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 리뷰
제 23회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 (London Design Festival)
지난 9월 21일, 런던 전역을 디자인에 대한 열기로 가득 채운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이 막을 내렸다. 올해로 23회를 맞은 이번 축제는 런던이 세계 디자인의 수도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으며, 오늘날 우리 사회가 직면한 과제들에 디자인이 어떤 해답을 제시할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지난 9월 21일, 런던 전역을 디자인에 대한 열기로 가득 채운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이 막을 내렸다. 올해로 23회를 맞은 이번 축제는 런던이 세계 디자인의 수도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으며, 오늘날 우리 사회가 직면한 과제들에 디자인이 어떤 해답을 제시할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디자인은 단순히 미학의 문제가 아닙니다. 혁신과 경제 성장, 사회적 진보를 이끄는 근본적인 동력입니다. 올해 페스티벌은 신진 인재부터 글로벌 브랜드까지 디자인 생태계를 폭넓게 조망하며, 런던만의 독보적인 창의적 에너지를 보여줄 것입니다.”
벤 에반스(Ben Evans),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 디렉터
Landmark Project
이번 축제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단연 ‘랜드마크 프로젝트’였다. 이름 그대로 런던의 상징적 공간에서 펼쳐진 이 프로젝트는 시민과 방문객 모두가 도시의 중심에서 혁신적인 디자인과 직접 교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첫 번째는 런던의 대표적 장소인 트라팔가 광장에 설치된 폴 콕스에지(Paul Cocksedge)의 <What Nelson Sees>다. 구글 아트 & 컬처와 협업해 구현된 이 거대한 구조물은 넬슨 장군이 50미터 상공에서 바라보는 런던의 시각을 관람객이 직접 체험하도록 설계되었다. 교차하는 금속 튜브로 이루어진 구조는 망원경 같은 포털을 형성해 런던 스카이라인을 독특한 시각에서 조망하게 한다. 금속 표면의 풍화된 질감은 한때 바다를 지배했던 영국의 해양 유산과 산업적 힘을 상징하며, 설치물은 조각 예술이자 체험형 장치가 된다.


포털을 통해 보이는 것은 런던의 과거와 미래다. 마차에서 자동차로, 가스등에서 전등으로 변해온 풍경과 기후 변화 속에서 달라질 미래의 모습까지- 관람객은 지난 200년과 앞으로의 200년을 동시에 상상할 수 있다. 이 프로젝트는 구글의 AI 영화 제작 툴 ‘Flow’를 통해 구현되었으며, 랜드마크와 인공지능을 결합해 역사와 현대 기술, 과거와 미래를 하나의 시간선으로 연결하는 시도를 보여줬다.



두 번째는 리 브룸(Lee Broom)이 설계하고 브로키스(Brokis) & 머티리얼스 어셈블(Materials Assemble)이 제작을 지원한 <Beacon>이다. 사우스뱅크 센터 로열 페스티벌 홀 입구에 설치된 이 작품은 지역의 상징인 브루탈리스트 건축과 1951년 브리튼 페스티벌에서 영감을 받았다.


검은색 기둥과 재활용 유리 갓으로 구성된 구조물은 1870년 조지 존 불리아미가 설계한 빅토리아 시대의 ‘돌핀 스트리트 램프’에서 시각적 모티프를 차용했다. 로열 페스티벌 홀의 모던한 건축과 헤이워드 갤러리의 브루탈리즘적 재료가 결합된 형태는 거대한 샹들리에를 연상시키며, 고전적 조명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 설치에 사용된 모든 재료는 재활용 및 재생 가능 소재로, 해체 후에는 독립적인 조명 기구나 펜던트 샹들리에로 다시 쓰일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Beacon>은 단순한 디자인 설치물이 아니라 모두에게 열려 있는 공공 예술 작품이다. 템스 강 전역과 워털루, 골든 주빌리 브리지, 엠뱅크먼트에서도 그 빛을 확인할 수 있으며, 관람객에게 사색과 성찰의 순간을 제공한다. 특히 빅벤이 정각을 알릴 때 시작되는 조명 연출은 서서히 밝아지면서 클라이맥스로 이어져 몰입형 경험으로 이끈다.
V&A X LDF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의 오랜 파트너인 빅토리아 앤 앨버트 뮤지엄은 올해도 큐레이션 전시와 설치 작업을 통해 축제의 허브 역할을 했다. 캐리 챈(Carrie Chan)과 크리스티안 볼싱(Kristian Volsing)이 공동 기획한 이번 전시는 위기 상황과 긴급한 사회적 문제에 대한 디자인의 반응을 주제로 삼았다. 참여 아티스트들은 천연 자원 채굴, 문화유산 보호, 지정학적 갈등, AI 등 다양한 주제를 탐구하며, 디자인이 우리 삶과 환경에 끼치는 영향을 고민했다.

LDF 2025 at V&A South Kensington ©Victoria and Albert Museum
주목할 작품은 루 디수(Roo Dhissou)의 ‘Heal, Home, Hmmm’. HS2 건설 현장에서 채취한 점토와 전통 건축 기법을 활용한 이 조각적 파빌리온은 환경적 책임과 사회적 구조를 반영하며, 퍼포먼스와 사운드 프로그램을 함께 선보였다. 일본 출신 아티스트 오카자키 류노스케(Ryunosuke Okazaki)는 ‘JOMONJOMON’ 시리즈를 통해 고대 일본 조몬 시대 도자기의 정신을 현대적 의상으로 재해석하며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LDF 2025 at V&A South Kensington ©Victoria and Albert Museum
폴란드 출신 알리챠 파타노프스카(Alicja Patanowska)는 광산 폐기물로 제작한 ‘The Ripple Effect’ 설치 작품을 통해 자원 순환과 소비의 문제를 탐구하고, 태국 샨족 난민 커뮤니티와 협업한 자카이 시리부트(Jakkai Siributr)의 ‘There’s No Place’는 집과 소속, 정체성의 의미를 새롭게 조명했다.


LDF 2025 at V&A South Kensington ©Victoria and Albert Museum

LDF 2025 at V&A South Kensington ©Victoria and Albert Museum
Design District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일부 지정된 공간에서만 이벤트가 열리는 것이 아니라, 도시 전체를 여러 디자인 디스트릭트로 나누어 각기 다른 색과 매력으로 페스티벌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올해에는 총 10개의 디자인 디스트릭트를 구성해 방문객이 다양한 디자인을 폭넓게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켄싱턴 중심부의 브롬튼 디자인 디스트릭트는 럭셔리와 장인정신이 조화를 이루는 공간이다. 패션, 가구, 라이프스타일 디자인의 최신 트렌드를 선보이는 갤러리와 스튜디오에서는 워크숍과 아티스트 토크를 통해 창작 과정과 디자이너의 철학까지 엿볼 수 있었다.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첼시 디자인 디스트릭트는 신진 디자이너와 국제적 브랜드가 공존하는 허브로, 실험적 설치와 참여형 프로그램을 통해 방문객들에게 색다른 시각적 경험을 제공했다.



던 동부의 창의적 심장부인 달스턴-스토키 디자인 디스트릭트와 EC1 디자인 디스트릭트, 그리고 역사적 출판과 언론의 중심지였던 플릿 스트리트 쿼터는 각각 거리 예술과 라이브 퍼포먼스, 디지털 디자인과 인터랙티브 설치, 전통 공예와 현대 디자인의 만남을 통해, 방문객들이 다양한 디자인 체험을 폭넓게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서부 산업 지역의 파크 로열 디자인 디스트릭트는 지속 가능성과 재생 소재를 중심으로 실험적 프로젝트를 선보이며, 젊고 역동적인 쇼디치 디자인 트라이앵글과 메이페어, 윌리엄 모리스 디자인 라인은 각각 자유롭고 혁신적인 디자인, 럭셔리, 전통과 현대 디자인의 조화를 보여줬다.
London Design Medals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런던 디자인 메달이다. 이 상은 런던과 디자인 산업에 기여한 디자이너들에게 수여하며, 런던 디자인, 디자인 혁신, 신진 디자인, 평생 공로 4개 부문으로 나뉜다.

올해의 평생 공로 메달은 세계적인 건축가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에게 돌아갔다. 그는 지속 가능성과 혁신을 결합한 건축과 도시 설계를 통해 지난 수십 년간 전 세계 디자인과 건축계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 ‘거킨(The Gherkin)’ 빌딩과 ‘브리티시 뮤지엄 그레이트 코트(British Museum Great Court)’, ‘밀레니엄 브리지’ 등 런던에 있는 그의 작품들은 포스터의 독창적 비전을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디자인 혁신 메달은 시네이드 버크(Sinéad Burke)가 받았다. 장애인과 사회적 소외계층을 위한 포용적 디자인을 실천하는 그녀는, ‘Tilting the Lens’라는 전략 컨설팅 회사를 통해 접근성 디자인의 기준을 새롭게 설정했다. 버크의 활동은 디자인이 단순한 형태나 기능을 넘어, 사회 구조와 정책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신진 디자인 메달의 수상자는 리오 코바야시(Rio Kobayashi). 전통 공예와 현대적 감각을 결합한 그의 작품은 런던 디자인 씬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었다. 오브젝트, 가구, 인테리어 등 다양한 영역에서 실험적 시도를 이어가는 코바야시는 장인 정신과 현대적 감각을 균형 있게 보여주며, 미래 디자인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런던 디자인 메달의 영광은 마이클 아나스타시아데스(Michael Anastassiades)가 차지했다. 그는 조명과 공간 디자인 분야에서 꾸준히 탁월한 성과를 보여왔으며, 빛과 형태를 통해 공간 경험을 새롭게 정의하며 디자인의 가능성을 확장해왔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제품을 넘어 일상과 경험을 변화시키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