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가의 유쾌한 프로젝트,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신작은?

마우리치오는 어디에 있는가?

이탈리아 개념 예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이 새 프로젝트 〈Where is Maurizio?〉를 선보였다. 뉴욕·암스테르담·런던 세 도시에서 진행된 이 보물찾기 형식의 글로벌 프로젝트는 한정판 자화상 조각 〈We are the Revolution〉을 숨겨두고 시민이 직접 찾는 참여형 이벤트다. ‘세 도시, 세 조각, 세 명의 승자’라는 슬로건 아래 예술의 소유와 가치를 유쾌하게 전복하며, 현대미술의 제도와 시장을 풍자한 카텔란 특유의 유머와 비판정신이 돋보인다.

현대미술가의 유쾌한 프로젝트,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신작은?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인 2019년, 아트 바젤 마이애미비치(Art Basel Miami Beach)에서 화제가 된 작품이 있었다. 바로 이탈리아 개념 예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의 신작 ‘코미디언(Comedian)’이었다. 패로탱 갤러리에서 공개된 이 작품은 기존 예술 형식의 벽을 완전히 뒤집었다. 벽에 덕트 테이프로 바나나를 붙인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이런 단순한 구성은 관람객들에게 혼란을 느끼게 하기 충분했다. 덕분에 공개 이후 큰 관심이 쏠리게 되면서 작품 앞에서 인증 사진을 촬영하는 것이 유행하게 되었다. 심지어는 화제성을 노리고 바나나를 먹어버리는 사람도 등장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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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텔란의 코미디언은 예술의 개념을 근본적으로 뒤흔든 마르셀 뒤샹 (Marcel Duchamp)의 ‘샘’이 처음 공개되던 순간을 다시 불러들이는 효과를 거뒀다. 이어 평범한 바나나와 덕트 테이프, 벽으로 이루어진 이 단순한 개념미술이 1억 4천만 원이라는 놀라운 가격에 판매되었다는 사실은 예술계의 오랜 논란에 다시금 불을 지폈다.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이 예술로 규정된다고 해서 천문학적인 가치를 지닐 수 있는가에 대해서 갑론을박이 이어졌고, 이 작품은 ‘세상에서 가장 비싼 바나나’라는 별명을 가지며 수많은 밈과 논란을 낳았다.

예술계를 뒤흔든 작품을 만든 카텔란은 1960년 9월 21일 이탈리아 파도바(Padua)에서 태어났다. 트럭 운전사인 아버지와 청소부인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그는 예술을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다. 1980년대 초 가구를 디자인하며 경력을 시작했으며, 미술 카탈로그를 읽고 전시를 기획하며 독학으로 예술을 배워나갔다. 지금 그가 펼쳐내는 독창적인 예술 세계는 자유롭게 스스로 생각하며 학습과 실험을 거듭해 온 과정에서 탄생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배경 때문에 카텔란은 종종 자신을 예술가로 불릴 자격이 없다고 말한다. 2017년 아트스페이스와의 인터뷰에서 작가는 “저는 제 자신을 예술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술을 만들지만, 직업이죠. 우연히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라며 “누군가 제게 예술은 매우 수익성이 좋은 직업이라고, 여행을 많이 다니고 여자도 많이 만날 수 있다고 말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거짓입니다. 돈도, 여행도, 여자도 없습니다. 오직 일만 있을 뿐입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는 “모든 사람은 예술가다”라고 주장했던 독일의 예술가 요제프 보이스(Joseph Beuys)의 정신과 상반되는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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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Avant Arte 홈페이지

카텔란의 작품들은 유머와 풍자를 기반으로 예술과 현실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며 예술계와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도발적인 작품에 분노하기보다는 매료되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미움을 받아도 모자를 그의 작품이 사람들에게 환영받는 이유는 그만큼 그의 풍자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정도로 절묘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카텔란은 ‘예술계의 농담꾼’, 또는 ‘예술계의 장난꾸러기’라고 불리며 명성을 높이고 있다. 그가 바나나와 덕트 테이프로 작품을 만들고 여기에 ‘코미디언’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가 여기에 있는 듯하다. 그에게 있어 예술계는 코미디 그 자체였고, 이를 사람들에게 체험시키고 싶었던 게 아닐까.

작가는 코미디언 외에도 특유의 유머와 풍자를 담은 다양한 작품을 통해 사람들을 유쾌하게 만들었다. 1992년에 그는 러시아 작가 이반 곤차로프(Ivan Goncharov)가 1859년에 발표한 소설 속 인물의 이름을 따서 ‘오블로모프 재단(Oblomov Foundation)’을 설립했다. 이 재단은 1만 달러를 모금한 후 1년 동안 작품을 제작하거나 전시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예술가에게 보조금을 지원하겠다고 공표했다. 그러나 실제 지원자가 나오지 않자, 작가는 뉴욕에서 휴가를 보내는데 돈을 쓰며 사람들을 경악하게 했다.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는 자신에게 배정된 전시 공간을 향수 광고 회사에 재임대하여 화제와 수익을 동시에 거두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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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작품은 일명 ‘황금 변기’로 불렸던 ‘아메리카(America)'(2011)일 것이다. 별명대로 18K 순금을 103kg나 들여 제작된 이 작품은 2016년부터 2017년까지 구겐하임 미술관 화장실에 실제로 설치되며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미국 경제의 극심한 부의 불균형을 꼬집은 이 작품은 실제로 앉아볼 수 있는 ‘체험형 예술’로 공개되면서 소셜미디어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곧이어 미술관의 화장실에는 변기를 보러 오는 관람객으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이후 2019년 영국 옥스퍼드셔의 블레넘 궁전(Blenheim Palace)에서 전시되던 중 도난당하면서 그 명성은 더욱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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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번째 시간(La Nona Ora)'(1999)은 예복을 입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운석에 맞아 쓰러지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작가가 자신을 비롯해 여러 인물을 실물 크기 밀랍 인형으로 재현한 시리즈 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이고 상징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제목부터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선종한 시간을 사용했으며 종교와 권력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과 더불어 인간의 취약성을 꼬집는 작품이다. 덕분에 공개 당시 거센 논란과 사회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예술 작품 중에서 이보다 더 도발적이고 풍자적일 수 없기에 카텔란을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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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계에 뛰어든 이래 늘 충격을 선사하는 도발적인 작품으로 화제가 되었던 카텔란이 최근 새로운 작품을 선보여 또 한 번 이슈가 되고 있다. ‘마우리치오는 어디에 있는가?(Where is Maurizio?)’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는 뉴욕, 암스테르담, 런던 세 도시에서 이루어지는 보물찾기 형식의 글로벌 프로젝트다. 온라인 미술 플랫폼 아방 아르테(Avant Arte)와 함께 하는 이 프로젝트는 한정판 자화상 조각 작품 ‘우리는 혁명이다(We are the Revolution)'(2025)를 선보이는 자리이자 예술의 가치와 맥락의 연관성을 탐구해 온 그의 오랜 여정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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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Avant Arte

프로젝트의 핵심인 조각 작품의 이름에서부터 의미심장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이는 요제프 보이스가 1972년에 발표한 대표적인 사진 작품 ‘La Rivoluzione Siamo Noi’와 동일한 뜻이기 때문이다. 작품은 보이스가 앞으로 힘차게 걸어오는 모습을 담았으며, 이를 통해 사회 변혁에서 개인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하는 작가의 예술적인 신념을 엿볼 수 있다. 작품명 자체가 작가의 철학이자 선언이며, 예술이 정치 및 사회에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 수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그동안 인터뷰를 통해 보이스와 반대되는 입장을 보였던 작가가 이 상징적인 문장을 차용했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번 작품은 그 이름대로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키며 보이스가 주장했던 ‘예술의 힘’을 새롭게 환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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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는 ‘세 도시, 세 개의 조각, 세 명의 승자’라는 슬로건 아래 사람들의 참여를 촉구한다. 세 도시에 각각 조각 작품이 숨겨져 있으며, 각 도시에서 이를 찾아내는 사람이 승자가 된다. 숨겨진 곳의 단서는 아방 아르테의 웹사이트에서 찾을 수 있다. 이 프로젝트는 참여자에게 직접 작품을 ‘획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전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다. 작가의 얼굴을 본뜬 23cm 크기의 조각상을 실제로 찾아내면 거의 무료나 다름없는 가격에 소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로젝트가 이루어지는 도시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이라도 작품을 획득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긴 하다. 1,000개 한정으로 제작된 동일 작품이 홈페이지에서 1,500유로(약 248만 원)의 가격으로 추첨 판매되기 때문이다. 각 작품에는 고유 번호가 매겨져 있으며, 작가의 서명이 있는 진품 인증서가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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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30일 뉴욕시에서 처음으로 시작된 이 보물찾기 프로젝트는 맨해튼 소호의 한 신문 가판대에서 50센트라는 가격표가 붙어 있던 작품을 발견한 인물이 나타나며 마무리되었다. 이후 암스테르담과 런던에서는 디지털 참여 방식으로 진행되었으며, 매일 공개되는 사진 속 단서를 통해 작품의 위치를 추적해야 했다. 런던에서는 0.99파운드(약 1,900원), 암스테르담에서는 5유로(약 8천 원)의 가격표가 붙은 조각 사진이 공개되어 사람들의 호기심과 경쟁심을 자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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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Avant Arte

이 프로젝트는 겉으로 보기엔 대중을 가지고 장난치는 듯하지만, 어쩌면 오늘날 현대미술의 단면을 보여주는 시도가 아닌가 싶다. 카텔란은 개인이 작품을 소유하던 기존의 방식을 도시 전체가 함께 참여하는 모험으로 바꾸어 놓았다. 어린 시절의 보물찾기 놀이를 도시 전체로 확장한 이번 프로젝트는 사람들에게 친근함과 유쾌함을 선사했으며, 예술 작품을 소유하거나 수집하는 일이 생각보다 멀고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점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했다. 긴 대기 명단과 천문학적인 입찰가가 일상이던 미술 시장의 관행을 통쾌하게 풍자한 셈이다. 또 한 번 ‘카텔란이 카텔란했다.’

이 프로젝트를 보면 길거리 가판대에서 수만 달러짜리 작품을 6-7만 원에 판매했던 뱅크시(Banksy)의 퍼포먼스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예술을 어디까지 정의해야 하며, 그 가치는 누가 평가하는지에 대해 첨예한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두 예술가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같은 답을 던지고 있다. 이들의 도발적인 실험을 통해 예술이란 제도나 시장이 아니라 참여와 경험 속에서 새롭게 정의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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