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10주년을 맞은 파이카가 〈파이카: 종이 위의 풍경들〉전을 열었다. 이들이 10년간 제작한 인쇄물 200여 점을 한자리에 모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파이카가 10주년을 기념하는 방법, 〈파이카: 종이 위의 풍경들〉전
디자이너 이수향과 하지훈이 이끄는 파이카가 창립 10주년을 맞았다. 모두가 종이 매체의 위기를 논하는 와중에도 파이카는 꿋꿋이 지면 위를 노니며 업력을 쌓아왔다. 무수히 많은 아트 북과 전시 도록이 파이카의 책상 위에서 탄생했으며, 이들의 10년 치 작업물만 모아도 국내 그래픽 디자인과 아트 신의 큰 흐름을 읽을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그 책을 과연 몇 명이나 읽었을까? 아트 북, 도록, 브로슈어는 밀도 높은 예술 실험의 결과물이지만 대부분 ISBN을 등록하지 않은 채 세상 밖으로 나온다. 대형 서점이나 도서관의 공식 유통망에 편입되지 못하고 전시나 페어를 통해서만 제한적으로 독자와 만날 뿐이다. 파이카가 요즘 서울 시내 곳곳을 순회하며 개인전을 여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소수 관람객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아트 북의 문턱을 낮추고 독자에게 다가가기 위해 발 벗고 나선 것.
〈파이카: 종이 위의 풍경들〉전 포스터.구산동도서관마을 내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파이카: 종이 위의 풍경들〉.200여 점의 인쇄물을 관람객이 직접 살펴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지금 구산동도서관마을에서 열리고 있는 〈파이카: 종이 위의 풍경들〉전은 파이카가 10년간 제작한 인쇄물 대부분을 한자리에 모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전시를 열기까지 파이카와 오랫동안 협업해온 출판사 히스테리안의 도움이 컸다. 전시 무대로 구산동도서관마을을 떠올린 것도 강정아 히스테리안 대표였다. 지자체 주축으로 설립하는 여느 도서관과 달리 주민의 힘으로 마련한 열린 장소라는 점에서 전시 장소로 적격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도서관 한 귀퉁이에 자리한 갤러리에 파이카의 작업물 200여 점을 전시했는데, 도서관의 십진분류법을 따르는 대신 디자이너와 기획자가 주축이 되어 아트 북 분류 체계를 새롭게 정립했다. 십진분류법으로 나누기 힘든 예술의 혼종성을 가시화하는 시도라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끝내 정의하지 못하고 공란으로 남겨둔 나머지 인쇄물의 분류 코드는 관람객이 스스로 상상해볼 수 있다. 파이카의 10년을 돌아보는 이번 전시는 9월 30일까지 이어지며, 또 다른 단독전도 곧 막을 올릴 예정이다.
지난 6월 갤러리 구루지에서 열린 10주년 전시. 파이카의 2017년과 2023년도 작업을 모아 소개하는 자리였다.
“어릴 적 수업을 마친 뒤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낼 때가 많았다. 그래서인지 내게 도서관은 안전하고 포용적인 장소라는 인식이 강하다. 특히 은평구 주민들이 직접 세운 구산동도서관마을은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두루 모이는 만남의 장이기도 한 도서관이다. 마침 도서관이 올해 설립 10주년을 맞이했다는 소식을 듣고 전시 개최를 제안했는데, 도서관에서 열린 태도로 전시를 대하는 데다 200여 점의 인쇄물을 분류하는 데에도 큰 도움을 주었다. 개인적으로 의미가 깊은 장소에서 파이카의 작업물을 선보이게 되어 기쁘다.”
강정아 히스테리안 대표
“그간 무수히 많은 출판물을 만들었지만 여러 독자에게 선보일 기회가 없다는 점이 늘 아쉬웠다.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은 고되었지만 개막을 하고 관람객이 찾아오니 더할 나위 없이 뿌듯하다. 올해 하반기에도 몇 차례의 전시가 더 남아 있으니 많은 관심 바란다.”
이수향 파이카 공동대표
기간 9월 2~30일 장소 구산동도서관마을 내 갤러리 기획·디자인파이카(대표 이수향·하지훈)
큐레이터 히스테리안(대표 강정아), 구산동도서관마을(사서 양승헌·최지희) 참여 작가 파이카
포레스트 앤 웨일(Forest & Whale)은 예술과 디자인을 사회·환경 돌봄을 위한 변화의 동력으로 삼는 스튜디오다. 오브젝트, 사진, 몰입형 공간, 박물관 전시를 기획하며 큐레이션과 서비스 디자인 전략도 수행하는데, 이들의 접근방식은 철저한 민족지 연구와 다양한 문화·행동에 대한 섬세한 이해를 바탕으로 인간의 필요를 깊이 파악하는 데 기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