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예술가의 시선으로 걷는 공간 여행
스위스 창작자 38인이 추천한 공간들
자연의 나라로 알려진 스위스. 그 이면에는 또 다른 풍경이 있다. 〈스위스 예술 여행〉은 현지 예술가 38인의 시선을 따라 이 나라를 새롭게 걷는 여행서다.

아름다운 자연과 휴양의 나라로 알려진 스위스. 그 이면에는 수많은 예술가와 건축가, 디자이너가 살아가는 또 다른 풍경이 있다. 〈스위스 예술 여행〉은 스위스를 예술과 문화의 시선으로 재발견하는 여행서다. 책은 현지 예술가와 디자이너, 건축가들이 직접 추천하는 293곳의 장소를 소개한다. 디자인의 도시 취리히, 예술과 건축이 숨 쉬는 바젤, 그리고 로컬만 아는 비밀스러운 공간들까지. 현지 문화예술인 38명의 시선을 따라, 예술로 도시를 읽는 여정을 담았다.

주한 스위스 대사관에서 문화공보담당관으로 일했던 저자 윤서영은 로컬 창작자들이 사랑하는 공간을 통해 스위스를 새롭게 조명한다. 작가는 기존의 정보 중심 여행서에서 벗어나,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장소를 걷는 여정을 제안한다. 세계적인 건축가 마리오 보타(Mario Botta), 페터 춤토르(Peter Zumthor)를 비롯해 바이엘러 재단의 샘 켈러(Sam Keller),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의 마테오 크리스(Mateo Kries) 등 스위스 문화예술계를 대표하는 인물들과 인터뷰를 통해 각 지역의 정체성과 예술 세계를 함께 그려냈다. 스위스를 예술의 시선으로 바라본 여정. 책에 다 담지 못한 취재 비하인드와 저자의 시선까지, 윤서영 작가에게 그 이야기를 직접 물었다.

Interview
윤서영 작가
자연에서 예술로, 스위스를 다시 걷다
자연과 휴양 중심으로 알려진 스위스를 예술과 문화의 시선으로 소개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스위스는 자연과 휴양의 나라로는 잘 알려져 있지만, 문화와 예술에서도 볼거리가 풍부하다는 사실은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았어요. 많은 한국 여행자들이 자연과 액티비티 중심으로 일정을 짜고, 유명 관광지만 둘러보고 돌아오더라고요. 하지만 스위스 곳곳에는 수준 높은 미술관, 박물관, 갤러리, 문화 공간들이 자리하고 있어요. 세계적으로 알려진 곳도 많지만, 관광객에게 덜 알려진 지역 명소들 역시 매력적이에요. 스위스의 문화예술 공간들은 하나같이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죠. 로컬들이 추천하는 장소를 한국 독자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이 책을 직접 기획하게 된 개인적 배경이 있다면요?
주한 스위스 대사관에서 문화공보담당관으로 일하며 스위스의 다양한 예술가들을 만나온 경험이 이 책의 출발점이 됐어요. 그들의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죠. 특히 대사관에서 직접 기획한 디자인 행사들을 통해 한국 대중이 스위스 디자인에 높은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실감했어요.
당시 ‘스위스의 문화적 볼거리가 무엇인지, 어디를 가야 하는지’와 같은 질문을 많이 받았지만 충분히 설명할 만큼의 경험이 부족하더라고요. 그래서 직접 배우고, 가보고, 탐험하면서 이 책을 쓰게 됐어요. 기존 여행서들이 대부분 자연 중심이라 문화와 예술의 맥락을 담고 싶었어요. 저를 포함한 대중의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하셨나요?
이 책에 소개된 38명의 인터뷰이는 각자의 분야에서 의미 있는 활동을 이어가는 예술가, 또는 해당 지역의 상징적 기관에서 일하며 지역 문화에 기여하는 인물들입니다. 특정 도시나 업종에 편중되지 않도록 디자이너, 건축가, 화가 등 다양한 직업군을 고르게 구성했어요. 세계적으로 알려진 거장부터 현지에서 활동하는 젊은 크리에이티브까지 폭넓게 아우르고, 연령과 성별의 균형도 함께 고려해 여러 세대의 시선을 담고자 했어요.

인터뷰 과정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순간이 있다면요?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인터뷰이의 일상 속으로 들어가 함께한 시간이었어요. 화가의 집에 초대받아 아침 식사를 하며 그의 작업 이야기를 듣고, 영감의 원천이 된 창밖 풍경을 함께 바라봤던 일, 직접 운전하는 차 안에서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던 아티스트와의 순간, 또 건축가가 직접 설계한 집에서 그의 가족과 함께 저녁 식사를 나눈 시간들까지요. 이 모든 경험이 그들의 세계를 더 깊이 이해하게 해줬어요. 이 프로젝트를 하며 얻은 가장 큰 특권이자 즐거움이었습니다.



예술로 읽는 스위스의 미학
작가님이 바라보는 스위스 예술, 건축, 디자인의 고유한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검소함과 겸손함, 실용성, 정확성, 그리고 혁신성. 이 다섯 가지 키워드가 스위스 예술과 디자인의 본질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 같아요. 스위스의 디자인은 화려함보다 절제와 균형을 중시해요. 시선을 끌기보다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조용한 디자인’이 특징이죠. 아주 오래전부터 시계나 스위스 아미 나이프 같은 정교한 제품을 만들어왔기 때문에 정확하고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향한 장인 정신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어요. 또한 스위스는 천연자원이 부족한 내륙 국가예요. 그래서 늘 스스로 발명하고, 다른 나라와 차별화하려는 시도가 이어졌죠. 이런 환경이 오히려 ‘문제 해결’ 중심의 창의성을 자극했고, 지금의 혁신적인 디자인 문화를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다언어, 다문화 환경이 스위스 창작자들의 작업 방식이나 미적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보시나요?
스위스의 다언어, 다문화 환경은 이 나라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해요. 유럽에서도 손꼽힐 만큼 다양한 민족이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죠. 그 덕분에 서로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사회 전반에 깊이 자리해 있어요.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로망슈어 등 네 개의 공용어를 쓰는 나라이기에 언어 속에서도 다양성이 드러납니다.
이런 배경은 예술가들의 작업에도 고스란히 나타나요. 지역과 언어권에 따라 미적 감수성이 달라지거든요. 독일어권에서는 간결하고 구조적인 형태가, 이탈리아어권에서는 곡선과 문양이 풍부한 장식성이, 프랑스어권에서는 양쪽을 유연하게 오가는 미감이 돋보여요. 같은 나라 안에서도 언어와 지역에 따라 예술적 성향이 뚜렷하게 다르다는 점, 그 공존과 다양성이 스위스 예술을 흥미롭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한국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어떤 새로운 시선이나 영감을 얻기를 바라시나요?
스위스가 시계나 초콜릿, 자연으로만 유명한 나라가 아니라 문화와 창의성이 살아 있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셨으면 해요. 이 책에 담긴 예술가들의 시선을 통해 스위스의 또 다른 매력을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책에 등장하는 공간들은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 로컬들이 즐겨 찾거나 창작자들만 아는 장소들도 많거든요. 관심 있는 인물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마치 그들과 함께 여행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이 책을 통해 스위스를 새롭게 바라보고, 흔히 찾는 명소가 아닌 예술가들의 발자취를 따라 자신만의 여정을 만들어보셨으면 합니다.

앞으로 이어가고 싶은 작업이나 관심 있는 주제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한국을 알리는 문화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요. 현재 ‘스위스 예술 여행’과 비슷한 콘셉트로 한국을 소개하는 영어 여행 가이드를 준비 중이고, 한국 전통문화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도 내년 공개를 목표로 제작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구상해온 프로젝트를 실제로 실현할 수 있게 되어 기쁘게 생각해요. 이번 책을 통해 한국 독자에게 새로운 스위스를 소개했다면, 앞으로는 세계 독자들에게 한국의 다채로운 면모를 전하고 싶습니다. 지금이야말로 한국의 이야기를 세계에 전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라고 느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