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레스트 & 웨일, 디자인을 매개로 싱가포르 사회를 바꾸다

구스타보 마히오(Gustavo Maggio) 인터뷰.

포레스트 앤 웨일(Forest & Whale)은 예술과 디자인을 사회·환경 돌봄을 위한 변화의 동력으로 삼는 스튜디오다. 오브젝트, 사진, 몰입형 공간, 박물관 전시를 기획하며 큐레이션과 서비스 디자인 전략도 수행하는데, 이들의 접근방식은 철저한 민족지 연구와 다양한 문화·행동에 대한 섬세한 이해를 바탕으로 인간의 필요를 깊이 파악하는 데 기반한다.

포레스트 & 웨일, 디자인을 매개로 싱가포르 사회를 바꾸다

포레스트 앤 웨일(Forest & Whale)은 예술과 디자인을 사회·환경 돌봄을 위한 변화의 동력으로 삼는 스튜디오다. 오브젝트, 사진, 몰입형 공간, 박물관 전시를 기획하며 큐레이션과 서비스 디자인 전략도 수행하는데, 이들의 접근방식은 철저한 민족지 연구와 다양한 문화·행동에 대한 섬세한 이해를 바탕으로 인간의 필요를 깊이 파악하는 데 기반한다. 또한 여러 산업과 개발 단계 전반에서 최첨단 기술의 응용 가능성을 적극 탐구하며, 예술·디자인적 실천을 지속적으로 북돋는 역할을 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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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막과 내리막 (Climbs and Slides_FW)
싱가포르 <아시아 문명 박물관(Asian Civilization Museum)>의 의뢰로 제작된 설치 작업이다. 전통 보드게임 ‘뱀과 사다리(Snakes and Ladders)’를 입체적 건축 설치로 재해석하여 조각·디자인 요소를 게임 메커니즘과 결합한다. 관람자는 물리적이자 은유적인 상승과 하강의 여정을 따라 이동하며 삶의 기복을 성찰하도록 유도된다.
Forest & Whale

부에노스아이레스대대학교(UBA)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고 스페인에서 실무를 거친 마히오는 2004/2005 일렉트로룩스 공모전 결선을 계기로 아시아와 인연을 맺어 2010년 싱가포르에 정착했다. 그는 가구·인테리어를 다루던 <오토스톡(AutoStock)> 에서 커리어를 시작했지만, 빠른 납기와 취약한 제조 기반이 주는 한계를 체감하며 2015년 파트너와 함께 <포레스트 앤 웨일(Forest & Whale)>을 창립하고 일의 초점을 ‘산출물’에서 ‘사전 과정’—현장 조사, 민족지, 행위자 맵핑, 정책·재정 구조 이해—으로 전환했다. 2016–2018년 레드닷(싱가포르·중국) 협업으로 전시·큐레이션·공간 언어를 통합하는 시각을 다졌고, 최근 7년은 보건·사회복지 영역에서 서비스·프로그램·디지털 등 ‘물건이 아닐 수도 있는’ 결과를 설계해 왔다(코피티암 기반 남성 노년 네트워크, 씨앗 종이 ‘월플라워’, 재사용 용기 ‘카피 캡’, 아시아 문명 박물관의 3D 사다리 게임, 임상 인력을 위한 다감각 마이크로 휴식 공간 등). 마히오의 신념은 분명하다. 디자인의 미래는 더 많은 물건이 아니라, 연구와 중재, 돌봄을 통해 사회·심리적 변화를 촉발하는 데 있다는 것. 이번 인터뷰를 통해 그가 싱가포르에서 실험해 온 ‘사물에서 돌봄으로’의 궤적을 짚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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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피컵 (Kopi Cup)
노점상들이 우유 캔을 테이크아웃 컵으로 재사용하던 관습에서 착안한 재사용 음료 용기이다. 휴대를 돕는 땋은 스트랩과 나사식 뚜껑으로 누수를 방지한다. 싱가포르 노점 문화를 기리는 동시에 BYO(Bring Your Own) 실천을 장려하여 지속 가능한 행동 변화를 촉진한다. Forest & Whale

Interview

구스타보 마히오(Gustavo Maggio)

포레스트 앤 웨일(Forest & Whale) 창립자
08 Gustavo Maggio Portrait
<포레스트 애드 웨일(Forest & Whale)> 디자인 스튜디오 창립자 구스타보 마히오(Gustavo Maggio) 프로필 사진. Forest & Whale

— 싱가포르로 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부에노스아이레스대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뒤 스페인에서 2년간 건축과 맞닿은 프로젝트를 하며 “도시와 사물의 경계”를 배웠습니다. 귀국 후에는 친구와 함께 2020년에 가전을 상상하는 일렉트로룩스(Electrolux) 회사의 공모전에 도전했고, 3,000여 팀 중 top 10팀으로 선발되어 스톡홀름 파이널에 섰지요. 그 자리에서 싱가포르 출신 디자이너 두 분을 만나 2005년부터 주말마다 협업을 시작했습니다. 주말 프로젝트가 생업이 되고, 실험이 방향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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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피컵 (Kopi Cup)
노점상들이 우유 캔을 테이크아웃 컵으로 재사용하던 관습에서 착안한 재사용 음료 용기이다. 휴대를 돕는 땋은 스트랩과 나사식 뚜껑으로 누수를 방지한다. 싱가포르 노점 문화를 기리는 동시에 BYO(Bring Your Own) 실천을 장려하여 지속 가능한 행동 변화를 촉진한다. Forest & Whale

몇 년의 축적 끝에 2010년, 협업을 삶으로 확장하기로 결정하고 싱가포르 이주를 선택했습니다. 이주 전후로 두세 달 간 동남아 여러 도시와 일본을 돌아보며 서구의 시야로는 잘 포착되지 않던 생활의 리듬, 문제 설정, 기회의 구조를 몸으로 확인했습니다. “이 곳에서라면 더 많이 배우고 더 구체적으로 기여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고, 그렇게 싱가포르가 제 작업의 베이스캠프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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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블 충전기 (Pebble Charger)
자연의 자갈에서 모티프를 얻은 무선 충전 오브젝트이다. 하부가 미세하게 볼록하여 휴대전화를 올려둘 때 사용자가 의식적으로 균형을 잡게 한다. 이는 연결을 잠시 끊고 재충전할 시간임을 부드럽게 환기하는 장치이다. Forest & Whale

— 오토스톡(AutoStock, 2007–2015)에서 일을 하다가 <포레스트 앤 웨일(Forest & Whale)>을 창립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오토스톡은 유럽 고객을 위한 가구 개발과 싱가포르 인테리어 프로젝트, 두 축으로 움직였습니다. 그런데 인테리어는 ‘납기’가 지배하는 산업이었고 빠른 결정·시공 일정 속에서 실험과 학습의 여지가 거의 없었습니다. 당시 싱가포르의 제조 기반도 얕아, 설계 의도를 충분히 구현하기 어려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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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블 충전기 (Pebble Charger)
자연의 자갈에서 모티프를 얻은 무선 충전 오브젝트이다. 하부가 미세하게 볼록하여 휴대전화를 올려둘 때 사용자가 의식적으로 균형을 잡게 한다. 이는 연결을 잠시 끊고 재충전할 시간임을 부드럽게 환기하는 장치이다. Forest & Whale

그래서 ‘더 빨리’가 아니라 ‘더 깊게’ 기여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았습니다. 2015년, 아내이자 파트너와 함께 포레스트 앤 웨일을 열며 스튜디오의 체질을 바꿨습니다. 결과물 위주에서 벗어나 사전 과정 (현장 조사, 이해관계자 맵핑, 제도·재정 구조 읽기, 프로토타이핑)을 전면에 두는 연구 중심의 실천으로 전환한 것입니다. 우리가 의미 있다고 믿는 문제를 스스로 정의하고, 필요한 팀과 시스템을 엮어 장기적으로 다루자는 결심이었어요. 속도는 느려졌지만 밀도는 높아졌습니다. 프로젝트를 ‘납품’이 아니라 변화의 과정으로 다루게 된 것이 포레스트 앤 웨일의 출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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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와 함께하는 여정 (To journey with care)
학교에서 지역사회로의 전환을 기점으로, 삶의 주요 전환 국면에서 장애인이 직면하는 충족되지 않은 요구와 서비스 기회 영역을 가시화한 연구이다. 사회복지 분야 등 인접 영역의 미래 서비스 경로를 제시하며, 전략 로드맵의 우선순위와 초점을 재조정하여 영향력의 범위와 강도를 확대·강화하는 데 기여한다. Forest & Whale

— 최근 7년간 민족지·인터뷰·행위자 매핑 등 ‘조사’에 집중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디자인 프로젝트”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물질적인 작품, 제품, 결과물을 기대하게 되는데, 진행하신 프로젝트들의 결과물은 어떠했는지 궁금합니다.

보건·사회복지처럼 디자인의 개입이 적었던 분야에서 혁신의 필요를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현장 민족지, 사용자와 가족 인터뷰, 공공정책과 자금 구조 파악을 우선했습니다. 실행 가능성은 이 사전 조건들에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물은 반드시 ‘물건’일 필요가 없고, 서비스·프로그램·디지털일 때가 많습니다. 그 방식이 문제의 복잡성을 더 정직하게 다루고, 현장에 맞는 변화를 만드는 데 적합하다고 판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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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와 함께하는 여정 (To journey with care)
학교에서 지역사회로의 전환을 기점으로, 삶의 주요 전환 국면에서 장애인이 직면하는 충족되지 않은 요구와 서비스 기회 영역을 가시화한 연구이다. 사회복지 분야 등 인접 영역의 미래 서비스 경로를 제시하며, 전략 로드맵의 우선순위와 초점을 재조정하여 영향력의 범위와 강도를 확대·강화하는 데 기여한다. Forest & Whale

이를테면 “레인보우 센터” 프로젝트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싱가포르 정부가 매년 고등교육에 최대한 많은 지원금을 들였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집에 머물곤 했지요. 그래서 싱가포르 정부는 저희에게 이런 퇴행적인 문제의 이유를 파악하는 과제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바르셀로나의 협력 연구소와 일년 동안 인터뷰와 행위자 분석을 진행해 졸업 후 지원의 한계, 재정 구조, 공공정책 범위를 짚었습니다. 그러한 이해를 기반으로, 앱부터 대학 협력 프로그램까지 솔루션 포트폴리오를 제시했어요. 산출물은 서비스·디지털 제안을 담은 연구 보고서였고 물리적 제품은 없었습니다. 핵심은 바람직한 것과 가능한 것을 조화시키는 일이었습니다.

— 프로젝트에서 물리적인 ‘사물’은 언제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저희가 디자인에 접근하는 방식이 다르다 보니, 이 질문이 다소 복잡하게 다가오네요. 어쩌면 공통점은 프로젝트의 종류가 아니라, 제가 10~15년 전에 디자인을 이해하던 방식과 지금의 이해가 어떻게 달라졌는가에 있습니다. 예전에는 출발점이 오브젝트였습니다. 어떻게 제작할지, 마감은 어떠한지, 재료는 무엇인지… 오브젝트 자체가 프로젝트이자 과정, 그리고 최종 결과물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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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플라워 (Wallflower)
씨앗을 벽면 예술로 전환한 상기 장치이다. 색상별 허브 씨앗 칩으로 재배 데이터를 시각화하며, 모두 심기면 낭비 없이 소멸한다. Forest & Whale

지금은 사물 디자인이 결과에 이르는 하나의 요소, 때로는 도구로 작동합니다.예를 들어 “바퀴(la rueda)” 사례가 있습니다. 작은 조각들로 구성된 흰색 원판인데, 탄생부터 죽음까지의 생애 주기를 나타냅니다. 인터뷰를 위해 그 도구를 설계한 행위는 어떤 의미에서 ‘오브젝트를 디자인’한 것이지만, 그 자체가 최종 결과는 아닙니다. 더 나은 최종 결과를 돕는 수단인 셈이죠. 요약하면, 디자인 사물은 여전히 많은 경우에 등장합니다. 다만 이제는 사용자 경험의 개선, 지속가능성, 특정 문화·사회 집단을 위한 더 나은 서비스라는 더 큰 틀 속에서 작동하는 한 조각입니다. 질문에 제대로 답했는지 모르겠지만, 저에게는 복합적인 주제입니다.

— <포레스트 앤 웨일> 스튜디오는 ‘오브젝트 개발’보다 ‘사회적 디자인’에 초점을 맞춘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미래의 디자인 역할을 어떻게 보시나요?

디자인의 역할은 시간 지평에 따라 달라집니다. 5년과 20년은 다르죠. 더 먼 시나리오15~20년 후에서는, 성숙한 인공지능과 변화된 사회 속에서도 디자인은 여전히 필요할 것입니다. 특히 사회혁신의 관점에서 말이죠. 그때 나타날 가능성이 큰 문제들은 많은 인간 업무가 자동화되는 환경에서 혁신과 창의성을 요구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동시에 보건·의료 시스템의 혁신도 중요해질 것입니다. 우리는 더 오래 살 것이고, 스스로를 활성 상태로 유지해야 하니까요. 또한 경제적 생산성 중심이 아닌, 취미에 가까운 디자인이 커질 것이라 봅니다. 자동화로 물건 가격은 낮아지고, 인공지능이 일부 일을 맡으면서 여가 시간은 늘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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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 레스 (SLEEP: LESS)
수면과의 관계가 서로 다른 다섯 개인의 사례를 통해 전개되는 VR 체험이다. 각 개인의 뇌에서 나타나는 생화학적 신호를 몰입적으로 탐색하며, 생체리듬 장애와 불면에 대응하는 다섯 가지 수면 서사가 전개된다. Forest & Whale
07 SLEEP Less
수면: 레스 (SLEEP: LESS)
수면과의 관계가 서로 다른 다섯 개인의 사례를 통해 전개되는 VR 체험이다. 각 개인의 뇌에서 나타나는 생화학적 신호를 몰입적으로 탐색하며, 생체리듬 장애와 불면에 대응하는 다섯 가지 수면 서사가 전개된다. Forest & Whale

더 가까운 미래에서는 기술의 영향이 국가마다 다르게 나타날 것입니다. 싱가포르나 중국과 같은 곳과, 산업 자동화·제조 인프라가 다른 지역은 당연히 차이가 있겠죠. 중남미의 여러 나라처럼 자동화가 낮은 곳에서는 디자인이 여전히 생산 수단과 강하게 연결될 가능성이 큽니다. 반대로 고도로 자동화된 환경에서는 디자인이 점차 사회혁신 쪽으로 이동하는 경향을 보일 것입니다. 저는 최근 몇 년간 싱가포르, 그리고 중국에서 어느 정도 그런 흐름을 관찰했습니다. 우리는 중장기적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지만, 그 구현 속도와 형태는 나라별로 매우 불균등할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도 각자의 맥락에서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가’와 ‘어떻게 지속 가능하게 바꿀 것인가’를 묻는 디자인을 함께 상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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