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디자인위크 2025를 빛낸 가구 컬렉션
실험과 전통, 기술과 장인정신이 교차하는 무대 속 주목해야 할 다섯 점의 가구
도시 전체가 하나의 전시장이 된 파리디자인위크. 가구를 매개로 ‘삶과 감각, 연결’을 탐구한 다섯 컬렉션은 각기 다른 언어로 오늘날 디자인의 경계 확장을 제시했다.

도시 전체가 거대한 디자인 전시장이 되는 파리디자인위크. 지난 9월, 만연한 가을 속 파리 시내 곳곳에서는 디자이너들의 창조와 탐구의 리듬을 느낄 수 있었다. 올해의 특징은 단순히 새로운 오브제를 선보이는 것을 넘어, 가구라는 매체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살고, 느끼며, 주변 세계와 연결되는지를 묻는 질문이었고, 그 질문에 답하듯 등장한 다섯 개의 컬렉션은 각기 다른 언어와 맥락을 품으면서도 공통적으로 ‘경계의 확장’을 시도했다.

스칸디나비아 건축의 엄격함과 이탈리아 장인의 세련된 감각을 결합한 스노헤타 x 치테리오(Snøhetta × Citterio)의 보레알리스(Borealis), 미니멀리즘과 감각적 소재 탐구를 이어온 스튜디오파리지엥(Studioparisien)의 신작, 컬렉터와 디자이너의 만남을 담아낸 산드라 벤하무 x 인비지블 컬렉션(Sandra Benhamou x Invisible Collection), 장식과 모피라는 이질적 요소를 실험적으로 결합한 피에르 마리 x 이브 살로몬 에디션(Pierre Marie x Yves Salomon Edition), 그리고 원초적 물질성을 탐구하는 티에르 르메르(Thierry Lemaire)의 미네랄 오리진스(Mineral Origins). 이 다섯 세계를 하나씩 들여다보는 일은, 곧 오늘날 디자인이 가진 다층적 유행과 감각을 이해하는 일이 될 것이다.
Snøhetta × Citterio – Borealis


노르웨이의 건축 디자인 스튜디오 스노헤타와 이탈리아 가구 디자이너 안토니오 치테리오가 협업한 보레알리스(Borealis)는 이름 그대로 북유럽의 오로라와 자연 풍경에서 영감을 받았다. 빛과 공간, 그리고 질서와 유연함이 공존하는 북유럽의 풍경처럼, 기능과 미학, 건축성과 편안함을 동시에 담아내려 한 것이 특징이다. 컬렉션의 중심에는 내추럴한 톤과 어두운 마감 두 가지로 선택 가능한 노출된 오크 프레임이 있다. 단순한 구조물로 보이지만 이는 컬렉션 전체를 지탱하는 건축적 언어다.

두 개의 컬러는 각각 다른 분위기를 선사하며, 그 위에 얹힌 쿠션이 날렵한 프레임과 대비되어 부드럽고 따뜻함을 전한다. 정사각형의 규칙적인 모듈을 기반으로 한 디자인은 치수를 표준화해 모든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도록 한 설계 원리라고 하는데, 팔걸이 의자, 2인용 및 3인용 소파, 벤치, 사이드 테이블 등 각 모듈은 자유롭게 조합해 작은 거실부터 넓은 공공 공간까지 다양한 환경에 대응한다. 이처럼 확장성과 유연성을 갖춘 시스템은 현대 생활에서 가구가 단순 오브제를 넘어 공간을 구성하는 유기적인 요소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스노헤타의 디자인 디렉터 마리우스 미킹(Marius Myking)은 보레알리스를 “공간에 고요함과 명확성을 가져다 주는 구조적 틀”이라고 설명했다. 즉, 존재감을 강하게 드러내기보다는 공간 속에 스며들며 조화를 이루는 가구라는 것. 북유럽의 자연을 닮은 차분함, 그리고 이탈리아 장인정신이 지닌 세밀한 완성도가 만나며 탄생된 이번 컬렉션은 디자인이 지향해야 할 절제와 품격을 동시에 보여준다.
Studioparisien – ÉGÉE


스튜디오파리지앵은 고대 에게 문명과 지중해 풍경에서 영감을 받은 새로운 컬렉션 에게(ÉGÉE)를 공개했다. 미니멀리즘과 브루탈리즘이 교차하는 무대를 상상해 고대적 상징성과 현대적 정제를 동시에 담아낸 전시장의 중심에는 아틀리에 주프르(Jouffre)가 제작한 벨벳 암체어가 자리한다. 여기에 실크 마케트리(marquetry) 기법을 사용해 종이의 섬세함과 색채의 강렬함을 결합한 작품인 프랑수아 마스카렐로(François Mascarello)의 대형 회화가 있다. 이번 공간의 자연스러운 팔레트와 조화를 이루며 공간에 생기를 더한다. 그리고 라스비트(Lasvit)의 장인들이 제작한 옹드(ONDES) 테이블, 스튜디오 톨리스와 아틀리에 푸에나의 협업으로 완성된 뮤즈(MUSE) 벽등, 메종 샤를이 만든 엘렉트르(ÉLECTRE) 조명이 어우러지며 공간 전체가 하나의 시나리오적 장면으로 완성됐다.


이번 컬렉션의 배경에는 2013년에 설립된 스튜디오파리지앵의 철학이 자리한다. 서로 다른 감각을 공유하며 시작된 두 디자이너 – 로렌 바르비에 타르드뢰(Laurene b.Tardrew)와 로맹 주르당(Romain Jourdan) – 의 협업은 장인과의 지속적인 대화를 중심으로 발전해왔다. 그 결과, 에게 컬렉션은 자연의 감각을 은유적으로 담아낸 장인정신을 중심에 둔 정제된 무대로 탄생했다.
Sandra Benhamou x Invisible Collection


인테리어 디자이너 산드라 벤하무(Sandra Benhamou)는 파리 7구의 인비지블 컬렉션 갤러리에서 전시 코즈믹 블루즈Kozmic Blues를 선보였다. 오는 12월 31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는 재니스 조플린의 동명 앨범에서 영감을 받아 여름이 끝난 뒤의 아련한 감정과 기억을 디자인의 언어로 풀어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유려한 곡선이 돋보이는 개Gae 소파, 유쾌한 리듬을 담은 돌리Dolly 컬렉션, 황동과 유리, 래커가 어우러진 레옹 바Leon Bar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맞춤 제작된 러그와 빈티지 오브제들은 1960~70년대 플라워 파워의 자유로운 감성을 불러내며, 관람객을 음악적 여운이 깃든 공간 속으로 초대한다. 관람객들은 의자에 앉아 악보와 LP 앨범들이 널브러져 놓여진 테이블 위, 60년대의 사진과 잡지 이미지들을 바라보며 ‘경험’의 차원에서 전시에 참여하게 된다. 디자이너는 이를 “끝없는 여름의 환상적 기억”을 구현한 장면이라 설명했다. 그렇게 ‘코즈믹 블루즈’는 음악과 디자인, 기억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관람객에게 잔잔한 멜랑콜리와 동시에 새로운 활력을 선사한다.
Pierre Marie x Yves Salomon Edition

프랑스 럭셔리 퍼 브랜드 이브 살로몽(Yves Salomon)이 아티스트 피에르 마리(Pierre Marie)와 손잡고 선보인 특별한 협업이 파리 9구의 피에르 마리 갤러리에서 공개됐다. 지난 4월 밀라노 디자인위크 기간에 이어 두 번째 전시지만, 파리에서는 처음 선보이는 기회다. 이번 프로젝트는 브랜드의 퍼 제작 노하우를 가구와 오브제라는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하려는 시도 속에서 탄생했다.


의자, 푸프, 쿠션, 플래드, 조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오브제들은 이브 살로몽의 장인정신이 담긴 정교함과 피에르 마리 특유의 화려하고 장식적인 상상력이 맞닿으면서 시너지를 만들어냈다. 모두 파리 아틀리에에서 장인들의 손을 거쳐 제작되었고, 스페인 메리노 시어링을 비롯한 고급 소재가 정교한 인타르시아 기법으로 이어져 화려한 무늬와 부드러운 질감을 동시에 선사한다.

컬렉션은 두 개의 주제로 전개된다. 라 프레리(La Prairie: 초원)는 리본, 기하학적인 잎사귀, 꽃잎 모티프를 통해 마치 마법 같은 자연을 떠올리게 하고, 르 피르마멍(Le Firmament: 창공)은 별과 줄무늬 구슬, 아라베스크 무늬가 어우러진 우주적 풍경을 느끼게 한다. 컬렉션의 하이라이트는 스페인 메리노 시어링으로 제작된 두 개의 조형적 의자다. 양의 실루엣을 연상시키는 이 작품들은 단순한 가구를 넘어 어린 시절의 기억을 소환하며, 순수와 무구함을 상징한다.
Thierry Lemaire – Mineral Origins


티에리 르메르(Thierry Lemaire)는 신작 미네랄 오리진스(Mineral Origins)를 선보였다. 이번 컬렉션은 그가 최근 멕시코 여행에서 받은 영감을 토대로 탄생했는데, 루이스 바라간(Luis Barragán)의 모더니스트 건축, 보스케 데 라스 로마스(Bosque de las Lomas)에 위치한 부활 교회의 기하학적 엄격함, 풍요로운 자연 풍경, 그리고 멕시코가 지닌 풍부한 광물 유산이 작품 제작 과정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각각의 재료가 가진 특성에서 깊은 영향을 받은 그는 희귀하고 원초적인 석재를 조형적 언어로 변환하여, 가구를 넘어 하나의 조각적 작품으로 보이게 한다.


컬렉션의 중심에는 오닉스가 있고, 이는 흰색과 티타늄 트래버틴과의 대화 속에서 거칠고 조각적인 선을 드러내는 특징이 있다. 모든 작품은 마치 산에서 막 잘려 나온 바위 조각처럼, 본래의 기원을 그대로 간직한 형태로 표현되었다. 예를 들어 원초적이고 미네랄한 실루엣으로 절벽에서 떨어져 나온 파편을 연상시키는 KOSIS 조명처럼 말이다. 이렇게 이번 컬렉션은 관람객들에게 원초적 재료가 현대 디자인 안에서 어떻게 생명을 얻는지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