot의 기념비적 작업, 그리고 게르멘 리시에(Germaine Richier)의 판화가 더해져, 이 전시는 세기를 가로지르는 여성 창작자들의 계보를 드러낸다. 여기에 다미앙 프라뇽(Damien Fragnon)은 ‘샘물의 맛’이라는 은유로 흙과 불, 물이 어우러진 세계를 해석한 글을 집필해 전시 책자를 제작했다. 이렇게 ‘증강된 솔로’라는 큐레이션 형식으로 인해 여성성과 생명력, 물질성과 영성의 교차점에서 형성된 ‘집합적 우주’가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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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쇼세의 조각(우)과19세기 라 본의 여성 도예가 마리 탈보의 작품(좌) © Isabelle_Arthuis / Fondation d’entreprise Hermes

몽쇼세의 이름은 사실 아직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그녀의 작업은 오랫동안 라 본이라는 지역적 맥락 안에 머물렀고, 때로는 동시대 미술의 경향과는 동떨어진 것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지난 20여 년간 그녀를 꾸준히 지지한 큐레이터, 동료 예술가, 출판인 덕분에 점차 빛을 보기 시작하고 있다. 2021년에는 파리 시립 근대미술관의 ‘여성들(Les Flammes)’ 전, 2023년 디종의 ‘알마나쉬(Almanach 23)’전 등 주요 전시에 참여했고, 2025년에는 세라믹 브뤼셀(Ceramic Brussels) 아트페어에도 소개됐다. 그리고 그녀의 첫 해외 개인전이자, 생애 두 번째 단독 전시가 된 ‘수드르’는 그 여정의 정점이 된 것이 아닐까. 그녀를 소개하는 이번 전시는 단순한 ‘발견’으로 볼 것이아니라, 이미 일관된 세계를 수십 년간 구축해온 한 예술가에 대한 뒤늦은 인정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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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abelle_Arthuis / Fondation d’entreprise Hermes

전시장에 들어서면 관객은 흙으로 된 조각들이 세운 일종의 수직적 우주와 마주한다. 조엘 리프가 말하듯, 그것은 해시계의 눈금처럼 공간과 시간을 측정하는 장치일 수도 있고, 불운을 막아내는 부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조각들은 우리에게 묵묵히 버티는 힘, 생명의 근원적 에너지를 환기한다. 그녀의 작품들은 종교적이라고 말하기보다는 오히려 ‘보편적 성스러움’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해 보인다. 그녀가 흙에서 길어 올린 형상들은 인류가 잃어버린 기원의 기억을 소환하고, 동시에 여전히 발견되지 않은 가능성도 열어젖힌다. 그렇기에 관객은 이 조각 앞에서 불가해한 친밀함을 느낀다. 모든 것이 이미 있었던 듯하면서도, 동시에 지금 막 솟아오른 듯 생생하다. 그리고 이 장소에서 몽쇼세의 조각들은 그 자체로도 자립성이 충분해 보이지만 부르투미외, 마운틴커터스, 리시에, 탈보와의 공존과 대화를 통해 더욱 풍부한 층위를 획득한다. 하나의 개인전이면서 동시에 시대와 세대를 잇는 합창으로 완성된 전시는 물질과 상징, 역사와 현재, 개인과 공동체가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보여주는 교본과 같다.

무엇보다 이 전시는 ‘흙’이라는 원초적인 재료가 단순히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여전히 현대 미술의 첨단에서 새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한다. 몽쇼세는 일생 동안 흙을 붙들며 말없이 자신만의 언어를 구축해왔다. 그리고 이제, 그 언어가 브뤼셀 한복판에서 청중과 만난다. 흙은 솟구쳐 오르고, 우리는 그 원천의 기운을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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