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현실을 현실로 바꾸는 여정, 몽클레르의 <꿈을 향한 초대>

밀라노 중앙역이 세계 최대 규모의 공공 갤러리로 탈바꿈했다. 지금 전 세계가 주목하는 창작자 10명의 초상이 관객들을 꿈의 세계로 초대한다.

비현실을 현실로 바꾸는 여정, 몽클레르의 <꿈을 향한 초대>

1931년 문을 연 밀라노 중앙역은 울리세 스타키니Ulisse Stacchini가 설계한 철도역으로 아르누보와 아르데코 양식이 돋보이는 밀라노 대표 건축물이다. 평균적으로 하루에 32만, 1년에 1억 2천만 여 명의 승객이 이 역을 이용하며, 약 500대의 열차가 이곳에 정차해 이탈리아 전역의 크고 작은 도시를 횡단한다. 무엇보다 최근 몇 년간 전시 공간으로 큰 역할을 해왔는데 이번 밀라노 디자인 위크 기간 몽클레르의 몰입형 전시 <꿈을 향한 초대(An Invitation to Dream)>를 선보이며 다시 한번 관심을 끌었다.

도시 전체에 디자인 열풍이 부는 이 시기에 몽클레르가 밀라노의 교통 허브에서 대대적 전시를 전개한 것은 오늘날 문화적 선구자들의 세계관을 통해 관객들에게 꿈과 영감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몽클레르의 브랜드 정체성을 들여다보면 이해와 몰입이 좀 더 수월해진다.

몽클레르는 모네스티에르 드 클레르몽Monastier de Clermont의 산악 지역에서 출발했다. 수많은 탐험가가 이 브랜드의 제품을 착용하고 가장 높은 정상에 올랐다. 꿈을 실현했고 다른 이들의 용기를 북돋웠다. 관습을 뛰어넘어 한계에 도전하는 것이야말로 몽클레르의 진정한 정신이었다. “꿈은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파워를 뒷받침하는 원동력이다. 우리는 무엇이 가능한지,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과 영감을 주고받을 수 있는지, 고민을 멈추지 않고 꿈꿔왔다. 항상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은 물론 더 잘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한다.” 몽클레르 회장이자 CEO인 레모 루피니Remo Ruffini의 말이다. 

이번 전시의 큐레이터를 맡은 데이즈드 미디어의 공동 창립자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제퍼슨 핵Jefferson Hack은 몽클레르의 이런 가치를 극대화하여 표현했다. 다니엘 아샴, 라일라 고하르, 줄리안 녹스, 레모 루피니 등 창작자 10명을 선별해 그들과 직접 인터뷰한 뒤 관객에게 영감을 줄 만한 스토리를 이미지와 텍스트의 병치로 재구성했다. 오늘날 문화를 이끌어가는 비범한 인물들을 통해 우리가 다시금 꿈꿀 수 있도록 하나의 길을 열어주고자 한 것이다. 프로젝트를 주도한 또 다른 인물은 다름 아닌 포토그래퍼 ‘잭 데이비슨Jack Davison’. 기차역 내 모든 빌보드와 스크린 광고판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재생되는 그의 사진과 영상은 그야말로 꿈의 풍경에 가까웠다.

제퍼슨 핵은 “전시에 참여한 창작자들은 문화계 전반에서 가장 크리에이티브한 선구자들이다. 이들의 작품에는 새로운 희망과 가능성이 담겨 있다”라며 전시 참여자들의 예술성과 혁신성을 강조했다. 새로운 꿈을 꾸고, 그 꿈을 현실로 실현한 창작자들의 초상과 글귀는 또 다른 형태로 재구성되어 밀라노 디자인 위크 이후 글로벌 캠페인으로 확장될 예정이다. 

Interview

큐레이터 제퍼슨 핵이 다니엘 아샴에게 물었다.

꿈의 창작적 원동력에 관하여. 

제퍼슨 핵(이하 JH) 이번 전시의 주제로 질문을 시작하고 싶다. 당신은 ‘드리머’인가?

다니엘 아샴(이하 DA) 그렇다. 나는 아이디어를 발현시키는 것을 늘 특별하게 여겨왔다. 어렸을 땐 그것의 메커니즘이나 실질적 요소를 깨닫진 못했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나는 아이디어를 세상에 내놓고 그것을 실현하는 데 내가 가진 모든 기회를 쏟아부었다. 가령 쿠퍼 유니언Cooper Union 입학이나 안무가 머스 커닝햄Merce Dunningham과의 협업 같은 것. 전부 내가 꿈꿨고, 이룬 일이다. 꿈을 실현했다는 경험은 이후 내가 작업하는 여러 방식에 중요하게 작용했다. 

JH 다니엘 아샴은 메모장도 많고, 스케치도 자주 한다. 머릿속의 꿈을 끄집어낼 때도 이런 과정을 거치나?

DA메모장이 내 작업 프로세스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분명하다. 꿈도 마찬가지다. 잠에 푹 들기 5~10분 전, 자각몽 상태에 빠질 때가 있다. 꿈에 등장하는 것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고, 일부는 잠재의식이 지배하는 상태. 이때 나는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메모와 드로잉도 많이 한다. 현실과 상상이 뒤엉킨 사고가, 이유는 모르겠으나 좋다.

JH 의식 혹은 잠재의식의 맥락을 재구성할 수 있다니 흥미롭다. 편견 없이, 좀 더 자유롭게 사고를 확장할 수 있겠다.

DA 맞다. 때로는 그 아이디어를 기록하기 위해 나에게 문자를 보내기도 한다. 며칠 전에도 꿈에서 깨 문자를 썼다. ‘알람 울리기 30분 전에 아름다운 꿈에서 깨어나. 다시 꿈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적이 있는가. 당신의 삶이 그렇게 느껴지도록 하라.’ 정말 아무렇게나 보낸 문자였다.

JH 아름다운 말이다. 꿈 얘기를 들으니 당신의 크리에이티브가 명상 같다.

DA 동의한다. 그래서 아이디어를 실행하는 것 이전에 포착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확히 설명할 순 없지만, 그림을 그리는 상태를 설명하자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이 아니라 이미 내게 있던 아이디어를 그저 찾은 것처럼 느껴진다. 기계적인 느낌은 아니다. 체계적이다. 물감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어떤 붓을 사용할지 이미 습득했기에 나에게 맞는 특정 유형의 물감을 알고 있다고나 할까. 이렇게 생산적인 틀 안에서 구축된 어떤 루틴을 계속 반복하는 걸 나는 ‘스튜디오 작업’이라고 한다. 

JH ‘스튜디오 작업’ 과정에서 갑자기 방향을 선회한 적도 있나?

DA 사실 작품의 특정 아이디어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파악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아이디어는 계속 흘러가는 것이다. 되풀이도 된다. 최근 시작한 시리즈는 얼굴을 분할한 그림인데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고대와 현대가 뒤섞인 작은 스케치가 있었다. 

JH 현실과는 다른 차원에서 시공간을 편집하는 것. 나 역시 그런 아름다움을 탐색해왔다. 작업을 할 때 영감은 어디에서 얻나?

DA 모든 문화에는 그것을 관통하는 시대정신 같은 게 있다고 생각한다. 즉 인간은 자신이 사는 시대의 산물이다. 여기서 아티스트의 역할은 현실에 드러나지 않거나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의 잠재적 의미를 해석하고 표현하는 일이다. 영향력이 큰, 이 세계에서 제대로 작동하는 작품은 그래서 내가 만들기 전부터 이미 세상에 있던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작품이 진정한 힘을 갖게 된 거다.

JH 다니엘 아샴의 작품에는 뚜렷하게 반복해서 등장하는 심볼과 모티브가 있다. 당신의 꿈도 마찬가지인가?

DA 같은 꿈을 반복해서 꾸는 경우가 정말 많다. 어떤 꿈은 기이하고, 어떤 꿈은 고등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텅 빈 풍경에 나무가 하나 있고 공중에는 원기둥들이 떠다니는데 내가 잡으려고 하면 연필로 줄어들며 사라지는, 열에 뜬 악몽이다. 유년 시절 살던 집의 물리적 배치를 꿈에서 보는 경우도 많다. 지금까지 그 집의 평면도를 정확하게 그릴 수 있을 정도다. 30년 넘게 가지 않은 집이지만 아주 잘 알고 있다. 

JH 그 집에 있는, 미래의 다니엘 아샴을 꿈꾸는 어린아이를 상상하게 된다. 아티스트의 길을 선택한 자신감은 무엇을 통해 얻었나?

DA 모든 집이 거의 똑같이 생긴 교외 지역에 살았다. 10살쯤 할아버지가 카메라를 주셨는데 처음 찍은 사진 시리즈가 바로 이 집들의 문이었다. 마치 거울에 비춘 것처럼, 심지어 평면도까지 비슷했지만, 문 만큼은 달랐다. 어떤 사람은 문밖에 화분을 두었고, 어떤 사람은 십자가를 걸었다. 페인팅도 달랐다. 유사한 것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색다른 점을 포착하는 일련의 행위가 아티스트로서 잠재력을 일깨운 최초의 제스처였던 것 같다. 다른 사람은 보지 않는 것을 보는 능력 말이다. 

JH 뷰파인터를 보며 새로운 관점을 만든 어린 다니엘 아샴을 상상하니 놀랍다. 이를 우리가 꿈에서 재현하는 걸 ‘비현실’이라고 하는데, 어떤 문화권에서는 현실 세계가 환상이고 꿈의 세계가 진짜라고도 한다. 당신의 예술 작품 또한 그렇지 않나? 머물고 싶은 세상을 스스로 만드는 것. 

DA 그렇다. 대부분의 사람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 한계까지 받아들인다. 현실에 강하게 맞서려는 의지가 없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을 이루고 있는, 우리의 눈에 보이는 많은 것은 사실 현실 너머의 것을 상상하고 창작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무섭지 않나? 누군가가 이미 만들어 놓은 세상이. 내겐 캐스퍼Casper와 피닉스Phoenix라는 두 아들이 있는데, 눈에 보이는 세상의 모든 것이 무조건 당연하지는 않다는 걸 깨닫게 해준다. 흔히 보는 테이블도, 소다 캔도 다 누군가가 생각하고 스케치하고 디자인한 것이며 그 결정의 순간들 속에 변화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 다시 말해 현실의 가변성이 곧 잠재력이다. 

JH 세상을 바라보며 더 나은 방식 혹은 다른 방식을 모색하는 것이 당신의 창작 동기인 셈이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에 대한 해답을 구하고자 하는가?

DA 예술은 해답을 찾는 일 같지만 결국 질문을 던지는 일이다. 

JH 아이 같은 참신함을 유지하는 비결은 무엇인가?

DA 한계를 실험하는 것이다. 만들 것도 아이디어도 늘 많지만 새로운 것을 고집하는 이유다.

JH 사람들이 다니엘 아샴의 작업에서 받았으면 하는 어떤 인상을 당신에게 준 경험이나 작품이 있나?

DA 11~12살쯤 내가 살던 플로리다의 집이 허리케인으로 완전히 무너졌다. 태풍 이전의 상태로 복구했으나 바닥 타일도 벽지도 가구도 달라졌다. 그 과정에서 건축물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구조는 물론 전기선, 배관, 페인트 작업까지 전부 봤다. 이 경험은 내 사고방식에 큰 영향을 끼쳤다. 내가 여러 소재와 방식으로 표현하는 다양한 가능성은 이렇듯 파괴되고 재건되는 것에 관한 표출이기도 하다. 

JH 마지막 질문이다. 아직 실현하지 못한 꿈이나 야망이 있나?

DA 과거에 영상 작업을 좀 했다. 단편 영화도 몇 편 만들고. 그 잠재력을 아직 온전히 시험해보지 못했다. 10년 동안 안 그리던 그림도 요즘 본격적으로 다시 시작했다. 내 일상과 예술 활동의 일부가 됐다. 나의 관심을 끄는 가장 흥미로운 것이 무엇일지 생각하고 있다.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551호(2024.05)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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